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것은 곧 용서받는 것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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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용서하는 것은 곧 용서받는 것

목탁 소리 2011. 6. 10. 14:06



자기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죄의식을 투영하지 말라.

 

죄의식이라는 실체가 있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마음 속에서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죄의식을 투영하기 때문에

죄의식은 힘을 얻는 것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

우리가 죄의식을 느껴야 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근원은 무한한 자비와 사랑일 뿐이니.

 

그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을 완전히 내려놓으라.

죄의식과 두려움을 내려 놓으려면

나 자신과 타인 모두를,

그 어떤 죄에 대해서도 완전히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죄 지은 것에 대해서 용서하는 것은 작은 용서다.

우리 내면의

아상, 에고, 판단, 생각, 두려움,

죄의식, 질투, 미움, 화, 어리석음, 슬픔, 등

전부를 대상으로 탓하지 말고,

온전하고도 끊임없는 용서를 해 주라.

 

용서를 해 줄 외부의 그 어떤 존재도 없다.

부처님께 용서를 빈다고?

전혀 부처님께 용서를 빌 필요는 없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선고한 적이 없기에

용서해 줄 것도 없다.

달리 표현한다면,

진리의 법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완전히 용서를 이미 마친 상태로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 죄를 부여해

죄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마음을 완전히 용서해 주고 내려 놓으라.

 

그리고 나서 타인들을 향한

일체 모든 미운 마음과 탁한 흔적들,

그들의 잘잘못 일체를 완전히 용서해 주라.

 

상대방을 용서할 때

사실은 나 자신이 용서를 받게 된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할 때

사실은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의 이익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다.

타인을 위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완전히 용서해 줄 때

비로소 나 자신은 완전히 용서받으며,

완전히 사랑받고,

완전하고도 온전한 텅 빈 천사적인 존재가 된다.

 

큰 의미에서의 용서란

이처럼 자기를 비우고, 사랑을 베푸는

지혜와 자비의 온전한 실천의 의미를 가진다.

 

자기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지게 될 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나 자신과 타인을 얼마나 용서해 주었는지를 살펴보라.

용서한 크기만큼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깨달음이 곧장 오게 될 것이다.

 

언제나 용서한다면 곧 용서받을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완전히 용서할 때,

우주법계로부터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수행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완전한 용서를 실천하고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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