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교육열 때문에 죽겠어요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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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 즉문즉설

엄마의 교육열 때문에 죽겠어요

목탁 소리 2015. 8. 13. 18:02

 

 

 

 

언젠가 한 고등학생이 이런 고민에 대해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나쁘고 몸도 안 좋고, 돈 벌기도 힘들고,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을 정도지만 제 학업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살아오셨습니다. 지금도 빚을 내어 개인과외를 받게 하시고, 무조건 제가 서울의 좋은 대학 가는 것 외에는 살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심각한 경제난에 어머님의 심한 교육열로 저는 죽을 지경이고 자신도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엄마도 저도 죽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죠?”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리고 이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어머님의 성적에 대한 무게감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녀 입장에서는 그 무게감과 중요도를 대폭 완화시켜서 가볍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울면서 나쁜 성적에 대해 원망 할 때, ‘알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앞으로 잘 하겠노라고 말씀은 드리되, 마음에서 그 말씀의 비중을 너무 크게 키우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어머님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머님의 그 집착을 내가 고스란히 다 받아냄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에 짓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머님과 나 자신을 너무 동일시하여, 어머님의 괴로움을 내 괴로움처럼 여기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도 하고, 어머님의 마음이 또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 또한 학교생활을 계속 해 나가면서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괴로움이 남들보다 더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심각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으로써 허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 그 괴로움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바꿀 수는 있습니다.


어머님의 괴로움을 아들이 똑같이 짊어지는 것이 어머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그 무게감에서 조금 자유로와졌을 때, 사실은 성적도 더 잘 나올 수 있고, 나아가 어머님의 괴로움도 가벼워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아들의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더라도 어머님께서 계속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 또한 괴롭겠지요. 그것이 바로 어머님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만약에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래서 어머님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지더라도, 사실 그 결과는 아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님께서 감당해야 할 부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으로 감당하도록 해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법계의 업보의 이치이며, 균형의 법칙입니다. 그 업의 불균형은 어머님 스스로 바로잡아야지, 아들이라고 해도 대신 균형 잡아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삶에 너무 깊이 개입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심지어 아들, 딸,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너무 깊이 개입하거나, 너무 심각하게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타인의 괴로움을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내 괴로움으로 붙잡아 묶어두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언뜻 보면 매정한 이야기 같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참된 자비와 사랑, 그리고 지혜의 길입니다.


참된 스승은 누군가가 괴로운 문제를 가지고 상담하러 왔을 때, 공감해주고, 도움을 줄 지언정,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은 실체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을 알기에 그 오고 감을 허용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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