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마음공부 동영상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숲이 더없이 생기롭습니다.
흙이 질펀하게 감로의 물을 빨아들여
봄의 생명을 잉태하는데 더욱 바빠지겠습니다.

이곳 강원도는 아직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추워
다음 주 쯤에나 씨앗을 뿌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멀게는 5년 쯤 전부터
또 가깝게는 작년 말부터 뿌려두었던
금강경의 씨앗이
이제서야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금강경과 마음공부'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하여
현재 서점에 베포를 마쳤다고 합니다.

내용이 많다 보니
교정 보고 또 수정 정정도 하고
하나 하나 꼼꼼히 훑어 보면서 다시금 복습도 한다고
5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책 분량이 좀 많아졌습니다.
약 600 페이지 분량이니
이 금강경 공부가 만만치는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쉽게 풀어 쓰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풀어 쓰다 보니
이렇게 길어진 듯 합니다.

이번 원고와 편집은 특히 작년에
함께 네팔 순례를 다녀왔던 도반 스님들께서
함께 도움과 조언도 주셨고,
아울러 네팔에서 찍어왔던 수많은 사진들을
선뜻 베풀어 주셔서
자칫 딱딱해 지기 쉬운 금강경 원고 곳곳에
시원스런 사진들을 많이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도반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애초에 흑백으로 찍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출판사에서 사진이 너무 좋다고
올컬러로 사진을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을 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렸듯이
금강경 독송집 내지는 '금강경 독송 지침서'의 성격으로
'금강경 독송'이라는 작은 책도 함께 출간하였고,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에 함께 붙여서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을 사시는 분들께는
한 권씩 함께 드릴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 배려 해 주셨습니다.

금강경 독송 책에는
금강경 우리말 번역과 한문본을 함께 넣어
금강경 독송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고,
아울러 뒷쪽에는 '금강경 수행을 위한 길잡이 혹은 지침'들을
조금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이번 금강경 책에는
경전을 유포한다는 마음으로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써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금강경 독송을 위한 독송집인 '금강경 독송' 책자와
금강경 해설서인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을
법보시 하시거나,
영가천도나 사십구재 법보시 용으로 구입하실 경우에는
60% 할인 된 금액으로 출판사에서 보내드린다고 하십니다.

책값이 25,000원이니까,
법보시 할인가는 15,000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에 대해서는
10권 이상 구입하시는 분들께도 15,000원의 금액으로
할인하여 보내드리도록 이야기를 하였으니,
10권이상 법보시 용으로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이메일 (buda1109@hanmail.net)로 주소와 전화번호 권수를
보내주시면 출판사에 연락하여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두권씩 책을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아래의 책 제목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강경과 마음공부(교보문고)
금강경과 마음공부(인터파크)
금강경과 마음공부(리브로)
금강경과 마음공부(yes24)
금강경과 마음공부(반디북)
금강경과 마음공부(영풍문고)
금강경과 마음공부(알라딘)

다음은
출판사에서 보내 온
'금강경과 마음공부'관련 내용들입니다.



인류 정신사의 최고 정점인 금강경과 명쾌한 풀이
『금강경과 마음공부』 (금강경 독송 포함, 양장본)


불교출판문화협회 ‘올해의 불서10’에 선정된 『반야심경과 마음공부』에 이어
5년여에 걸쳐 쓰인 또 하나의 생활 속 경전 실천서
네티즌들이 극찬한 바로 그 책!!

불교출판문화협회 선정 ‘올해의 불서10’에 선정된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를 저술한 법상스님은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출간 5년 만에 반야심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경을 풀이하여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출간했다. 인터넷에서 생활수행도량 ‘목탁소 리(www.moktaksori.org)’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지혜를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면 서 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진 법상 스님은 생활 속에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명상수행과 자연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찾는 깨침의 글들을 조계 종 포교 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보신문’ 등에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진리의 보고, 금강경

『금강경(金剛經)』은 많은 불교의 경전 가운데에서도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경전이다. 『금강 경』은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경』 중 577부에 들어있는 「능단금강분」을 말하며, 그 구체적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 혹은 『능단금강반 야바라밀경』이다. 이 『금강경』은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 가운데에서도 경의 중심이 되는 사상인 반야사상, 공사상에 대한 핵심적 가르침을 짧 고 간략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인 『반야경』을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두루 읽혀지는 경전이다.

