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수행자에게 갖추어진
네 가지 덕이 있다.
첫째,
모든 존재의 본성이 공(空)함을 알면서도,
업과 업의 과보는 분명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둘째,
중생이 무아(無我)인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킨다.
셋째,
마음은 진리를 구하고 열반으로 향해 있지만
윤회의 이 세상에서 수행을 닦는다.
넷째,
중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지만
그 과보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것이 참된 수행자의 덕이다.
[보적경]
참된 수행자는
존재의 본성이 공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거나,
인과응보도 다 필요 없다거나,
좋은 업을 지을 필요도 없고
과보도 다 공하다거나 하면서
악취공에 빠져들지 않는다.
공을 공부한 수행자들이
때때로 '모든 게 다 허무하다'면서
불교를 공부하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거나,
열정이 사라진다거나,
혹은 인과응보도 다 공한 것이니
아무리 잘못해도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공에 치우친 공병 환자가 되어 버리기 쉽다.
공을 바르게 이해하면,
온전히 마음을 모아 전념으로써 매 순간을 대하게 되고,
이타적 서원을 가지고 삶에서 순수한 열정을 꽃피우게 되며,
인과응보를 분명히 이해하기에
행위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책임감 있는 행위를 하게 된다.
제 멋대로 행동함을 자유로움으로 오인하고,
막행막식을 걸림없음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또 어떤 수행자는
중생이 무아라고 하니
실체적 자아가 없는데 도울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분명히 무아를 이해하는 수행자는
무아이기에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한 꽃송이 임을 보아
내 몸을 돌보듯 이타적인 자비심을 일으킨다.
무아란
나와 너를 나눌 것이 없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무아의 실천은 곧
동체대비에서 나오는 무한한 사랑이다.
진리를 구하는 자는
마음은 열반을 향해 있지만
몸은 윤회의 세계에서 수행한다.
이 윤회의 세계야말로
열반을 꽃피울 수 있는 최적의 처소임을 알고,
매 순간의 현실이야말로
완전한 열반의 드러남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완전한 열반을 꿈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윤회 세계 그대로가
매 순간의 열반 자리임을 깨달으라.
수행자는 중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베풀지만
스스로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와 상대가 둘이 아닌 이치에서는
상대방에게 준 것이
사실은 곧 나 자신에게 준 것이기에
내게 풍요로움과 부유함의 과보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상대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늘리려는 마음은
이기심, 아집, 결핍, 가난의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자가 지녀야 할
치우침 없는 중도의 마음가짐이다.
수행자는
공함을 알지만
그러한 가운데 공화로써 피어나는
삶이라는 아름다운 만발한 꽃들을 존중하며,
무아임을 알지만
무아 속 중생들의 거룩한 참됨을 깨달아
무한한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사랑하고,
열반을 알면서도
윤회 속에서 열반의 즐거움을 깨달아가며,
무한한 나눔과 베풂과 자비를 실천하지만
그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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