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나절,
하늘은 화창하고,
푸르름은 너무도 높고,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은 아름답고,
바다색은 너무도 짙고,
고개 들어 산을 바라보면 희끗희끗 눈덮인 산맥이 성스럽고,
그 청명한 하늘 위로 자유로이 갈매기 떼들이 떼지어 날고 있습니다.
아, 이 곳에서의 삶은
하루 하루가 여행이며 만행이고,
모든 걸음 걸음이 히말라야이며,
매 순간 순간이 휴가이자 휴식입니다.
시선 가는 곳마다
영적이고
고요하며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아니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빈 공간이 꽉 차게 느껴집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내가 발 딛고 살아가고 있구나!
매일 매일 흙냄새 맡으며 걷고
바닷바람과 포구를 거닐으며
저 고요한 산맥을 벗삼아 살고 있구나!
휴가나 여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쉼, 설렘, 떠남, 평안 등의
일상적이지 않은 아주 특별한 상황을 의미하는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휴가나 여행은
어떤 몸이 떠나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잠시의 멈춤으로써
휴가와 여행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걷고
길 위의 모든 존재에 눈빛을 보내며
따뜻한 사랑을 보내며
묵연히 걷기만 할 때
이 모든 존재와 하나됨을 경험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솟아오른 눈덮인 설악의 산맥을 보고 있자면
그 순간 바쁘고 정신 없던 일들은 사라지고
나는 지금 어느덧
히말라야 깊은 산 위를 걷게 됩니다.
아무리 해야 할 일로 번거롭다 할지라도
잠시 호흡에 마음을 모으고
맑고 시린 공기를 깊숙이까지 품어안았다가
내보내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나는 어느덧
2,500년 전 붓다의 영산회상 한 켠에 앉아있는
그 성스러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있곤 합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이 곳은 익숙한 일터이거나
생존경쟁의 장이 아닌
호젓한 여행자가 머무는
인도의 시골마을 고즈넉한 게스트하우스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휴식으로, 쉼으로,
여행으로, 휴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니 본래 우리의 삶이
그렇듯
고요하고 신선한
쉼이었고, 여행이었으며, 휴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합니다.
그것은 전혀 힘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려 길 가에 앙상하게 피어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책을 보다가도, 신문을 읽다가도
잠시 보고 읽는 것을 멈추고
호흡의 들고 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행여 TV에 정신이 팔려 있었더라도
잠깐 TV를 끄고
그저 텅빈 빈 벽을 주시하며
내면의 아주 작고 여린 움직임을 관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중에,
하루 일과 중에,
익숙하던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잠깐 잠깐
단 10초라도 좋습니다.
몸으로 말로 생각으로 행하고 있던,
바로 그 모든 행위를
잠시 비우고, 멈추고,
아주 낯선 시선으로
전혀 텅 빈 시선으로
속 뜰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로 그 ‘멈춤’의 순간
위대한 신의 사랑과 축복이 깃들고,
붓다와 모든 성인의 깨어있음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하게 됩니다.
애써 한 시간, 두 시간 이상을
억지로 시간을 내서,
바쁜 가운데 짬을 내서,
절이나 선방에 찾아 가서
가부좌 트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선을, 명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것을 참선이나 명상이라고
애써 이름짓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그저 텅 빈 순수 그 자체이고,
깨어남이며,
모든 선각자들의 방법이었으며,
붓다의 방식입니다.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휴가가 되고,
잠깐 숲으로 난 길을 걸을 때
그 순간이 곧 여행이 되고,
잠깐 생각을 멈추고 호흡을 지켜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명상이 되며,
잠깐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순간
그 때가 바로 깨어남이 되고,
잠깐 내 앞의, 옆의 동료며 가족들을
편견 없이 마음을 비우고 낯설고 새롭게 바라볼 때
그 때가 바로 사랑이 되고,
이렇게 잠깐 잠깐 일상에서 멈추고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 이 자리가 완전한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명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닙니다.
수행은 근기가 높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너무 멀리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구도의 길을 간다는 것에 너무 거창한 환상을 덧칠하지 마십시오.
본래 수행, 명상이라는 것이
그렇듯 피나게 노력하고 애쓴 끝에
소수의 사람만이 경쟁에서 승리해 쟁취해 내는
그런 논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그간의 편견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고서는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 편견을 놓으십시오.
백일 기도, 천일 정진, 동안거, 선방, 철야정진...
이 모든 거대한 편견들이 수행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 또한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어려운 길만이 가장 옳은 길이거나,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자주 자주 멈춤과 바라봄의 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쉽습니다.
아주 쉽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질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여기’라는 곳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야말로
완전하고도 충만하고 꽉 찬
더 이상 얻어야 할 또 다른 힘을 필요치 않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본래 있던
힘과 지혜와 사랑을
없다고 착각하고 살다가
아주 작은 ‘멈춤’과 ‘봄’을 통해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