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50대의 외과의사입니다. 2달 전 뜻밖에 직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5주간 항암제 복용과 방사선치료를 마쳤고 3ㆍ4주후 수술을 받을 예정입니다. 저 자신이 수술 집도도 많이 했고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환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현대의학의 틀 안에 갇혀 살아온 저에게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면서 기도와 수행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연식품을 통한 치료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수술로 암 잔존부위를 마저 절제해야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요사이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듭니다. 주위 에서는 많이 반대하겠지만 자꾸 그렇게 마음이 기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선택이 혼란스럽습니다.
삶의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맞으셨군요. 그렇듯 역경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큰 사유와 깨달음과 기도심을 불러오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경과 순경은 서로 다르지 않다거나, 순경은 순경대로 경계이고, 역경은 역경대로 경계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아, 어려운 문제네요. 수술을 하면서 이겨낼 것이냐, 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냐.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한 가지만이 정답이라고 결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 부처님이 오시더라도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하기 보다는, 법우님 안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내면의 자비로운 답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답변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우리 삶에서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답변이라거나, 이것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무조건 수술 안하고 기도나 수행만 하거나, 또는 자연식을 먹음으로써 나을 수 있다고 결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가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 이겠지요.
제가 현대 의학에 대한, 특히 지금 법우님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다보니 어떻게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우선 현대 의학적인 치료를 함께 하면서, 기도와 수행, 대수용과 대긍정의 마음가짐, 업장소멸과 받아들임, 자연식과 자연과의 교감 등이 함께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요? 물론 저도 현대의학적인 방식에 잘못된 부분이 없지 않고, 자연에 깃든 삶을 살고, 내 안의 불성과 진리에 기대어 참된 내적인 치유를 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의 입장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연 따라 이편이 옳을 수도 있고, 때로는 저편이 옳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말씀드려봅니다. 병이라는 것도 진리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이 분명한 인과 속에서 즉 분명한 나의 업과 삶 속에서 그럴만한 인연에 의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쩌다보니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 병이 올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마음의 문제이든, 몸의 문제이든, 업의 문제이든, 식습관의 문제이든 말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병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돕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병은 우리를 자각시키고 정화시켜 우리의 업을 녹여주기 위해 법신 즉 진리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통해 나에게 온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 병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내가 싸워 이겨야 할 투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병도 내가 그 병을 이겨내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자비를 통한 방법을 원하고 비폭력을 통한 방법을 원하지 싸워 이기는 방법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병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때문에 보다 비폭력적이고 자비롭고 자연스러운 방법, 기도의 방법을 더 선호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병과 내가 본래 둘이 아니며, 병 또한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내 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눈을 없애버릴 수 없듯이 병 또한 나의 일부이며 사랑스러운 나 자신입니다. 병도 나에게서 나왔고,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지혜나 방법도 사실은 내 안에 다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고 믿으시며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병이 왔을 때 그것을 아주 나쁜 것이고, 오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으로 낙인 찍어 둠으로써 싫어하는 마음을 냅니다. 병은 우리에게 싸워 이겨야 할 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병을 적으로 보고 이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투쟁이 되고, 투쟁속에서는 온전한 법계의 자연치유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본연의 진리는 언제나 사랑과 자비의 빛과 함께 옵니다. 병을 적으로 보고 싸워 이겨내려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병이 나와 둘이 아님을 알아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지켜보아 주어야 합니다.
병을 적으로 보고 싸워 이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들은 병이 왔을 때, 어떻게든 그 병을 빨리 없애버리려고만 애쓰지 그 병과 충분히 함께 하고, 충분히 느껴보며, 충분히 그것 자체와 하나가 되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이 올 때 그 병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의미를 깨닫고, 그 병을 자연스럽게 치유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병을 빨리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그 병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그 병을 느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그런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것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병과 대적하지 말고, 완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지요. 완전히 받아들여 둘이 아니게 함께 하며, 병이 내 몸에 주는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해 보세요. 그 관찰, 그 통찰이야말로 그 어떤 주사바늘보다, 그 어떤 약보다, 수술보다 더 깊고 강한 우주 법계의 치유의 손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의 본질적인 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하지 말고, 나는 모른다,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완전히 맡겨 버리세요. 내 안의 불성이 내 안에서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맡기고 바치고 공양 올려 보십시오. 그렇게 믿고 맡기면서 그 믿음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십시오. 그렇게 맡긴 뒤에는 될까 안 될까 하는 의심을 버리고, 잘 되었다고 굳게 믿어버리세요. 지금 이 순간 병이 다 나았다고 완전히 믿고 들어가세요.
그렇게 되었을 때 수술을 하거나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그것이 의사만의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치유 행위가 함께 진행되며 아울러 법신 부처님의 따스한 보살핌 또한 함께 받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내 안의 본연의 치유력, 본연의 지혜, 본연의 능력을 무한하게 이끌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사로운 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 안의 본연에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 기도와 수행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좋겠지요. 예를 들어 절 수행이나, 좌선이나, 염불이나 독경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법계라는 대자연의 불성에 기대기 위해 자연 속에서 걷기, 가벼운 등산, 자연식품 섭취 등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모쪼록 법우님께 부처님의 자비와 보살핌이 햇살처럼 쏟아져 내려 그 모든 아픔들이 완전히 아물고 치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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