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범부나 지혜로운 사 람이나 경계를 대하면 좋고 나쁜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 감정에 포로가 되 어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을 갖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 을 맞는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 라." 아함경의 아주 중요한 경구입니다. 금강경에서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요. 육근과 육경이 있는 이상 경계를 만나 면 당연히 감정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감정에 집착하기 때문에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고 분별하고, 그 분별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수 없이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경계를 만나더 라도 잘 관찰함으로써 그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좋고 싫은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아가 행복이니 불행이 니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좋던 싫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인연따 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잘 관찰하기만 하 면 다만 '관할 뿐'이지 좋고 싫은 분별이 일어나지는 않게 됩니 다. 온전히 관하고 있을 때 집착은 붙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 화살을 맞을 수가 없 지요. 경계를 만나 감정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가 벌써 첫 번째 화살을 맞은 것입니다. 그렇듯 인연따라 자연스럽 게 일어나는 감정이야 육근 육경이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감정에 또다른 분별과 집착을 덮씌워 제2, 제3의 분별 로 몰아감으로써 두 번째 화살, 세 번째 화살을 연신 맞게 된다는 말입니 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머무 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경계 따라 응당히 마 음을 내되 거기에 머무르지 말라는 말은 집착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 지요. 무심(無心)이 되라 하고, 분별 집착하 지 말라고 하니 그저 돌처럼, 산천초목처럼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돌장승이 되라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입과 몸과 뜻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 하면서 한없이 마음을 내더라도 거기에 한 치도 머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나 온 자취를, 발자국을 짊어지고 가 지 말고 자유롭게 놓고 걸림없는 시원한 걸음을 걸으라는 말입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업식이 남아있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업식이 남아 있으니 이렇게 육근을 가진 사람으로 윤회를 하였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육근과 육경이 만나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입니 다. 그러나 이 첫 번째 화살은 우리의 지난 업식이 인연을 만나고 경계를 만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 정일 뿐입니다. 다시말해 그 경계와 감정은 내 안에 있 는 업식이 비로소 인연을 만나 튀어 나오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 말은 업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니 내 안에 있는 업이 현실로 현현함으 로써 내 안의 업식을 비워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인 것이기도 합니 다. 괴로운 일이 생길 때 악업의 업장이 현 실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내 안의 악업을 소멸할 수 있는 좋은 계기 가 된다는 말이지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괴로운 경계는 만나 기 싫어하고, 즐거운 경계만 만나고 싶어하면서 살았지만 사실은 수행자라면 그 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괴로운 경계를 만난다는 것은 내 안의 악업의 업식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니 그만큼 내 안의 악업이 줄 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 순간이겠습 니까. 그러니 괴로운 경계를 만나더라도 거부 하려 하지 말고 크게 긍정하면서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냥 큰 방하 착의 마음으로 꿀꺽 삼켜 버려야지 자꾸 버리려고 하고, 괴로운 감정에 휘 둘려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는 말은 모처럼 업식을 닦을 중요한 기회를 만나고도(첫 번째 화살) 그것을 닦아내 어 뿌리 뽑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그 감정에 휘둘려 감정적인 말과 행동 생각(삼업)을 일으킴으로써 그로인해 또 다른 업식만 늘려나가는 꼴이 되 고 맙니다. 선업의 경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거운 경계를 만난다는 것은 내 안에 미리 지어 놓았던 선업의 과보를 받 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즐거운 경계만을 좇을 필요도 없는 것입 니다. 자꾸 즐거운 경계만 좇는다는 것은 악업은 내 안에 가만히 두고 선업만 올라오도록 한다는 말이니 그만큼 내 안의 업식은 악업만 이 남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선업이든 악업이든 사실은 그 양 극단의 업식을 모두 녹여내는 것이 모든 수행자들의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겠어요? 괴로운 경계든, 즐 거운 경계든 있는 그대로 크게 긍정함으로써 다 받아들이고 그 경계에 휘둘 려 일어나는 감정에 놀아나지 말고 잘 관함으로써 녹여낼 수 있어야 한 다는 말입니다. 괴로운 것을 보면 없애 버리려고 애쓰 고, 즐거운 것을 보면 더 끌어안으려고 애쓰는, 이 양 극단의 마음을 다 놓아버려 텅 빈 마음이 되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길입니 다. 내 앞에 펼쳐지는 좋고 나쁜 그 어떤 경 계라도 다 내 마음 공부를 위해 나타나는 법계의 배려인 것입니 다. 내 안의 업장을 녹이라고 나오는 경계란 말이지요. 그러니 크 게 보았을 때 긍정 아닌 것이 없어요. 긍정 부정 나누어 긍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양 극단을 뛰어넘는 대 긍정, 절대 긍정이라는 말입니 다. 그러니 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되 잡 지 말고(무집착) 분별없이 잘 관찰함으로써(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아야 하겠습니 다. 이 길이 수행자의 함이 없는 행이며, 무 심(無心)의 실천이고, 공(空)의 실천, 무집착의 실천인 것입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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