금강경은 모든 이들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가슴이 뻥 뚫리도록 명쾌하게 풀어주고,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철하게 지적해 주며, 나아가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 는 보기 드문 진리의 보고다.

그런데 그동안 금강경은 그것이 지니는 진리의 가치에 비해 세상에서 너무 외면 받아온 감이 있다. 그 이유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너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금강경』은 해설서를 보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최 대한 이해하기 쉽게, 또한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금강경』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쓰였다.

현재 사람들이 쉽게 접하며 독송하고 공부하는 『금강경』은 요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번역본이다. 이 번역본이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 마라집의 번역본이 산스크리트 원전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미흡하거나 내용이 빠져 있는 부분도 더러 있는 것을 감안하여, 경전의 내용에서 꼭 필요 한 부분이라면 산스크리트 원문 및 현장스님의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그래서 더 풍부하고 폭넓으며, 원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장점이 있다.

* 삶속으로 이끌려오는 진리의 말씀

저자는 『금강경과 마음공부』에서 될 수 있는 한 『금강경』을 우리들의 세상으로 끌어내려 우리들의 근기에서 우리들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동안 역사 이래로 많은 해설가들이 금강경을 해석해 왔지만 그 깊이 있는 해석 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금강경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보여 주는 데는 여전히 어렵다는 한계를 넘지 못한 듯 보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강경이라는 경전은 단연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몇 안 되 는 가르침 중 하나다. 금강경은 모든 이들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가슴이 뻥 뚫리도록 명쾌하게 풀어주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구체 적으로 명철하게 지적해 주며, 나아가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보기 드문 진리의 보 고다. 금강경은 우리를 중심 잡힌 온전한 삶으로 이끈다.

<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향해 쏟아진 네티즌들의 뜨거운 찬사!! >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여러 금강경 강의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설명해주 신 분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법상스님의 글은 금강경과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스님의 글은 진리를 닮은 물과 같아서 맑고 투명하고 유연합니 다. 도대체 얼마나 수행을 하면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이런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 길상

스님 강의를 보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입니다. 스님의 강의를 들으니 환희심 이 솟아나며 ‘순간순간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금강경 공부는 하면 할수록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 jikeunhye

희유합니다. 이러한 해설을 듣는 것만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어느 책을 보아도 스님의 해설보다 자세한 설명 은 없었습니다. - 죄 많은 중생

스님의 글은 항상 한꺼번에 읽게 되지 않는군요. 조금 읽다, 감동으로 인하여, 그것을 가지고 내 안으 로 가지고 들어가,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반추합니다. 가슴 저변에서부터 나오는 감격! 금강경 풀이를 이렇게 쉽게, 깊게 해주시는 스님, 감사합니 다. - 본원심

금강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무한한 진리에 온 몸이 전율을 일으킵니다. 법상스님이 올려주시는 금강 경 강설로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불자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할지, 살아가는데 중심이 섰습니다. 지금까지 어렵다 고만 생각했던 금강경이 너무나 쉽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법상스님의 금강경 강설 공부를 하면서 그 큰 가르침에 때론 환희심에, 때론 가 슴 가득 밀려오는 충만함에, 때론 나의 무명을 참회하면서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친구에게 달려가 금강경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도 했습니다. - 관음행

여시아독(如是我讀)한 것 중 가장 자세히 오늘의 언어로 된 금강경을 만났습니다. 정말 무주상 법보시입니다. 감사합니 다. - 아고타행

이 순간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행운이고 머물 수 있는 즐 거움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혜명화

불교가 이 땅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 봉배산 숲속

<책속 문장 밑줄 긋기>

* 우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바로 그 ‘무엇’의 실체가 허망하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 내가 목숨 걸고 쟁취하려 했던 바로 그 ‘무엇’이 사실은 그렇게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 바로 그 ‘무엇’에 대한 괴 로움은 끝이 나는 것이다.

* 진리는 그 무엇도 붙잡고 있기 않다. 항상 빈손이며, 텅 비어 있고, 자유롭다. 그런데 다만 우 리 인간들이 스스로 붙잡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내었고 거기에 집착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괴로움은 시작되었다.

* 그 모든 분별을 놓아버려라. 이 세상엔 처음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고, 지금 이 순간에 도 아무 일도 없다. 깨달음을 얻을 ‘나’도 없으며, 내가 해야 할 그 어떤 ‘수행’도 없다. 오직 쉬기만 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게 없 다.

