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되고 싶거나,
삶에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익숙하게 배워왔던 인과업보의 가르침에서도
무언가 결과인 과보를 받고자한다면
원인이 되는 씨앗을 잘 뿌려야 한다고 말한다.
꾸준히 과보가 될 업을 잘 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떤 업을 지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인과업보의 가르침은
매우 초보적이고도 당연한 세상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화엄의 오시교판설에 의하면
인과업보를 설하고 있는 아함부의 가르침은
중생들이 부처님의 핵심 사상을 알아듣기에는
너무 무지하여
초보적인 가르침인 아함을 먼저 설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아함의 인과업보설은 흡사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예수의 황금률의 법칙과 닮아 있지만
그것은 매우 초보적인 가르침일 뿐이다.
인과나 업보는 모두
원인이 되는 씨앗인 행위 즉 업이 있고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그 업이 무르익은 뒤에
필연적인 과보인 결과의 열매가 있음을 의미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장애물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시간'은 필수 불가결한 당위일까?
많은 경전들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순간 속에 영원을 포함하고 있다거나,
지금 여기라는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까지도 다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환상이며 신기루에 불과하다.
시간은 없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일 뿐,
본래 시간이란 없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인과응보라는 것 또한
원인과 결과, 업행과 과보 사이에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는
업과 보 사이에 시간이 필요하지만
깨닫고 보면
업과 보, 원인과 결과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시간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듯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속에 사실은 모든 것이 있다.
원인도 결과도, 과거도 미래도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큰스님들은
업을 지으면 과보를 즉각 받는다는
이야기가 이러한 무시간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깨달은 도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은 본래 진리가 그런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싶거나,
어떤 것을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을 때,
과거의 방식대로, 무지의 방식대로
인과업보와 시간의 방식에 얽매여
원인이나 잘 지으면 언젠가 이룰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것을 이루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그 사람에게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진다.
그러나 꼭 그럴 이유는 없다.
직선적인 시간의 굴레에
자신을 애써 속박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하나다.
업과 과보 사이에 반드시 시간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오랜 방식대로 그것을 이룰만한 원인을 지을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에 그것을 이룰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시간적 절차를 뛰어넘어
곧장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열심히 선업을 쌓으면
우주법계는 적절한 시간적 때가 되었을 때
그에 걸맞는 과보를 보내준다고 믿어왔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곧바로 창조하는
이 방식을 취했을 때는 반대의 작용이 일어난다.
내가 먼저 즉각적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면
우주법계는 그 원인을 뒤이어 제공해 준다.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이다.
나의 행위에 따라
우주법계가 결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과를 만들고
우주법계는 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계의 주인이 되어 사는
걸림없는 대장부 주인공의 삶의 방식이다.
좀더 쉽게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으며,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다.
행복해지려는 전통적 방식은
먼저 원인을 열심히 지어야 했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자식 낳고 키우며
노후자금으로 쓸 돈도 두둑해야 한다.
물론 때때로 나눔도 실천해야 한다.
모든 원인을 지어놓고 나면
인과응보에 따라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는,
행복의 씨앗을 뿌려둔 뒤에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당장에 먼저 행복해지는 것이다.
먼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법계에서는 결과적으로
행복해져 있는 당신을 위해
그 결과인 행복의 원인들을 만들어 내 준다.
더 행복할 일들, 더 행복한 이유들을 만들어 내 줌으로써
당신의 행복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시간은 무의미해질 수 있지만
인과업보라는 원칙은 지켜져야하기 때문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결과를 만들면 우주는 원인을 제공해주고
내가 원인을 만들면 우주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부자가 되려는 무수한 노력,
이를테면 미친듯이 돈 벌고,
경제 기사를 스크렙하고,
주식 동향을 살피고,
아파트 값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안 쓰고 저축하는 등등의
원인을 만드는 방식에만 올인하지 말고,
먼저 결과를 만들어 내 보라.
먼저 충분히 부와 풍요를 느끼고 만끽해 보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결핍감은 사라지고 풍요를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돈 때문에 아웅다웅하며 쩔쩔매지는 않을 것이며,
필요한 이웃에게 어려움없이 나누어 줄 수도 있고,
충분히 그 풍요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가난과 결핍에서 오던 많은 행동양식은
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쌓기만 하고, 축적하기만 하면서도
계속 '더 더'를 외치던 마음이 사라지고
비로소 누리고 만족하게 될 것이다.
결과로써 먼저 풍요로와 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감사해하며 만족한다는 것이다.
1만원 짜리 옷을 입으면서도
충분히 그 옷을 입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만족할지언정
10만원 짜리 옷을 마음 속에서 갈구하거나
다른 사람의 값비싼 옷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풍요의 방식이다.
먼저 결과로써 풍요로워지라.
그러면 그 원인은 우주법계에서 제공해준다.
먼저 마음 속에 풍요가 자리잡고 있어야
외부적인 부가 따라 붙는 것이다.
마음이 결핍되어 있으면
딱 그 결핍된 마음 만큼의 물질과 돈만 생길 뿐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거나 얻고 싶다면
먼저 이미 그것이 되거나 얻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를 삶 속에 먼저 가져와라.
이미 그것이 되었다면, 얻었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주저하지말고 먼저 그 삶을 살아보라.
이미 얻은 것처럼, 되어 있는 것처럼 마음을 써 보라.
먼저 행복해지고
먼저 풍요로와지며
먼저 자비와 사랑을 나누어 보라.
내가 결과적으로 먼저 되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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