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걸까요? 수행한다고 하면서 그 외의 일들에 무심해지고 주위 인연들에 소홀해졌습니다. 이 공부는 어쩔수 없이 주위와 멀어지면서 홀로 가는 것인가요?
이 마음을 관찰하는 공부는 바로 내 삶을 관찰하는 공부이고, 매 순간 순간의 삶에서 충실해 지는 것입니다.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이고 공부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생생하게 깨어있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공부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공부가 아닙니다. 내 바로 앞에 나타난 사람과 말 한 마디며,(정어) 행동 하나 하나를 할 때며,(정업) 또 생각을 하나 일으킬 때 조차(정사유) 온전히 깨어있는 것이 불교 공부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수행법인 팔정도에 정념, 정정진, 정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행덕목은 뒤쪽에 있고, 그 앞에 먼저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이 와 있는 것입니다. 삶을 바로 보아야 하고, 바르게 생각을 관해야 하고, 타인과의 대화 중에 말을 관하며, 행동을 관하고, 자신의 직업과 생계라는 생활을 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과,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가르침이지요.
불교는 매 순간 순간의 삶에서 분명히 깨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세상과의 관계를 조화롭고도 평화롭게 가꾸어가는 길입니다. 자비희사의 덕목이나, 보시, 애어, 이행, 동사라는 사섭법과 사무량심의 덕목을 보더라도 얼마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수행법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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