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도 마음은 일이 없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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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산사하루

바빠도 마음은 일이 없게

목탁 소리 2011. 2. 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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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젊은 한 친구가 결국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그 괴로움을 달랠 길이 없어 오래도록 혼자 아파했다. 의외로 그 아픔은 깊고도 길었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언젠가부터 절에 매일 올라와서는 108배도 하고 주말이면 3000배를 하는지 1만배를 하는지 오래도록 절을 하며 흐느꼈다. 그리고 한 두 달 쯤 지난 후 이제 겨우 마음을 잡았노라고 했다. 그래도 혼자 아파할 때보다는 법당에서 부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고 수행하니 마음을 비우기가 훨씬 수월했노라고 했다.
  그 친구를 처음부터 이제까지 계속 지켜보면서 내 마음도 졸였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처음 그 자리 출발선 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랑하기 이전 아무 일 없던 평상심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사는 삶의 모습이, 또 괴로워하며 아파하는 삶의 모든 문제들이 이와 같지 않을까.
  가만 생각해 보라. 본래부터 내 여자, 내 남자가 어디 있는가. 잠시 인연 따라 사랑도 오고 갈 뿐인 것이다. 그런데 ‘내 사랑’으로 만들겠다고 공연히 집착하니 모든 괴로움이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 집착은 누가 만들었는가. 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 애착의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놓고는 헤어지게 되었다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으니 그 원인도 나에게 있고 그 해답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붙잡아 내 것으로 하고자 애착을 내었으니 붙잡은 그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도 나인 것이다. 그걸 어찌 부처님께서 하느님께서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내 스스로 놓아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집착과 애착을 놓아서 다시 편안해 졌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괴로움을 없앤 것인가. 물론 없앤 것이기는 하지만, 본래부터 없던 괴로움을 제 스스로 만들었다가 그 괴로움에 스스로 아파하다가 다시 그 괴로움을 놓아버린 것이 집착이 본래부터 없던 사람이 보기에는 참 공연한 일을 벌인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공연히 제 스스로 집착하고 그로인해 아파하고 다시 그것을 놓아버린 것이니 아무 일 없는 사람에게는, 집착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이 얼마나 번거롭고 복잡한 일을 꾸민 것이 되겠는가. 그래서 옛 말에 수행 잘 하는 사람보다 본래부터 ‘일 없는 사람’ 한도인閑道人이 한 수 위라고 하는 것이다. 『증도가』에서는 무위한도인無爲閑道人은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 일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을 구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옛 말에 ‘평상심이 도’라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다. 마조선사는 평상심을 무조작無造作, 무시비無是非, 무취사無取捨, 무단멸無斷滅, 무범무성無凡無聖이라고 하여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조작이 없는 마음, 옳고 그름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좋고 이익되는 것은 취하고 나쁘고 이익되지 않는 것은 버리는 일이 없는 마음,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단멸하거나 영원하다는 견해를 떠난 마음, 범부라거나 성인이라는 집착이 없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렇듯 여여부동한 평상심만 잘 지키면 괴로울 것도 그렇다고 즐거울 것도 없이 마음은 중도의 평화를 지키게 된다. 그러나 아무 일 없던 평상심에 한 생각 일으켜 집착과 애욕을 일으키면 순간 평상심은 깨어지고 온갖 괴로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러니 구도자의 갈 길은 특별한 무언가를 찾겠다거나, 무언가 좀 더 나은 삶을 좇아 달려가는 것 보다는 도리어 아무 일 없는 평상심을 회복하는 일에 있다. 평상심이 한 번 깨어지고 나니 회복해야 할 일이 생기지, 그저 잘 지키고 있었다면 다시금 마음을 일으켜 회복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평상심이야말로 큰 도道다.
  이처럼 본래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다. 다만 이 세상에 이처럼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는 것은 공연히 스스로 붙잡아 만들어 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스스로 집착을 만들어 내지만 않으면 애초의 처음 그 자리, 적멸의 자리인 것이다.
  부처님이며 수많은 인류의 성인들은 스스로 집착을 만들어 내지 않으시는 분이다. 스스로 ‘나다’하는 아상我相을, 에고를 만들지 않았으며, ‘내 것’이라는 소유의 아집을 일으키지 않았고, ‘내 생각’에 갇혀있지도 않았다. 스스로 집착과 이기, 욕심과 번뇌를 만들지 않았는데 다시 놓을 것이 무엇인가. 다시 놓을 것도 없고, 집착을 버릴 것도 없으며, 아상을 버릴 것도 없고, 다시 내 어리석음을 없앨 것도 없다. 이미 처음부터 텅 비었고, 고요했으며, 열반涅槃의 즐거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공연히 집착을 문제를 만들어 내, 그것으로 인해 아파하고 괴로워하다가, 그것을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하느라 애쓰고, 겨우 겨우 그것을 없애고서는 수행으로 이겨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이 어리석은 일들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애초부터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 본래 아무 일 없던 그 적적한 자리일 뿐이다. 그러니 수행 잘 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다만 아무 일 없도록 하면 된다. 일을 잘 하는 사람보다 본래 일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간 수 십년을 살아오며 마음에 얼마나 많은 짐을 만들어 냈는가. 얼마나 많은 집착과 이기를 만들어 냈는가 가만히 돌이켜 보자. 처음 태어났을 때 순진무구하던 어린 아이, 천진불天眞佛의 마음이 공연한 집착과 번뇌로 인해 얼마나 어두워지고 혼탁해졌는가. 가만히 마음의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자. 다만 비추기만 하되, 공연히 마음에 일을 만들어 내지만 않으면 그 자리가 불성佛性이고 신성神性의 자리이다. 내 마음엔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가. 마음에 일을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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