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단풍을 기다리며
지난 한 달 동안 세 번을 올랐지만
지난 주 순례 때 까지는
완연한 오색의 가을 단풍을 보기 힘들었다.

오늘은 공룡능선의 봉우리들 아래로
단풍옷이 곱게 물들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새벽 5시 40분 오색 출발.

손전등을 들고 한 30여 분 오르다보니
날이 밝아온다.
아직은 산 아래라 눈부신 단풍까지는 아니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들에 마음이 설레여 온다.


평일의 이른 새벽이지만
간간이 발길을 재촉하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날이 점차 밝아오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어느덧 달과 별님은 보이지 않고
밝아진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나무가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선연한 풍경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오색 구간은 수해복구 공사가 많이 진척되어
눈에 띄게 나무와 돌계단이 늘었다.

철 계단이 늘어날 때의 풍경이
자연과 조화를 깨는 듯 다소 차가왔다면
그래도 나무와 나무 사이에 흙이나 돌을 끼워 맞춰 만들어 놓은 계단은
나름대로의 운치를 자아내게 한다.

다양한 모양의 나무돌계단이
언뜻 보기에도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모습으로 오르는 내내 계속된다.

대청봉 바로 아래까지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이른 아침부터 나무와 돌을 깨고 맞춰가며
계단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다.

9시 즈음 드디어 대청봉 도착.

대청봉은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속초나 동해바다는 커녕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새벽 일출때부터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사진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계속된다.

중청산장에 내려 와 간단히 준비한 아침을 먹고
발걸음을 떼려는데 저기 희운각 산장 쪽 아래부분이
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잔잔히 보이기 시작한다.
공룡능선이나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소식이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어제 밤 늦게 기상청 예보를 유심히 보았더니
오전 한 때 비가 오다가 오후부터는 갤 것이라고 하여 올랐더니
그래도 예감이 적중한 것일까.

하늘이 열릴 듯 말듯, 구름이 거칠 듯 말듯
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중청봉 아래 봉정암이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가니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풍경...

 
잠깐 사이에 백담계곡과 봉정암 적멸보궁 사리탑,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특 트인 시야에 들어온다.

 

 
한동안 멍 하니 생기로운 마음으로 주저앉아 바라보는데
이제는 따스한 아침햇살까지 내 머리 위로 다가와 앉는다.

 
산과 구름의 향연.
산과 구름이 서로 밀고 당기며
이 설악의 당찬 풍광을 열어재끼고 있다.

 
봉정암 쪽인지, 소청산장 쪽인지
연신 헬기가 무언가를 백담사 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옷맵시로 보아서는 젊은 사람 같은 멋쟁이 할아버님께서
사진기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계시고,
방금 전 희운각 쪽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등산객들도
탄성을 지르며 연신 카메라를 터트리고 있다.

 
나도 이렇게 높은 산까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처음에는 별 관심 없던 카메라가
이제는 여행의 길동무가 되고 있다.
오히려 때때로 사진이 감상보다 우선일 때가 있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작은 장비에 산에 오르는 목적이
전도되지는 않을까 싶은 우려아닌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핑계를 대자면,
어차피 글을 쓰고, 글로써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글을 조금 더 생생하고 살아있게 해 주고,
글보다도 사진에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분들도 계실 정도니
이것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요 방편이겠다 싶기도 하다.

풍경이 아름답다고 언제까지고 바라보기만 할 수 없어
희운각 산장쪽 가파른 길로 발길을 옮긴다.

 

 

 
비로소 천불동 계곡 쪽과 공룡능선이 구름옷을 모두 벗고
그 거대한 풍광을 열어보이고 있다.

 
희운각 산장에 들러
잔치국수를 시켜 먹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하루 일정이라 버너, 코펠 등을 준비해 오지 못한 관계로
산장에서 군것질이나 하고 가자 싶었다가,
마침 잔치국수가 있다는 뜻하지 않았던 메뉴에
이 먼 산에서 해 주는 국수가 맛있기야 하겠냐 싶었는데,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꿀맛이다.

산 위에서 먹는 잔치국수.
국수를 말아 내어주시는 아주머님의 푸근함이
고스란히 국수에 전해지는 듯 하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룡능선으로 향한다.
설악산을 많이 와 보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공룡능선은 한 번도 가 보지를 못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누군가가 공룡능선은 너무 험해 혼자서는 가면 안 된다고 했던
오래 전 말들이 오래도록 귓전에 맴 돈 탓이 크다.

 
그래도 오랫동안 벼르고 벼른 터라
설마 못 내려오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에
이번 만큼은 꼭 공룡능선을 타야겠다고 다짐하고 온 터다.

희운각 산장을 출발해 조금 걷다 보면
왼쪽으로는 마등령, 오른쪽으로는 소공원이란 표지판이 보이는데
왼쪽의 마등령 구간이 곧 설악의 꽃이라는 공룡능선이다.

 
첫 오르막 길을 암벽등산 하듯
새로 만들어 놓은 줄을 타고 오르며
한 2~30분 정도 오르니,
장쾌하게 펼쳐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풍경이
나를 완전하게 압도한다.

 
아! 나는 여지껏 한국 땅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산하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이 가까운 곳에서 이 두 눈으로 확인한 것 같은
뜨거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다.

 


 


빨리 가야 공룡능선을 타고 설악동까지
늦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거란
희운각 산장 아주머님의 말씀도 잊은 채,
한동안 나를 잊고, 길을 가는 것도 잊은 채,
그러고 한동안 이 소름끼치도록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 아름다운 능선을 이 두 발로, 이 온 몸으로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인 것 처럼 느껴졌다.

아~ 나는 오늘 이렇게 설악의 또 다른 진면목을 보고,
이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진한 연모를 느낀다.
이 능선 때문에라도 내 발길이
좀 더 자주 설악의 하늘 아래 서는 일이 많아질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 번 신문기사에서 오늘부터 이번 주말까지가
공룡능선까지 단풍이 내려오는 절정기라고 한 기사가 생각났다.
이번 주말 즈음이면 더욱 진하고 풍성한 단풍이 되겠지만
오히려 초록과 노오란 나뭇잎의 공존이 두 계절의 느낌을 일깨운다.

한참을 앉았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이 강렬한 봉우리 봉우리들을 이 두 발로 걸어
저 멀리 봉우리 너머로 보이는 마등령까지 간다는 사실에
설레임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설악이 없고 공룡능선이 없었다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산이 만들어내는 솜씨가
이 정도일 수 있을거란 것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웅장하고 장대한 풍광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조화로운 솜씨를 그 어떤 예술가며 조각가가 따라갈 수 있단 말인가.

