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수행으로 바꾸고자 하는 초심 수행자들이 종종 '기도'에 얽매이는 경우를 봅니다. 삶을 되돌아 보며 이따금 명상을 해 보고도 싶고 절에 가서 기도에 동참해 보고도 싶으며, 때로는 수련회에 참여해 자신을 찾고자 노력도 해 봅니다. 그러나 일과 수행 일상과 수행자의 삶이란 언제나 마음 먹은대로 되어지지만은 않는 법입니다. 놀고 흥청이던 이전의 오랜 습(習)들이 고요해지고자 하는 수행심을 방해하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집에서 기도를 하고자 합니다. 108배도 해 보고, 금강경도 독경해 보고, 아침 저녁으로 예불이며 참선도 해 보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굳게 마음먹었던 108배며, 금강경 독경이 첫 날 마음 같지 않고 절에서의 마음 같지 않게 왜 그리 길게 느껴지고 힘겹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매번 그런 식입니다. 기도하겠다 하고는 몇 일 못 가서, 아니 하루도 못 하고 주저앉기 일수입니다. 108배에 또 금강경 독경에 목숨 걸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불, 법, 승 삼보님 전에 나를 낮추고 귀의하는 그 맑고 향기로운 지극함이면 충분합니다. 업식(業識)이 이겨내지도 못하는 108배며, 그 긴 금강경을 독경하려 하니 어렵습니다. 하루 한 번이라도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전을 하루 한 두 구절씩 읽고 명상하는 것이며, 반야심경을 아침 저녁으로 독경하는 것, 아침 저녁 108배 대신 3배, 혹은 7배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108배가 어려우면 지극한 마음으로 천천히 단 5분간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절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정좌 하고 앉아 108번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심도 좋을 듯 합니다. 108염주나 작은 단주를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관세음보살' 염불하시는 것도 참 좋은 일상 기도입니다. 하루 단 10분, 아니 5분만 시간 낼 수 있어도 됩니다. 하루도 거스르지 않고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3.7일간 108배를 혹은 100일간 금강경 1독씩을 원 세워놓고 몇 일 못가서 그만 두는 것 보다 몇 배 이상 좋은 기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근기(根器)에 맞는 스스로의 기도방법을 찾으시면 됩니다. 처음엔 그리 시작해야 합니다. 어렵지 않게 기도를 집에서나 일상에서 편히 할 수 있는 그런 포근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할 뿐, 기도에 집착이 되어선 안됩니다. 기도가 되려 걸림의 대상이 되어선 안됩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지켜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생활 기도를 원 세워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바쁜 날이라도, 일상에 찌든 날이라도, 설령 휴가철이라도 쉽게 마음내어 지킬 수 있는 작은 기도를 말입니다. 그것은 기간을 정해두고 그 날만 기도하면 된다는, 또 절에 갈 때만 마음 곱게 먹고 기도하면 된다는 그런 어리석은 마음을 일깨우는 큰 정진력, 생활 수행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이렇게 쉽고 자신에 맞는 기도를 하더라도 이것만이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한 순간 크게 마음을 내어 발심(發心) 할 인연이 된다면 육신의 집착과 게으름, 즉 몸뚱이 착심을 큰 발심으로 이겨 낼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 때는 3일이고, 7일이고, 3.7일, 혹은 100일, 1000일씩 크게 신심내어 업식과의 한 판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 때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자신과의 여여한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도도 근기에 맞아야 합니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 맞아야 합니다. 무조건 힘든 것, 육신을 괴롭히는 것만이 좋은 기도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집착않기 위해 너무 편한 기도만을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그 양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바로 부처님 당시 '고행주의'와 '쾌락주의'의 단면인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하였던 듯 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결론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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