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연못]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괴로우신가요? 이미 지나간 잘못되어진 일로 마음고생 하고 있진 않는가요? 앞으로 있을 막중한 일과 스트레스로 인해 답답하진 않으신가요?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면 '일'로 시작하여 '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일' 속에서 행복을 찾고 또한 괴로움을 느끼게도 됩니다. 일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적성에 맞는 일인지, 돈 벌이가 괜찮은 일인지, 일하는 환경이 좋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지, 일이 잘 풀리는지, 할 일이 많은지, 일이 힘든지 재미있는지... 온통 우리의 삶은 일, 일, 일 뿐입니다. 심지어는 노는 것 조차 '노는 일'이 되니 말입니다. 이런 속에서 일이 잘 될 때는 '행복'을 느끼고,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일'의 홍수 속에서 울고 웃고를 연신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듯 일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에서 시작하여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디서 일을 할 것인지, 언제 일을 할 것인지, 왜 일을 할 것인지 하는 것들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수행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하여 한번 돌이켜 보지도 않던 문제 즉 '누가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일을 하다니 당연히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내가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나'가 누구입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일에 괴로움과 즐거움, 시비와 분별, 잘하고 못함 등이 있는 이유는 거기에 '나'가 붙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을 한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일' 이라고 하는 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을 하면 자동적으로 일의 결과에 대한 시비가 생겨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언제 어디에서 왜 일을 하는지에 따라, 또한 누구와 하는지, 좋아서 하는지, 적성에 맞는지... 등등의 인연관계에 따라 숯한 시비와 분별이 생겨나게 됩니다. 밝은 수행자라면 그 어떤 일에도 '나'가 없어야 합니다. 나 없는 내가 함이 없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말은 나를 쑥 빼놓고 일체의 모든 일을 부처님께로 되돌려 놓고 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라는 굳은 믿음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안 된다고 괴로워 할 것도 없고 잘 된다고 행복에 겨워 호들갑 떨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이의를 달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찌 부처님이 일을 한단 말인가.' '기복으로 흐르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여기에서 부처님이란 우리들 내면 속의 본래자리, 참나, 주인공을 말함이며, 일체 법계에 편만하신 비로자나 법신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통이 바로 '내가 한다'는 아상입니다. 내가 한다는 아상이 있게 되면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칭찬받고 싶은 마음, 남보다 못했을 때의 열등감, 보다 잘 했을 때 우월감에서 남을 얕보는 마음, 나 잘났다고 하는 거만함, 못하면 괴로운 마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의 답답한 마음... 등등 수없이 많은 분별심이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너무 큰 일이 터져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이 되면 우왕좌왕 괴롭다 괴롭다를 연발하며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내가 하는 일'이 되기 때문 에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나의 일이란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일체의 모든 일을 함에 '내 일' 이 아닌 '부처님 일'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거짓 나의 일'이 아닌 참나의 본래자리에서 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가는 것입니다. 본래로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마음자리, 본 래자리에서 나온 일입니다. 주인공이라 해도 좋고, 한마음, 불성, 참나, 여래장, 참생명... 이름이야 뭐라해도 좋지만 그 한자리에서 나온 일임은 분명한 일입니 다. 주인도 없고, 내것 네것의 분별도 없고, 그저 텅 비어 있는 그 자리에서 나왔건만 우리들이 내것이라고 분별하고 잡으려 하고 내 일로 붙잡느라 정신이 없다보니 그로 인해 온갖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 니다. 그러니 본래 나온 자리, 그 근원으로 다시 돌이켜 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다'고 하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온갖 시비분별과 갖은 숱한 일들을 만들어 놓았으니 여기에 또다시 내가 하게 되면 도리어 또 다른 업식만 더하는 꼴이 되고 맙 니다. '나'만 쑥 빠지고 없어지면 됩니다. 나만 죽어버리면 됩니다. 더럽혀진 거울을 닦으면 맑고 깨끗한 거울이 저절로 드러나듯, 탐진치에 물든 '나'를 비워버리고 나면 저절로 본래자리 참성품이 밝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부처님 일로 돌려놓고 나면 저절로 부처님 일,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 다. '불교 수행을 한다', '내가 수행자다' 하지 만 정말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은 정작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닌 부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 말입니다. 그렇게 굳게 믿고 온전히 놓는 일 말입니다. 부처님께로 돌이켜 놓고 나면 이제부터 일체의 모든 일은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근심 걱정할 것도 없고, 좋아 날 뛸 것도 없습니다. 잘 되는 것도 부처님 일, 못 되는 것도 부처님 일이니 내가 걱정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의 참생명 주인공은 이렇듯 어디에도 걸 림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 밝은 주인공으로써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중생으로써의 삶을 접고 부처님으로써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 다. '턱 놓고는 진짜 부처님 일로 되어졌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에서 돌이켜 놓았다 하면 이미 그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자꾸 생겨나는 의심이 되려 한생각 돌이킨 부처님 마음을 주저앉게 만듭니 다. 부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바치고 온전히 공양을 올리는 일,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이렇게 쉬운 것이 부처님 법입니다. 억겁동안 중생마음을 닦고 닦아 언젠가 부처 마음 될 날을 기다리자니 얼마나 더디고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이 몸 그대로, 이 마음 그대로 이 자리에서 놓고 나면 그대로 부처님인데 말입니다. 한생각 돌이키면 부처님인데 말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한다'는 아상을 녹이기 위해 나를 비우고 대신에 밝은 참생명 부처님 본래자리로 일체를 던져버리자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부처 되려고 닦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되어있는 부처 생명으로 살아가는 공부입니다. 부처님 되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부처님임을 믿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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