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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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목탁 소리 2009. 10. 4. 13:29





어리석은 범부나 지혜로운 사 람이나
경계를 대하면 좋고 나쁜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 감정에 포로가 되 어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을 갖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 을 맞는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 라."
아함경의 아주 중요한 경구입니다.
금강경에서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요.

육근과 육경이 있는 이상
경계를 만나 면 당연히 감정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감정에 집착하기 때문에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고 분별하고,
그 분별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수 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경계를 만나더 라도 잘 관찰함으로써
그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행복이니 불행이 니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좋던 싫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인연따 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잘 관찰하기만 하 면
다만 '관할 뿐'이지
좋고 싫은 분별이 일어나지는 않게 됩니 다.

온전히 관하고 있을 때
집착은 붙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 화살을 맞을 수가 없 지요.


경계를 만나 감정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가
벌써 첫 번째 화살을 맞은 것입니다.
그렇듯 인연따라 자연스럽 게 일어나는 감정이야
육근 육경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감정에 또다른 분별과 집착을 덮씌워
제2, 제3의 분별 로 몰아감으로써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을 연신 맞게 된다는 말입니 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머무 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경계 따라 응당히 마 음을 내되
거기에 머무르지 말라는 말은
집착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 지요.

무심(無心)이 되라 하고,
분별 집착하 지 말라고 하니
그저 돌처럼, 산천초목처럼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돌장승이 되라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입과 몸과 뜻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 하면서
한없이 마음을 내더라도
거기에 한 치도 머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나 온 자취를, 발자국을
짊어지고 가 지 말고
자유롭게 놓고 걸림없는 시원한 걸음을 걸으라는 말입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업식이 남아있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업식이 남아 있으니 이렇게 육근을 가진 사람으로 윤회를 하였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육근과 육경이 만나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입니 다.

그러나 이 첫 번째 화살은
우리의 지난 업식이 인연을 만나고 경계를 만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 정일 뿐입니다.

다시말해 그 경계와 감정은
내 안에 있 는 업식이 비로소 인연을 만나
튀어 나오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 말은 업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니
내 안에 있는 업이 현실로 현현함으 로써
내 안의 업식을 비워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인 것이기도 합니 다.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악업의 업장이 현 실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내 안의 악업을 소멸할 수 있는 좋은 계기 가 된다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괴로운 경계는 만나 기 싫어하고,
즐거운 경계만 만나고 싶어하면서 살았지만
사실은 수행자라면 그 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괴로운 경계를 만난다는 것은
내 안의 악업의 업식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니
그만큼 내 안의 악업이 줄 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 순간이겠습 니까.

그러니 괴로운 경계를 만나더라도
거부 하려 하지 말고 크게 긍정하면서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냥 큰 방하 착의 마음으로 꿀꺽 삼켜 버려야지
자꾸 버리려고 하고, 괴로운 감정에 휘 둘려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는 말은
모처럼 업식을 닦을 중요한 기회를 만나고도(첫 번째 화살)
그것을 닦아내 어 뿌리 뽑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그 감정에 휘둘려 감정적인 말과 행동 생각(삼업)을 일으킴으로써
그로인해 또 다른 업식만 늘려나가는 꼴이 되 고 맙니다.

선업의 경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거운 경계를 만난다는 것은
내 안에 미리 지어 놓았던 선업의 과보를 받 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즐거운 경계만을 좇을 필요도 없는 것입 니다.
자꾸 즐거운 경계만 좇는다는 것은
악업은 내 안에 가만히 두고 선업만 올라오도록 한다는 말이니
그만큼 내 안의 업식은 악업만 이 남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선업이든 악업이든
사실은 그 양 극단의 업식을 모두 녹여내는 것이
모든 수행자들의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겠어요?
괴로운 경계든, 즐 거운 경계든
있는 그대로 크게 긍정함으로써 다 받아들이고
그 경계에 휘둘 려 일어나는 감정에 놀아나지 말고
잘 관함으로써 녹여낼 수 있어야 한 다는 말입니다.

괴로운 것을 보면 없애 버리려고 애쓰 고,
즐거운 것을 보면 더 끌어안으려고 애쓰는,
이 양 극단의 마음을 다 놓아버려
텅 빈 마음이 되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길입니 다.

내 앞에 펼쳐지는
좋고 나쁜 그 어떤 경 계라도
다 내 마음 공부를 위해 나타나는 법계의 배려인 것입니 다.
내 안의 업장을 녹이라고 나오는 경계란 말이지요.
그러니 크 게 보았을 때 긍정 아닌 것이 없어요.
긍정 부정 나누어 긍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양 극단을 뛰어넘는 대 긍정, 절대 긍정이라는 말입니 다.

그러니 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되 잡 지 말고(무집착)
분별없이 잘 관찰함으로써(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아야 하겠습니 다.

이 길이 수행자의 함이 없는 행이며,
무 심(無心)의 실천이고,
공(空)의 실천, 무집착의 실천인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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