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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많은 비가 내렸다.
쏟아지는 비소리,
또 빗방울이 숲 위로 내려 앉는 소리가
다소 거칠어 몇 번을 잠에서 깨어났다.
하기야 산사에서 살다보면
이따금 한밤 중 잠에서 깰 때가 있다.
주로 늦은 녘 울려오는 둔탁한 전화 소리이거나
아기 울음 소리 비슷한 도둑고양이 소리인데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똑같이 잠에서 깨더라도
혹 그로 인해 잠을 조금 설치더라도
기분 좋게 두 눈 뜨고 일어나
잠시나마 맑은 정신으로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바로 그날 새벽녘처럼
조금 거칠더라도 시원스런 빗소리가
이 청청한 산사를 맑게 씻어내리는 바로 이런 때.
한밤중 빗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 안의 뜨락에도 맑은 비가 내리는 듯 하다.
한 밤 중
비 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나 앉아 보셨는지...
그 웅숭깊은 도량의 한밤중 맑은 정취를 느껴보셨는지.
특히나 그날 밤에는 활짝 열어 둔 빗소리가
얼마나 청청하였던지 밤새 몇 번을 잠에서 깨어났는지 모른다.
이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쏟아붓는 비는 참 오랜만이다.
그치지 않고 몇 날을 계속해서 퍼 붓다 보니
처음엔 그리도 좋고 낭만적이던 빗줄기가
조금씩 찝찝함과 습한 여운을 주며
뽀송뽀송한 빨래 감촉이 그리울 때 즈음...
길을 나섰다.
한참 장마비가
온산하 대지를 흠뻑 적시울 그 때,
따뜻한 햇살을 그리다 그리다
한생각 돌이켜 보니
이 극성스럽고 그치지 않는 빗줄기 조차
정진하는 도반처럼 포근하게 느껴져
그래 이렇게 되었으니 한바탕 하나되어 춤이라도 춰 보자 싶어
쏟아지는 빗줄기를 길벗삼아 걸망을 꾸렸다.
사실은 작년 가을 지리산에 오를 때
비오는 지리산을 가슴 깊이 그리워 했던 그 인연이
이제사 마음 속에서 꽃망울을 틔우게 했던 것일 게다.
갑작스런 길 나섬이다 보니 아무런 준비가 없었고,
되려 그런 무성의가 이번 만행엔 알싸한 스릴이랄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턱 내맡기고 저지를 수 있도록,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거닐을 수 있도록
내 여행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별 생각 없이
빗 속에 내려진 결정이었고,
빗줄기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당연히 산을 택했고, 지리산으로 발길이 옮겨져갔다.
역시나 탁 저지를 땐
물 흐르듯 다 되어지지만은 않는 법.
하기야 방하착 하고 턱 놓아버렸을 때
턱 놓으니까 다 되겠지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법계가 아직 내 속의 작은 번뇌를 보지 못함이 아니겠는가.
철도 파업 기간이라고 해서
지리산으로 가는 기차가 발이 묶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툴툴거리는 버스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남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화엄사 아랫동네까지 발길이 머물러졌다.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둡다.
눅눅한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새벽 빗길을 여유있게 걸으리란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눈은 감고 있는데
마음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있다.
하기야 이 설레는 마음에 잠이 오겠는가.
또하나, 방에 들어오고부터
기다렸다는 듯 더 세게 몰아치는 빗줄기의 기세가
영 예사롭지 않은 것이
이 밤
길 떠날 한 외로운 여행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아. 이런 밤
이렇게 가슴 깊은 곳까지
울울적적 창연한 여울이 넘쳐날 때면
난 외로운 시인이 되고 고독한 명상가가 된다.
상상해 보라.
어느 누구인들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겠는가.
아마도 밤새 비가 내렸나 보다.
이 새벽, 창밖으로 들어오는 논밭의 풍경이며
그 위로 지리산의 위용이
마을까지 내려온 하이얀 비구름 안개와 어우러져
한 폭의 청청한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화엄사 계곡도 이만하면 꾀나 불었을테고
정상과 능선 쪽에는 바람까지 거칠게 불어올거고,
행여나 나처럼 반쯤 정신나간 빗속의 입산자들도
공원관리사무소 사람들 안내를 받아
다시금 내려오고 있을 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금씩 잣아지는 빗줄기를 핑계삼아
화엄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내 행세를 보고는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서는
“오늘 산행은 안 됩니다. 화엄사 가 봐야 못 올라가요”
화엄사로 오르려던 일정에 약간의 차질은 생겼지만
뭐 애초부터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 한 바가 없던 터라
실망할 것도 없고, 답답할 것도 없이
왠지 모르게 저 산속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 하나에 기대어 6시 성삼재행 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버스는 왔다.