* 참된 수행자란 누구를 닮고자 하는 이가 아니다. 부처를 닮고자 하거나, 큰스님을 닮고자 하거 나 하는 그런 이가 아니다. 참된 수행자는 ‘자기답게’ ‘나 자신’으로써 살아가는 자다.

* 『금강경』을 아무리 잘 공부했고, 수지독송했으며, 다른 이를 위해 수많은 위인연설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 안에 그렇게 했다고 하는 생각과 상이 있다면 전혀 『금강경』을 공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금강경』을 더럽힌 것이다. … 매 순간순간 나의 『금강경』 공부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파괴한 것인가를 잘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 다.

<지은이>

법상(法相)

자연과 더불어 시골에서 어린 날을 보낸 스님은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심도 문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생생한 삶이 곧 수행처라는 생각으로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www.moktaksori.org)’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 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지혜를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면서부터 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생활 속 에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명상수행과 자연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찾는 깨침의 글들을 조계종 포교 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 보신문’ 등에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05년에는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으며, 불교출판문화협회에서 선정하는 ‘올 해의 불서 10’에 『반야심경과 마음공부』가 선정되기도 했다. ‘06년 겨울 강원도 양구의 산골 작은 암자 도솔사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놓아버림과 내 적 휴식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생활수행이야기』『마음을 놓아라 그리고 천천 히 걸어라』『관심』『반야심경과 마음공부』등이 있다.

목탁소리 : http://www.moktaksori.org

<목차>

서문
금강경, 어떤 경전인가
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제1분 법회인유분 -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
제2분 선현기청분 -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함
제3분 대승정종분 - 대승의 바른 종지
제4분 묘행무주분 - 머무름 없는 묘행
제5분 여리실견분 - 진리의 참 모습을 보라
제6분 정신희유분 - 바른 믿음은 드물다
제7분 무득무설분 -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제8분 의법출생분 - 이 법에 의해 모든 가르침이 나온다
제9분 일상무상분 - 깨달음이란 상도 없다
제10분 장엄정토분 - 정토를 장엄하다
제11분 무위복승분 - 무위의 복은 수승하다
제12분 존중정교분 - 바른 법을 존중하라  
제13분 여법수지분 - 여법하게 받아 지니라
제14분 이상적멸분 - 상을 떠나면 적멸이다  
제15분 지경공덕분 - 경을 지니는 공덕
제16분 능정업장분 - 업장을 깨끗이 맑힘  
제17분 구경무아분 - 구경에 내가 사라지다
제18분 일체동관분 - 일체를 하나로 관하라
제19분 법계통화분 - 법계를 모두 교화하다
제20분 이색이상분 - 형상과 모습을 여의다
제21분 비설소설분 - 설함 없이 설하다
제22분 무법가득분 - 얻을 법이 없다
제23분 정심행선분 - 마음 집중의 수행으로 보리를 얻으라
제24분 복지무비분 - 복과 지혜를 비교할 수 없다
제25분 화무소화분 - 교화하는 바 없이 교화하다
제26분 법신비상분- 법신은 상이 아니다
제27분 무단무멸분 - 단멸함이 없다
제28분 불수불탐분 - 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는다
제29분 위의적정분 - 위의가 적정하다
제30분 일합이상분 - 합쳐진 세계나 부수어진 미진이라는 상을 버리라
제31분 지견불생분 - 지견을 내세우지 말라
제32분 응화비진분 - 응화신은 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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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金剛)이란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금강, 즉 다이아몬드는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하여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여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희고 투명하여 청정하고 반짝이는 광명으로써 빛을 내뿜는다는 특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금강의 특성을 비유로 하여 경전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금강이란 불교적 의미로 첫째로, 불성(佛性)을 의미하며, 둘째로, 반야(般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본래자리 불성은 그 어떤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이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결코 깨어지거나 파괴되는 일이 없으며 온전히 투명하여 청정하고 온 우주 법계에 대 광명의 빛을 은은하게 놓고 있다. 그러한 불성의 특성을 금강에 비유를 한 것이다.

 또한 불성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즉 반야를 금강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불성이란 본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반야란 본체를 체득하는 지혜이므로 둘은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본래 우리 안에는 반야 지혜가 숨어 있어 금강과도 같이 결코 파괴되지 않으며 청정하고 늘 우리 안에서 광명의 빛을 놓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를 든 것이다.


