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명상 – 수면 명상
몸을 편안한 자세로 누운 채로 온 몸에 힘을 빼세요.
몸을 이완하고, 편안히 쉰다는 마음이면 됩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이대로 이렇게 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이대로 있으세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조작도 없이, 자연스럽게 있는 이대로 그저 있어 보십시오.
억지로 자야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잠이 오면 오는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그저 자연스러움에 몸을 맡깁니다.
물론 수면명상 중에 잠이 든다면 그대로 주무셔도 좋습니다.
다만,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아 주세요.
사실은 억지로 잠을 자야 한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우리를 더욱 잠 못 들게 합니다.
이제 ‘잠을 자야만 해’라는 생각을 붙잡지 말고 내려놓아 주세요.
지금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실입니다.
삶의 놀라운 진실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지금 현실이 곧 진실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잠이 오지 않는다면, 지금은 잠이 오지 않는 그 진실과 함께 있어 줄 시간입니다.
그것이 곧 진리와 하나되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곧 참된 근원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자야만 해’라는 것은 지금 있는 이대로의 현실과 싸우는 생각입니다.
지금이라는 현실과 싸우면 진리와 싸우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더 잠 안 오는 현실을 적으로 만들게 되지요.
잠이 안 오는 것은 싸워 이겨야 할 상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할 진실입니다.
아마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은 지금까지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을까?’, ‘잘 자야만 해’, ‘잘 자고 싶어’
라는 생각이 현실로 벌어지기를 기대하고 추구해 왔을 것입니다.
바로 그 추구심이 나를 잠 못 들게 한 주범이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완전히 잠 안 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잠을 안 자 줄 때 그 때 오히려 잠은 옵니다.
다만 ‘잠을 받아들이면 잠이 오겠지’하는 생각은
교묘하게도 잠이 안 오기를 추구하는 또 다른 교묘한 술수입니다.
만약 잠이 안 온다면 그냥 이대로의 현실을 허용해 주세요.
있는 그대로의 잠 안 오는 나를 사랑해 주세요.
그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머릿속에서는 잠을 못 자면 내일 일정에 차질이 생길거라고
온갖 생각 속에서 문제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두 번째 화살’이라고 하고, ‘망상 덩어리’라고 부릅니다.
실제 잠 안 오는 현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 망상덩어리가 더 나를 괴롭힙니다.
잠 안 오면 벌어지게 될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잠이 와야 해 라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을 때,
당신은 문제와 싸우는 중입니다. 자기 생각과 싸우지요.
내 스스로 만든 내면의 문제와 싸우느라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잠이 안 오면 벌어지게 될 걱정들이 없다면 당신의 지금은 어떨까요?
잠이 와야 해라는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무엇일까요?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잠이 안 오는 이대로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평화입니다.
그냥 누워서 생각만 없이 편안히 이완한 채 깨어있는 것은
사실 잠을 자는 것 못지않은 영혼의 쉼을 선물해 줍니다.
잠들지 못하더라도 근심 걱정 생각 없이 그저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어 보세요.
명상과 이완, 생각 없는 쉼은 잠 보다 더 큰 휴식을 가져다 줍니다.
잠이 들지 않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지금의 진리임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이대로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그 생각만 없다면 나는 이대로 자유합니다.
이렇게 고요히 내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누워 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와선이라고 부릅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나는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깊은 와선에 들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몸을 관찰하고, 호흡을 관찰하고, 누워있는 이 현존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힘들게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과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잠만 오지 않는다면, 누워 있더라도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누워서 명상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명상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우면 바로 잠이 들기 때문에 와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감사하게도 한 밤 중에 오랜 시간 누워 있어도 전혀 잠을 자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와선에 매우 적합한 사람입니다.
밤새 와선을 하거나, 혹은 와선 중에 얕은 잠에 빠지더라도 이렇게 몸과 마음을 이완한 채 밤을 지샌다면, 잠을 잔 것 못지않은 깊은 휴식과 개운함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자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편안하게 내려놓아 주세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보겠습니다.
혹시 몸 가운데 힘이 들어가 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힘을 빼세요.
잠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 말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스캔하듯 바라보며 온 몸에 힘을 빼 보겠습니다.
머리에 힘을 뺍니다.
얼굴 전체에 힘을 빼고, 눈코입이 거기에 있음을 느껴봅니다.
눈을 알아차려 봅니다. 눈에 힘을 빼고요.
코를 알아차려 봅니다. 입과 입 안의 느낌, 혀의 느낌을 알아차려 봅니다.
안면 얼굴 전체를 해석하거나 이름 붙이지 않고 관찰해 봅니다.