 
걸으며 걸으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감동스럽다.
생각은 언제나 감동을 헤아릴 수 없음이 증명되는 순간.

 
산이 좋아 산에 온 사람들이
이 봉우리 저 봉우리 위에서 행복을 만끽하듯 산을 만끽하고 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만끽하는 것이듯,
산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느끼고 만끽하는 것이다.

햇살이 1275 봉우리와 나한봉을 지날 때 까지
어딘가에서 나타난 짙은 구름 뒤로 숨었다가
마등령 가까이 도착할 때 즈음 다시 나타났다.

 
봉우리 봉우리를 하나 하나 지날 때 마다
신선이 노니는 무릉도원 곳곳을
산책하듯 거니는 선인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마등령을 한 구간 남기고
짠한 햇살이 다시 내리쬐면서
하늘을 꽉 메우고 있던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서로서로 각자의 길로 여행을 떠나려는가.

 
해는 이제 서쪽으로 기울고
부서지는 햇살이 더욱 부드럽고 찬란해졌다.

 
봉우리와 계곡들 사이로
산그림자가 어깨동무를 한다.

 
산빛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부서지며
하늘도 지는 햇살을 아쉬워하듯 눈부시게 푸르다.

 

 
내려가는 길에 조금 어둠이 깔릴지라도
지는 해의 아쉬움이 이 산하에 뿌려내는
곱디고운 빛깔을 놓치기 싫어
이 마지막 봉우리에서 한없이 시간을 보내며 앉아 있다.

 
마음에 비친 산과의 대화,
지는 햇살과의 대화,
그리고 내 안의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성스러운 시간.


아침 산 위에서 일출이 시작되면서부터 두세 시간,
그리고 이렇게 일몰 되기 직전 두세 시간,
사실 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진하게 느끼기 위해 산을 찾곤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루에 완주해도 좋은 구간도
이틀, 삼일씩 산에서 밤을 보내는 계획으로 바꾸는 이유도
아마 그 연유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들이야말로
내 안에 있는 광명의 태양을,
자연의 솜씨를, 야생의 경이로움을,
이 우주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연주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때다.

 
이 시간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이러한 시간의 기쁨을 함께 느낄 좋은 도반,
그 도반은 흡사 오래도록 선방 좌복 위에서 만난 도반의
그것과 뿌리를 같이 할 것이다.

해질 무렵,
하늘과 산과 햇살과 산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이 장엄한 연주를 들어보라.

이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무거운 침묵과 진한 외로움의 향기가
진리처럼 피어오른다.

 
흡사 부처님의 법신을, 하느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종교적인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나는 이 산 봉우리 위에 서서
내 안의 붓다를 내 안의 예수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저 위 파아란 하늘이 더욱 푸른 물감을 풀어내고 있다.
파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다.

 
저 멀리 봉우리 옆으로
속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 내려갈 시간.
햇살이 비친 숲길을 걸어 아래로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녁 햇살을 머금은 단풍잎의 빛깔이 한층 생기롭다.

 

 
햇살을 받은 봉우리들도
이제 검은 옷을 갈아입고 잠이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산 중턱에도 못 미쳤는데
어둠이 깔리고 있다.
마등령에서 아쉬움의 시간과
너무 오랜 데이트를 즐겼는가 보다.

 
그래도 행복하다.
이 어둠 속에서 내 안에 빛을 담고 간다.
설악의 가을이, 공룡능선의 인연이 선사 해 준
반짝 반짝 빛나는 잊혀지지 않을 추억의 빛을...




* 작년 정확히 이맘 때쯤
다녀온 공룡능선 산행기였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하여, 다음주와 그 다음주 쯤,
공룡능선의 단풍은 완전한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한 주 먼저 보시고, 올해는 더욱 아름답다고 하니,
꼭 다녀와 보시라고 조금 미리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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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군 서면 오색리 43-1 |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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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밤새 잠을 설쳤다.
생각지 못했던 추위 때문이다.

팍딩 마을 자체가 계곡 바로 곁에 위치한데다가
높은 산 아래 그늘진 곳이라 그런 것인지,
본래가 안나푸르나에 비해 이곳이 더 추워서 그런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2주쯤 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000고지 이상에서도
그리 큰 추위를 느끼지 못했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추위가 이번 산행의 가장 큰 관건으로 떠올랐다.

2,600고지 밖에 안 되는 이 낮은 곳의 추위가 이 정도면
앞으로 걸어 올라5,000고지 이상에서 며칠을 묵어야 하는 나로서는
달리 다른 고민 할 필요 없이
남체에서라도 겨울 침낭을 빌리는 것 외에는
뽀족한 다른 수가 없어 보인다.

8월말 한국에서 출발하면서 봄여름용 작은 침낭을 하나만 가져 온 데다가
그것 하나만으로도 안나푸르나에 올랐을 때는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기에
여기도 괜찮겠지 하고 카투만두에서 침낭을 안 빌려 왔더니
그 예상이 크게 빗나간 것이다.

팍딩에서 남체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3~4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언 몸, 언 손을 따뜻한 밀크티 한 잔과 가벼운 스프로 녹이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어젯밤을 배회하던 바로 그 거리를 가로질러
팍딩 마을을 뒤로 하며 길을 걷는데,
길 좌우로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의 선연한 기상이 시선을 압도한다.

 



계곡 옆 길을 따라 걷는다.

 



밤새 밖에서 노숙을 했을 야크들도
짐을 잔뜩 등에 인 채 출발 준비에 한창이다.

 


어제와 같이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마을들이,
아니 롯지와 집들이 하나 둘씩 모여 있다.
출렁다리로 계곡을 두 번 건너고
몇몇 마을과 게스트 하우스를 지난다.



새벽빛에 반짝이는 꽃들과 인사를 나눈다.
아직은 낮은 고도라 발아래 작고 소박한 꽃들이 소담히 피어올랐다.

 

 

 

 

 

 

 

한참을 걷자니 돌을 깨 집을 짓는 풍경이 펼쳐진다.
한 쪽에선 힘줄 굵은 사내들이 모여 앉아 거친 돌들을 깨어 다듬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 돌들을 모아 벽채를 세우고 있다.
그 모습이 햇살에 따스히 반사되어 아름답고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모든 일은 성스럽다.
위대한 일과 하찮은 일이란 인간의 잣대일 뿐,
그래서 오히려 위대하고 유명하던 사람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다음생으로 가면
지옥의 동기동창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 나왔다.

위대함과 큰 일 속에서는
더욱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이 개입되기 쉽기 때문이다.
대단한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청난 크기의 욕심과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큰 업에는 큰 과보가 따르는 법.

천상세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으로,
이를테면 먹는 것, 입는 것 같은
어찌보면 작고 유치한 어린이나 할 법한 일들로 다툰다고 한다.