어지간 해서는 버스는 올라간다는
어젯밤 민박집 보살님 말씀을 귀담아 들은 것이 맞아떨어진 것.
버스 기사님께서
“성삼재까지, 그리고 걸어서 노고단산장까지는 가도
그 이상 종주는 불가능할겁니다.”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왠지모를 희망을 품게 했다.
또 하나,
나같은 이상한 사람이 몇몇 더 있었다는데
왠지 모를 위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 마음을 바라보면서
저 산을 나홀로 고독하게 걸으리란 그 마음이
어쩌면 그 이면에 일정부분 두려움과
또 면면에 누군가 산친구가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음을
훤히 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되면서
이번 산행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풀풀거리면서 버스기사 아저씨의 능숙한 솜씨로
곡예를 하듯 비바람 속을 뚫고 잠시 후 성삼재에 다다랐다.
맨 먼저 훌륭한 준비로
아무리 거친 빗길이라도 문제 없을 것처럼 보이는,
덩치만큼이나 큰 등산가방을 둘러 메고
3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분께서 버스를 내렸다.
그 뒤로 어설픈 바지 반팔셔츠 준비 덜 된 등산가방에
아래에서 아침에 구입한 1,000원짜리 하얀색 일회용 우비를 쓰고
내가 뒤따라 내렸고,
내 뒤에는 20대 초반 즈음으로 보이는
대학생들 3명이서 역시나 청바지 차람에 체크무늬 남방에
비가 금새 세어들어갈 듯 한 운동화를 신고는
정말 이 산을 종주할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준비성은 없지만
그 젊은 패기와 열정이 감격스러운 젊은 친구들이 따라 내렸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성삼재 주차장에 거칠게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잠시 스쳐지나간 생각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나. 돌아가야 되는거 아닌가’...
3팀이 버스에서 내렸지만
이 산하의 웅장함과 오늘 상황의 비장함 때문이었는지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흔한 산길 인사말도 주고 받지 않은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리는 즉시 고개를 푹 떨구고 그냥 걷기만 한다.
노고단 산장에 다다랐더니
어젯밤 이 곳 산장에서 발이 묶인 사람들이
아침밥을 지어 먹고 있었는데
조금 쉬고 있자니 모두들 내려가자는 분위기...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길을 틀어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재빨리 발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있다가는 아주 걸을 수 없을지 몰랐기 때문.
드디어 본격적인 빗속의 산행이 시작되는 것.
빗속에 산길을 걷는다.
어젯밤부터 기다려 왔던 바로 이 순간...
그러나 현실은 그 낭만과 설렘이란 단어와는
사뭇 차이가 나게 마련.
그러더라도 일단 저지른 것
분별이 올라올 때 그냥 놓아버리고 걷기만 했다.
막연한 분별심이 잣아지기 시작한 것은
노고단을 지나 한 30여분 정도를 걸었을 무렵.
임걸령 지역을 지날 때
내 마음 안에서 맑은 청정수가 흘러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듯,
산하의 맑은 기운이 나를 감싸주는 듯 했다.
그 때부터
비바람도 간간이 멈춰서고
지리산의 위용을 한껏 뽐내며
그렇게 거기 서 있음을 보았다.
아무도 없는 이 거대한 지리의 품 속에
나 홀로 비를 벗삼아 산길을 걷는다...
상상만 하더라도 이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또 설레는 일인가.
외롭고 무섭다는 말은 내게 있어 참 좋은 말이다.
물론 그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외롭다, 무섭다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린 어떤 단어에 공통적인 관념을 주입시켜 놓고
천편일률적으로 엇비슷한 해석을 해 버리는데
똑같은 단어라도 절대 같은 단어가 될 수는 없는 법.
사람마다 그 단어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고,
또 상황 마다 그 의미는 전혀 새롭게 다가올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참 좋은 단어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단어가 될 수도 있다.
