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 좀 느끼고 사시는지요? 푸르른 하늘과 울울창창한 숲, 그 사이로 비치는 짠한 햇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전 이런 계절에는 늘 여행을 떠나 길을 걷고 싶어집니다. 발로는 흙 위를 거닐면서, 두 눈에는 초록의 향기를 담고, 귓전에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코로는 이 우주 자연의 내음을 맡아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걷다 걷다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위에 서면, 두 팔 벌려 온 몸에 힘을 빼고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느껴봅니다. 저는 이런 순간에 나의 깊은 존재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어떤 한 여행자는 말하더군요. 홀로 오랜 시간 여행을 떠나 있어 보니 고독지옥이 따로 없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 순간, 고독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 저홀로 외로운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거룩하게 빛나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우린 누구나 때때로 외로움과 진하게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무 것도 할 것 없이 홀로 나뒹굴어져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지요. 요즘 사람들은 홀로 존재하는 외로운 순간을 만나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진 듯 합니다. 외로울 틈이 없지요.
잠시 홀로 존재하려는 시간이 찾아오기 무섭게, 잠시 사유의 시간을 가질 틈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기 바쁘거든요. 그 폰 속에는 우리를 들뜨게 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그리고 중독케하며, 외로움을 채워 줄 것 같은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로움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고요한 순수고독의 순간을 느껴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흡사 신이며 벗이고 애인이자 모든 것이었던 스마트폰을 빼앗긴 채 갑자기 군에 입대를 하게 되는 인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입대한 많은 장병들은 초기에 적응하는데 몸살을 앓곤 합니다. 전혀 다른 세상이 시작되는 거죠.
스마트폰 속에 있던, 나를 안심시켜 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빈 자리에 낯선 환경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오는 겁니다. 물론 더불어 괴로움 또한 함께 오지요. 이 두 가지 외로움과 괴로움이 엄습해 오면서 잠시 방황하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이 즈음에서 제가 여러분께 삶의 진실 하나를 알려드리지요. 우리의 삶을 깨어나게 하고, 지혜와 사랑을 깨닫도록 만들어주는 삶의 원대한 프로젝트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삶은 우리를 일깨워주기 위해, 인생 곳곳에 매우 도움이 되는 이로운 시나리오와 장치들을 배치시켜 두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두 가지 이로운 점이라고 하여 숫자 2를 앞에 써서 ‘2로움’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우리 삶을 일깨워주기 위한 이로운 장치는 바로 외로움과 괴로움입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을 합쳐 2로움인 거죠.
이 2로움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더욱 성숙해지고,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외로움과 괴로움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깨달음의 장치이며, 배움의 장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죠. 잠시 홀로 존재하는데서 오는 외로움이 깃들기도 무섭게 바로 거부해 버립니다. 괴로움이 올 때 빠져나가려고 안달을 하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그동안 습관적으로 외로움을 외면하고, 괴로움을 거부해 왔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바로 그런 외로움과 괴로움을 거부하던 습관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반짝 반짝 빛나고 톡톡 튀는 놀라운 삶의 반전들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지금처럼 이렇게 밍숭맹숭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인생은 원래 그런거야’ 라고 단념하듯 말하기 좋아하지만, 사실 우리 삶은 가슴 뛰는 열정과 흥미롭고도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그 고독과 고통이라는 2로움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외로움과 괴로움, 고독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반전 시나리오를 회피하지 말고 일어나도록 허용해 주고, 충분히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예, 외로움도 괴로움도 사실은 그 안에 깨달음과 성장이라는 장엄한 반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찾아오는 홀로 존재하는 외로움의 순간을 외면하지 말고 한번 충분히 느껴보십시오. 외로움과 오래도록 친구가 되어 보는 것이지요. 그건 곧 내가 나 자신과 비로소 깊이 만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내면 깊은 곳에서 무한한 지혜와 연민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한줄기 빛의 도반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듯 외부로만 관심을 기울이며 겉돌던 삶이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근원으로부터의 중심 에너지가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외로움이야말로 나를 가장 나답게 해 주는, 내 근원에서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독자적인 힘과 지혜를 일깨워주는 일종의 신호이자 메시지였던 겁니다. 외로움을 충분히 경험해줄수록 우리는 더욱 더 내가 무엇을 원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내면의 진리를 찾게 됩니다. 홀로 존재하는 외로운 경험 속에 비로소 자기다움을 찾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깨달아 가는 것이지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요, 괴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영화는 곧 우리의 삶의 스토리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영화에 괴로움의 장치가 없을 수 없듯이,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경 극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영화의 주요 스토리이죠. 바로 우리 삶도 그와 같이 괴로움과 역경을 통해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을 참고 인내하는 세계라고 하여 인토라고 하셨는데요, 고통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내입니다.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해 주는 거에요. 그저 무작정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괴로움을 거부하지 말고 직면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그 고통 속의 의미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그 고통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가장해서 나에게 지혜를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 삶의 장치였던 겁니다. 그 모든 괴로움이라고 느끼던 것들은 사실 괴로움이 아니라, 내가 괴로움이라고 판단하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사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허망한 것이지요. 말 그대로 인연 따라 잠시 나타난 것일 뿐, 실체가 없는 공한 것입니다.
