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적과 원수가 서로 싸우고 죽이거나,
헐뜯으며 저주를 퍼 붓는다 한들
집착과 악에 물든
자신의 삿된 마음이 주는 재난에는 미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한 마을에 계실 때, 소 키우는 목동인 난다는 가끔씩 부처님의 법문을 듣곤 했다. 한 번은 신심이 나 부처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 올리고자 하였지만 부처님께서는 아직 시절인연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셔서 그 청을 거절하셨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난다가 바른 불법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난다의 집을 직접 스스로 방문하시게 된다. 난다는 기쁜 나머지 온갖 음식으로 7일간 극진히 공양 올렸고, 마지막 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
수다원과를 증득한 난다는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먼 곳까지 배웅하였으나 집으로 돌아갈 때 원한을 맺었던 사냥꾼에게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이에 일부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께 ‘만약 부처님께서 난다에게 찾아가지 않으셨더라면 난다가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고 여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가든 가지 않든, 그가 동서남북 어디에 있든, 자신에게 주어진 업에서 오는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설법을 하시며, 그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행여 그가 죽기 전까지 집착과 타락과 악에 물든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는 것을 염려해야 할 것임을 설하셨다.
적이나 원수에게 원한으로 죽는 것 보다 타락되고 집착된 마음과 삿된 마음을 가진 채 죽는 것이 더 큰 재앙이다. 부처님께서는 난다가 수다원과를 증득할 것임을 간파해 보기도 하셨지만, 난다의 죽음을 미리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난다의 죽음에 앞서 난다를 일깨워주기 위해 스스로 찾아 가셨던 것이다.
만약 생각과 판단, 이기적인 아집이 앞서는 사람이라면 난다의 죽음을 예견했을지라도 도저히 난다를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난다를 찾아가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하고, 난다를 깨닫게 했을지언정 어리석은 중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때문에 난다가 죽었다고 원망했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제자들과 일부 신도들은 위에서 보듯이 부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은 사소한 한 가지 행위일지라도 그 모두가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 목적은 바로 그를, 중생들을 일깨워주고 깨닫게 해 주기 위한 ‘자비’의 일환이다. 부처님은 오직 난다를 죽기 전에 깨닫게 해 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 뿐, 그로 인해 당신에게 원망과 미움과 난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로인해 부처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결국은 부처님께서 난다를 죽게 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난다를 일깨우고자 하는 동체대비의 마음이 부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심지어 적과 원수가 아무리 헐뜯으며 저주를 퍼 붓는다 할지라도 집착과 악에 물든 삿된 마음이 주는 재난에는 미치지 못함을 설파하신다. 비록 난다는 원한을 가진 원수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죽음보다 더 큰 재앙은 난다의 마음에 물든 집착과 악의 삿된 마음이다. 만약 난다가 살아 있다고 한들 마음속에 집착과 악에 물든 사악한 마음으로 미워하고 헐뜯으며 산다면 그것은 차라리 부처님 법문을 듣고 깨달은 뒤에 죽음을 당하는 것만 못하다.
죽음은 전혀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계획일 뿐이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경지에서 본다면 죽음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 지어 낸 업장을 녹여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자비로운 계획의 일환인 것이다. 그러니 더 큰 차원의 이치에서 본다면 죽음은 아주 사소한 우주적인 계획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것은 우리를 고통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우리를 돕고,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더욱이 그것은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나 자신과 우주가 합작해 낸 계획이며, 내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 누가, 절대자나 부처가 억지로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깊은 영혼의 차원에서 보면 내 삶의 모든 부분은 결국 내가 만들고, 내 스스로의 동의와 계획에 의해 창조된 것에 다름 아니다.
정말 위험한 재난은 죽음이 아니라, 마음 속의 원한과 싸움과 증오와 저주, 집착과 삿된 악에 물든 마음이다. 죽음은 아름다운 순리의 한 모습이지만, 원한과 싸움, 증오와 저주와 집착 등은 인간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순리를 거스르는 인위적인 악에 물든 삿된 마음이 아닌가. 어리석은 이라면 집착과 원한은 가지면서 죽음은 멀리하려 들겠지만, 지혜로운 이라면 죽음은 전혀 멀리할 것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마음속의 삿된 재난의 씨앗들이야말로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임을 분명히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신에 매 순간의 삶을 죽이고 있는 마음속의 재앙을 살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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