내게 있어 ‘외롭다’는 단어는
벗어나고 싶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그런 ‘싫은’ 느낌의 말이 아닌,
내면의 뜰을 호올로 거닐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모처럼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그 안에는 ‘고독’ ‘좌절’ ‘우울’ 보다는
당당함과 자유로움 또 평화로운 깨어있음이 내포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고,
우뚝 선 내 삶의 주인공으로 걷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섭다’라는 말 또한
‘두렵고 겁난다’는 의미 보다는
그 이면에 대자연의 경외감과
그 속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그런 내식대로의 말풀이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산 길.
한참을 걸어도 그 흔한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 하나 찾기가 쉽지 않은
오직 바람과 비, 나무와 풀, 새들과 자연이
내 길에 벗이 되어 주는 이 외롭고 무서운 산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그러면 그렇지 저 쪽 산 귀퉁이에
이 빗길을 감행한 또다른 벗들이 서 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 시야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무슨 동화의 마법사 내지는
헤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큼직한 자주색 비옷을 입고는
묵묵히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참 듬직하다 싶었는데
연하천 산장에서 점심 즈음에 만나 보니
아버지와 아들 딸 참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다.
점심 즈음에 연하천 산장에 다다랐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언제 비가 오기나 했었냐는 듯
잠시 꿈이라고 꾸고 있는 듯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쨍~ 소리를 내면서 이 산하를 찬연하게 비추고 있다.
지리산의 날씨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곤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변덕이 심할 줄이야.
사람도 이 자연의 일부분이다 보니
화창한 날씨에 맞춰 내 마음도 화창하게 개어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마법사 가족과 함께 점심으로 라면을 삶았다.
마침 연하천 산장지기 거사님께서 함께 점심을 드시며
맛있는 반찬들도 꺼내 나누어 주시고
이런 저런 산에 사는 얘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산에 살다 보니 저 아래 내려가면
일주일을 못 버티겠노라고 그러시는데
대번에 맞장구를 치면서 깊은 공감을 하면서
이런 곳에 홀홀 외로이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고동을 친다.
산에 올라 약초를 케신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없어서 특별히 내 놓으신다며
약초 다린 차를 주전자로 한 통 꺼내 주시며
흐뭇한 표정으로 조금은 노곤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이신다.
그 모습 속에서 산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산에는 꽃이피네’
한 권 가지고 온 법정스님 책을 건내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어린애 같은 천진한 웃음이란...
배도 든든해 졌겠다,
예상 외로 햇살도 쨍 하고 비추어 주겠다,
더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오후의 걸음 걸음을 시작한다.
난 이런 때가 참 좋다.
이렇게 걷고 있으면 그냥 걷고 있을 뿐
다른 그 무엇도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다.
걸으면서 저 아랫동네 사람 사는 이야깃거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이미 지나버린 어제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머릿속을 어지럽힐 필요도 없이
그냥 지금 이 순간 걷기만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면서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이 대자연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걷는 길이 더없이 평화롭다.
산을 걷다 보면
그냥 머릿속을 또 마음속을 비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애써 지금 이 순간을 관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대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좀 더 순수해지고, 좀 더 맑아지고
좀 더 근원적인 지혜에 눈뜰 수 있으며,
좀 더 평화롭고 자유로운 속 뜰을 거닐을 수 있다.
대자연 이 법계의 모습이야말로
아무런 시비 분별도 없이
오직 법계의 흐름에 턱 맡기며
온 자연 법칙의 인과에 턱 맡기며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 대자연의 맑은 심성과 하나되고자 하는,
이 법계에 턱 맡기고 자유로와지길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너무 얽매여 온 인위적인 것으로 부터,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부터,
콘크리트, 철근의 숲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이 자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리라.
제발 이 자연 만은
그냥 그렇게 놓아둘 수 있었음 좋겠다.
사람의 손길로,
사람들의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고 그러지 않았음 좋겠다.
처음 지리산을 찾겠다고 했을 때 산 사람들이 했던 말.
지리산 보려면 하루라도 빨리 가야지
한 몇 년 더 지나면 지리산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지금도 예전 지리산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온통 사람들의 어리석은 손길로 많이 파손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다.
산이야 늘 그렇게 거기에 있을 터인데
지리산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니...
그런데 직접 지리산을 몇 번 와 보니 얼른 이해가 간다.
