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강해 -11강-
사성제와 십이연기(2)
1) 무명(無明)
말 그대로, ‘밝음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것입니다. 지혜가 밝음이라면 밝음이 없는 상태인 어둠은 바로 ‘무지하여 어리석은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연기의 진리를 모르기에 실재하지 않는[無我] 일시적[無常]인 존재에 대해 실재한다고 상을 짓고, 거기에 얽매여 집착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체제법의 일시적인 형체를 ‘나다’, ‘너다’ 라고 집착하여 괴로워하는 상태가 바로 무명입니다. 한 마디로 ‘진리에 대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명은 번뇌를 낳는 근본 원인이며, 이로 인해 갖은 악업을 짓고, 그로 인해 괴로움의 업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행(行)
이상과 같은 근본무명으로 인해, 그것을 연하여 ‘행(行)’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實在化) 하려는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행은, ‘행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업(業)이라고도 합니다. 업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날이 우리가 하는 생각, 말, 행위 하나 하나가 모두 그저 흘러가서 없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형성하는 힘이 되어 나 자신에게 뿐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파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에 업(業) 사상을 결합하여, 삼세양중인과설을 제시하고,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을 전개하였습니다. 업감연기설에 의해서 보면, 무명(無明)과 행(行)은 과거세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즉, 과거에 어리석은 마음[無明]으로 인해 행(行)을 지어, 그 행위, 업력에 의해 이번 생에 윤회를 하여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3) 식(識)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습니다. 식은 인식작용으로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여섯 가지 식(識)이 있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뜻으로 제각각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을 느끼고, 촉감하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경험, 행위(行)로 인해 지금 그 음식을 보면 그 음식에 대한 각종의 인식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즉, 전에 보고[眼], 먹고[舌], 냄새 맡았던[鼻] 행이 아직도 잠재의식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그 음식을 보면 예전에 보았던 것에 대해 인식(眼識)하며, 냄새 맡았던 식[鼻識], 먹어보고 느낀 식[舌識]을 떠올려, 식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부파불교의 업감연기의 해석으로 살펴봅시다. 앞에서 과거세의 무명과 행으로 인해 이번 생에 몸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행위에 의해 개체(個體), 즉 우리의 몸이 형성되면 그곳에 식(識)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식별’, ‘인식’이라고 해석됩니다. 몸이 형성되자 우리는 무의식적인 습(習)으로 그곳에 ‘나다’ 하는 아상(我相)을 짓고, 따라서 ‘나다’ 라는 생각으로 인해 거기에 분별하는 인식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업감연기의 설에서 보면, 인간이 이 생에서 몸을 받자마자 그 업력으로 인하여 인간의 몸에 여섯 가지 기관[六根]이 생기고, 그 기관에서 제각각의 식별[六識]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안, 이, 비, 설, 신, 의식의 여섯 가지 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러한 여섯 가지 식이 성립하기 위해서, 우리 몸에 인식할 수 있는 감각기관과,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의 육근(六根)과,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경(六境)이며, 이것을 표현한 것이 십이연기의 네 번째인 명색[육경]과 다섯 번째의 육입[육근]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식, 명색, 육입은 따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세 항목은 시간적으로 선후 관계가 아닌 동시적인 것입니다.
4) 명색(名色)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명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인식의 대상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합니다. 명색이란 우리의 주관적인 감각기관인 육근의 대상으로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육경 중 정신적인 것이라 함은, 여섯 번째 의식의 대상인 법경(法境)을 말하는 것인데, 의식의 대상인 정신적인 생각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명색을 오온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색은 물질적인 것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이연기에서는, 오히려 오온보다는 육경을 명색으로 정의하는 것이 세 번째 식(識)과 다섯 번째 육입(六入)과 연관지어 설명할 때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육입(六入)
육입은 육처(六處)라고도 하며,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인간의 주관적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앞의 장에서 일체의 구성을 십팔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앞의 식, 명색, 육입은 바로 이 십팔계(十八界)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체의 구성요소인 십팔계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라고 할 것 없이, 인간의 주관인 감관[육근 = 육입]과, 그 감관에 대응하는 대상[육경 = 명색],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만날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식작용[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6) 촉(觸)
육입을 연하여 촉이 있게 되는데, 이 촉(觸)은 ‘접촉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촉은, 여섯 감각 기관인 안이비설신의의 육근과,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육경이 만나는 것이지만, 단순히 육입이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접촉으로 인해 육식이 일어나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식, 명색, 육입이 서로 화합하는 작용을 바로 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성유경』에서는 “근(根), 경(境), 식(識)의 세 가지 요소가 모여서 촉(触)을 만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삼화성촉(三和成觸)이라고 합니다.
7) 수(受)
수는 감수작용(感受作用)으로, 달리 말해 ‘느낌’을 말합니다. 식, 명색, 육입이 서로 만나게[觸] 되면, 그 다음으로 느낌[受]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첫째는, 고수(苦受)라고 하여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느끼는 괴로운 느낌이고, 둘째로, 낙수(樂受)라고 하여 즐거운 느낌을 말하며, 셋째로, 사수(捨受), 혹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라고 하여 괴로움과 즐거움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그저 그런 느낌을 말합니다.