머리를 관찰합니다. 머리 뒤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머리를 관찰합니다.
머리와 배개가 접촉되는 부분의 느낌은 어떤지 있는 그대로 느껴봅니다.
목에 힘을 빼고, 어깨에 힘을 뺍니다.
뒷 목과 뒤쪽 어깨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를 관찰하고, 힘을 뺍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뒷목과 어깨가 긴장되고 묵직하게 뭉쳐집니다.
가슴에서부터 배로, 배에서 아랫배로 내려가며 천천히 관찰해 봅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갈 때 아랫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뒤쪽 어깨에서부터 등으로, 등에서 척추를 따라 엉덩이 부분까지 관찰합니다.
등과 엉덩이 부분이 요와 접촉되는 부분의 압력감을 느껴보고 힘을 뺍니다.
왼쪽 팔을 팔뚝에서 팔꿈치로, 다시 천천히 손목으로,
손과 손가락으로 옮겨가며 힘을 빼고 관찰합니다.
오른쪽 팔을 팔뚝에서 팔꿈치로, 다시 손목과 손, 손가락으로 옮겨가며 관찰합니다.
엉덩이가 방석과 맞닿은 부분의 느낌, 압력감, 온도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왼쪽 다리로 갑니다.
왼쪽 다리 허벅지를 관찰하고 천천히 무릎으로, 종아리로, 다시 발목과 발,
발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그 부분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봅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입니다.
오른 다리의 허벅지와 무릎, 종아리, 발목, 발, 발바닥, 발가락을 천천히 관찰합니다.
이제는 다시 온 몸 전체를 하나로 관찰합니다. 온 몸에 힘을 뺍니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있어 봅니다...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호흡입니다.
호흡을 애써 통제하려 하지 말고, 저절로 일어나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호흡이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놔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코끝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한 지점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바로 그 지점에 의식을 모아 바라봅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코끝을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잠시 그렇게 알아차리며 시간을 보내보겠습니다.
다시 온 몸에 힘을 빼세요.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생각이고, ‘누워 있다’는 것도 생각일 뿐입니다.
그 생각, 그 개념을 다 빼고 그저 있어보세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인 것처럼,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천진한 텅 빔으로 그저 있어보세요.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습니다.
지금 이 낯선 경험이 무엇인지를 이름 붙여 해석하지 마세요.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그저 있는 그대로 관찰해 봅니다.
사실 갓 태어난 이 몸의 감각을 ‘몸’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습니다.
‘몸’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저 이 감각을 그저 느껴보세요.
‘누워있다’는 이름도 빼고, 누워있는 이것을 ‘나’라고 하는 것도 빼고 그저 이렇게 있기만 하십시오.
몸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머리 하나, 팔 두 개,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대한 생각, 기억, 이미지, 모양을 다 빼고 실제 경험만을 직접 살펴보세요.
갓난 아기는 과거가 없기에, 지금 일어나는 경험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과거를 참고하지 말고, 기억을 배제하고, 그저 지금 느껴지고 있는 감각을 그저 경험해 주십시오.
여기 이 경험에는 뚜렷한 형태가 없습니다.
누워있다는 형태는 과거의 기억에서 온 이미지이고, 모양일 뿐이지요.
실제의 경험만을 바라보면, ‘내가 누워있다’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자각되고 감각될 뿐입니다.
모양은 없지만, 어떤 따끔거리거나, 간질거리거나, 움직이거나, 묵직하거나 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을 경험할 뿐입니다.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각도 기억도 없고,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모든 것이 난생 처음 만나는 것뿐입니다.
무엇이 알아차려지나요?
지금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코끝으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그러나 여기에 코끝이니 호흡이니 하는 이름도 뺍니다.
그저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언가가 감지됩니다.
거기에 이름을 붙이지는 마세요. 그저 이러할 뿐입니다.
내가 코로 숨을 들이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이것이 저절로 알아차려질 뿐입니다.
지금 여기에 그저 있어보세요. 또 무엇이 알아차려지나요?
지금 이 순간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지도록 허용해 주어 보세요.
저절로 알아차려지는 모든 것들이
저절로 알아차려지도록 허용한 채
잠시 이 텅 빈 알아차림의 장에서 있어 보겠습니다.
생각 없이 그저 이렇게 있을 때, 그것은 잠을 자는 것 보다 더 깊은 휴식입니다.
잠을 자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밤 새도록 이렇게 있어도 좋습니다.
이 고요한, 텅 빈, 깨어있는 알아차림의 장에 고요히 그저 있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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