당장에 작년 가을 왔을 때 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하고
눈에 뜨일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년에는 오르기 어렵고 험하던 곳을
바위 사이를 억지로 올랐던
그래서 오히려 바위 한 번 만져보고
흙 한 번 더 만져보고 밟아보고 그렇게 좋았던 기억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곳들이 언제 공사를 해 놓았는지
철근으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고
계단을 고정시키려고 흙을 파헤치고
또 그 큰 바위에 못질을 하고...
또 지난 해에 오래되었던 계단을
새로 고친다고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아
눈살을 찌뿌리는 일이
이 지리산 전체에서 자행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지리산에서 뿐 아니라
온 국토가 그렇고, 온 산이 그렇고
국립공원이란 곳은 죄다 그렇게 버려놓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야
개발을 하고, 발전을 시킨다고 할 것이고,
이렇게 해 놓아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만,
산을 찾는 사람들이
편한 것, 쉬운 것, 인위적인 것을 원해 산을 찾겠는가.
산을 찾는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에 질려서 산을 찾는 것이고,
콘크리트만 밟고 살다가
흙한 번 밟아 보겠다고 산을 찾을 것이고,
개발과 발전에 질려서
야생스런 자연 속에 안기고 싶어 하는 것일 터인데...
모르긴 해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지리산을 오르기 한결 수월해 질 것 같다.
조금만 걷기 어려운 곳은
죄다 계단이며 오르기 쉽도록 사람들이 다 파헤쳐놓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찾아오라고...
그러다 보면 저렇게 산을 두 동강 내어
만들어 놓은 노고단 아스팔트 바보길도 몇 개 더 낼 것이고,
노고단이며 천왕봉까지 가만히 앉아 갈 수 있도록
케이블카도 만든다고 할 것이고,
산에 올라도 흙을 밟아 보기는커녕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더 많이 밟게 될 지도 모른다.
하기야 얼마전 기사에 따르면
지리산 온천지구에서부터 성삼재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설치하는 계획으로 떠들썩 했었으니
그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자연을 다 파괴해 버리면
우리가 결국에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지구환경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
사람들이 살 수 있을 제2의 지구를 찾는다고 한다.
개발이란 명목아래 지구를 다 오염시켜 놓고서
이제 우주를 오염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우리 사람들의 지식이라는 것이, 생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심하고 당황스럽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순진한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
이 즈음에서 그만 해야지...
기분 좋게 지리산 얘기 하다가 잠시 흥분했다.
산을 걷다가 높은 봉우리를 만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한참을 넋놓고 앉아 있곤 한다.
그럴 때가 참 행복하고 차분하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구름 그림자가 이 웅장한 산위로
드문 드문 떠가고,
그 뒤쪽으로 저멀리 오늘 하룻밤을 묵을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저 척박한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내린
저 높은 곳의 소나무들은
그 양분을 어디에서 받기에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인지...
햇살이 비추다 보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신기하게도
간간이 몇몇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벽소령에 도착하고 나니
해가 가물 가물 저물어 간다.
저녁 공양을 짓고
밥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요량으로
조금 태워 누룽지를 만들어 두었다.
산장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차분하고 조촐한 밤.
산이 이렇게 조용하니 고즈넉한 것이 참 좋다.
빨리 잠들 수 없는 마음에
밤 늦도록 산장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 한 켠에서
별을 보고 산을 보고 숨결을 느끼며 앉아 있다.
늦은 밤.
싸늘한 날씨에 오랫동안 앉아
저만치에서 별을 바라보는 또 한 사람.
3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행복하고 좋은 일이다.
요즈음 난 혼자만의 행복에 잠겨 산다.
수행하는 기쁨, 차 마시는 기쁨,
그리고 이 대자연과 벗하는 기쁨.
이 행복을 함께 나눌 벗이 있다면
난 참 더없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분도 참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산이 좋고, 산공기가 좋고, 숲이 좋아서
병이 난 사람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2박 3일이면 충분할 산을
한 10일 가까이 머물면서 쉬엄 쉬엄 산을 느낀다.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하고
몇 일 씩 산길을 걷는 것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하루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오르는 순간 벌써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르지만
몇 일씩 산과 함께 있을 요량이라면
벌써 산과만 함께 있지
여타 다른 생각들이나 잡념들은 벌써 저만치 피해가기 때문.
그것도 모자라 산장에 들어가 잠자기 아쉬워서
항상 바깥에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사람이다.
어젯밤에는 비오는 이 산에서
큰 바위 아래 작은 틈,
비를 겨우 피할 수 있을 만한 곳에서 잠을 잤고,
오늘도 남들 다 산장 들어가 있을 때
저 혼자 그 옆 숲 속에서 잠에 들 예정이다.
