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도 온전한 삶이 있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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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찰 감성일기

잡초도 온전한 삶이 있다

목탁 소리 2007. 12. 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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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감악산에는
온갖 약 초들이 많아
멀리서도 약초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 하나요.
나처럼 까막눈인 사람한테는
그저 스쳐지나치는 들풀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 속으로 들 어 갈 것도 없이
우리 절 주변, 집 주변, 들, 밭에 보면
이름모를 수많은 야초들이
모두들 제 자리에서 온전한 삶을 살고들 있습니다.

우리가 이름 붙여
이건 뭐 고, 이건 그냥 잡초고,
이건 좋은 풀, 저건 나쁜 풀,
이건 먹을 수 있고 저건 먹을 수 없고,
나누어 놓았 으니 말이지

사실 그네들 입장에서야
우 리들 하나 하나가 내 스스로는 소중한 것처럼
아주 소중 하고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겁니다.

세상 어는 것이라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없어요.
아무리 사소한 들풀이며 잡초일 지라도
모두들 이 법계에서 제 몫을 온전히 해 내고 있습니 다.

그것도 이 우주를 살리고 지구 를 살리고
자연의 섭리에 일체를 내맡기면서
진리와 하나되는 삶 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잡초가 잡초가 아니고
이 자연에서 본다면 인간이 유일한 잡초일 것 같습니 다.

인간들만이 유독 자연을 훼손 하고,
나 아닌 것을 자비로써 감싸안지 못하고,
세상을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며,
완전한 존재인 세상 만물을
이렇궁 저렇궁 하면서 제 편한 데로 나누어 놓고는
좋 은 것이라거니 싫은 것이라거니 하고 분별을 하면서
취하고 버리는 작업, 살리고 죽이는 작업을 일삼는단 말입니 다.

하기야 인간들 제 스스로도
별 생각 없이 죽고 죽이고 하는 마당에
사소한 풀 한 포기 뽑아내는 거야 일도 아닐지 모르지요.

우리 절 옆 밭에도 봄나물이
서로 고개를 치켜들면서 한창 새로움을 뽐내고 있습니 다.
가끔 유원지나 절에 가 보면
노랗고 파란 옷들을 짝 맞춰 차려 입고 소풍 온
유치원 어린이들의 파릇파릇하 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처럼 말이지요.

절 마당 옆에 개나리 밭이 있 었는데
개나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건네고
또 염불 한 번 외 주고 는
다른 곳으로 옮겨 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밭을 만들려고 터를 가꾸는 중입니다.
비료나 농약, 제초제 를 쓰지 않고
또 흙을 숨 못쉬게 만드는 비닐도 쓰지 않으면서
그저 조촐하게 채소를 가꾸어 먹으려고 말입니 다.

개나리를 옮기면서
또 땅 을 들척이면서
흙 속에 지렁이며 작은 벌레들과
또 풀들을 갈아 업다보니 미안한 생각도 많이 들데요.

그래도 과감하게 자를 때는 자 르고
뽑을 때는 뽑고,
때로는 삽질을 하다가 지렁이를 죽 이게도 되더군요.
미안한 마음 관찰하면서
또 가 슴 한켠이 시릴 땐 염불도 외 주면서 작업을 합니 다.

작년 여름인가
법당 앞마 당 잔디밭에 풀이 하도 많이 자라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또 도량 주변에 난 풀들을 뽑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법우님께서
왜 풀을 뽑아야 하느냐고,
왜 풀을 잘라 내야 하느냐고 하는 바람에
물론 자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또 미안하지만 최소 한의 부분에서는
잘라야 하는 경우가 있노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 다.

그러고 보면
농사를 짓더라 도
늘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과
또 동시에 감사한 마 음을 항상 가져야겠습니다.

네 생명 없애면서
내 한 끼 식사를 만들려니
미안한 마음 또 감사한 마음이 안 들 겠어요.
그러면서 또 그 마음에 너무 얽매여도 안 되겠지만 말입니 다.

너무 얽매여 버리면 아예 농사 도 지을 수가 없고,
풀 한 포기 생명 살리려고 내 생 명 쓰러져 갈테고,
그것은 어쩌면 그 풀들한테도 잘못하 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풀의 인연이고 풀의 삶이라 면 말이지요.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그 렇고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고
최소한의 생명을 희생시키 려고 해야 할테고,
별 생각 없이 함부로 들풀이며 나무 를 잘라내도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때는 공한 마음 으로
최소한의 희생이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 다.

밭에 서서 보니
아직 씨앗 도 뿌리지 않았는데
벌써 자연이 제 스스로 만들어 준 음 식들이 가득합니다.

아직은 이름도 잘 모르고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다 보니
한정되긴 하지만
냉이나 쑥 소리쟁이 민들레 같은 것들이
제법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처음엔 나도 겁냈었는데
황 대권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는
어지간한 것들은 먹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들 맛이 있고
또 아버님 말씀처럼 봄철에 올라오는 여린 새순, 나물이나 풀들은
거의 다 먹어도 될 만큼 다양하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 다.

오랜만에 찾아갔던 고향에서
아버님께서 이것 저것 가르쳐 주시며
봄나물 얘기, 농사 짓는 얘기, 또 자연에 대한 얘기를 해 주시는데
예전엔 왜 이런 소중한 법문에 관심이 없었는지 말입니 다.

농사를 짓고
내 스스로 땅 을 일궈
기른 채소를 먹고, 기른 과일을 먹고
그 땅에서 올 라오는 나물들을 먹어 봐야
비로소 사람 사는 것이 무 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씨앗을 뿌리고
그 흙을 뚫 고 처음 작은 순이 올라올 때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 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커야 하고
또 도시인들도 그것을 알 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봄이 되면서
내 인생에 늘 상 오는 봄이지만
이번 봄은 좀 더 새로운 무언가가 꿈 틀거리며 가슴을 칩니다.

봄이 되고 만물이 생기롭게 돋 아나면서
내 삶의 봄도
새롭게 돋아나는 듯 생기롭습니 다.

흙을 만지고
숲 속을 거닐 며
깨어나는 자연에 몸을 맡기면
나 또한 새봄을 맞아
저 심연 깊은 뿌리로부터 물이 오르고
내 삶의 가지며 잎 또한 점차 푸르러 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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