업이 무겁지 않다보니 큰 규모의,
이를테면 사업 확장을 위해 엄청난 돈을 대출받거나,
진급을 위해 타인을 음해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해치거나,
땅을 몇 만평씩 사서 리조트를 짓거나,
산을 깎아 골프장이며 스키장을 짓거나,
어디 어디에 투자가치가 좋은가를 살펴 투기를 하거나,
사업을 국제적으로 키워 가거나,
명성이 온 세계에 드러나거나 하는 등의
무거운 고민거리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업이 가벼운 사람들은 고작해야
기본적인 의식주 같은 사소한 것이 크게 보인다.
그래서 선방의 스님들은 저 스님이 나에게 얼마를 크게 사기쳤다거나 하는
그런 걸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먹는 것 하나로 유치한 투덜거림을 일삼기도 한다.
아주 원초적이고 가벼운 것들이 작지만
그들 단순하고 평범한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옛날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는
꽃밭에서 꽃향기를 맡았다는 이유로 선신(善神)들의 꾸중을 들었다.
아난다가 발끈하여 저 많은 사람들은 꽃을 꺾고 꽃밭을 해집는데도 왜 가만히 놔두면서
나는 향기 맡은 것을 가지고 그리 크게 꾸중을 하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업이 무거운 자들에게는 그 무거운 업에 비해
꽃을 꺾는 정도의 업은 죄 축에도 끼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지만,
업이 가벼운 수행자에게는 그 어떤 탁한 악업의 구름이 없어 투명하고 맑기 때문에
작은 죄업도 크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큰 일 보다는 작은 일,
작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몫이 있는 법이니
자기 그릇에 주어진 몫을 그저 받아들이고
집착과 욕심 없이 행할 수 있다면
아무리 큰 일을 할지라도 그것은 흔적 없는 위대성이 깃든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 자체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업적이나 성취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이 아집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 성취의 과정에서 아무런 무리가 없고,
타인의 고통 위에 기초하지 않는
그런 자연스러운 일을 행할 것이다.

그런 일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법계(法界)의 흐름을 타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는 무위(無爲)의 바탕에 기초한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 일을 행하면서 억지와 개인적 욕심으로 무리하게 추진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주변 환경의 흐름을 타고,
주변 법계의 알 수 없는 비밀스런 도움을 받으면서
힘들이지 않고 너무 과도하게 애쓰지 않고 진행되는 일,
그 일이야말로 진리의 일이요 신이 나에게 부여해 준
이번 생에 내가 가야 할 나다운 삶의 길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은연중에 나를 드러내고 과시하며
아상을 강화시키려는 삿된 목적에 동조하는 일이라면
당장에 그 일을 그만두거나,
그 일의 흐름을 자연스러운 무위로써,
이타적인 자비로써, 무아의 실천으로써, 또 깨어있음으로써 바꿔 나가야 한다.

자기 손으로 자기 집을 짓고 고치고 보수하며 산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본래적인 일인가.
네팔의 시골마을을 다니다 보면 자신의 집 뒤안에
누구나 집을 짓고 고치는데 필요한 공구함이나 창고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또한 젊은이들이 직접 톱질하고 켜고 짜맞추면서
나무를 손질하거나 집을 수리하거나 지붕을 고쳐나가는 풍경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숨을 가진 생명은
모두가 제 집을 제 힘으로 짓고 고치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생명 고유의 본능적인 것이지
능력이라고 부르기도 새삼스러운 본연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유일하게 인간의 세계에서만 자기가 살 집을 자기 손으로 짓지 못하며,
자기가 먹을 먹거리를 제 힘으로 구하지 못하고,
자기의 가족이 입고 살 옷을 제 힘으로 얻지 못한다.

의식주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래적인 것을
오직 인간들만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본래적인 차원에서 무언가 벗어나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돈이 다 해 주는데 무슨 상관이람!”
요즘 같은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세상에서
무슨 얼토당토 않은 논리를 펴는가 할 것이다.
바로 이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 본연의 창조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삶의 기초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을 걸으며 내 얼굴에 미소를 만드는 것은 꽃들과
진하다 못해 새까맣게 푸른 하늘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무와 계곡 물들 뿐인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
새까만 얼굴에 발그라니 익어간 볼살,
줄줄 흘러내려 손등으로 훔친 자국이 역력한 콧물 자국,
오래 씻지 않았거나 빗지 않은 자유분방한 머릿결과 살결,
기워 입고 덧데입고 오래도록 어머니의 손길로 오히려 예스러워진,
아마도 몇 대를 물려받아 입었을 법한 오랜 누더기 웃옷하며,
이 성스러운 설산의 기운을 닮은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천연의 또 다른 자연을 만나는 것이다.

 

 

 

 

 

 

 

 

 



저 어린 아이의 투박하지만 살풋하고,
열퉁적지만 오달지고 선명한 눈빛을 보라.
부디 저 천진함이 먼저 슬어 간 어른들의 시그러진 정신과
세상의 어리석음을 닮지 말기를.

아이들이 뛰어노는 마을 한 켠 귀퉁이 낡은 책상 위에
나른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낯선 여행자의 카메라를 보고 깜짝 놀라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코스모스는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옆 집 담장 곁을 하늘거리며 서 있다.

 


여행자들의 발길은 쉼 없이 흐른다.
어떤 여행자는 그저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만이 이 여행의 목적인 양
끊임없이 양 발로 땅을 퍽퍽거리며 내치며 걸어가고,
또 어떤 여행자는 하늘도 바라보고 아이들의 눈빛도 바라보고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하며 발걸음을 즐기고 걷기도 한다.

이른 아침 팍딩에서 함께 출발했던 두 커플인 듯 보이는 한 무리의 여행자가
꼬질꼬질한 여자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하나 건네더니
아예 짐을 풀고 쉬면서 이내 그 집안까지 둘러보고는
아이와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삶 속에서, 또 이런 자칫 팍팍해지기 쉬운 순례길에서
잠시만 시선을 평범한 곳에 고정짓고 지켜보다 보면
이렇듯 일순간의 작은 웃음과 여유가
밋밋한 여행길에 맑은 샘 같은 청량함을 선사하곤 한다.
미소가 있고, 웃음이 있는 풍경은
바라보기만 해도 정겹고 살갑다.

그리고 또 발걸음은 계속된다.



우뚝 우뚝 솟아 있는 바위 봉우리들이 진한 하늘색과 어우러져
마치 동화 같고 소설 같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 푸르른 하늘색을 배경으로
이번에는 그림같은 높은 폭포수가 길 바로 옆으로
시원한 노랫소리를 연주하며 떨어진다.
이 이른 아침, 사뭇 찬 온도 속에서도 폭포 아래 작은 샘터 호수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의 물장난이 흥미롭다.