이쯤에서, 부파불교의 삼세양중 업감연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무명과 행이 과거세의 두 가지 원인이 되었음을 말했는데, 그러면, 그 과거세의 두 가지 인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세의 결과로, 식, 명색, 육입, 촉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세에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해 업[行]을 지었고, 그로 인해 현세에 인간의 감각기관이 생기고[六入], 그에 따른 대상이 생기며[名色], 그 두 가지가 만나 인식작용[識]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는 작용을 촉(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네 가지는 현재세의 결과라고 합니다. 이를 시간적으로 따져 본다면, 식(識)이란, 처음으로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는 단계이며, 명색(名色)은 아이가 어머니 태속에 있을 때 심신(心身)이 점차로 발육하기는 해도 아직 오관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와 같은 것이고, 육입(六入)은 심신이 완전해서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가 모두 갖추진 상태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촉(觸)은 어린 아기가 출생한 후 외계에 접촉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생후 두세 살까지는, 육근으로 육경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현생을 살아가며, 죽기 전까지는 항상 식, 명색, 육입, 촉의 작용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위에서의 동시적이란 설명과 함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8) 애(愛)
수(受)를 연하여, 애(愛)가 발생합니다. 애(愛)란, 앞서 수(受)에서의 좋고 싫다는 느낌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 좋은 것을 취하려 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즐거움의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려는 욕심이므로 욕망, 갈애(渴愛)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심 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증오심도 애(愛)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욕심의 욕망, 빛깔의 욕망, 빛깔이 없는 욕망”라고 하여 세 가지의 욕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첫째는, 욕심의 욕망[욕계(欲界)의 욕망]으로,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욕심을 다 충족시키려는 것이고, 둘째로, 빛깔의 욕망[색계(色界)의 욕망]이란 물질을 한없이 갖고 싶고, 이성을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 욕망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취착(取着)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셋째로, 빛깔이 없는 욕망[무색계(無色界)의 욕망]이란 물질도 갖고 싶지 않고, 이성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 중에는, 죽을 때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세 가지 애착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체애(自體愛)라 해서,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로, 경계애(境界愛)라 하여, 사랑하는 사람, 자식, 부모, 재산, 명예 등 내 주위 경계에 대해서 애착을 나타내는 것이며, 셋째로, 당생애(當生愛)라 하여, 다음 생에 좋은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애착심입니다.
9) 취(取)
애(愛)를 연하여 취(取)가 일어나는데, 이는 취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욕망에 의해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취착(取着)’이라고 하여, 취하여 집착하는, 올바르지 못한 집착을 말합니다. 앞의 욕망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심을 말합니다. 즉,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감각 작용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아상(我相)이 극대화되는 것이지요.
취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욕취(欲取)로서, 다섯 가지 욕망, 즉, 재물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과, 색, 성, 향, 미, 촉의 다섯 가지 대상에 대하여 집착하여 갖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로 인해, ‘내 것이다’ 라고 하는 소유욕의 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견취(見取)로, 그릇된 의견, 사상, 학설에 얽매여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쌓여 자기 주장만을 옳다고 내세우고 취하려는 욕망입니다. 이로 인해, ‘내가 옳다’ 라는 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계금취(戒禁取)로,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청정하고 올바른 행위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따르려는 것으로서, 올바른 계율을 범하려고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몸뚱이에 대한 착으로 인해 몸뚱이를 편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아어취(我語取)로, 내 견해, 내 말만 옳다고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총체적인 아상을 이르는 것이지요.
10) 유(有)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습니다. 유(有)라는 말은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되는 것으로, 이 또한 ‘업(業)’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착하여 취하려 하므로 그에 따른 행위, 즉 업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지분에서 나온 행(行)도 업이라고 했으니,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행은 그 원인이 무명으로,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기는 보다 근본적이고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이 유(有)는 애(愛)와 취(取)를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은 태초에 처음 무명으로 인한 한 생각이 일으킨 근본 업(業)이며, 유(有)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편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파불교의 삼세양중 업감연기에서는, 앞의 세 가지 애(愛), 취(取), 유(有)가 현재생의 세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 결과로 미래의 두 가지 결과인 생(生), 노사(老死)를 초래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 살아가면서 애착하고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업(有)을 낳고, 그 업력으로 인해 다음 생(生)을 받게 되며, 자연히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11) 생(生)
유(有)에 연하여 생(生)이 발생하는데, 생은 말 그대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유를 업이라고 했으니 그 업력에 의하여 생(生)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앞에서 고(苦)를 설명할 때 노병사의 근본 원인이 바로 생에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처럼 생이 바로 노병사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12) 노사(老死)
생이 있으므로,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고온(苦蘊)의 집(集)’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인생이 괴로움임을 여실히 보시고, 그 원인을 하나 하나 살펴보신 것입니다. 그 결과 궁극의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無明)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태초에 근본무명으로 인해 한 생각 잘못 일으킨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근본을 끊으려면 밝은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명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모두가 생로병사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이연기의 지분 중에서 괴로움의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애(愛), 취(取), 유(有)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煩惱)’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뇌의 종류는 108 가지나 된다고 하지만, 그 근본원인은 무명에 있는 것임을 올바로 일러주는 교설이 바로 ‘십이연기설’의 교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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