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죄의식을 투영하지 말라.
죄의식이라는 실체가 있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마음 속에서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죄의식을 투영하기 때문에
죄의식은 힘을 얻는 것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
우리가 죄의식을 느껴야 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근원은 무한한 자비와 사랑일 뿐이니.
그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을 완전히 내려놓으라.
죄의식과 두려움을 내려 놓으려면
나 자신과 타인 모두를,
그 어떤 죄에 대해서도 완전히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죄 지은 것에 대해서 용서하는 것은 작은 용서다.
우리 내면의
아상, 에고, 판단, 생각, 두려움,
죄의식, 질투, 미움, 화, 어리석음, 슬픔, 등
전부를 대상으로 탓하지 말고,
온전하고도 끊임없는 용서를 해 주라.
용서를 해 줄 외부의 그 어떤 존재도 없다.
부처님께 용서를 빈다고?
전혀 부처님께 용서를 빌 필요는 없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선고한 적이 없기에
용서해 줄 것도 없다.
달리 표현한다면,
진리의 법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완전히 용서를 이미 마친 상태로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 죄를 부여해
죄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마음을 완전히 용서해 주고 내려 놓으라.
그리고 나서 타인들을 향한
일체 모든 미운 마음과 탁한 흔적들,
그들의 잘잘못 일체를 완전히 용서해 주라.
상대방을 용서할 때
사실은 나 자신이 용서를 받게 된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할 때
사실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의 이익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
타인을 위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완전히 용서해 줄 때
비로소 나 자신은 완전히 용서받으며,
완전히 사랑받고,
완전하고도 온전한 텅 빈 천사적인 존재가 된다.
큰 의미에서의 용서란
이처럼 자기를 비우고, 사랑을 베푸는
지혜와 자비의 온전한 실천의 의미를 가진다.
자기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게 될 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나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용서해 주었는지를 살펴보라.
용서한 크기만큼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깨달음이 곧장 오게 될 것이다.
언제나 용서한다면 곧 용서받을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완전히 용서할 때,
우주법계로부터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수행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완전한 용서를 실천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마음공부 생활수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구하는 행복, 만끽하는 행복 (0) | 2011.06.15 |
---|---|
불확실한 미래, 그래서 아름답다 (0) | 2011.06.15 |
법상스님의 미투 (0) | 2011.06.08 |
자동차에도 마음이 있다?! (0) | 2011.06.07 |
법상스님의 미투 (0) | 2011.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