 반야(般若)는 범어로 프라즈냐(Prajna)라고 하며, 팔리어로는 ‘판냐’라고 한다. 반야는 바로 팔리어 ‘판냐’의 음역어로써, 그 발음만 그대로 따온 것일 뿐 한자로는 특별한 뜻이 없다. 범어 ‘프라즈냐’를 중국말로 옮기기에 적절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음역하여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번역이 그리 어려웠을까 궁금할 것이다. 반야를 굳이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로 해석해 본다면 ‘지혜(智慧)’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지혜라는 의미 가지고서는 아무래도 반야를 대용하기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반야는 우리들 범부의 사량 분별로써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 지혜라고 하면 우리들이 머릿속에 벌써 선입견이 생긴다. 그러나 반야는 그런 우리들 관념 속의 지혜가 아닌 우리들의 사량 분별을 뛰어 넘는 무분별의 지혜이고, 쉽게 말해 ‘최고의 지혜’ 앞에서 말한 금강, 즉 불성을 깨쳐볼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의 입장에서 반야의 그 본 뜻이 퇴색됨을 우려하여 쉽게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은 그 속뜻이 헤아려 질 것이다.


 바라밀은 범어로 ‘파라미타(Paramita)'이며, 이 또한 중국에서 적절하게 옮길 만한 번역어가 없었기에 그대로 발음만을 따 와 바라밀다, 혹은 바라밀로 번역해 놓았다. 반야심경에서는 바라밀다로 번역하였고, 여기 금강경에서는 바라밀로 번역을 해 놓았다.

 바라밀다, 바라밀을 해석해 본다면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으로, ‘바라’는 ‘저 언덕(피안)’을 ‘밀다’는 ‘건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언덕’에서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인, 금강 반야의 세계인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언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즉 차안(此岸)으로 아직 깨닫지 못하여 탐진치 삼독에 물든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른 말로 사바세계, 즉 인토(忍土)로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참아내야 하고, 오온(五蘊)으로 비롯되는 온갖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세계다. 또 다른 말로 예토(穢土)라 하여 삼독심에 물들어 오염된 땅을 말하기도 한다. 저 언덕, 피안(彼岸)이란 차안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고 신구의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청정한 세계, 즉 정토(淨土)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경(經)이란 수트라(Sutra)로써 원 의미는 ‘실’ ‘줄’이라는 의미로 옛날에 경서들은 보통 대나무나 나무껍질 등의 판에 적어 여러개의 실로 묶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이런 경을 연결하여 묶어주는 실처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의 내용들을 이어놓은 실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경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금강과도 같은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들을 설해 놓은 경’ 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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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어떤 경인가







 [금강경(金剛經)]은 많은 불교의 경전 가운데에서도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여 그동안 부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수많은 법문들을 결집(結集)하게 된다. 처음 결집할 때는 글로 남기지 못하고 부처님 법문을 옆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아난 존자를 비롯하여 한 사람이 먼저 말하고 다른 대중들이 부처님 가르침이 틀림없다고 결정한 게송(偈頌)들을 모든 대중들이 함께 합송(合誦)하여 외움으로써 결집을 이루었으나, 후대에 오면서 글로 남기어 온전한 결집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외고 합송한 것들이 후대에 경전으로 편집이 되었으니 이것이 [아함경]이다. 아함경이 부처님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처님 열반 이후 약 500여 년이 지나면서 [아함경]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다른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대승경전들 가운데에서 가장 초기에 성립된 경전이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이다. 이 반야경을 토대로 하여 [법화경], [화엄경] 등 다른 여러 대승의 경전들이 성립된 것이다.

 [금강경]은 600권의 [대반야경] 중 577부에 들어있는 [능단금강분]을 말하며 그 구체적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 혹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이 금강경은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 가운데에서도 경의 중심이 되는 사상인 반야사상, 공사상에 대한 핵심적 가르침을 짧고 간략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방대한 분량인 반야경을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두루 읽혀지는 경전인 것이다.