 



그리고 바로 그 인상적인 폭포를 지나자마자
건너편에 어둡게 드리워져 있던 검은 그림자의 앞 산이 툭 트이면서
그 뒤로 숨어 있던 하이얀 설산
탐세쿠(thamserku)가 거짓말처럼 순간 눈 앞에 솟아올랐다.

 

 






Posted by 법상

 

팍딩은 계곡 곁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작다고 해도 쿰부지역 지도에 나오는 수많은 마을에 비한다면

제법 큰 마을에 속한다.

 

왜 그런고 하니 이곳 에베레스트 지역의 지도에 나오는 마을 이름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그 마을이라는 것이

겨우 게스트하우스 한두개나 서너개 있으면 마을 이름이 붙는 형편이다보니

마을이라고 해야 그저 집 몇 채 모여있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비한다면 팍딩은 언뜻 보기에도 예닐곱 개의 게스트하우스에

식당과 간이매점 그리고 현지인들이 사는 집들도 제법 되고,

심지어 당구장에 인터넷 방까지 갖춘 제법 규모 있는 마을인 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이 루클라에서 EBC 트레킹의 전진기지인 남체바자르까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다 보니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 곳에서 하루를 묵은 뒤 남체를 향한다.

 

이른 시간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 앞 의자에 앉아

따뜻한 물을 한 잔 얻어 한국에서부터 가져 온 보이차를 우려 마신다.

아, 이 산중에서 마시는 따뜻한 보이차 한 잔의 맛이란.

 

꼬깃꼬깃 조금씩 포장된 몇몇 종류의 보이차를 열어 마실 때마다

이것을 보내주신 보살님 생각에 새삼 감사함과 행복감이 차처럼 우러난다.

이 차들은 내 바로 손아래 사제(師弟)인 법기스님의 모친께서

좋은 보이차라며 높은 산에 가면 고산병에 좋다고

조금씩 조금씩 몇 종류를 작은 팩에 담아 보내주신 것이다.

 

보살님은 현재는 한국에서 보이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릴적부터 아들이 스님이 되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아들이 출가를 했고,

스님이 출가하고는 몇 해 뒤에 갑자기 일평생 하시던 포목점을 그만 두고

적지 않으신 춘추에 새롭게 보이차 전문점을 여시게 된 것이다.

 

스님이 보기에 모친께서 보이차 전문점을 열 만큼

차에 대해 잘 아시는 게 아닌데 어찌 된 연유인지 보았더니

아들 출가하고 나서 아들스님 평생 좋은 차라도 공양해야겠다 싶어

몇 년을 보이차 공부를 하고, 무슨 연구소에 배우러도 다니며

그 춘추에 향학열을 올리신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출가를 해도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부모님인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스님이 되었든, 아니면 죽을 죄를 짓고 감옥에 가 있든

언제나 한결같은 보살의 사랑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정반왕의 거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과 나라를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고 하고 출가를 감행한 뒤,

성도를 하시고 나서 다시 가족과 나라로 돌아와

부모님과 가족, 친지, 나라의 많은 이들을 출가로 이끌고,

아라한이 되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부처님을 낳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

천상에 직접 올라가 법을 설하고 하강하기도 하셨다.

 

경전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그대로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이 자식에게 하는 조건 없는 사랑,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로 확대되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동체대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가 기울고 계곡의 온도가 떨어지는 차에

따뜻한 보이차 한 잔이 온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면서

보살님의 사랑이 따스하게 내 안에도 퍼지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는 아까부터 마을 처녀 총각들이

포터들과 함께 어우러져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중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학생들 두 세명이 시작을 하더니

이윽고 포터와 가이드들이 하나둘씩 끼었고,

구경하던 서양 여행자들까지 게임에 뛰어들면서

롯지 앞마당은 한바탕 활기로 가득하다.

저절로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면서 작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 아이들은 이 마을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지금은 여기에서 부모님 일을 도와 농사도 짓고 성수기에는 롯지 일도 돕고 있지만

이들의 공통된 꿈은 카투만두로 대학을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물론 공부도 잘 해야 되지만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하다보니

이들 부모들 또한 한국에서와 다르지 않게 뼛골이 빠지도록 돈을 모아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출세 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 생을 바친다.

 

지텐은 일찍부터 대학을 포기했다.

부모님이 대학을 보내 줄 재정적 뒷바침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로인해 원망스러울 법도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전혀 비관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부를 좋아하는 동생들까지 대학을 못 가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지텐은 지금도 번 돈을 열심히 모아 부모님께 드리면서

이 돈으로 동생들 대학을 꼭 보내달라고 한다고 한다.

지난 3년 간 포터로 번 돈이 그래도 제법이라

이제 17살이 된 바로 밑의 동생 대학 보낼 밑천은 이미 만든 셈이라고 말하는 말투에

자신감과 뿌듯함이 어린다.

참 대견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포터를 그만두고 대학 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지금 이 삶에 매우 만족하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꿈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지금은 동생들 공부 시키는 것이고

더 돈을 모으면 이곳에 롯지(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대부분 포터들의 바람이고 꿈이기도 하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얼마 정도를 벌면 롯지 하나를 지을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린 답변이 대략 1,500,000루피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대략 2,000만원 쯤 하는 액수인듯 싶다.

 

물론 지금은 갑자기 네팔에 정권이 바뀌면서

최근 1~2년 사이에 물가가 폭등하는 바람에 조금 더 필요할지 모르지만

대략 그 정도면 최신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롯지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자신의 롯지를 지으면 공짜로 와서 묵고 먹으라며 환히 웃는다.

 

갑자기 한 생각 일어난다.

그 정도 액수에 멋진 롯지라면 이 곳에 와서 롯지와 절을 하나 짓고

평생 설산에 깃들어 여행자들 밥이나 해 주면서 도나 닦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일평생 2,000만원을 모아 롯지 하나를 짓는다면

한국에서 따져보면 그리 큰 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포터들의 평생 소망이자 꿈이다.

평생 등짐으로 20~30kg을, 때때로 짐꾼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40~50kg을

그것도 4,000~5,000 고도 이상을 오르내리며 짊어 나르면서 번 돈을

아끼고 아껴 모아야지만 그것도 성공한 소수의 포터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닌가.

 

 

저녁을 먹고 롯지 주위를 산책한다.

어둠이 내린 팍딩 거리에 고일(高逸)한 외로움이 바람처럼 불어온다.

낯선 거리, 낯선 어둠 속에서 쓸쓸한 골목을 타박타박 걷는다.

