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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탈진 내리막에서
뒤집혀 내동댕이쳐질 때
바로 그 때 도리어
획기적인 삶의 변화가 찾아온다.

역경이 없고
순탄하기만 한 삶이란
곧 가장 큰 역경이다.

순경과 역경, 
긴장과 이완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삶의 파동이다.
...

삶의 역경과 혼란을 타고 진리는 온다. 

삶이 비탈진 내리막에서 내동댕이쳐지고 있을 때 도리어 삶의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불안과 혼란은 우리를 더욱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해 준다. 

역경(逆境)이 없고 순경(順境)만 있는 삶이란 그것이 곧 가장 큰 역경이다. 

우리의 삶이 역경과 순경,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는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좋고 싫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지 않고 불안과 위험을 버리려 애쓰고, 행복과 편안과 순탄한 삶만을 붙잡고자 애쓴다면 그 때부터 삶은 그대를 외면하고 심지어 파멸시켜 버릴 것이다. 

지큼 이대로의 온전한 삶이 그대를 비켜가기 때문이다. 

양 극이라는 삶의 파동 위에 올라타라. 

어느 한 쪽에 사로잡히지도, 어느 한 쪽을 거부하지도 말아 보라.

일어나는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라.

마음껏 삶의 서핑을 즐기라.

'365일 눈부신 하루를 시작하는 한마디' 중에서

* 법상스님 1월 서울법회 안내
일시 : 2020.1.18(이번주 토요일)
16:00~18:00
장소 : 서울 용산 원광사(신용산역 1번출구에서 나와 용산우체국 보며 왼쪽 골목 직진 후 부대 위병소에서 우회전, 도보 8분)

#역경 #괴로움 #받아들임 #마음공부 #법상스님의목탁소리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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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다 보면 무수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도 만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만난다. 우리가 이처럼 양 극단의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것은 그러한 삶을 통해 중도를 깨닫고 의식의 성숙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려 한다면 결코 성숙과 깨달음은 없다


그 사람이 자식이든, 아내든, 친구든, 동료든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성격도 나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나를 깨닫게 해 주고자 나를 찾아 온 우주적인 파트너다

 

물론 그들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그 문제로 인해 당신이 괴로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바꾸려 들지 말라. 그들은 그들이 가진 독특한 문제와 단점들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우주로부터 온 영적인 도우미이며, 내 성장의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방편으로 말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대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그들이 바뀌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살피라. 그들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가 나를 찾아 온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 안에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삶의 지혜를 주기 위해 그들은 나를 찾아 온 것이며, 근원에서는 내 안의 어떤 문제들이 그들을 내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온 이유는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들은 내가 변화됨으로써 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혹은 지혜를 얻고 성장할 때까지 그들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바꿀 수 없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그들을 근원에서 진정한 변화로 이끌 수 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내가 바뀌면 그들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들이 내게 온 목적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게 되면 당연히 그들은 목적을 완수했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로 우리를 괴롭힐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함을 안다면 어떻게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애써서 바뀔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그저 냅두면 된다. 있는 것을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 하는 것에 가깝다. 내 식대로 판단분별하던 것을 그저 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헐뜯거나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내 뜻대로 바꾸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 줄 것이다. 모든 것은 진리로써 여기에 온 것임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전환이 당신 삶의 전부를 송두리째 바꾸어 줄 것이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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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찬'에서는 첫 구절에서 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이라고 설합니다.
큰 도는 눈앞에 있다는 것이지요.

큰 도는 항상 눈앞에 있습니다. 목전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도, 깨달음, 부처, 마음, 열반, 해탈, 견성, 자성, 불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이것을 설하지만, 이것은 나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은 불이법이며, 불이중도입니다. 즉, 둘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법, 도를 찾아 바깥으로 찾아나설 수 있겠습니까?

찾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눈앞에 있다는 말도 맞지 않아요.

그만큼 둘이 아니고, 가까이 있다는 말을 목전(目前)의 당처(當處:이곳, 이 자리)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내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것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는다면, 그것은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꼴이고, 눈을 가지고 눈을 찾는 것입니다.

찾고 있는 대상은 놔두고, 먼저 찾고 있는 그놈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명백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도를 찾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지요.

찾을 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찾고 있는 그 놈이 누구입니까?
무엇이 도를 찾고 있지요?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바로 그 찾는 놈이 찾을 것입니다.

찾아야 할 객관 대상이 따로 있고, 찾는 놈이라는 주관이 따로 있다면, 주객이 둘로 나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도가 아닙니다. 둘이 아닌 불이법만이 참된 법입니다.

찾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 곧 찾고 있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도를 찾고, 깨달음을 찾는 당신이 곧 깨달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찾는 '이것'이 찾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작용하는 순간 그것은 명백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모양으로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중생의 습은 모양만을 볼 줄 알다보니, 모양으로만 찾으려고 해서 보지 못할 뿐입니다.

본다는 사실이 눈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로 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

YouTube에서 '명상 총정리, 명상의 이론과 실습, 명상법의 종류, 명상하는 순서' 보기
https://youtu.be/O01d-aF0BKQ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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