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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중생이 가지고 있는 여래장도 항상 존재하여 결코 변함이 없다.

단지 저들 중생들은 번뇌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셔서 널리 설법하시는 인연을 먼저 만나야 한다. 

온갖 번뇌의 티끌을 전부 소멸시키면 곧 일체지를 밝히게 된다.

이러한 가르침을 진실로 믿고 온전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익힌다면 반드시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세상을 위해 불사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여래장경]

본래 누구에게나 완전하게 갖추어진 불성을 밝히려면, 여래장을 확인하려면 부처님의 설법 인연을 만나야 한다. 

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법문을 듣는 것이야말로 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참된 법문과 선지식을 만난다면 우리는 바로 이생에서 불법을 깨달을 수 있다. 

언젠가 몇 생 후에는 발심하여 부처가 되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헛된 망상일 뿐, 그런 것을 발심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때가 올이지 안 올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오로지 지금 밖에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공부하지 않고, 발심하지 않고, 법문을 듣지 않는다면 지금을 제외한 다음 생이나 미래는 없다. 

‘금생에 성불하리라’는 발심의 서원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세우라. 

바로 그러게 세운 서원이 당신에게 바른 법과 스승을 가져다 줄 것이다. 

발심이 이 우주법계로부터 깨달음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전부 다 공짜로 가져다준다. 

내가 본래 이미 깨달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원만구족하게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시절인연과 공부인연은 다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오로지 마음을 내는 일이다. 

수행의 방법, 깨달음의 방법은 없다. 있다면 오직 발심하는 것일 뿐.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이 이미 올라와 있는 줄 모르고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려고 한다면, 그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미 도착해 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도착할 방법이 없다. 바로 여기가 거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헛된 망상 분별로 인해 내 스스로 지금 여기에 도착해 있음을 모르니, 불법의 만나 이미 도착해 있다는 법문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발심하고 법문 듣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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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05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9.12.05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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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금방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이든 바라는 것은 쉽게 해 낼 수 있는 힘과 신통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비로소 진짜 도인일 것이라고 여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랄 것도 없지만, 깨달은 이는 그저 지금 이대로 살 뿐이다.

무언가를 더 바라지도 않고, 추구하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이길 바라니, 그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진 채로, 완료형으로 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진짜 진실을 얻은 자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생각 속의 일이 아닌가?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이길 원하는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진실이다. 지금 이대로의 이것이 전부다.

지금 이대로의 당신과 당신의 삶이 그대로 진실이다.

진실을 살라.

.....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도인 같지 않고, 그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실망하며 말한다.

'저 사람이 어떻게 깨달은 사람이야', '저런 깨달음이라면 나는 안 얻어도 되겠다' 라고 하며, 깨달음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깨달음에 대한 오해다.

그의 내면은 깨닫기 이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가속패달을 밟던 차량도 패달에서 발을 떼었다고 해서 곧바로 멈춰서지는 않는다.

속도는 서서히 줄어든다.

그러나 가속패달 위에 발을 얹어 놓고 계속해서 밟던 삶과 패달에서 발을 뗀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래서 경전에서도 자내증(自內證)이라고 하여, 깨달음은 스스로의 내부에서 확인되는 것일 뿐, 외부에서 보여지는 것으로는 알 수 없음을 설하고 있다.

신통력과 신통자재함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깨달음은 완전히 물건너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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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예불을 올리고
좌선을 합니다.

좌선을 하기 전에
잠시 마음나눔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모든 분들이 똑같습니다.
그냥 이렇게 법당에 앉아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똑같지를 못합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앉아있는 사람,
오늘 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앉아 있는 사람,
요즈음의 안 풀리는 일상에 대한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있는 사람,

또 군인 법우들은
내가 지금 군대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에
온전히 앉아있을 수가 없기도 합니다.

사실은
모든 이들이
지금 이 순간 똑같이 앉아있습니다.

이렇게 앉아있는 데는
다른 분별이 붙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앉아있을 뿐이지요.

'누가'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에''왜'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있는 그 순간 집중하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장도 아니고,
주부도 아니며,
자식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어려운 일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아니고,
힘겨운 군생활하고 있는 군인도 아니고,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앉아있을 뿐입니다.
아무런 분별이 없어요.
바로 그 순간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순간이 됩니다.
깨달음을 체험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바로 그 순간
우리는 온전한 평화로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마음을 모아 집중하며
이 순간을 느끼는 데에는
다른 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이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평화로움과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음 속에
어제 일에 대한,
요즈음의 일상에 대한,
또 오늘의 일이며 내일의 일에 대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며,
사무실 업무에 대한,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식 걱정이며 대학, 취직, 진급에 대한질투, 시기, 노여움, 다툼, 욕
심 등의 마음에 대한
온갖 번잡한 마음을 붙잡고 앉아 있게 되면
그것은
좌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마음 모아 관찰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똑같이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지금 마음 집중하기가 어렵고,
미래에 올 두려운 일 때문에
지금 좌선이 잘 안 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선이라는 것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의 문제입니다앉아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의 모든 시공에서의 문제입니다.

앉아서 평화로울 때 처럼
움직임 속에서,
무수한 일의 스트레스 속에서,
번잡한 출근 길의 정신없음 속에서,
사람들과의 부딪김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순간에 온전한 평화로움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그냥 다 놓아버리고
그 순간이 되어 느끼기만 하면 됩니다.
온전히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우린 누구나
지금 이 순간 평온을 느낄 수 있고,
자성부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짊어지고 있는 것들만 놓으면...
그래서 이 순간에 깨어있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가장 좋은 때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느 때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순간
직업도, 스트레스도, 두려움도,
온갖 나에게 붙여진 이름들도,
이를테면 부모, 자식, 사장, 직원, 친구, 수행자 등등하며,

온갖 과거로부터 짊어진 모든 이름, 모양, 아상들이며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들까지
다 놓아버리고
온전히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에 집중하여 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기 보다
아니...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을 구한다면
천리 만리 길을 잘못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환상에 젖은 깨달음은
그 자체로써 마장인 것입니다.

멀리서 찾지 말고,
엄청난 무언가를 찾지 말고,
아주 소박하지만
아주 미세하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더 어렵다고 하겠지만
이 순간의 아주 작은 평화는
너무 크기 때문에 작게 느껴지는 평화로움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의 육근이 바깥으로 끄달리는감각적인 행복만을 추구해 오다 보니
이 작지만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데 익숙하지 않을 뿐입니
다.
크고, 웅대
하고, 엄청난...
그런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마세요.
부처님의 밝은 미소는
아주 소박하게 다가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잠시 동안이라도 모든 번뇌일랑 다 놓아버린 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관찰해 보세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가만히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작은 평화로움 한 자락...
아주 미세한 속 뜰의 본래 향기가...
느껴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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