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9 글 목록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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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3

세상엔 좋거나 더 좋은 일만 있다

삶에는 괴로운 일도 즐거운 일도 없다. 다만 '중립적인 어떤 일'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자비) '정신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지혜) 왔다가 갈 뿐이다. 지혜와 자비의 목적으로 우리 삶 위에 등장하는 중립적인 경험이 있을 뿐이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이 두 가지, 지혜와 자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그러니 모든 일은 고맙고도 감사한 일이며, 좋거나 나쁜 일이 아닌, 크게 보면 모두 좋은 일들 뿐이다. 결국 우리 삶에는 '좋은 일' 혹은 '더 좋은 일'만이 일어난다. 즐거운 일은 '좋은 일'이고, 괴로운 일은 그것을 통해 업장을 소멸하고, 지혜를 깨닫게 되기에 '더 좋은 일'이다. 그러니, 좋고 나쁜 모든 삶의 파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것 외에..

무정물도 존중해야 하는 이유 - 생물과 무생물 구분은 없다

현대 과학에서는 유정물과 무정물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곤 한다. 유정물, 다시 말해 생명체는 DNA라는 복제 가능한 유전물질 지니고 있어 생식활동을 통해 자손을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무정물, 무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 광우병의 원인체를 규명하면서 밝혀진 프리온(prion)이라는 원인물질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단백질에 불과하지만 생물체내에서 증식하고 전파되어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비로소 생명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 유정물과 무정물이란 경계가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유정, 무정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분류이자 분별이었을 뿐이지, 본래 그렇게 나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도는 닦을 것이 없다 물들지만 말라

마조도일 스님은 “도는 어떻게 닦는 것인가”를 묻는 한 스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도는 닦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닦아서 이룰 수 있는 도라면 그것은 다시 무너지기 마련이니 이것은 성문의 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닦지 않는다면 그는 그냥 범부일 뿐이다.” 도를 닦는다 함은 수행을 말합니다. 아마도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목숨 걸고 수행해야 하고, 수행만이 살 길이라는 말도 듣곤 했습니다. 3,000배며, 1만배 절 수행을 하거나, 몇 시간이고 앉아서 좌선을 이어가거나, 금강경 7독씩 매일 독송을 하고, 대비주를 100독 이상 독송하는 등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오던 수행은 이처럼 끊임없이 혹독한 수행을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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