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행자를 위한 경책, 신 자경문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13:30), 부산 목탁소리 토요법회(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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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생활수행자를 위한 경책, 신 자경문

목탁 소리 2014. 5.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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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고려의 야운스님께서는
자신의 수행의 길을 돌이켜 관찰해 보면서
‘스스로를 경책하는 글(자경문)’을 지어 읽고 독송함으로써
자신의 수행의 길이 올곧고 온전한 진리의 길이 될 수 있기를 서원하셨습니다.

야운스님의 자경문은 언제 살펴 보더라도
모든 수행자들에게 귀감이 되며,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전달해 주는
아주 좋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야운스님의 자경문을
오늘의 우리들, 생활 속에서 심출가한 생활수행자들을 위한 경책으로 바꾸어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적인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법우님들의 생활 속에서의 수행 정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며
스스로를 경책 할 일입니다.

[생활 수행자들을 위한 경책, 신 자경문(自警文)]


00아!(자기 자신을 부름) 주인공아! 나의 말을 들어라.
인류 역사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도를 얻었건만
너는 어찌하여 아직도 괴로움 속에서 헤매고 있는가?

너는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이번 생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멀리하고
세상의 요란한 일과 욕심과 번뇌에 휘둘린 채 타락하여
무명의 어리석음에 떨어져 항상 여러 가지 악업을 지어 온 결과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삼악도의 괴로운 수레바퀴에 떨어졌으며,
복과 지혜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육도윤회라는 업의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이 몸이라는 것은
눈귀코혀몸뜻이 그 대상인 빛과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 등에 집착한 까닭에
언제나 삼악도에 떨어지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마음 또한 진리를 등진 까닭에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부처님 태어나기 이전이거나 이후이니 얼마나 억울한가.

이번 생에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었다고는 하나
부처님도 이미 가신 뒤고,
진리도 빛을 보지 못하는 말세이니 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도대체 이는 누구의 허물이란 말인가.

그러나 슬퍼말라.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그동안 네가 지은 죄업을 능히 참회하고 반성하였으며,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깨달음과 진리의 길을 걷고자
심출가(心出家) 수행자가 되어 오묘한 불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용이 물을 만난 듯 하고 호랑이가 산에 의지한 듯하기에
그 오묘하고 뛰어난 이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예전과 지금이 있으나 진리의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은 어리석음이나 지혜로움이 있으나 진리의 도에는 번성함과 쇠락함이 없으니
비록 부처님의 시대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이지만,
설령 지금과 같은 부처님 떠나신 말세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어찌 깨닫지 못함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진단하여 그에 알맞은 좋은 약을 처방하지만
그 약을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한 나는 선한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이지만
그 진리를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 길잡이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도 이롭게 하며, 남도 이롭게 하는 이 진리의 법은
내가 있든 있지 않든 언제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설령 내가 오래 머물러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바르게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끊이지 않아 모두가 법대로 진리를 실천한다면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항상 머물러 언제까지고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만약 이와 같은 이치를 안다면
단지 스스로 도를 닦지 않고 수행하지 않음을 한탄할지언정
어찌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하며, 부처를 탓하면서 근심만 더해가겠는가.

간절하게 바라노니
너는 모름지기 굳세고도 힘 있는 정진의 원력을 세워
가슴을 활짝 열어젖혀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어떤 인연에도 얽매여 집착하지 말 것이며
삿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진실로 삶과 죽음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여 해탈키 위해
마땅히 수행 정진 해 나감에 있어
결단코 스스로를 가벼이 여겨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요즘 같은 말세의 어지러운 세상을 살펴보건대
부처님이 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온갖 수행을 방해하는 마장이 강성해지고 욕망의 대상들이 많아졌으며
부처님의 진리는 점점 더 미약해져
많은 사람들이 간사하고도 거만하며
남을 돕는 자는 드물고 해치려는 자는 많으며,
지혜로운 자는 드물고 어리석은 자는 많으며,
스스로 도를 닦지 않음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도 닦는 길을 방해하고 괴롭히니
무릇 도에 장애가 되는 것을 언급하자면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대가 수행의 길을 잘못 들까 염려되어
내가 비록 작은 견해이지만 열 가지 수행의 길을 마련하여
너를 경책하고자 하니, 모름지기 굳게 믿고 지녀 하나라도 어기지 말도록 하라.
부디 이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 어기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이다.

