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란 불가능한 환상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성공적이기에.
실패로 보일 수는 있어도 정말로 실패할 수는 없다.
실패라는 해석이 있을 뿐 실패한 삶은 없다.
실패, 그것은 하나의 성공의 부분이다.
실패를 긍정하고 환영하는 정도가
자신의 의식 수준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
신은 언제나 사랑으로,
붓다는 언제나 무한 자비로써
우리를 완성과 성공으로만 이끄신다.
힘들다고 반드시 고통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축구, 운동, 취미, 여행 등을 보라.
힘들지만 즐겁다.
고통받을것인가 말것인가는
언제나 외적환경이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우린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어떤 조건,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행복을 선택하라.
자기 자신을 어떤 '틀'에 가두지 말라.
'누구'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부처님'처럼 살려고 애쓴다거나,
'누구'처럼 돈 별려고, 좋은 차 살려고,
좋은 직장에 다니려고,
혹은 '누구'처럼 예뻐지려고 온갖 노력을 쏟지 말라.
점이나 사주에 의지하지 말라.
내 운명을 점쟁이에게 내맡기지 말라.
삶의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이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것의 목적은 끊임없는 여행에 있지
어느 한 곳에 정착하는데 있지 않다.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흐르라.
교회에 절에 얼마나 많이 가는지,
기도를 얼마나 많이하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
혹은 성직자인지 평신도인지,
이 중 어떤것도 핵심이 아니다.
골수는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달렸다.
말, 생각, 행동이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규정한다.
삶이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에 도착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오직 사랑만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어디에도 사랑 아닌 것은 없으니.
삶을 사랑하라.
만나는 모든 이와 따뜻한 사랑을 나누라.
사랑할 때 더 많은 사랑이 드러난다.
지혜로운 이는 그 순간이 괴로우면
오직 그 순간만 괴로울 뿐이고,
그 다음 순간은 다시금 고요한 평화로 돌아오지만,
어리석은 이는 괴로울 때도 괴롭고
괴로움이 지나가도 여전히 괴롭다.
어디에도 전적으로 기대지 말라.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말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바람처럼 떠나라.
삶 속에서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그때 나와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모처럼의 남도 순례.
흠뻑 장맛비에 취하다.
온 세상이 목욕을 한 듯,
초록들이 시원한 냉수를 들이킨 듯
주위는 온통 생명력으로 넘실거린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곧 나 자신의 내면이 외부로 투영된 결과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 또한
내 마음의 외적 그림자다.
내 밖의 외부 세계,
그것은 곧 내 안의 실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에게 처한 상황, 내가 만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나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자아 이미지,
바로 그것이 내가 세상을 창조하는 밑그림이다.
나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여기면,
바로 그 사랑스러운 것이 내 앞 세상에 드러난다.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규정한다.
화는 안으로 돌리면 홧병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상대방을 다치게 한다.
다만 화를 내려 놓기만 하라.
그러려면 화가 일어남을 전체적으로 통찰해야 하고,
그 화와 함께 잠시 머물러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잠시 함께 있고, 충분히 바라봐 주라.
주어진 삶의 조건을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내가 처한 독특한 상황, 자신이란 특별한 존재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을
최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임을 받아들이라.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되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평상심으로 되돌아오라.
괴로울 때도 괴로워하고
괴로움이 지나가도 여전히 괴로워할 것은 없지 않은가.
입사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한다.
하나는 그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벽을 풍요롭게 하는 산책의 숲.
살아 숨쉬며 인위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
기분좋은 숲길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더없는 축복이다.
사람도, 상황도 그것 자체는 완전한 무분별이다.
완전 중립이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모든 문제를 가져올 뿐이다.
모든 차별과 선택을 버리라.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말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라.
욕망하지 말고 단지 원하라.
욕망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내포하지만
순수한 바람은 단순한 의도일 뿐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드시, 결단코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삶에서 과도하게 중요한 것이 없도록 하라.
무엇이든 너무 중요해지면 집착과 욕망을 가져온다.
과도한 욕망은
오히려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중요도를 낮추되 순수한 최선을 다하라.
집착없이 행하고, 욕망없이 원하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집착이 클수록
사실은 그 이면에는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커진다.
욕망이 클수록 이룰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커지는 것이다.
이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의심과 두려움이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창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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