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가을입니다.
언젠가 가을 단풍을 하염 없이 바라보다 바라보다
성에 차지 않아 문득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었는데요,
그 때 적어 놓았던 지리산 여행기를 함께 나눕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어느 인디언은 살다가 기가 달리면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꼭 껴안으면서
나무의 기운을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끌어안고 있으면 난 포근함을 느낀다.
어릴 적 어머님 품에서나 느껴보았음직한 그런 포근함을
이 울울창창한 산속 한 그루 외로운 나무 곁에서 느끼는 것이다.
나무를 안아 본 사람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리라.
내가 나무를 안고 있을 때
나무는 아마도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들 것이다.
[식물의 정신세계]에서는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리며,
떡갈나무는 나무꾼이 다가가면 부들부들 떨고,
홍당무는 토끼가 나타나면 사색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끌어안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나 자연에게 있어서나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한 일인가.
내가 산에 안기고 산은 또 내게 안기고
그랬을 때 우린 비로소 서로 서로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숭고한 귀의(歸依)의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한 발 한 발 가을을 향해 걷고 있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아래쪽에는 푸르른 나무들이 울창하더니
얼마를 걷다보니 색색의 단풍들이 흐드러지고,
저기 노고단 위쪽엔 벌써 낙엽을 밟아야 할 만큼 늦가을이 와 있겠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서리에 얼음도 얼겠지.
한발 한발 늦가을 아니 초겨울로 또 한 발 걸음을 옮기자..."
가을 단풍과 함께하는 지리산 종주 산행기 전문 사진과 함께 읽기
http://moktaksori.net/568
"아. 지리산이란!
한발 한발 걸을수록 그 아름다움에 목이 메여온다.
첫째날부터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고
가슴 탁 트이는 지리산의 당당한 우뚝 섬을 바라보고는
설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지리산이란 녀석은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그 아름다움과 웅대함이란 점차적으로 끝도 없는 최고조를 향해 내달린다...
이렇게 촛대봉 돼지바위 위에 홀로 앉아
이 아름다운 자연과 내 속 뜰의 본래 향기가
내 생각이나 판단, 기억, 이미지, 과거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순간,
우리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어떤 과거의 기억을 애써 불러들여 비교하지 않아도 좋고,
어찌 어찌한 아름다움이라고 멋들어진 수식어를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이 느낌을 그대로 느끼고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자연 속에 혼자 살면
내 안에 맑은 샘이 흐를 것 같다.
그저 혼자있음, 그 하나 만으로도,
우리 안의 영혼은 맑고 향기롭게 빛을 놓아줄 것이다.
다만 혼자있음의 외로움에 발버둥치며
이리 저리 휩쓸리지만 말고 다만 지켜볼 수 있기만 하다면...
별빛을,
저 산이며, 사소한 풀들,
그 속의 풀벌레 소리,
가을 낙옆 떨어지는 소리,
이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되는 선택받은 사람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행복들 중에 으뜸은
‘나’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이다.
돈, 명예, 권력, 지위, 학벌, 지식, 이성 등
뭐 이런 것들에서 오는 ‘나의 행복’들이 아니라,
별, 하늘, 달, 나무, 산, 풀벌레, 낙엽...
뭐 이런 항상 있어왔고,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충만하게 있는,
없어질 수도 없고, 애써 만들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또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또 살 필요도 없는,
이런 데서 오는 ‘우리 모두의 행복’이야말로 참행복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말 행복한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고,
아주 사사롭고 척박한 가짜 행복에만 다들 목을 메고 사니 말이다.
이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세상에 몇 안되는 선택받은 사람들일 것 같다.
그 선택은 누가 하는가.
바로 내가 하는 것."
<법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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