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에서 승찬대사는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洞然明白)'
이라고 하여,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분별 간택하지만 않으면 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만 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교의 핵심 수행은
관찰, 관조에 있습니다.
'관(觀)'은 '본다'는 뜻인데,
그냥 보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면
'분별 없이 본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볼 때는
늘 생각, 판단, 분별 등이 자동으로 일어나,
좋다거나 싫다거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등의 차별심을 일으키고,
그 분별심은 곧
좋은 것은 간택하여 집착, 애착하고,
싫은 것은 거부하면서 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관 수행을 실천하게 되면,
좋다고 애착하여 더 많이 가지려고 집착하지 않고,
싫다고 거부하여 떨어져 나가려고 애쓰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좋고 싫은 분별심이 많아지면,
자동으로 좋은 것에는 집착과 애착이 따르고,
싫은 것에는 거부감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바로 여기에서 옵니다.
좋은 것을 더 많이 애착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으니 괴롭고,
싫은 것은 거부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으니 괴로운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좋은 쪽으로 좋아서 애착함이 심해지면 '집착'이 생기고,
나쁜 쪽으로 싫어서 싫은 집착이 심해지면 '거부'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은 집착만 집착이 아니라,
거부감도 싫은 것에 대한 집착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그 방향이 다를 뿐이지요.
똑같은 집착이지만,
좋은데 계속 집착해 가지려고 하면 '애착'이 되고,
싫은데 계속 집착해 버리려고 하면 '거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좋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애착과 집착이라는 말을 함께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놓고 보았을 때,
'나'는 어떤 것에 주로 '집착'하고 있는가,
또 어떤 것을 주로 '거부'하고 있는가 하는
하는 '나의 집착 목록'과 '거부 목록'을
먼저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어디에 집착해 있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어떤 것을 거부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스스로 분명히 '집착'하고 있음을,
'거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게 된다면,
놓아버리는 것은 오히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보면 사라진다'는 말처럼,
먼저 분명하게 '보게 되면'
집착과 거부라는 양 극단의 분별심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집착의 목록 찾기인데요,
좋은 쪽으로 집착해서 더 갖고 싶어하는 '애착'의 목록과
나쁜 쪽으로 집착해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부'의 목록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께서는 그 두 가지가 같은 것 아닌가 하고 말씀하시던데요,
좋은 쪽의 집착은 '붙잡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싫은 쪽의 집착은 '거부하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쉽게 저는
좋아서 '붙잡는 방식'을 집착이라고 표현하였고,
싫어서 '거부하는 방식'을 거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싫다는 것에 집착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싫은 것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곧 거부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먼저 '집착' '애착'의 목록이라면
예를들면 '자식에 대한 집착', '진급에 대한 집착', '돈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 '명예나 권력에 대한 집착', '음식물에 대한 집착',
'물건에 대한 집착', '신념에 대한 집착', '종교에 대한 집착'
'옳다는 생각에 대한 집착', '특정 삶의 방식에 대한 집착' 등
다양한 애착, 집착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주로 어떤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 보고 목록을 적어가시기 바랍니다.
먼저 '사람'에 대한 집착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건'에 대한 집착은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신념', '고정관념'에 대한 집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옳다는 생각에 대한 집착, 즉 '절대 포기 못할 옳다는 관념'은 무엇이 있는지,
'특정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집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으로
하나씩 적어 보세요.
그리고 나서, 조금 더 쉽게
자신의 집착 목록을 찾으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내가 죽게 된다면'
혹은 '지금 당장 출가를 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죽지 못할 것 같은지,
'무엇' 때문에 출가를 하지 못할 것 같은지를
한번 스스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절대 안 된다, 자식 내버려 두고 죽을 수 없다,
벌어 놓은 돈 때문에 안 된다,
심지어 처음에는 해야 할 일 때문에,
직장 때문에,
진급은 해 보고 죽어야지,
결혼은 해 보고 죽어야지,
자식 결혼하는 것은 보고 죽어야지 등등
수많은 목록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애착'의 목록, '집착 목록'을 찾은 뒤에는
쉬운 것 부터
내가 과연 이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을까?
하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것입니다.
쉬운 것부터 내려 놓아 본다면
의외로 쉽게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절대' 포기 못 할 것 같은 집착의 목록이 있다면,
'정말 포기 못해?' '내려놓고도 살 수 있잖아?'
'남들은 그것 없이 잘 사는 사람도 충분히 있잖아?'
'꼭 그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어'
하고 스스로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러다보면 그 집착의 목록의 상당수가
지워지면서,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직장, 진급, 생명에 대한 집착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집착이 떨어져 나가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집착의 목록을 찾은 뒤에는
하나 하나의 집착 목록들을 향해
'지금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 만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지금 상태 그대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외쳐 보는 것입니다.
