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안면도 황도] 새벽 도량이 쨍쨍하다. 유난히 새벽녘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대충 흘려들어도 예닐곱 종류 이상의 새들이 매일 아침 예불에 동참한다. 조용히 새소리를 듣다 보면 이놈은 어떤 새일까, 또 저 목소리를 가진 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많이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새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마찬가지로 도량 주위로 포행을 하다보면 사소하게 피어난 온갖 들풀이며 야생꽃들 또한 내 마음을 한참 동안 빼앗아 가곤 한다. 산에 사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 꽃 그리고 새들이며 곤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름을 알고, 그 인연을 알고 마주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니까. 그렇더라도 나 같으면 꽃에 대해, 나무에 대해, 새들에 대해 전문 서적을 산다거나 애써 공부를 할 만큼 성의가 있지 못하다. 그저 필요할 때, 정 궁금할 때 책을 찾아 볼 정도밖에. 꼼지락 거리기 싫어하는 게으른 내 습 탓도 있겠으나 그 또한 하나의 번거로운 일만 벌이는 것 같아서다. 무엇이든 아는 게 많다보면, 취미가 많다보면 시간도 많이 빼앗기게 되고 마음도 이래 저래 많이 빼앗기게 되니 삶이 그만큼 번거로워 진다. 물론 처음에는 책들도 자주 찾아보고 공부도 하고 해 보았는데 내 경험상 책과 지식들로 인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이제부터는 '알기'보다는 '느끼기'에 좀 더 촛점을 맞추게 되었다. 아는 지식을 통해서 그것들을 보게 되면 편견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게 되는 어리석음도 범하곤 한다. 아무래도 식물이든 새든 곤충이든 그것들에 대해 책을 찾아보게 되면 주로 인간에게 이익이 되고 안 되고를 기준으로 좋고 나쁜 분별로 쓴 것들이 많아 그들에게 순수하게 다가서는 걸 막는 경우가 많다.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여행이나 유적지 답사나 사찰 답사를 다닐 때는 그곳에 대한 역사적인 혹은 문화재적인 기본 지식은 가지고 가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찾아갔을 때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 여행은 조금 다르다. 유적지나 사찰을 찾아다니면서도 그곳에 대한 많은 전문 지식을 애써 구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떤 문화재 전문가께서 ‘아는 만큼 본다’고 말했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보는 만큼 안다는 표현보다는 보는 만큼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알음알이 지식으로 세상을 걸러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나 지식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으로써 투영된 세상을 보는 것만이 올바로 보는 것이란 생각에 고집할 것은 없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과연 지식이 필요할까. 지식은 곧 판단과 시비를 낳고 그랬을 때 대상은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좋고 나쁘거나, 혹은 옳고 그르거나 하는 차별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만다. 그랬을 때 세상은 온통 둘로 셋으로 나뉘게 되고 세상을 향한 평등심은 사라지며 더불어 우리 마음의 평화는 깨지기 쉽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아무런 분별없이, 지식으로 거르는 작업 없이 다만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할 때, 그 때 비로소 온전히 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실지로 지식 없이 찾아간 곳에서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낄 때 좀 더 투명하고 걸러짐 없고 차별 없는 있는 그대로를 단순히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선에서는 좋고 싫은 것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끼면 되기 때문에 좀 더 직접적으로 대상과 마주할 수 있다. 때로는 지식도 버리고 사물을 바라보자. 그저 텅 빈 시선으로 그것 자체에 순수한 관심을 기울여 주자. 그랬을 때 세상은 차별되지 않고 내 마음도 고요해 질 것이다. 때로는 아는 만큼 보기 보다는 보이는 대로 그저 느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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