 

 

 

 

오랜 그리고 깊은 고독감이

아주 진하게 우려낸 차의 쓴맛 처럼 감각을 뒤덮는다.

 

 





 

 

아, 이런 순간 나 자신이 낯설다.

갑자기 기억상실을 일으킨 것처럼

지난 기억의 흔적들이 소리 없이 무뎌지고,

나를 정의내리고 있던 수많은 에고의 껍질들 조차

내가 아닌 듯 낯설게 느껴진다.

 

아,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한다?

생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든 것이 표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난 삶을 정처없이 정신없이 떠돌며 살아오다

이제사 정신이 돌아 온 기억상실증의 낯섬 같기도 한 이 느낌.

아주 낯선 그러나 아주 새로운 느낌,

느낌의 흐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투명하게 전해온다.

 

골목길 집집마다 저녁밥을 지어 먹느라

빠알간 화롯불 주위에 가족들이 모여 앉은 평화로운 풍경이

열린 문틈새로 고향처럼 번져나온다.

 

 

 

 

 

모든 집들은 문이 조금씩 열려 있다.

장작불 연기 때문인지 열어 둔 문틈으로

집집의 풍경들이 고향의 내음을 폴폴 풍기며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장작불을 떼다말고

문틈을 기웃거리는 여행자를 보고는 시답잖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옆 집에는 긴 치마를 맑게 차려 입은 여인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고,

 

 

 

 

하루를 고된 일로 보낸 듯한 일꾼들도 모여 앉아 나른한 저녁식사를 즐긴다.

 

 

 

 

젊은이들은 당구장에 모여 당구 ?대를 제법 능숙하게 퉁겨내고,

 

 

 

 

당구장 한 켠에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낡은 TV를 보려고 동네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들었다.

 

자리를 미처 차지하지 못한 대여섯 된 남자 아이가

서너살이나 되었음직한 어린 동생과 함께

벌써 20여 분 째 당구장 문 밖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추위에 떨며

어린이 만화 프로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아련한 골목 거리의 흐릿한 밤풍경 또한

외로운 여행자의 고향생각을 자극한다.

 

한참을 추운 길가에 서서 TV를 보던 두 형제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때때로 한 두 명씩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거리는 짙은 어둠과 어둠을 비집고

따스한 공간을 겨우 겨우 비추는 흐린 가로등만이 허허로이 서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여행자가 골목길을 오래도록 기웃거리며 걷는다.

 

현지인들의 거리를 한동안 서성이다가

롯지가 모여 있는 숙소 쪽으로 걸어오니

9시가 넘은 이 시간까지도 잠들지 않은 여행자들이

식당 불빛 아래 모여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산중의 밤은 별다른 할 거리가 없다.

그냥 자는 것, 아니면 그냥 앉아 있다가 자는 것

그것 밖에 별다른 선택이 없다.

 

그저 작고 추운 방 침대 위에 앉아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며 그윽한 어둠과 고요를 가만 가만히 듣다가

슬그머니 잠이 쏟아지면 그저 드러누워 자는 것이

저녁 롯지 일과의 전부다.

 

이런 할 일 없음이 좋다.

아무것도 할 것 없고, 애써 할 필요도 없는

텅 빈 우주 공간과도 같은 이 시간이

얼마나 그윽하고 평화로운지 모른다.

 

어쩌면 산을 찾는 즐거움이

이런 여유와 고요함을,

할 일 없음의 무위(無爲)를 충분히 누리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쁘고 할 일 넘치며 일에 ?기고, 성공에 목마르며,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세상에 뒤쳐질 것 같은

그 일상에서 벗어나 일 없음을 누려보는 것,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일 지 모른다.

 

어떤가.

일 없는 산중의 소요를 함께 즐겨봄이.




Posted by 법상

 

 

쿰부롯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롯지의 인터넷방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분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말을 걸어온다.

 

 

 

 

미리 한국 사람을 보면 물어보려고 준비한 듯한 메모지를 가져와서는

몇몇 기초적인 영어 인사말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영어 발음으로 적어 달라고 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따위의 대충 짐작 갈 만한 사연의 글들.

그러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친구가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어쩌다 한번씩 전화 통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안부를 묻고 싶었단다.

 

그녀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가 희말라야를 찾았을 때 잠시 만났는데 대번에 둘은 서로에게 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그리움은 너무도 길다.

그를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의 사랑이 계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비행기의 착륙 때마다 혹시나 있을 한국인을 찾았고,

한국인을 보자마자 반가움과 애락(哀樂)의 마음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는 연문(戀文)의 언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이토록 애잔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머릿결과 낯빛에서

만남과 이별의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사랑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또 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그 실전에서는 늘 어눌하고 서툴며 올바른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것이 또 있을까?

 

내가 만나왔던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또 더불어 성숙해 졌는지를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한 젊은 친구는 헤어짐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군 생활 중에 탈영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오랜 정신적 후유증을 겪다가 정신이상이 온 경우도 보아 왔다.

 

이처럼 때때로 서툰 사랑,

충분히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중독적이고 집착적인 사랑의 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과 소유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하다.

사랑하면 당연히 ‘내 여자’ ‘내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이 영원한 ‘내 것’일 수 있는가.

나 자신도 내가 아닐진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찌 영속적인 내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집착과 소유를 동반한 사랑은

그 끝이 언제나 고통과 슬픔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집착과 소유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야 마는

무상(無常)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

사랑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놓아버린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 그 자체다.

진정한 사랑에는 ‘나’라는 에고며 아상(我相)이 개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또 다른 사람이 생겨 나를 떠나간다고 했을 때조차

그가 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마땅히 보내줄 수 있는 것이 본래적인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나.

마음이 벌써 떠났는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지독한 아집이 만들어 내는 강박증이요, 정신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사랑, 붓다가 말씀하신 동체적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투명하고 흔적 없는, 사랑 그 자체의 사랑을 했을 때

사랑은 그 세속적인 의미를 너머 명상으로 들어서는 올찬 깨달음의 길로 변모한다.

 

어스레한 그녀의 애화(哀話) 한 자락에 축복을 보내며,

이 사랑이 이루어지고 말고를 넘어서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성숙과 깨침을 이루기를.

이 사랑이라는 생생하고 진한 삶의 현장이 가져다 주는 더 깊은 목적의 의미를 깨쳐 보기를.

 

***

 

멈칫 멈칫 내 눈치를 보던 한 청년의 눈빛이 내 눈과 투명하게 마주친다.

앞으로 나와 2주 이상을 함께 걸을 쿰부의 도반, 나의 포터 지텐이다.