송(頌)하여 이르기를:


어리석은 마음에 배우지 않으면 교만심만 더해 가고,
어리석은 견해에 수행마저 없으면 잘못된 자만심만 자라난다.
속은 텅 비었으면서 교만심만 높으면 마치 굶주린 호랑이 같고,
게을러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같다.

삿된 말과 마군의 말은 흔쾌히 받아 들이고,
성인의 가르침과 현인의 글귀는 기어코 듣지 않으니,
진리의 길에 인연이 없다면 그 누가 너를 제도할 수 있겠는가.
길을 걷다가도 더러운 구덩이에 빠져 괴로움이 몸을 얽어 맬 것이다.



1.
그 첫 번째 수행자의 길을 말하노니,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밭 갈고 씨 뿌리는 것으로부터 내가 먹고 입기에 이르기까지
비단 소와 농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도 막중할뿐더러
벌레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이 한량이 없는 줄 알아야 한다.
저들의 힘을 수고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 일이거늘
하물며 다른 생명을 해하고 죽여서 내가 먹고 입는다면 이 어찌 수행자의 길이겠는가.
농사 짓는 농부에게도 굶주림과 추운 괴로움이 있으며,
베 짜는 아낙도 좋은 옷을 입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가 주리고 춥다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겠는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그 은혜가 무거워 도에는 손해되는 것이다.
헤어진 옷과 소박한 음식은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티내지 않으면서 복덕을 쌓는 것이다.
이번 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의 은혜도 갚지 못하거늘
하물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이겠는가.

송(頌)하여 이르기를:

풀 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소나무 껍질과 풀 옷으로 이 몸을 가리며,
들녘의 학과 푸른 하늘의 구름으로 벗을 삼아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서 남은 세월을 보내리라.



2.
그 두 번째 수행자의 길을 말하노니,
“자신의 재물은 아끼지 말고 남의 물건은 탐내지 말라.”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을 받는 것은
탐욕의 악업이 가장 크며, 실천수행도인 육바라밀 가운데는 보시가 으뜸이다.
내 것만을 아끼고 탐내는 마음은 능히 선한 길을 가로막고
자비로운 보시는 악한 길을 막아준다.
만일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면 비록 궁핍하더라도 인색하지 말라.
처음 이 세상에 올 때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갈 때도 빈 손으로 갈 뿐이다.
내 재물에도 집착해서는 안 될진대 어찌 남의 것을 마음에 두겠는가.
설사 내가 소유한 것이 만 가지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가 되면 어느 하나 가져 가지 못하고 오직 내가 지은 업만을 가져 갈 뿐이다.
3일 동안만이라도 마음을 닦는 것은 천 년의 보배가 되지만,
백 년 동안 탐내어 모은 물건은 하루 아침에 티끌이 된다.

송(頌)하여 이르기를:

삼악도의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생 동안 익혀온 탐냄과 애욕의 탓이다.
수행자라면 마땅히 최소한의 의식주로써도 삶이 만족하거늘,
어찌하여 쌓고 축적함으로써 어리석음만 기를 것인가.



3.
세 번째 수행자의 길은,
“말은 적게하고 행동을 가볍게 하지 말라.”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아 선정(禪定)을 이루기 쉽고,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물러나 지혜가 밝아 올 것이다.
깨달음의 모양은 말을 떠나 있고 진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입은 화(禍)의 문이니 반드시 엄하게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기 쉽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에 맞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6년을 설산에 앉아 움직이지 아니했고
달마스님은 소림굴에서 9년을 말이 없이 지냈다.
후세에 참선하는 이가 어찌 이 일을 본받지 않으려는가.

송(頌)하여 가로되,

몸과 마음 선정에 들어 움직이지 않고,
수행처에 홀로 앉아 왕래를 끊으라.
고요하고 고요하여 마음에 아무런 할 일이 없으면,
내 마음 부처를 보고 귀의 하리라.



4.
네 번째 수행자의 길은,
“좋은 벗을 친하고 나쁜 벗을 멀리 하라.”


