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보여질 때도 있기는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원한다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

죽고 싶지 않고, 늙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100%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1시간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해,

1주일 뒤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

1년 뒤에 시험에서 합격해야해,

나는 건강하고 아프지 말아야 해,

아들은 내 뜻을 따라 주어야 해,

남편은 나를 이해해야 해,

윗집 사람들은 쿵쿵거리며 걸어다니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나에게 욕하지 말아야 해

나는 성공해야 해 등등

이 무수히 많은, 매 순간 올라오는 통제 욕구를 가만히 살펴보라.

너무나도 터무니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삶을 완벽히 내 뜻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 통제 아래에서 움직여주기를 바라지 않을 때, 그 때 삶과의 투쟁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렇지 않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 괴로움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다.

그 때마다 괴롭고, 화가 나고, 답답하고, 초조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길을 갈 거라고?

그런 길을 정녕코 갈 것인가?

그거야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그랬을 때, 어떤 결과가 오게 되는지는 삶에서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삶을 통제하기를 멈추고, 추구하고, 바라고, 욕망하기를 멈추고, 그 모든 통제 욕구와 싸우며 사는 대신, 평화롭게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준비된 괴로움이 없다.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삶은 늘 이러할 뿐이다.

내가 그저 이러한 삶에 대해 이렇커니 저렇커니 판단하지만 않으면, 삶은 있는 이대로 자연스럽다.

펼쳐지는 이대로, 벌어지는 이것이 곧 진리다.

더 이상 삶과 싸우지 않게 된다.

언제나 삶은 완전하다.

삶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이 거대한 삶과 다툰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삶을 삶 자체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허락해 주라.

현재가 곧 실재이며, 현실이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삶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가 바로 진정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삶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고, 잘 되거나 안 되고,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나'라는 개체적인 존재는 없다. 무아(無我)!

당신은 그 '나' 보다 훨씬 큰 존재다.

삶 자체, 이 우주 자체가 그대로 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삶을 통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다.

통제하고자 하는 그 주체인 '나'가 실체가 아닌 허망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주어진 현실, 그 속에 온전히 뛰어들어, 그것을 살아 주기를 선택해 보라.

아니,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삶이 그렇게 펼쳐지고 있다.

삶은 이미 수용되고 있다. 내가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 조차 없다.

다만 생각, 분별이라는 허망한 필터로 제 스스로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하려는 망상만 일으키지 않으면 될 뿐!

그러면, 그 어떤 다툼도 없다.

완전한 평화, 자유, 행복, 기쁨, 충만, 열반, 해탈, 지복, 극락, 천당,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을 이대로의 진실이 활짝 드러난다.

아니 이미, 언제나 삶은 그저 이러했음을 문득 확인하게 된다.

본래 아무 일이 없었음을.

전혀 통제할 필요가 없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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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 간단히 공지합니다. 
* 현재로서는 질병관리본부와 종단의 방침대로, 4월 5일까지의 모든 종교행사, 법회, 아카데미 강의는 취소가 되었습니다. 4월 2일 개강 예정이던 아카데미도 1주일 연기하여 4월 9일(목) 입재할 예정입니다만, 추후 일정은 질본과 종단 등의 지침에 따라 변동될 수 있어,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차후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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