 이 금강경도 중국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었지만 현재 우리들이 독송하며 공부하고 있는 [금강경]은 요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번역본이다.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금강경 강의에서도 물론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하여 설하게 될 것이지만, 구마라집의 번역본은 산스크리트 원전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미흡하거나 내용이 빠져 있는 부분도 더러 있기 때문에 경전의 내용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산스크리트 원문 및 현장스님의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경전을 강의 해 가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해석면에서 기존의 구마라집 본 해석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들도 눈에 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부분은 산스크리트 원문과 현장스님의 번역을 비교해 가면서 그 이유를 밝히면서 강의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산스크리트 원문은 그동안 이기영 박사님을 비롯하여 두어 분께서 구마라집본과 함께 비교하기 쉽게 해석을 해 놓았으며, 특히 송광사, 칠불암 등 전국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시다가 10여 년 인도에서 유학하여 산스크리트와 빠알리, 아르다마가디를 배우고 돌아오셔서 빠알리 삼장의 번역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각묵스님께서 ‘01년 9월 금강경 산스크리트 원전 분석 및 주해를 구마라집본 및 현장본과 함께 비교 분석하여 설명해 놓은 ‘금강경 역해’라는 책을 내어 놓으셨기에 그 원문을 비교 분석하여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 둔다.

 금강경은 전체 32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나뉘어 진 것은 아니고 인도의 무착이나, 세친 중국 양나라의 소명태자 등이 세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따로이 분을 나누어 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 지금의 32분 분류는 양나라의 소명태자의 분류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육조 혜능 스님, 우리나라의 함허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 스님들께서 금강경에 주석을 달고 쉽게 해석을 한 책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만큼 금강경은 불교를 공부하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저 언덕에 이르는 뗏목과도 같은 소중한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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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경과 마음공부] 서문

 금강경 강좌를 끝맺으며, 또 금강경의 바다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내 안에 깊이 파도쳐 들어오는 한 가지 진한 울림이 있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경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내 삶에 금강경이 들어왔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니 이 세상에 이런 경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큰 축복이며 보배인가 하는 감사의 울림이 그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강경이라는 경전은 단연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몇 안 되는 가르침이다. 이 경전으로써 인류의 정신은 얼마만큼 진화를 이루어 냈는가.

 처음 금강경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금강경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어렵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말들이 계속되어 반복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금강경을 언뜻 본 사람들은 바로 접고 마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강경은 인간이 사량 분별로 헤아릴 수 있는 그 틀을 완전히 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야말로 금강과도 같은 지혜의 칼로써 인간들의 어리석은 차별심을 모조리 불살라 없애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은 분별심을 깨기 위해 똑같은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또 다시 사람들은 그 언어를 자기 식대로 이해할 것이고, 자기 사량으로 금강경을 판단하고 말 것이다. 언어는 진리를 그대로 전달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진리를 표현하려면 언어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사들은 ‘할’ ‘방’을 외치기도 했고, 때로는 침묵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너무 어렵다. 일반인들이 다가서기에는 너무 벽이 높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언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언어로써는 진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어를 쓰면서도 언어를 초월하여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언어 아닌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다. 진리를 언어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이 그나마도 최선의 방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언어를 초월하는 진리의 언어, 그것이 바로 이 경전 금강경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언어 밖의 언어 그것이 이 경전이 쓰여진 연유다.

 그렇기에 금강경은 평범한 사람이 펼쳐 보았을 때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금강경을 언뜻 살펴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할 것이고, 알다가도 모를 소리라고 손사레를 치기도 할 것이며, 읽어내려 가다가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식에 경전을 덮고 말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진리의 속성이다. 진리를 진리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자비로운 노력이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표현방식으로 언어를 초월하여 경전에 한 올 한 올 곱게 아로새겨진 것이다.

 그렇기에 금강경을 읽을 때는, 금강경을 공부할 때는 일반적인 책을 읽는다거나, 세상의 지식을 얻어 들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가서서는 안 된다. 세상의 잣대로,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의 틀 속에서 금강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욱 멀어질 뿐이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배워 온, 익혀 온, 경험해 온, 책에서 읽고, 사람들에게서 들어 온 일체 모든 지식과 판단과 편견과 아집들을 몽땅 비워버리지 않고서는 도무지 금강경의 초입에도 이를 수 없다. 내 안에 그 어떤 고집과 욕심과 집착과 편견과 아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금강경을 펼쳐 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모조리 불태워 없애버려야 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잣대를 가지고 금강경을 펼쳐 들지 말라. 완전히 과거의 나를 비우라. 비우고 비워 맑고 청정해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정신으로 금강경의 초대를 받으라. 그랬을 때 비로소 금강경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진한 법신의 향기로써 나를 맞이할 것이다.