첫 인상이라는 잠깐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상대의 상당부분을 알게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이 첫 눈빛의 마주침이 서로의 마음에 진한 심상을 남긴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순한 얼굴에 선한 눈웃음,

수줍은 듯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에서 순간 믿음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환한 웃음과 악수로 간단한 대면을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출발에 앞서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나이는 20살, 이름은 지텐라이, 포터 3년 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한 채 포터를 시작했다.

가족은 11명,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5명의 남형제와 3명의 여자 동생이 있고

그 중 지텐은 이 모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장남이다.

막내 여동생은 이제 겨우 2살,

2살에서 20살인 지텐까지 2~3년 차이로 형제 자매가 주루룩 아홉이나 되는 것이다.

 

 

 

 

지텐은 장남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자식이고

그 밑으로 8명의 동생들은 모두 학생이거나 아기이다.

부모님들도 농사를 워낙 소규모로 지으시다 보니

11명의 가족 먹을 것을 빼면 돈벌이로는 궁핍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대가족의 생계가 20살 지텐의 어께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한 번의 포터 일정이 끝나면

지텐은 맛있는 과자들을 사가지고 가서

동생들 나누어 주는 재미를 좋아한다.

물론 할아버지와 두 분의 부모님 용돈과 생활비도 드려야 하고,

동생들 학교 생활에 필요한 학용품도 사 주어야 한다.

듣고만 있어도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워질 정도인데, 지텐은 이 일이 그리 행복하단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고 하네.

 

그야말로 환한 얼굴빛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것이 진정 어떤 기준을 가진 것인지,

과연 기준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드디어 출발.

루클라 작은 마을길을 통과하는데

길옆의 빵집이며 트레킹용품점, 여행사, 항공사의 사무실 등에는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온 이들과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하려 분주히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꽃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다.

잔뜩 짐을 싣고 먼먼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야크들과

홀가분한 몸으로 내려오는 야크들이 교차하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루클라 마을을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저 흔한 우리나라의 여름 산길을 연상케하는

소박한 오솔길 위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여행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의외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다.

그 오래고 모딘 몸을 쿵쿵 거리며 장하게

산을 하산하는 분들 표정에 무언가를 해 냈다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곳곳에 길 끊어지는 곳마다

철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 놓아

여행자들이나 짐꾼이나 야크들이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다리가 너무 비좁아

저쪽 편에서 짐실은 야크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올때면

그들이 다 건너올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건너야 하는

일방통행 시스템이다.

 

 

 

 

 

 

 

 

 

 

 

길을 걸을 때는

차를 타고 다닐때와는 달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의 생기로운 움직임을 다 살펴볼 수 있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명들이 다양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평소에는 그다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던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걷는 즐거움, 산책의 즐거움이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작은 꽃들, 나무들, 새들과 계곡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게 내 온 몸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그런 주변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각은 우리 존재를 깨어나게 하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게 한다.

 

검은 새 한 마리가 휘휘 날아와서는 지붕 위 끝자락에 앉았다.

가만히 무엇을 하나 살펴보다가 사진 한 장 담아 보려고

찰칵 하는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데,

위로 날아 오르는게 아니라

계곡 위 아슬하게 지어진 집 아래로 수직 하강을 하면서

계곡 저 아래까지 순식간에 날라가 버린다.

 

 

 

   

 

걷는 내내 길옆으로 펼쳐진 논밭의 초록 물결과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집들

그리고 무심한 나무들에게 시선이 머문다.

    

 

 

 

 

 

  

허름한 시골 농가 한 채,

그 곁에 딸린 밭뙈기 조금,

이 정도면 한 평생 대장부의 살림살이 그럭저럭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루클라에서 출발하는 초입에서부터

야크 한 떼와 계속 함께 걷고 있다.

시간도 여유가 있거니와,

주변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걷다보니 야크가 걷는 속도로 나 또한 걷게 된다.

 

 

 

 

두런두런 지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벌써 점심때다.

지텐이 잘 아는 식당에서 라라누들스프를 시켜 먹는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라면 반개 정도 하는 분량의 작은 양념 안 된 라면에

자체 조미료로 간을 낸 라면이다.

라면을 먹고 나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본다.

 

날씨가 너무 좋다.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고,

온도도 걷기에 딱 좋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더없이 걷는 이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루클라 초입에서부터 걸음을 더해갈수록

쿰부의 풍경은 여행자를 압도한다.

평화로운 들녘과 오밀조밀한 집들, 마을길들,

투명하고 푸른 하늘과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

이 모든 풍경이 안나푸르나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무래도 티벳과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티벳불교의 영향력 아래에서 문화를 이루고 있는 셀파족들의 생활상이

이 산과 들녘과 마을 곳곳에,

그리고 그들의 생활양식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저 에베레스트, 눕체, 쿰부체, 푸모리, 로체 등

설산 영봉의 뒤쪽 능사면은 지금은 중국땅이 된 티벳의 영역이다.

그러니 안나푸르나와는 달리

티벳의 문화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녹아든 것이 당연한 일.

 

산자락 중턱에 자리한 작은 곰파들, 스투파(탑)들,

곳곳에 자리잡은 마니차와 바윗돌에 섭새겨진 마니스톤, 흩날리는 룽다,

이 모든 것이 흡사 라다크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과 닮아있지만

다른 어딘가 모를 이곳만의 특색이 또한 아로새겨져 있다.

 

 

 

  

 

 

라다크에서는 곰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는 마을 곳곳에 그저 불교문화가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된 양

흩어져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경전 문구를 새겨 넣은 마니스톤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상처럼이나 당당하게 서 있고,

 

 

 

 

길가 곳곳에 마니차가 서 있어

길을 걸으면서 경전을 읊듯 길을 걸으며 마니차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집과 집의 지붕 사이에 타르초를 걸어 놓아

진리가 마음껏 바람을 타고 온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 놓았고,

타르초와 마니스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룽다가 우뚝 선 기상으로 흩날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느끼며 바쁠 것 없이 여유작작하게 걷는다.

한발 한발 에움길을 돌고돌아 구름이 흐르듯 발길도 흘러간다.

이 한발 한발이 얼마나 생기로운지.

걸음 걸음마다 생명력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낀다.

 

길은 가파르지도 힘겹지도 않은 잔잔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장이다.

이 예스러운 마을길을 아그작거리며 걷는다는 이 평범함이

내가 살아오며 내달려온 그 어떤 성취의 순간보다도

더 깊은 순간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아! 야생의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 풍경 속을 거닌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소박하고 작은 것들 속에서 위대함과 거룩함을 본다.

 

사실 인간계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작고 소박한 일상을

얼마나 깨어있는 순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거룩해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그 어떤 위대한 눈에 보이는 성취일지라도

한 순간의 깨어있는 호흡과 현존에 미치지 못한다.

