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받아들이라 – 제행무상의 생활실천
이처럼 연기법의 핵심,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제행무상의 진리야말로 진리의 도장, 즉 법인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항상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또한 모든 존재가 만들어내는 그 모든 행위나 사건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며, 사람의 행위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 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벗어나려 하지 말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변화는 진리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진리다운 현상이다. 그러니 변화를 붙잡으려 하지 말라.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온다. 변화하는 것은 두렵다. 변하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이 모습이 그대로 지속되길 바란다. 이 몸이 지속되길 바라고, 이 행복의 느낌이 지속되길 바라며, 내 돈과 명예, 권력, 지위, 가족, 친구, 사랑이 모든 것이 지속되길 바란다.
그것들이 변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변화는 곧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도된 망상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변화’한다는, 무상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지속’과 ‘안주’를 바란다. 지속됨과 안주 속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언제까지고 지속되는 것은 없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 변화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온전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름다운 법계의 본연의 모습이다.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라. 함께 변화하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수행이란 바로 이것 밖에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데 나만 변치 않고자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난다. 모두가 변화하는데 나는 변하기 싫고, 다 변하는데 내 것은 영원하길 바라며 내 생명, 내 소유, 내 사랑, 내 사상은 영원하길 바란다.
변한다는 진리를 변하도록 그냥 놓아두라. 그 흐름에 들라. 그 흐름에 드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시작이며, 온전히 그 흐름에 들었을 때 우리는 수행 사과(四果) 가운데 첫 번째 과위인 ‘흐름에 든 자’ 즉 수다원(須陀洹)이 된다. 수다원은 예류(預流), 혹은 입류(入流)라고 하여 ‘흐름에 든 자’를 말한다. 수행 사과에서 말하듯 수행을 통해 이제 막 깨달음의 흐름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변화를 타고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제행무상이라는 진리의 흐름을 타고 함께 따라 흐를 수 있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목적이 ‘변치않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세상을 그냥 놓아두라. 어떤 것도 붙잡지 말라. 집착하지 말라. 다만 흐르도록 놓아두라. 변화하도록 그대로 두라.
부처님의 말씀은 오직 이것이다. 그냥 놓아두라. 어느 것도 붙잡지 말라. 변하는 대로 그대로 놔두라. 변화는 진리이니 그것을 따를 일이지 그것을 내 고집으로 붙잡고자 하지 말라. 이렇게 단순한 것이 불법이다. 단순한 진리를 공연히 머리 굴려 어렵게 만들지 말라. 단순한 것은 단순하게 놓아두라. 그저 푹 쉬기만 하라. 푹 쉬면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함께 따라 흐르라.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놓아두라. 그저 놔두고 푹 쉬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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