새가 쉴 때는 숲을 가려 앉듯,
사람도 배우려면 스승을 잘 선택하여야 한다.
좋은 숲을 찾으면 편히 쉴 수 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수행력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좋은 벗은 부모처럼 섬기고 나쁜 벗은 원수처럼 멀리해야 한다.
학은 까마귀를 벗하지 않는다.
붕새(鵬)가 어찌 뱁새를 짝하겠는가.
소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칡은 천 길이라도 올라가지만
잔디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석자를 면할 수 없다.
착하고 지혜로운 마음이 없는 소인들은 그때마다 멀리하고
뜻이 높은 사람들은 항상 가까이 친하라.

송(頌)하여 가로되,

가고 오고 어느 때나 좋은 벗을 사귀면,
몸과 마음 잘 다스려 번뇌의 가시덤불 벗어나리라.
번뇌의 가시덤불 벗어나 앞 길이 툭 트이면,
바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진리의 빛을 볼 것이다.



5.
다섯째 수행자의 길은,
“게으르지 말고, 오래도록 잠자지 말라.”


끝없는 오랜 세월을 두고 수도를 방해하는 것은 잠 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루 종일 흐리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앉거나 눕거나 가거나 오거나 한결같이 자세히 마음을 살펴보라.
한평생 헛되이 보내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이다.
세상은 무상하여 찰나로 변화하니 나날이 놀랍고도 두려우며
사람의 목숨은 잠깐이라 한 순간도 보증할 수 없다.
만약 진리의 빛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겠는가.

송(頌)하여 가로되,

게을러 잠만 자면 마음에 구름 끼고 마음 빛 흐려져
도 닦는 사람이 가야할 바를 모르고 헤맨다.
날이 선 지혜의 칼 빼어들면,
구름은 흩어지고 마음 달 밝으리라.



6.
여섯째 수행자의 길은,
“나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덕을 닦고 얻는 데는 겸양이 근본이고
벗을 친하고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이 된다.
아상(我相)과 아집이 높아지면 삼악도의 바다가 깊어진다.
아상이 높은 이는 겉으로 보기에 존귀한 듯 하지만
그 내면은 텅 비어 썩은 배와 같다.
지위가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상(相)을 더욱 낮게 하라.
아상과 아집이 무너지는 곳에 무위(無爲)의 깨달음이 드러난다.
마음이 겸손하면 온갖 복이 스스로 들어온다.

송(頌)하여 가로되,

교만한 티끌 속에 지혜 묻히고,
아상이 높아지면 무명 번뇌 자라난다.
저 잘난 줄 알아 배우고 닦지 않으면
늙어진 뒤에 병들어 신음하며 한탄만 한다.



7.
일곱째 수행자의 길은,
“재물과 여색을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음욕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여 재물과 색을 엄금하시되
“여인을 보거든 독사와 호랑이처럼 여기고
금은보화 몸에 닿거든 나무나 돌을 대하는 것 같이 하라” 하신 것이다.
비록 어두운 방에 홀로 있더라도 큰 손님이 와 있는 듯이 하고
남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한결같이 해서 안과 밖을 달리하지 말라.
마음이 깨끗하면 선신이 수호하고 음행을 생각하면 천신들이 용납치 않는다.
선신이 보호하면 험한 곳에 있어도 편안하고
천신들이 용서하지 아니하면 비록 편안한 곳에 있어도 불안하게 된다.

송(頌)하여 가로되,

이익과 애욕은 염라대왕이 지옥으로 인도하고,
청정(淸淨)은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모셔간다.
쇠고랑 차고 지옥가면 고통이 천 가지나 되고,
배를 타고 극락세계에 나면 기쁨이 만 가지나 된다.



8.
여덟째 수행자의 길은,
“세상의 일에 집착하지 말고 수행자의 길을 걸으라.”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애착과 욕심을 끊어 버린 이를 수행자라 한다.
세상의 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심출가(心出家)라 한다.
참된 출가수행은 머리 깎고 승복 입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 있더라도 마음속에서 애욕과 집착을 끊고 바르게 정진하는데 있다.
몸은 세상에 있더라도 이미 마음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면
무엇 때문에 세상일에 집착하며, 세상 사람들과 사귀고 놀기만 하겠는가.
세상의 일에 집착하고 연연해하면 어찌 수행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깨달음을 향한 정진과 발심이 없다.
인정이 짙고 사람과의 사귐만 즐겨하면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 멀어지니
때로는 냉정히 정을 버리고 홀로 수행자의 길을 가야 한다.
심출가의 본래 의미를 잃지 않으려면 명산 명찰로 들어가 마음을 깊이 관하라.
수행자의 정신으로 사사로운 정을 끊고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무심하면 저절로 도가 높아 질 것이다.

