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 배낭여행의 황당한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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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델리 배낭여행의 황당한 첫 날

목탁 소리 2010. 1. 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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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오후 6시

인천공항

 

출국수속을 마치고

인천공항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인도행 비행기 탑승 게이트에 앉아

깊은 감회에 빠진다.

 

 

 

 

아,

드디어 떠나는구나.

 

저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오고 가는 비행기들과

비행기 너머로

붉게 떨어지고 있는 노을도

내 마음을 아는지

뜨겁게 그러나 엄숙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다.

 

 

28일 오후 늦게 출발하여

현지 시각으로 같은 날 밤 11시 50분에 델리 도착.

 

많은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나 여행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 본 자료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주로 밤 늦게 인도 델리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 밖이 많이 위험하니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라고 하는

간곡한 권고가 천편일률적으로 나와 있다.

 

나 또한 그 권유를 따르기로 하고

공항 안의 의자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눕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만 여기 이렇게 자리를 깔고 누웠지

그 많던 여행객들이 모두들 썰물 빠지듯 공항 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가만 보았더니 대부분의 배낭여행객들이

첫 날 밤에 도착하다보니

미리 픽업서비스를 요청하였거나,

미리 숙소를 마련해 두어 숙소의 차량이 나와서

데리고 가던 것.

 

초보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성경과도 같은

가이드북의 고구정녕한 말씀에 따르지 않고

저들은 어디에서 저런 방법을 익혀 온 건가

하는 상념에 빠지다가

침낭 속의 다소 불편한 온기에 의지해

어느덧 잠에 든다.

 

첫 여행지에서의 하룻밤이라 그런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달랑 얇은 침낭 하나 펴고 잠을 자서 그런 건지

밤새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공항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공항을 빠져나간다.

 

별 생각 없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공항 문을 박차고 나가다가

두 발자국 걷자마자

자동 반사적으로 뒤돌아 공항 안으로 휙 들어온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뭐라고 뭐라고 말다툼을 벌이며

나를 놓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통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되돌아 들어왔다가

숨 호흡을 크게 한 번 한다.

 

모두들 자기 택시를 타라고,

손님을 끄는 호객행위인 셈이다.

 

다시 나가려다가

언뜻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정액제 프리페이드 택시가 생각나

미리 돈을 주고 프리페이드 택시 바우쳐를 받아서

바우쳐에 적혀 있는 택시번호를 찾아 간다.

 

한바탕 쫒아오는 호객 택시기사들에게

바우쳐를 치켜들었더니

이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를 하고,

바우쳐 번호의 택시에 배낭을 싣고

일단 ISBT 라고 하는 카슈미르게이트, 즉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델리에서 며칠 머물 계획이 아니라

오늘 중에 시외버스를 타고

맥그로드 간즈라는 달라이라마가 머물고 계신 곳으로

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이드북 하나 달랑 들고 왔고,

대충 어디 어디를 가겠다고 생각만 하고 온 터라

가이드북에 써 있는데로

카슈미르 게이트에 가서 맥간가는 버스를 탈 요량이었다.

 

그런데 카슈미르 게이트를 몇 바퀴 빙빙 돌며

버스표를 끊으려고 아무리 묻고 찾고 해도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표를 살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일단 시외버스표는 포기하고

오고 가는 여행자에게 다른 방법도 묻고,

델리라도 조금 더 보자 싶어

올드델리 시내를 배회하며 걷는다. 

 

 

 

 

오전 한나절을 올드델리와 찬드니촉, 붉은성 주변을 걸으며

인도, 인도, 인도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대번에 감지한다.

 

델리 첫 날!

이토록 긴 하루가 있었던가.

완전히 낯선 세계, 낯선 곳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정처없이 떨어져 한 나절을 보낸다.

 

아, 인도, 이것이 인도구나.

하루 사이 인도 델리는

내게 그 속살들을 거침없이

심지어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동시에 너무도 많은 것을 내보여 주는 듯 하다.

 

인도를 오래도록

그것도 몇 번씩이나 여행했거나,

혹은 인도에서 삶을 사는 사람이 들으면

콧방귀를 뀔 소리이겠지만,

내게는 그만큼 단 하루의 마주침이

특별하고도 매우 진하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나절을 정처없이 걷는데

인도인들은 잠시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택시나 릭샤를 타라고 행선지를 묻는 사람,

'코리아!'를 연발하며 그저 호기심으로 불러보는 사람,

그저 곁에 따라와 연실 웃으며 이것 저것 묻는 사람,

물건을 팔려고 계속해서 쫒아오는 사람,

묻지도 않았는데 도와줄 것 없느냐며 달려와 말을 거는 사람,

행선지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무작정 내 앞으로 걷는 사람,

어린 아이 젖을 먹이며 구걸하는 사람,

손을 내밀며 한 푼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장애인,

아무 의미 없이 다가와 툭툭 치듯 쫒아오는 사람,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걷는 사람을 걷지 못하게 만들면서까지

계속해서 내게 다가오는지

다 짐작해 낼 수 없을 지경이다.

