h1011_02 순례를 다녀왔더니 사람들이 묻는다. 히말라야 그 높은 고지까지 갔다 오면서 왜 추억이 될 만한 작은 조약돌 하나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아니면 갠지스강에서 물 한 방울 담아 오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그곳은 무언가를 가져오거나, 얻어 오는 곳이 아니라 내려놓고 오는 곳이다. 그래서 성지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언제나 비우고 비워 작아져 돌아오지, 무언가를 키우고 얻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막막한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해 내 안의 신께 직접 답변을 듣게 되기도 한다. 모든 해답은 내 안에있다. 끊임없이 에고의 확장을 위해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가 비로소 여행을 떠나 길 위를 걷는 과정 속에서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과 함께 삶의 해답을 찾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행은 우리가 삶에서 깨달아야 할 귀한 선물을 얻게 해준다. 우린여행자가 되는 동시에 순례자가 되고 구도자가 된다. 특히 홀로 걷는 여행은 또랑또랑한 지혜로써 삶을 빛나게 한다. ‘대지를 맨발로 걸으면 우리의 정신은 우주로 연결된다.’고 했던 아메리카인디언의 말처럼 홀로 걷는 그 행위 속에 정신적 각성과 우주적 교감이 형성된다. 그래서일까.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빠(Milarepa, 1052~1135)는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히말라야로의 순례는 그에게 깨달음의 원천이었으며, 이 우주속에서 끊임없이돌고 도는 윤회라는 여행의 종지부와도 같았다. 그는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히말라야로 떠나라.”고 외친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삶의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얻어 오는 여행’이 아닌 ‘비우고 오는 여행’을 권하고싶다. 그러려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배우고, 남들이 어떻게 여행했는지를 얻어 듣고, 온갖 여행기와 전문서적들을 탐구하면서 지식을 쌓는 방식의 준비는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되, 다만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모든 것을 향해 나를 활짝 열어둘 수 있는 천진한 마음을 챙기면 된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에 걸러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을 처음 경험하듯 청연한 눈으로 초롱초롱 여행지를 경험하고 느끼며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떤이는 ‘아는 대로 본다’고 했지만, 과연 우리가 무언가를 볼때 ‘아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할까? 지식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볼때 지식으로 걸러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제한한다. 드넓은 자유로움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는과거 일 뿐이지만 ‘바라봄’은 오직 지금 여기의 생생한 현재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여행이 이러한 지식과 정보에 기반을둔 ‘아는’ 여행, 즉 과거로의 여행이 아니었던가. 지식사회에서는 ‘아는 만큼 본다’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지만 자유로운 순례자에게는 그저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일뿐이다. 말을 잊게 하는 여행지의 풍경속에서그저 말과 생각을 잊은 채 그것과 하나되어 침묵할 수 있을 뿐이다.h1011_03
  여행지에서 홀로 오래도록 걷다보면 저절로 생각이 멎는 것을 경험한다. 마음을 비우고 떠난 여행지는 매순간이 새롭고, 모든 것이 걸러지지 않은 첫 ‘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텅빈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바라볼 때 비로소 삶에 대해, 나 자신에대해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적력한 자각과 통찰이 열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눈 뜨고,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자기다운 독자적 삶의 방식을 깨닫곤 하는 것이 아닐까.
  청명한 가을이다. 어떤가. 홀로여행을 떠나 보는 것이. 지리산도 좋고, 올레길도  좋고, 산사의숲길도좋으며, 인도도, 히말라야도좋다. 한사람의 순례자가 되어 홀로 고요한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 행복한 동행 11월호, /특집/여행의 기술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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