송(頌)하여 가로되,

인정 많아 사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비록 작은 선이기는 하나 그건 모두가 윤회 생사의 씨앗일 뿐.
솔바람 칡넝쿨 달빛 아래서
티끌 없고 흠집 없는 최상승의 선(禪)을 닦으라.



9.
아홉째 수행자의 길은,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칭찬이나 비방하는 말을 듣더라도 마음에 묶어두지 말라.
잘한 일 없이 칭찬받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요,
허물이 있어 비방을 받았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다.
비난을 기뻐하면 잘못을 고치게 되고, 칭찬을 부끄러워하면 도 닦는데 경책이 될 것이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마침내 그 허물이 내게로 돌아온다.
남을 해치는 말을 들으면 부모를 헐뜯는 말과 같이 생각하라.
오늘 아침에 남의 허물을 말하면 내일은 다시 내 허물로써 돌아온다.
모든 일이 다 허망한 것인데 비방과 칭찬에 어찌 걱정하고 기뻐할 것인가.

송(頌)하여 가로되,

하루 종일 남의 잘못 시비하다가
밤이 되면 흐리멍텅 잠에 빠지니
이 같은 수행자는 빚만 늘어서
삼계의 윤회고를 벗어나기 더욱 어렵다.



10.
열 번째 수행자의 길은,
“대중과 함께 살면서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라.”


출가의 근본 정신은 온 세상을 평등하게 보는 데 있다.
만일 가깝고 먼 것이 있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것이니
비록 수행자라고 하나 무슨 덕이 있겠는가.
마음에 사랑하고 미워하며,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어찌 이 몸에 괴롭고 즐거운 성쇠가 있으랴.
평등한 성품에는 나와 남이 없고 큰 거울에는 멀고 가까운 것 없다.
삼악도에 드는 것은 좋고 싫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육도윤회에서 돌고 도는 것은 가깝고 멀다고 느끼는 인연의 업으로 이루어진다.
마음이 평등하면 가지고 버릴 것이 없으니
가지고 버릴 것이 없다면 생사가 어디 있겠는가.

송(頌)하여 가로되,

위 없는 보리도를 얻고자 하면,
언제나 마음을 평등히 가지라.
만일 사랑하고 미워하는 차별이 있으면
도는 더욱 멀어지고 업만 깊으리라.



주인공아!
그대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눈 먼 거북이 나무토막을 만난 것처럼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한 평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겠느냐.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불법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
금생에 놓쳐 버리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만나기 힘들다.

이 열 가지 수행자의 법을 지키고 부지런히 닦아
물러나지 말고 속히 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라.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 혼자만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끝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도록 생사에 오락가락 할 때
번번히 부모를 의지했을 것이니,
그 끝없는 세월에 부모 되었던 이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면 육도 중생이 그대의 부모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중생들이 모두 악도에 떨어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밤낮으로 받고 있으니
그대가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가슴을 오리는 듯 애닯고 슬픈 일이 아닌가.

천만번 바라노니 그대는 어서 큰 지혜를 밝히고 신통변화를 갖추어
자유자재한 방편으로 거친 파도에 지혜의 배가 되어
탐욕의 기슭에서 헤매는 미혹의 중생을 제도하라.

그대는 아는가. 삼세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우리와 같은 범부였다는 사실을.
그도 장부요 나도 장부이니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옛 사람의 말에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한다” 하였으며, 또
“내가 착한 마음을 내면 착한 것이 스스로 따라 온다” 하였으니 진실로 옳은 말이다.

만일 믿는 마음만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가 자신을 깨쳐 부처를 이루지 못하겠는가.
이제 삼보(三寶)를 모시고 낱낱이 그대에게 경계하였으니
만일 잘못인줄 알면서 일부러 범한다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송(頌)하여 가로되,

달이 뜨고 짐은 늙음을 재촉하고
해가 뜨고 짐은 세월을 재촉한다.
명예 이익 구하는 것은 아침 이슬 같고,
괴롭거나 즐거운 것 저녁 연기와 같다.

너에게 이렇게 도 닦기를 권하노니,
속히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건지어라.
이 생에 나의 이 말을 쫓지 아니하면
반드시 후세에 한이 되고 후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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