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6.15 법상스님의 시절인연
  2. 2009.08.04 대자연의 성품을 따라 살라

 

 

사람과의 만남도, 일과의 만남도

소유물과의 만남도, 깨달음과의 만남도,

유형 무형의 일체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만나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주침은

다 제 인연의 때가 있는 법이다

그 인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

다만 아직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을 뿐

만나야 할 일도

만나야 할 깨달음도

인연이 성숙되면 만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성공은 오지 않고 실패만 자꾸 찾아온다면,

그렇더라도 아직 좌절하지는 말라.

아직 시절인연이 깃들지 않은 것일 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꾸준히 오르더라도

한동안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당신의 시절인연을 만날 것이다.

 

이렇듯 시절인연은 당장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안으로 안으로 전체적인 인연의 질서에 의해 여무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바로 그 때가 저절로 내 앞에 드러난다.

 

아무리 만나고 싶어도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시절 인연이 되어 만남을 이룰 때

그 때 더 성숙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다만 자신을 가꾸어야 할 때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절인연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야 할 때

홀연히

문득

저절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그것의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주어진 눈부신 순간으로 돌아와

지금 여기를 가꾸는 것 뿐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바로 지금 이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과의 인연을 가꾸는 사람에게

비로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깃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의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이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바로 그 싫은 부분을 만나는 것이며,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안의 이기의 일부분이 상대로써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은 내 안의 놓치고 있던 나를 만나는 숭고한

'나를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가져온다.

 

다만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볼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모든 만남은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요

나아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어남의 여정이기도 하다.

 

아직 존재의 본질에 어두워

이 만남 속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그 만남을 온 존재로써 소중히 받아들일 수는 있다.

 

우주전체가 나를 만나기 위해

바로 이 소소한 만남과 사연을 보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로 그 사람을, 그 사연을 보내 주었다.

 

결코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내면이 성숙하면 만남도 성숙하지만

내면이 미숙하면 만남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미숙한 사람에게 만남은 울림이 없고 향기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직 오지 않은 시절인연을 기다릴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바로 이 사람, 이 일,

지금 소유하고 있는 이대로의 것들,

매일 부딪치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지금 내가 만나야 할 바로 그 시절인연이다.

 

모든 만남은 붓다의 선물이요,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항상 부처를 만나며 신과 함께 있다.

 

지금의 시절인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그토록 기다려온 시절인연 또한

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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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온다. 방안 널찍한 창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앉아 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기 힘든데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다 밀려가다 그러고 있다. 이른 아침 저 숲 위로, 나무 위로, 들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 한 잔 생각도 나고 감성이 더 여리고 새록해 진다. 저렇게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나무들은, 저 숲의 생명들은 참 의연도 하다.

  절 주위는 얕은 산이라 온갖 나무들이며 들풀,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잠시도 쉬지 않고 너가 지면 또 내가 피어나고 핀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고 그런다. 풀들도 처음 여린 잎의 생김새와 한참 물이 올라 피어오른 모습은 전혀 다르다. 처음엔 작은 풀이거니 했는데 비 한 번 오고 나면 꼭 나무처럼 쑥쑥 자라나 나를 당황케 하는 녀석도 있고, 처음엔 예쁘고 귀엽던 것들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강한지 무서울 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기도 한다.

  채소밭에 너무 큰 풀들은 뽑아 주는데 한참 풀들을 뽑아주다 보면 뿌리가 얼마나 깊고 굵은지 세상 위로 올라온 것의 몇 배 이상은 됨직한 뿌리를 보면 섬뜩 이네들의 생명력에 놀라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뽑아낸다는 것이 어떨 때는 참 미안하기도 하고 저 녀석들도 다 이유가 있어 피어오르는 것인데 하고 생각하면 풀 뽑는 일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풀도 그대로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너무 커서 채소들 키를 웃자랄 때가 되면 그런 녀석들만 뽑아서 옆에 놓아둘 뿐 될 수 있다면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저 채소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도 될 것이고, 그 경쟁력이 더욱 채소들을 생명력 있게 가꿀 것이며, 또한 함께 자라주는 따뜻한 이웃이 될 수도 안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풀들이 함께 자라고 이웃 풀들과 함께 경쟁도 하고 또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라난 채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실하고 열매가 적을지 몰라도 그 생명력은 더욱 강인하며 실제로 병해충으로부터의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채소도 생명인데 우리 사람들하고 사는 것이 다를 리야 있겠나!

  사람도 늘상 온실 속에서 자란 채소들처럼 온갖 시련과 힘겨운 경계를 당해 보지 못하고 늘 풍족하게만, 늘 보호 속에서만 자란다면 그 사람의 내적인 생명력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실패도 맛보면서 주춤주춤 거리다가 그래도 딱 버티며 일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수록 우리들의 내적인 삶의 빛은 더 생기를 띨 수 있는 법이다. 본래부터 아무리 큰 시련이며 역경이라도 꼭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오고, 또 꼭 필요한 바로 그 때 오지 내가 이겨내지도 못할 일이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때 찾아오는 법은 없다고 한다.

  채소도 키워 보니까 우리하고 똑같다. 처음에 자랄 때 오이에 진딧물이 자꾸 붙기에 손으로 떼어 줘도 보고 담뱃재를 모아 우린 물도 줘 보고 했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생기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지 싶어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진딧물도 양심은 있는지 전체 오이를 다 괴롭히는 건 아니고 그 중에 몇몇 오이에만 가서 붙어 있으니 그래도 다행한 일이구나 싶었다.

  우리 사람들이야 어디 그런가. 될 수 있으면 좋은 것, 많은 것 더 가지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최대한 많은 양을 모아 축적하려고 안달이지 양심이란 것이 우리들 욕심 앞에 맥을 못 추지 않는가. 진딧물에게도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보니까 진딧물이 많이 붙은 오이에만 무당벌레들이 모여 진딧물을 처리 해 줌으로써 내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가만히 보니까 내가 할 일을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잘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다가 진딧물 싫다고 농약을 막 쳐 놓았다면 그 농약에 무당벌레도 또 다른 익충들도 모두 함께 전멸했을 것이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시련과 역경이, 힘겨운 일이 생기면 그걸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냥 주저 않아 버리지만, 그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다 싶더라도 대자연 법신 부처님의 숨결에, 또 신성神性 충만한 하느님의 뜻에, 어머니 대지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 수 있다면 분명 이 우주 어딘가에서는 해답을 내려 줄 것이다. 아무리 관찰해 보아도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고 또 정확하다는 걸 느낀다. 정확하게 필요한 일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생겨나고 있다.

  우리들 머리로 그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고만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그 이치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저 숲 속의 생기어린 생명력과 포근함을 우리 사람들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산다는 것은 곧 삼라만상인 법신 부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이고, 하느님의 신성한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는 말과 같다. 대자연 우주가 그대로 법신불이요 신성의 피어남이기 때문이다.

  이 대자연의 숨결에 일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면, 그래서 내 일로 ‘잡고’ 살지 말고 대자연의 진리 성품에 ‘놓고’ 살면 우리 사람들에게서도 저 대자연의, 저 청청한 숲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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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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