괴로움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게 되면, 괴로움이 나를 집어삼키게 됩니다. 괴로움 앞에 나는 꼼짝 못하는 힘없는 존재가 되고 말아요. 그러나 내가 삶의 주도권을 괴로움에게로 넘겨주지 않고, 나 자신에게로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은 그 어떤 괴로움보다도 더 큰 존재이거든요. 언제나 괴로움은 독자적으로는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합니다. 내가 괴로움에게 힘을 부여하는 순간부터, 주도권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 녀석은 기세등등하게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지요.
바로 그 때 괴로움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두려워서 회피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괴로움이 왔을 때 두려워하고 거부하게 된다면, 그건 두려움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마는 겁니다. 오히려 ‘그래 내가 졌다. 나는 괴롭다. 두렵다. 하지만 그런 두렵고 괴로운 나 자신을 허용하고 사랑한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쿨하게 인정할 때, 괴로움을 날 찾아 온 손님처럼 받아들일 때 그들은 힘을 잃고 맙니다. 어차피 괴로움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나를 이길 수는 없거든요. 여러분은 그것들보다 훨씬 더 큰 존재라고 했던 제 말을 믿으세요. 얼마나 쉽습니까. 거부할 때는 괴로움이 힘을 얻지만, 수용할 때는 힘을 잃고 백기를 들고 항복한단 말입니다. 항복하면서 고통은 자기가 왜 우리 앞에 오게 되었는지를 고백하고, 괴로움의 이유를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고통의 목적은 뭐였을까요? 예 맞습니다. 알고 봤더니, 고통 또한 내가 그리 미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더욱이 적도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고통을 가장하여 나타난 나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한 우주법계의 배려였던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 지혜를 깨닫고, 자비를 깨닫는 것이지요. 말 그대로 아무도 패자가 되지 않는 모두가 함께 승리하는 대단원의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외로움과 괴로움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밀쳐내려고 했던 외로움과 괴로움이라는 두 말썽꾸러기 녀석들이 사실은 우리 내면 깊은 곳의 지혜였고, 자비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외로움과 괴로움은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들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바로 이 우주법계와 우리라는 존재 근원의 본래 모습입니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그 누구도 괴롭히지 않으며, 언제나 사랑하고, 무한히 돌보며, 우리를 깨닫게 하는 이 우주의 인생 메커니즘인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한한 자유함을 느꼈습니다. 무한한 자비와 사랑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언제나 완성되어 있었으며, 우리를 돕고 있었고, 우리는 언제나 안심해도 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외로움처럼 보이는 것들, 괴로움처럼 보이는 것들이 잠시 우리의 인생 위를 할퀴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그것이 할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품어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삶을 믿으세요. 인생을 깊이 신뢰해도 좋습니다. 고통처럼 보이거나, 고독처럼 보이는 것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향해 감사한 마음으로 미소를 보내주세요. 고통스런 표정의 탈을 둘러쓰고 고통이라는 연극을 하고 있는 조연배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탈 안에서는 자비롭게 웃고 있거나, 우리가 이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응원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하던 시기는 학교의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과 같고, 고통이나 고독이 찾아오는 시기는 잠시 쉬는 타임을 끝내고 이제부터는 고(苦)를 통해 배우는 엑티브한 수업시간이 시작되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 보다 좀 힘들더라도 수업에 매진할 때 다소 힘들기는 해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도 평안할 때보다 고통과 고독의 시기에 더 많이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두 가지 ‘2로움’을 놓치지 마세요. 2로움이 올 때 거부하지 말고 미소를 보내며 받아들여 주세요. 외로움과 괴로움이라는 우리 인생의 아주 멋진 시나리오를 통해 삶을 깨달아 가시기 바랍니다.
장병여러분, 군 생활이야말로 바로 이 ‘2로움’이 극대화되는, 고통과 고독이라는 수업시간이 시작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군대에서처럼 외롭고 괴로운 때가 우리 인생에서 어디 흔하게 찾아오겠어요? 어쩌면 인생이라는 수업 시간 중에 가장 박진감 넘치고 진짜 같은 흥미진진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크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진정 용기 있는 자라면 이런 기회를 날려버려선 안 되겠죠? 삶에서 외로움과 괴로움이 찾아오는 이로움의 순간들을 이제부터는 두 팔 벌려 껴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외로움과 깊이 친해지는 연습을 하세요. 괴로움을 피해 달아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그 외로움과 괴로움이라는 겉모습에 속지 말고, 그 속 내면의 지혜와 자비를, 2로움을 통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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