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나라는 이미지, 개념, 아상, 에고가 생겨날 때, 그 때는 늘 과거나 미래를 생각할 때 뿐이다.
과거나 미래에 기대어서만 '나라는 생각'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말에 대답하려면, 내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행적들을 뒤적인 뒤에, 그런 과거의 나를 종합하여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결론을 낸다.
이처럼 '나'라는 상, 아상은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다.
혹은 미래에 어떤 내가 될 것인지를 꿈꾸며 그런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그 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과연 어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존재할 때, 그 때 나는 누구인가?
과거 기억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 어떤 말로도 나를 표현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모든 말들은 전부 다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과거를 다 내려놓고, 참된 진실이 드러나 있는 '지금 여기'라는 이 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
입을 열어 답변하려고 하는 순간, 곧장 과거나 미래가 되고 만다.
모든 언어, 말, 개념, 기억들은 전부 다 과거에서 오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 이 순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지금 이 나는 누구인가?
남자, 여자, 키가 크고 작은, 능력 있고 없는, 명함에 씌여 있는, 내가 이룬 것들 그런 것들이 당장에 떠오르겠지만, 그런 것은 전부 과거의 이미지, 상일 뿐이다.
그런 허상 말고, 지금 여기에서의 실상으로 말해 보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없다.
알 수 없다. 모를 뿐.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어떤 생각으로 나를 정의내리고, 그 허망한 생각을 믿느라 쓸모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가 없으면, 거기에 자유가 있다.
고요가 있고, 평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살라.
거기에 나는 필요치 않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렇게 살 뿐.
인연따라 살면 되지, 거기에 '나'를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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