자식이 성적이 좋아지기를 집착해 왔지만
자식 성적이 좋지 않은
지금 현재의 모습 그대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지요.
현재의 나쁜 성적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며,
충분히 감사를 보낼 이유가 됩니다.
'집착'이란
지금 현재의 상태로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붙잡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갈구, 욕망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사랑'은
지금 현재의 상태 그대로에 대해,
즉 더 나아지거나, 더 많아지거나,
더 많이 가지고 붙잡지 않더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에 대해 만족하며
더 나아가 감사하고
순수하게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돈을 더 많이 갈구하여 벌고 싶은 집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나의 월급과 현재의 경제적 조건에 대해
먼저 수용하면서 만족하고 감사하며
월급도 조금 받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태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차를 사고 싶거나 집을 사고 싶어 집착하고 있다면,
차도 없고 집도 없는 자신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완전한 존재이기에
이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면서,
집도 차도 없는 모습 그대로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사해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거부 목록' 찾기 입니다.
거부 목록이란,
쉽게 말해 '내가 싫어하는 것' '싫다고 분별하는 것'
그래서 거부하고 싶은 것,
나에게로 오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의 나쁜 성격, 자식의 낮은 성적,
뚱뚱한 몸매, 아픈 몸, 나쁜 건강, 외모, 지나간 과거의 아픈 기억,
싫어하는 사람, 자신의 컴플렉스 등을 살펴보면
거부 목록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싫어하는 것', '싫어하는 물건',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는 환경'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유형 무형의) 것들'
'틀렸다고 여기는 신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
'컴플렉스'
등을 하나씩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 보면 왠지 싫어지고,
거부감이 느껴지고,
도저히 수용이 안 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거부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 보신 뒤에는,
각각의 목록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고 용서합니다'
라는 진언을 되뇌이며
거부를 수용으로,
싫어하는 마음을 용서로 녹여 보도록 합니다.
혹은 '수용과 용서의 호흡관'을 통해
거부하는 것들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는,
있는 그대로 오고 가도록 허용해 줄 수 있는
활짝 열린 마음을 연습 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께서 여기에서 말하는 '용서'의 의미를
명확히 잘 모르겠다고 하시던데요,
'용서'란 자기 안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거부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이 어두움으로 물들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물들게 만들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꼭 상대방만을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어둡고 탁한
탐진치 삼독심과 증오, 미움, 거부 등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방치시켰던,
그래서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오히려 나를 괴롭히도록 만들어 놓았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즉 '거부'하고 '싫어'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용서해 주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용서'란
자기 내면을 맑게 비우는 정화작업이며,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는 참회의 수행이고,
내면을 고요히 비워내는 명상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란
'참회'와 '죄의식의 소멸', '내면의 부정성의 소멸'
'마음 비움'의 작업인 셈이지요.
'수용'은
거부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고,
싫어서 밀쳐내려고 하고,
도망치려고 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해 주며,
어떤 대상을 거부하는 마음을 지켜보고
'거부하는 마음이 일어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면서
'그래 왔구나!' 하고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용이라는 것을 닦아 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억지로 수용해야지, 받아들여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허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해지겠지요.
화든, 번뇌든, 욕심이든, 미운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일어날 때 일어났구나 '그래 왔구나!' 하고 인정하고 허용해주면서,
'빨리 가라'고 하지 말고,
'왔으니까 있을 만큼 있다가 가고 싶을 때 떠나가렴'
하고 나에게 온 감정과 정서를 허용하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와 같이
'집착 목록'과
'거부 목록'을
적어 보시고,
이 곳 '붓다미션 수행방'에 올려 주시거나,
그 집착 목록과 거부 목록에서
지워나갈 수 있는,
비워나갈 수 있는,
그래서 '수용과 용서'
'감사와 사랑'을 통해
집착에서 자유로와지고,
거부에서 자유로와져 활짝 열린 마음으로 변해가는
그 과정에 대한 수행일지를 적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럼 2차 붓다미션에
많은 법우님들께서 함께 동참하시길 바라면서,
불교아카데미에 동참하지 못하시는
지방의 법우님들, 직장인 법우님들께서도
이 글을 보시고,
함께 붓다미션수행에 동참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또한 선플, 댓글을 통해
서로 서로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도반이 되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불교아카데미 강의 후기 게시판에
매 강의가 끝나고 느낀 점이나,
혹은 강의 내용 중에 생각나는 점,
또는 강의의 개략적인 내용 등에 대해
동참하지 못하신 법우님들을 위해
적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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