 

***

 

두 세시간 산책하듯 걸어 팍딩에 도착한다.

 

 

 

 

초입에 이르니 두 자녀 머리를 깎아 주는 어머님의 손길,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도 어릴적에는 이발소나 미용실 한 번 안 가보고

늘 집에서 어머님께서 머리를 깎아 주시곤 하셨다.

 

 

 

 

사실 지지난 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푼힐을 갔다가 내려올 때,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었다.

산행 후 약 일주일 동안 쉬면서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아 이번 순례를 걱정해왔는데

그럭저럭 버틸 만해서 무리일거라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쿰부 산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을 했던 것도 있고,

천천히 오르는데까지 올라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리를 조금 절룩거릴 뿐,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오히려 카투만두에서 쉬고 있을 때보다

다시 길을 걸으니 더 나은 것도 같다.

계속 걷다보면 통증도 잊게 된다.

Posted by 법상

에베레스트의 관문, 루클라

- 에베레스트 고쿄(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 촐라패스 + 고쿄 교코리) 라운딩 1일차 (1) -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오던 날이 밝았다.

그냥 쉬엄쉬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간절히 이번 생에 꼭 하나 끝내고 가야 하는 그 어떤 숙제라도 되는 양

결연히도 기다려 왔다.

그러나 막상 그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의연히도 무덤덤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삼 일 쯤 전에 루클라행 비행기에 올랐어야 한다.

내 일정이 조금씩 당겨진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각지 못했던 네팔인들의 명절이 계속되면서

바로 엊그제까지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는 바람에

산행에 필요한 퍼밋(Permit, 입장허가서)이며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 발급이 늦어졌고,

그 차에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 벗으로부터 명절 초대도 받고,

산골 마을의 인연 있는 학교에도 다녀올 겸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비행기표를 삼일 늦추었다.

 

덕분에 오늘 출발하게 되었는데 엊저녁 듣게 된 충격적 소식!

내가 타고 가려했던 그 날짜에 출발한 비행기가

루클라 공항의 날씨 사정과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그만 추락을 했다는게 아닌가!

조종사 한 사람은 겨우 탈출을 했지만

독일인 17명과 오스트리아인 2명, 그리고 네팔 현지인 포터와 가이드 4명이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순간 머릿속에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사이에 ‘한국인 1명’이라는

오싹한 상상력이 스치며 소름이 끼쳐왔다.

국제 뉴스에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더니 나중에 카투만두에서 이메일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산에 있는 2주 동안 내 일정을 알고 있던 몇몇 지인으로부터 걱정 어린 메일이 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정확한 인연과 우주적인 질서에 따른 삶이라는 큰 계획의 일환이었겠지만,

내 계획을 바꾸지 않고 일단 루클라까지라도 가고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라면

내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내 삶이 마감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모르긴 해도 더 큰 인과의 법칙 속에서, 신의 계획 속에서

그들은 정확히 가야할 때가 되어 그 비행기에 오른 것일 수도 있고,

나는 아직 그 때가 아니기에 내 입장에서는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났는지 모른다.

 

우주법계에서 부여하는 삶의 질서는

개개인이 자기 고집과 아상(我相)과 온갖 판단 분별로 상황을 자기식대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정확히 필요한 일들을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자비로운 목적을 가지고 펼쳐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기 고집과 집착으로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대항하고 투쟁하려 한다면

그것은 제 스스로 지옥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아서 살았고 그렇기에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운이 좋고,

그들은 운이 나쁘거나 악행을 많이 했거나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요, 계획인 것이다.

물론 그 계획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죽은 자에 비해 우월한 것도, 승리자가 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올지언정 분명히 공평하게 찾아오고야 만다.

그렇기에 죽음은 실패나 좌절이나 아픔, 이별,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어쨌든 일정에 차질은 생겼지만, 그래서 계획 변경으로 인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 대신에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

당장에 눈앞에 드러난 현실은 일정 차질이며 계획 변경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지켜보면

이처럼 삶의 그 뒤에 숨은 목적, 혹은 더 깊은 차원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러니 삶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만은 아니다.

계획된 일정에 부득이한 변경이 생겼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다.

심지어 그 변경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삶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부득이한 계획 변경과

어쩔 수 없는 사건, 사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라.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계획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더 큰 법계(法界)의 계획표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욕심’, ‘내 집착’, ‘내 소유’라는 아상이 강한 사람일수록

내가 만들어 놓았던 인생 계획에 작은 변동이라도 생기면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한다.

내 계획대로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상에 갇혀있지 않은 자는 삶에 계획을 세우기는 할지언정

애초부터 ‘반드시, 절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에도 심리적인 괴로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 어떤 변화도 마땅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다.

삶의 그 어떤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고통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는 더 큰 질서를 안다.

인생의 더 깊은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신의 질서를, 법계라는 진리의 이치에 완전히 자기를 내맡긴다.

자기 고집과 아상을 버리고 더 큰 삶의 진리에 나를 고스란히 내던진다.

삶의 거대한 강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힘을 빼고 함께 따라 흐른다.

 

이러한 대수용과 무집착과 대긍정이야말로

리의 삶이 비좁은 인간의 틀에 갇히지 않고

진리의 차원, 신의 차원, 붓다의 차원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그 ‘더 큰 질서’는 언제나 더 높고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항상 나를 돕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때때로 나에게 너무도 불합리하게 느껴지며 불리하고 고통스럽게 보여지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우리를 돕기 위한 대본인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녹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지혜를 전해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더 큰 질서’ ‘더 깊은 진리’에 나를 완전히 내던지고 맡기는 삶은

모든 고통과 근심을 덜어주고 우리를 진리로, 신에게로, 깨달음으로 이끈다.

 

3일 연기된 일정의 의미를 지켜보며,

설산으로의 여행 대신 다른 삶으로의 여행을 먼저 떠난 그들의 영전에

깊은 조의와 함께 ‘티벳 사자의 서’를 한 편 독송해 바쳐 본다.

 

 

국내선 공항은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루클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기야 10월~11월이 네팔 트레킹의 가장 큰 성수기에다

작년 한 해 국내 정치의 안정으로 인해 유례없는 최대의 관광객들이 네팔을 찾았다고 한다.

 

8시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씨타항공, 루클라”를 외치는 말이 없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네팔리 타임’이라며 어제는 3시간도 넘게 지연되었었다고 귀뜸해 준다.

하기야 3년 전에 왔을 때에도 카투만두-포카라행 오전 8시 비행기를 오후가 되어서야 탓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누려본다.

 

한 30분 쯤 더 지났을까.

왠일로 이렇게 빨리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

표를 끊고 나가 버스에 올라 비행장 한 켠에 서 있는 작은 비행기를 향한다.

