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 연기법 강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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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 연기법 강의(3)

목탁 소리 2007. 12. 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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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셋째,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은 존재와 상황의 소멸에 대한 공간적인 표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소멸과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의 소멸들은 어떤 한 가지도 우연히 사라지거나, 홀로 독자적으로 소멸하는 법은 없으며 공간적인 연관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다’에서 살펴보았듯이 존재의 생성에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과 관계성이 담겨 있듯이 존재의 소멸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들의 상호연관의 연기법은 적용된다.

앞에서 자동차를 예로 들었는데, 만약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엔진이 고장 나 버렸다면 그 자동차는 더 이상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도 마찬가지고, 타이어휠이 고장 나도 마찬가지며, 미션이나 기어가 고장 나도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하다못해 기름이 없어도 자동차는 무용지물이 되 버리며, 그 자동차를 운전할 사람이 없어도 자동차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처럼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어느 한 요소만 없어지거나 고장이 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소멸에 대한 연기법의 공간적인 표현을 볼 때 엔진이 없으면 자동차도 없고, 타이어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고, 기름이 없으면 자동차가 없고, 운전자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존재의 소멸은 저홀로 독자적인 소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함께 하고 있던 수많은 연기되어진 원인과 조건들이 소멸 될 때 ‘~로 말미암아’소멸되는 것이다.

상황의 소멸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거처하고 있는 절은 규모가 작고 강원도의 산골에 위치 해 있다 보니 처음에는 법회나 기도가 있는 날인데도 신도님들이 한 분도 오시지 않아 법회를 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낙심 아닌 낙심이 되었지만, 이것도 다 인연이구나 하고 마음을 돌리니 오히려 그 시간에 미루었던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인연이 화합하여 모였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쪽에서 응해 주지 않으면 그 법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소멸의 법칙에서 보듯이 신도가 없으면 법회도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일들은 인연화합을 통해 만들어지고 인연화합이 되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이니 이러한 연기의 법칙을 거스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연을 거스르게 되면 거기에는 고통이 따른다. 신도가 없으면 법회가 없다는 연기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투덜투덜 거리면서 마음에 고통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신도가 없어 법회가 없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포교의 방법을 모색하거나 그 시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면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는 소멸의 법칙을 받아들여 새롭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생성의 법칙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의 법칙은 온 우주를 운행하는 근원이 되는 이치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거스르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되지만 받아들이는 순간 평화가 깃들게 되고 또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래서 연기법에서 보았을 때 모든 생성은 곧 소멸을 의미하고, 소멸은 또 다른 새로운 생성을 의미한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닌 한바탕에서 이루어지는 연극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생성을 즐거워하며 집착하고 소멸을 괴로워하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이치를 받아들이면 생과 사도 자유롭고, 성공과 실패에도 그렇게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있고 없음, 소유와 무소유, 부와 가난 등의 분별 속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존재의 발생의 원칙과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원칙은 모두 공간적인 연기의 해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지금 여기에서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며, 서로 서로 의존관계를 이루었을 때만 존재의 의미를 얻을 수 있으며, 어느 한 가지 원인이나 조건이 소멸되면 다른 의존관계를 이루었던 모든 것들도 도미노처럼 차례로 소멸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나아가 이 우주적인 한 공간에서 이 우주, 이 세계, 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일체 모든 존재들은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로써, 서로가 서로의 생성과 소멸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의상관하고, 상호의존하는 결코 따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한생명이며 한몸, 한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불교적 자비사상이 움트는 것이다. 온 우주가 둘이 아닌 한 몸으로 동체이며, 그렇기에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며, 네가 사라질 때 나도 사라지고, 네가 괴로울 때 나 또한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생명공동체로써 하나인 것이다. 나라는 실체가 있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우주이며, 내가 곧 일체 모든 존재와 둘이 아닌 하나로써 그들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더불어 살아가는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을 내 몸처럼 아끼지 않을 것인가. 내 행복이 곧 일체 모든 존재의 행복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면 나를 돌보는 것 처럼 남을 돌보고, 나를 돌보는 것 처럼 자연을 돌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인 것이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넷째,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와 상황의 소멸에 대한 시간적인 표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소멸과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의 소멸들은 어떤 한 가지도 우연히 사라지거나, 홀로 독자적으로 소멸하는 법은 없으며 시간적인 연관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님이 생함으로 내가 생하고, 조상들이 생함으로 내가 생한 것 처럼 나의 탄생은 앞으로 있을 미래의 수많은 내 자손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면 앞으로 있을 자손들 또한 사라지고 만다. 이와 같이 어떤 한 존재의 소멸은 또 다른 존재의 소멸로 이어진다. 여왕벌이나 여왕개미의 소멸은 곧 엄청난 자손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온갖 산업화며 도시화, 기계화, 인구의 도시집중 등을 비롯한 개발과 발전이 자연을 파괴와 그로인한 환경의 오염을 가져왔고, 그러한 환경오염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퍼져 전체 생태계의 파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예전에는 많았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생물종이 아예 사라진 것들도 많다. 생태계에서 어느 한 단계의 생물종이 사라지게 되면 연이어 먹이사슬로 이어지는 다른 종도 함께 사라지고, 또 다시 그 종은 또 다른 종의 소멸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이치가 환경생태에서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년 이내에 지구상 생물종의 1/4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현재 매일 적어도 140종 이상의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고, 1년에 최소한 5만종의 생물종이 멸종되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주로 숲과 열대우림 등의 서식처의 파괴에 있다고 하는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분에 29ha, 즉 축구 경기장 40개에 달하는 면적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생물종이 멸종되어 가고 지구온난화 또한 가속화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물종이 소멸되고 지구온난화가 계속되게 되면 머지않아 우리 인간들 또한 멸종되게 될지 모른다.

실제로 세계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환경오염으로 인해 남성의 정자수가 급감하고 불임이 늘어 인간의 자체능력만으로 임신을 계속할 수 없어 이런 상태로 2017년까지 가면 결국 인간도 멸종에 이르게 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연기법의 시간적인 표현에 입각해 보더라도 자연이 사라지면 생물종이 사라지고, 생물종이 사라지면 곧 인간도 사라진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자연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있다”는 말은 자연과 인간이 동시에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이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사라진다”는 말도 자연이 사라짐과 동시에 인간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연의 모든 존재 하나 하나는 곧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인연관계에 놓여 있다. 연기법에서 보면, 자연의 작은 한 개체가 소멸되거나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곧 머지않아 인간 또한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기적인 상의상관성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한국만 해도 장마 대신 우기 개념을 도입한다고 할 정도로 아열대 기후에 접근하고 있다. 엘리뇨, 라니냐, 지진해일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것을 지켜냈을 때 저것도 지켜진다’라고 볼 수 있다. 나무와 숲과 열대우림이 사라지면 생물종도 사라지고, 생물종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종까지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면 거꾸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무와 숲을 보호하고, 열대우림을 지켜내며, 나부터 나무를 심고, 환경을 보호하며, 개발지상주의적인 모든 발전사업들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친환경적인 발전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개념이다. 될 수 있다면 발전과 개발을 늦추거나 최소한도로 줄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고, 최소한의 자연 파괴와 최대한의 자연 살림을 실천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부유함과 욕망의 충족과 돈 있는 노후를 꿈꾸고자 하는 거대한 욕망의 흐름을 끊고 거슬러 만족하고, 청빈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조화로운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모든 교육, 제도, 정책 등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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