 ‘나’를 놓아버리고, ‘내 생각’을 놓아버리고 오직 금강경에 모든 것을 맡기라. 금강경의 자비로운 이끎에 모든 것을 맡기라. 금강경의 가르침이 내 존재 안에서 춤을 추도록 하라. 꽃이 되어 피어나도록 하라. 가려 듣지 말고 통째로 완전히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금강경은 나를 진리의 길로 이끌 것이다. 아니 나를 사라지도록 도와 오직 금강경이 삶이되어 피어나도록 할 것이다. 금강경은 이제 내 깊은 곳에까지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존재를 변화시켜 갈 것이다.

 이 금강경을 펼쳐 든 모든 이들에게, 진리로써 꽃피어난 자기다운 삶의 방식과 삶의 몫을 안내 할 것이다. 이제 나는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진리를 실현해 갈 것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나답게, 가장 진리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경전 안에서 발견해 나갈 것이다. 아! 금강경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 경전을 회향하는 순간 우리 안에 지고한 안온과 평화와 경외와 감사의 눈물이 호수를 이룰 것이다.

 이처럼 금강경은 우리를 온전한 삶으로 이끈다.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그 어떤 다툼과 욕망과 아픔과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킬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류 공통의 문제들에 대한 분명하고도 지혜로운 답변을 내려 줄 것이다. 아! 왜 인류는 아직까지도 금강경의 지혜를 지니지 못한 채 상처를 키워만 가고 있는가. 왜 아직 인류는 금강경을 주목하지 않는가.

 지금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그 지혜로운 길목에 들어 서 있다. 부디 중간에 금강경을 덮지 마시라. 한 번 읽고,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헤아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것은 금강경에 대한 나 자신의 해석일 뿐이지 금강경 그 자체가 아니다. 금강경은 아직도 더 진하게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강경을 한 번 읽고 덮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우리 삶에서 더욱 진하게 우러나와 내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금강경이 되고 금강경이 내가 되기 전까지는 덮지도 말고, 어떤 가르침이라고 단정짓지도 말라.

 물론 이 책 또한 금강경에 대한 온전한 해석 일 수는 없다. 다만 금강경에 어리석은 저자의 생각을 덮씌워 더럽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설서가 출간되는 이유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로 쓰여진 이 경전의 생명력이 조금이나마 우리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없을까 하는 작은 발원에 의해서다. 이 책은 될 수 있는 한 금강경을 우리들의 세상으로 끌어내려 우리들의 근기에서 우리들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사실 금강경은 해설서를 보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어릴적 처음 금강경을 대할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해설서를 보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기억은 두고 두고 이 책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또한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금강경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쓰여 졌다. 그러다보니 이해는 조금 더 쉬워졌을 지 몰라도 금강경 본연의 지혜는 다 드러내지 못한 채 잠재웠을 수도 있다. 그 더 깊은 지혜를 우러내는 일은 나머지 독자의 몫으로 돌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5년 전부터 이 책은 구상되고 쓰여지기 시작해 이제야 비로소 그 회향을 보게 된 것이다. 진리의 가르침은 풀어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호되게 깨달은 것도 바로 이 경전 금강경이다. 어떤 분에서는 사방이 은산철벽과도 같은 벽으로 둘러쳐져 있는 듯 도무지 뛰쳐나올 수 없어 그 게송을 마주하며 1년 여를 보낸 적도 있고, 또 어떤 분에서는 한없이 흐르는 감동과 경외의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그 깊이를 도저히 글로 표현해 낼 재간이 없어 한동안 글을 써내려가지 못한 적도 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화두처럼 의문을 품고 몇 달을 앉은 끝에 한순간 번쩍이듯 그 의미가 다가왔을 때는 법신께 삼배를 하고 앉아 환희심을 억누르며 조악한 글솜씨로 서툴게 글을 맺은 적도 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금강경을 맺게 된 것은 모두가 법신 부처님의 몫이요 법신불의 회향으로 돌리고자 한다. 내가 했노라고 붙잡을 것이 없는 금강경의 세계에서는 유무를 초월한 법신의 공덕 아닌 공덕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금강경이 아니요 다만 이름이 금강경일 뿐이다. 금강경의 해설 또한 금강경의 해설이 아니기에 금강경의 해설일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을 공부하지만 금강경을 공부하지 말라. 금강경을 실천하지만 금강경을 실천하지 말라. 그것이 바른 금강경의 공부요 실천이다.


2007. 1. 1

강원도 양구 도솔사 산방에서

법상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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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2018.10.13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강원도 양구에 방산면 도솔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