노고단에서 또 반야봉에서
또 저 천왕봉 바위 위에서 별을 보며
잠이 들었던 얘기들은
두고 두고 내 가슴에 아련한 향기를 피어오르게 했다.
저 원주민들 얘기가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이 원주민들에게 집을 지어 주었더니
원주민들은 방안에서 잠을 안 자고
다 밖에 나와 하늘을 별을 바라보며 잠을 잤더라고 하던...
싸늘한 밤공기가
성성하게 깨어있는 수행자의 향기처럼 느껴진다.
맑고 청정하며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잠이 들기 어려울 정도의 알맞은 싸늘한 밤기운...
또다시 새벽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해 먹고는 천천히 발길을 내딛는다.
새벽 숲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없이 신비롭다.
극락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흡사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을까.
좋은 길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길이라는 것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길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도 아침 햇살을 듬뿍 머금고 있는 새벽숲길과
하루 해를 마감하며 뉘엿뉘엿 흩어지는
석양 빛을 뒤로 하는 오후의 숲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떠오르는 아침 해와
지는 저녁 노을을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그림에 취할 수 있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희망한다.
아침 해와 저녁 해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참 여유로울 것이고,
또 소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에게서 하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법우님이
바람에도 제 나름의 독특한 향기가 있고,
아침 이슬이나 안개 또 저 노을에도 향기가 있고,
아침에도 또 저녁에도 향기가 있으며,
저마다의 모든 존재며 순간에 그 향기를 맡게 된다고 하시던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하늘이고 바람이고 구름이고,
또 새벽과 아침, 나른한 오후며 석양에도
또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서도
저마다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때때로 사람에게서 하늘 향기를 맡고,
바람과 구름의 또 새벽이며 석양의 향기를 맡게 될 때
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숨결 속에 포근하게 안기고 있음을 느낀다.
차분하고 느긋한 걸음으로
세석에서 점심 공양을 챙겨 먹고서는
어김없이 촛대봉에 올라 한참을 앉아 있다.
한 두세시간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모습의 지리산을 느낄 수 있다.
난 특히 지리산에 오르면
이 곳 세석평전의 촛대봉을 좋아한다.
이 곳에만 오면 한 몇 시간이고 그렇게 앉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대자연의 경이로운 압도하는 순간의 사진이
내 가슴 속에 콱 박혀 있다가 솔솔 풀려 나오고 있다.
세석의 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하며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튀어나오듯 마주하게 되는
연하봉, 제석봉, 그리고 천왕봉의 도도한 멈춤이
내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압도하고 있다.
그럴 때 난 감각을 잃는다.
그리고 그 순간 보여지는 것과 하나가 된다.
우린 이럴 때
법신(法身)을 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대자연 속에 또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법신 부처님의 평화롭고 경이로운 숨결을 느끼는 것.
오후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시작한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덮치지 않나,
어디에선가 싸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나,
허하고 가슴 한켠이 싸하게 외로운 그런 날씨.
변덕쟁이 지리산의 날씨를
단 두어시간 안에 다 보여주는 듯 하다.
저 발아래로 세석평전이 드넓게 펼쳐지다가
어느샌가 채 1분도 안 되어서 구름이 다가와
내 주위를 한껏 감싸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가 이러하니
내 마음의 변화도 자연을 따라간다.
두어시간 앉아 있을 동안
이 앞길을 지나 천왕봉쪽으로 간 사람이
한손으로 꼽을 정도도 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조용한 지리산을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참 후에 연화봉을 지나 장터목 산장에서
저녁을 지어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항상 붐비는 산장 장터목에
대여섯 사람만 휑한마음 얼굴에 써 가면서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눈치 채고 산장지기님께 여쭈었더니
오늘 밤부터 심한 비가 온다고
내일 새벽이면 산행이 통제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폭풍전야라고나 할까
금새라도 비가 쏟아질 것도 같고,
바람따라 오고 가던 구름들도 금새 내려앉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모두들 몇 일 산에 묵을 요량으로 이렇게 있다고 하니...
내일 저녁 저 아랫마을 우리 밝은도량에서
일꺼리 하나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6시가 넘어서 산장을 출발해 하산.
산을 좋아하는 사람,
숲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없이 그리운 날.
그런 날에
옛 길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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