 


수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오고

하릴 없이 몰려 간다.

 

어디 그 뿐인가.

거리의 버스며, 승용차며, 택시,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

오토바이 등이 경쟁하듯 혹은 싸우듯

귀를 찢는 경적소리를 울리며 귓전으로 질주하며 혼을 빼 놓는다.

 

그런가 하면

올드델리의 찬드니 촉이며

골목 골목까지 자동차와 온갖 탈것들

그리고 가축과 사람들이 합창으로 만들어내는

뿌연 먼지와 분진, 매연들은

눈과 코 그리고 온 몸에 찰싹 찰싹 달라붙듯

본드처럼 와 박힌다.

 

그뿐이 아니다.

오늘 저녁 곧장 맥간으로 떠나려다 보니

어느 숙소에 무거운 배낭을 맡길 수조차 없어

하루 종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업과 욕심의 무게를 감당하며 걷다 보니

온몸에서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쏟아지는 땀줄기를 타고 먼지 먹은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몸을 조금 쉬자 싶어 붉은 성 광장 나무 아래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 앉는다.

쉼.

잠시 쉬어야 겠다는 생각.

 

 

 

 

광장 한 켠에 앉아 있자니

오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성 안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그 와중에도 꼬마 아이들이며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맴돌며

쿡쿡 찔러 본다.

나 참.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인도에서는 처음이라

배는 고픈데,

밥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길가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를 하나 물어 뜯으며 다시 걷는다.

 

 

 

 

켁켁!

목이 메여 온다.

그러고 보니 한 바가지 땀을 흘리면서도

물 한 방울 먹지를 못했다.

어디에서 물을 사야할지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다.

 

마침 길건너에 현대식 빵집이 있고,

유리창 너머로 물과 음료가 진열되어 있어서

그 집으로 들어간다.

먼저 생수를 하나 시켜 단번에 생수 한 통을 먹어치운다.

빵도 하나 시켜서 먹고.

 

잠시 화장실에 가 있는데,

밖에서 한국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참 벌써 환청이 들리는거야!'

밖으로 나갔더니 진짜 한국인 여행자를 처음 만나다니.

 

이들에게 물었더니

누가 공영버스를 타고 가느냐고

여행자들은 모두 여행사의 사설버스를 타고 간다네.

 

그럼 그렇지.

 

오토릭샤를 타고

바로 빠하르간지로 향한다.

 

 

 

 

기차역을 지나

 

 

 

 

빠하르간지의 사설여행사에서

맥그로드 간즈행 버스표를 구입한다.

 

에어컨 나오는 최신식 리무진 버스라며

600루피면 아주 싼 가격이라고 해서 산 뒤,

3시 30분까지 오라는 말을 듣고,

빠하르간지를 돌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

 

이게 웬말인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차.

결국 6시가 되어 출발한 것도 모자라

에어컨은 아예 고장이 났고

버스는 너무 오래된 구닥다리 버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600루피를 주고 버스표를 끊었는데,

다른 여행자들은 대부분 400루피~500루피 정도를 주었다.

그도 사람마다 다르고

어느 여행사에서 끊었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값을 치른 것이다.

첫 새내기 여행자 티를 내가 그렇게 내었었나 보다.

 

400루피를 내고 표를 산 사람도

표를 살 때는 에어컨 나오는 최신 리무진 버스라고

똑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

버스가 2시간 이상 늦게 오고,

최신식 시설을 갖춘 버스도 아니고,

에어컨도 나온다고 했는데 전혀 안 나오고,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 버스 안의 모든 여행자들은

불평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 듯 평화로와 보였다.

 

아무도 그런 것들에 대해 따져 묻지 않는다.

이럴수가!

누구 하나

'왜 에어컨이 나온다고 해 놓고 나오지 않느냐?' 거나

'처음 말 한 것과 다르지 않느냐?'거나,

'왜 이렇게 차가 늦게 온 거냐?' 혹은

'왜 나만 이렇게 버스비를 비싸게 받은거야?'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동요 없이

모두들 평화롭게 버스 안에 앉아 있다.

 

 

 

 

한 한국인 여행자에게

이런 상황이 참 대단하구나 싶다고,

이래서 인도에 오는 것이구나 싶다고,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이구나 싶다고 말했더니,

인도를 먼저 여행한 선배로써

해 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단다.

 

"인도에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외부적인 상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것부터를 배우는 것이

인도의 첫 날이 내게 준 직접적인 교훈이다.

 

모든 것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한국에서 같았으면

모두들 노발대발 난리를 치며,

버스회사가 사기를 쳤다느니

돈을 환불해 달라느니 난리가 났을 상황이지만,

이 외부적인 상황이

인도에서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아니 그게 바로 인도인 것이다.

 

버스는

해가 저무는

노을지는 창밖으로

델리를 떠나보내며

조금씩 어둠 속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떠밀려 가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고장

맥그로드 간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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