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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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과 마음공부

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목탁 소리 2007. 12. 1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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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金剛)이란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금강, 즉 다이아몬드는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하여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여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희고 투명하여 청정하고 반짝이는 광명으로써 빛을 내뿜는다는 특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금강의 특성을 비유로 하여 경전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금강이란 불교적 의미로 첫째로, 불성(佛性)을 의미하며, 둘째로, 반야(般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본래자리 불성은 그 어떤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하는 이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결코 깨어지거나 파괴되는 일이 없으며 온전히 투명하여 청정하고 온 우주 법계에 대 광명의 빛을 은은하게 놓고 있다. 그러한 불성의 특성을 금강에 비유를 한 것이다.

 또한 불성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즉 반야를 금강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불성이란 본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반야란 본체를 체득하는 지혜이므로 둘은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본래 우리 안에는 반야 지혜가 숨어 있어 금강과도 같이 결코 파괴되지 않으며 청정하고 늘 우리 안에서 광명의 빛을 놓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를 든 것이다.


 반야(般若)는 범어로 프라즈냐(Prajna)라고 하며, 팔리어로는 ‘판냐’라고 한다. 반야는 바로 팔리어 ‘판냐’의 음역어로써, 그 발음만 그대로 따온 것일 뿐 한자로는 특별한 뜻이 없다. 범어 ‘프라즈냐’를 중국말로 옮기기에 적절한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음역하여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번역이 그리 어려웠을까 궁금할 것이다. 반야를 굳이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로 해석해 본다면 ‘지혜(智慧)’라는 말이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지혜라는 의미 가지고서는 아무래도 반야를 대용하기에 많은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반야는 우리들 범부의 사량 분별로써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 지혜라고 하면 우리들이 머릿속에 벌써 선입견이 생긴다. 그러나 반야는 그런 우리들 관념 속의 지혜가 아닌 우리들의 사량 분별을 뛰어 넘는 무분별의 지혜이고, 쉽게 말해 ‘최고의 지혜’ 앞에서 말한 금강, 즉 불성을 깨쳐볼 수 있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자의 입장에서 반야의 그 본 뜻이 퇴색됨을 우려하여 쉽게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은 그 속뜻이 헤아려 질 것이다.


 바라밀은 범어로 ‘파라미타(Paramita)'이며, 이 또한 중국에서 적절하게 옮길 만한 번역어가 없었기에 그대로 발음만을 따 와 바라밀다, 혹은 바라밀로 번역해 놓았다. 반야심경에서는 바라밀다로 번역하였고, 여기 금강경에서는 바라밀로 번역을 해 놓았다.

 바라밀다, 바라밀을 해석해 본다면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으로, ‘바라’는 ‘저 언덕(피안)’을 ‘밀다’는 ‘건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언덕’에서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인, 금강 반야의 세계인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언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즉 차안(此岸)으로 아직 깨닫지 못하여 탐진치 삼독에 물든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른 말로 사바세계, 즉 인토(忍土)로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참아내야 하고, 오온(五蘊)으로 비롯되는 온갖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세계다. 또 다른 말로 예토(穢土)라 하여 삼독심에 물들어 오염된 땅을 말하기도 한다. 저 언덕, 피안(彼岸)이란 차안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고 신구의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청정한 세계, 즉 정토(淨土)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한다.


 경(經)이란 수트라(Sutra)로써 원 의미는 ‘실’ ‘줄’이라는 의미로 옛날에 경서들은 보통 대나무나 나무껍질 등의 판에 적어 여러개의 실로 묶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이런 경을 연결하여 묶어주는 실처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의 내용들을 이어놓은 실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경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금강과도 같은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들을 설해 놓은 경’ 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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