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 없는 새로운 깨달음을 따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문제가 사라지고,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저 아무 일이 없어질 뿐입니다.

말 그대로, 깨달음의 자리는 아무 일이 없는 자리일 뿐이지, 깨달음이라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무 일 없이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새들은 지저귀고 있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뺨을 스쳐갑니다.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일이 생각나거나, 어떤 일이 하고 싶어지거나, 특정한 생각이 일어나면서 그 생각에 끌려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고, 무언가 일을 해야 할 것이 같은 느낌이 올라옵니다.

바로 그 때, 아무 일 없던 평상심에 갑작스런 생각의 파문이 일어나고, 그 때부터 우리는 분주해지고, 일이 생기고, 고민이 생기고,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곧 중생심이고, 생사심이며, 일 없던 부처에게 허망한 생각이 만들어내는 일이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일 없는 순간은 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대로 있으면, 이미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거기!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서서 아무 일 없는 이 순간에 그저 있어 보세요.

내일부터 입춘기도가 시작되는데
정말 봄이 오나 봄
Posted by 법상

내 생각으로 특정한 상황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은 완전합니다.

지금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삶은 이대로 완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드는 무언가가 나타나고 그것을 갖고 싶어지면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고, 행복해 보입니다.

부모 또한 큰 문제 없이 직장 생활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 마음 속에서 다른 부모, 혹은 경쟁자의 자녀와 비교하다가, 내 아이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집착이 생겨납니다.

점점 더 그 생각이 커지고, 세상의 모든 정보들도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할 것이라고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평화롭던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주변에 공부를 좀 한다는 사람들을 사귀어 보니, 옆집 다른 아이는 몇 년을 벌써 선행학습을 끝냈다고 합니다.

내가 무능한 부모였음이 확실해졌고, 내 아이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으며,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실패한 삶을 살게 뻔해 보입니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고, 아이를 그 때부터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면서 밤 늦게까지 공부, 공부, 또 공부를 시킵니다.

성적이 오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성적이 떨어지면 실패자의 그림자가 자신을 짓누릅니다.

공부 때문에 자식과 계속 싸우면서, 이것이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말해보지만, 이 어리고 뭘 모르는 아이는 지혜로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갑자기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난 추구심, 집착심, 그것이 문제였을 뿐입니다.

삶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어느날 갑자기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일 뿐이지요.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애초에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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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저 불행이 없는 것일 뿐, 또 다른 행복이라는 무언가는 없습니다.

괴로움이 소멸된 것이 열반이지, 따로 열반이라는 신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목적은, 사성제라고 하듯이, 그저 괴로움의 소멸일 뿐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이 곧 해탈일 뿐이지, 괴로움을 소멸시킨 뒤에 더 좋은 열반, 해탈, 진리 같은 것을 찾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만약 여러분 삶에 큰 괴로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행복도 없어서,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지, 행복이라는 별도의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로 있는 특별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 마음만 쉬면, 곧장 이미 있던 행복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무한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에게 오늘도 숨을 쉴 수 있는 우리는 부러움의 대상이겠지요.

바로 지금, 근원적이고도 완전한 행복은 이미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이미 있는 행복을 놔두고, 또 다른 생각 속의 행복을 찾아나서기를 멈추기만 하면 됩니다.

추구하기를 멈추면, 이미 있는 것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행복 #불행 #괴로움 #사성제
Posted by 법상
우리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건 그저 내 문제를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것 밖에 되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는 내 문제이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바깥에 그 누구도 근원에서는 나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내 스스로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화가 난다는 쪽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은 내 생각이고, 내 판단이며, 내가 나 자신을 향해 쏜 화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을 말할 것입니다.

화도 내고, 자기 식대로의 옳음을 강요하려고도 들겠지요.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 사람의 그런 말과 행동을 보고, 내 스스로 화를 내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나에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여긴다면, 그건 하나의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과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 해석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지요.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말을 할 겁니다.

거기에 하나하나 다 대응하고, 화를 내며, 판단을 하다가는 우리 인생 전체가 끊임없는 괴로움에 휘둘릴 지 모릅니다.

방향을 전환해서, 거기에 대응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기를 선택해 보세요. 어차피 세상 사람 모두를 내 입맛에 맛게 바꾸기는 어려우니까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내 식대로' 판단하기를 그치기만 해 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마음은 평화를 되찾고, 남들과의 다툼은 종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경주 칠불암
Posted by 법상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바다 위에
인연 따라 파도가 치듯, 
삶이란 파도에 불과하다.

온갖 존재가 벌이는
울고 웃는 삶의 스토리가
다만 ‘파도’일 뿐이다.

파도는 본질이 아니다.
‘하나의 바다’만이 참된 본성일 뿐.

당신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당신은 감정이 아니고 몸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바다와 파도의 비유처럼, 모든 파도는 바다 위에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파도의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 위에 인연 따라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듯, 바로 ‘이것’이라는 바다 위에서 생각도, 감정도, 욕망도,육체도, 사건도, 삶도 파도처럼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하나의 바다가 있을 뿐, 파도가 실체로써 있는 것은 아니듯, 하나의 본성이 있을 뿐 따로 떨어진 실체적 존재나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오고 가는 파도가 아니라, 그 배경에서 언제나 한결 같이 있는 바다일 뿐이다. 

파도가 내가 아니라, 바다가 진짜 나다. 
Posted by 법상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