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무한관점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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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생활수행

세상을 보는 눈, 무한관점

목탁 소리 2009. 7. 2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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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부처님은
시간적으로 한량없는 수명(壽命)과
공간적으로 한량없는 광명(光明)으로
우리 앞에 나투시기에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이름하기도 합니다.

무량수 무량광의 시공(時空)을
무량한 마음으로 무한히 나투시고 계십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억겁(億劫)의 시간, 삼천대천세계의 공간을 나투시며
어리석은 중생교화에 무량심(無量心)으로 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 부처님의 무한한 마음 나툼은
이미 내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네 중생들은
그 무량수 무량광으로 펼쳐진 무한법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무량법계를 무량심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시공의 어느 한 귀퉁이로 좁혀진
유한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그 속에서 괴로움, 답답함, 조급함으로 안달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 확장하면 무한이지만
좁히려 들면 한없이 좁아지는게 우리네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무한(無限)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재껴 봅시다.
시야를 시공으로 무한히 확장시켜 봅시다.

이 무한한 시공에서
우린 참으로 작은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티끌은 티끌이되 그 안에
무한한 우주를 머금고 있는 무량티끌입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를 머금고 있으니...

시야를 무한의 관점으로 확장시키면
왠만한 경계쯤은 너무도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장 큰 경계는
'죽음' 일 것입니다.
무한 시공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존재 나고 죽음 또한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일 뿐입니다.

무한관점에서 보면,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부처님 시야에서 보면
우리들이 목숨걸고 싸우며 투쟁하는
또 괴로워하는 그 크나큰 경계들 또한
한바탕 미소로 웃어 넘길 수 있는 작은 연극일 수 있습니다.
결코 얽매여 괴로워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확장시켜 보지 못하기에
인생의 작은 경계들에 목숨걸고
괴로워하며 집착하여 얽매이고 그럽니다.

직장 상사에게
정말 참기힘든 욕을 얻어 먹었다거나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인연 그 상황은
우리를 참기힘든, 걷잡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내 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세상살이의 작은 일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릴적 그 힘겹고 괴롭던 기억이
이제와 새삼스레 추억이 되기도 하며,
지금와서 넓게 보면
오히려 나를 더 클 수 있도록 성숙시켜 준
감사한 경계일 수도 있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괴로운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지옥을 오가며 극단적으로 자살을 꿈꾸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그 순간
그 상황에만 머물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지금 자살하고 싶은 그 괴로운 마음이
평생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무량관점에서 본다면
한 순간 경계가 만들어낸
환영같은 비실체적 순간괴로움에 불과합니다.

무한관점은
지금의 괴로움을 "괴로운 마음"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무량법계를 이어오는
하나의 "괴로운 인연"으로 볼 수 있는
정견(正見)의 시야를 길러줍니다.

'괴로운 마음'은
나를 얽어매는 고통의 사슬이지만
'괴로운 인연'은
괴로움의 원인을 찾고,
새로운 밝은 인(因)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감사한 수행의 재료일 뿐입니다.

시간적으로
보다 넓고 길게 세상을 바라다 보십시오.
무량수 억겁의 시간 흐름 가운데
바로 지금 일어나는 한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괴로움이 억겁의 찰나임을 아는 순간
얽매이는 마음 놓아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보다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다 보십시오.
멀리, 더욱 더 멀리 떨어질수록
보다 명쾌하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아상(我相)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됩니다.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한 티끌임을 아는 순간
나라고 하는 집착, 아집을 놓아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세상살이 별 것 아닙니다.
수행자에게 세상은
참 즐거운 연극일 뿐입니다.
당사자는 괴로운 역을 하고 있지만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관객들은 여유롭듯
연극은 하더라도
그 역할에 빠지지 말고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처럼...

무한관점은 수행자에게
여여함과 당당함
걸림없는 길을 열어보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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