 

 

 

 

네팔의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가까이 함께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 대표 공항답지 않게 작고 소담하다.

버스에서 내려 비행기 앞에 줄을 서니 사람과 함께 체크인 할 때 맡긴 짐들도 함께 싣고 있다. 

 

 

  

20여 명 남짓 탈 수 있는 아주 작은 비행기,

앉으면 조종사의 조종석까지 환히 보이는 미니 비행기다.

 

  

일행이 다 타자마자 비행기 몸체 전체를 뒤흔들며

미니 프로펠러를 움직이더니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잠시 뒤 구르릉 소리를 내며 그 작은 기체가 쏜살같이 달리더니

드디어 창밖으로 카투만두의 전경을 발아래로 펼쳐낸다.

 

[공항 활주로에서 출발, 하늘로 날아올라, 카투만두 시내를 펼쳐보여 준다] 

 

 

의외로 안정감 있게 그리 높지 않은 하늘을, 아니 아슬아슬하게 산 위를 날고 있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조종사 보조석 뒷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작은 쟁반에 두 종류의 사탕을 내어 온다.

작고 허름한 비행기지만 일반 항공사에서 하는 서비스를 다 하기는 하네.

 

 

 

야트막한 산 위를 사뿐 사뿐 나는 동안

산 위에 펼쳐진 네팔인들의 전형적인 산골 논밭 풍경과 올막졸막한 집들에 시선이 머문다.

 

 

푸르른 초록빛과 익어가는 노란 황금빛의 논이

꼬물 꼬물 모여 있는 마을, 집, 길, 산과 어우러져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잠시 뒤 비행기가 산 위를 가볍게 날아오르고

전형적인 네팔 산악 마을의 풍경인 계단식 다랑이 논이

한국이 가을 들녘처럼 누우렇게 익어가고 있다.

 

 

 

한 20여 분 쯤 떠 있은 것 같은데 비행기는 벌써 착륙을 준비중이다.

착륙직전 창밖으로 거대한 산군이 펼쳐지면서 기체가 주춤하고 흔들리더니

비행기가 눈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을 하는게 아닌가.

순간 엊그제의 사고가 떠올랐다.

루클라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산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해 정면의 산으로 부딪혔다는 신문기사가 오버랩되며 온몸이 순간 경직 되 옴을 느낀다.

 

‘이놈의 생각’, 생각이 공연한 공포감을 또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 일 없이 물론 잘 도착을 했지만,

생각이란 놈은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엊그제 있었던 사고를 끄집어냄으로써

계속해서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가 조금만 주춤 거려도 '혹시나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고,

조금만 조종사가 딴짓을 해도 '저 사람이 저러다 어쩔려고' 하며

혼자서 생각으로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상황에

자동적으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온갖 망상 분별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마구잡이로 끄집어내는 생각들은

별로 의미 없고 쓸모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화가 날 때 보면 화가 날만한 상황이 생기면 자동 반사적으로 욱 하고 올라오듯이

생각도 마찬가지로 온갖 상황이나 조건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기억 속 흔적들을 끄집어내 연관된 것들을 막 의식의 표면으로 쏘아 올린다.

꿈처럼이나 아무런 질서도 없이 언뜻 비슷한 기억들은 죄다 끄집어내고 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생각의 속성이다.

이처럼 생각은 과거의 기억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과거의 생각들이 솟구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충만한 자리를 놓치고 만다는 사실이다.

 

생각은 늘 그런 방법으로 우리 내면의 본연의 평화와 고요를 밀어내곤 한다.

한 번 그 늪에 빠져 버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생각의 의미 없는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현존(現存)에서 오는 충만한 삶의 에너지는 그 기운을 잃고 만다.

 

생각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너무 생각이나 판단에 의존하려 하지 말라.

과거의 기억들로 오늘을 판단하거나 과거의 색안경으로 지금 이 순간을 평가하지 말라.

무심(無心)의 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보라.

생각이 놓여지는 순간 우리 마음은 짧은 평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생각이 힘을 잃고 대신 그 자리에 무심과 관조(觀照)가 빛을 비출 때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바로 그 때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번뜩이는 창의,

그리고 기억과 사고 너머의 깊은 존재의 심연 속에서 지혜의 가르침들이

직관적이고도 창조적인 영감의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생각과 기억이라는 과거의 잔재,

또 계획과 바람과 욕망이라는 미래의 잔재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존의 순간에 깃드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한 생각으로 너무 근심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생각과 기억이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것들일 뿐이다.

 

그래서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 이라고 말했다.

결국 걱정은 제로라는 말.

본래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빠져 공연히 근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들을 바라보며 몸의 경직이 풀리고 있는데

곧바로 비행기는 이륙을 마쳤다.

착륙 절차도 아주 간단하고 그 시간도 매우 짧다.

쿠궁 하고 비행기가 땅으로 구른지 불과 2~3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비행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바삐 내린다.

 

비행기를 나서는 순간, 루클라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진한 물감을 풀어낸 듯 강한 콘트라스트의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집들이

포근히 둘러싸인 산 아래 소박하게 누워 있다.

 

 

비행장 한 켠 언덕에는 두 명의 군인이

마을을 배경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20여 명의 함께 내린 동행자들이 모두들

여행자거나 가이드, 포터다 보니 앞으로 이들과 꾸준히 만날 것 같은 느낌.

 

 

일반적으로 개인 여행자들은 루클라에 도착해 포터나 가이드를 구하곤 하는데,

단체 여행자들은 여행사에서 구해 준 가이드와 포터를

카투만두에서부터 그들의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면서 함께 오기도 한다.

물론 비행기표는 여행자들의 반값 정도로 저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투만두-루클라 노선의 왕복 비행기 가격이 24만원 정도이니

10만원은 넘는 지출을 감행하면서라도 2주 이상을 함께 먹고 자며 지내고 의지해야 할 가이드와 포터를

믿을만한 여행사를 통해 데려오곤 하는 것이다.

 

공항 주변에는 포터와 가이드를 알선해 주겠다는 현지 여행사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루클라 공항 밖에서는 포터와 가이드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주로 포터는 미화 하루 10달러, 가이드는 15달러 전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나는 다행히도 카투만두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재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오랜 벗 라케스의 도움으로 중간 소개업자나 수수료를 떼어가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하루 600루피에 좋은 포터를 소개 받은 터라

그를 만나러 루클라 시내의 쿰부롯지로 향한다.[목탁소리(www.moktaksori.org) 법상]

 

[루클라 공항 풍경]  

 

 [루클라 공항 활주로와 루클라 마을]


Posted by 법상

인도, 라다크 지역과
네팔,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쿰부 지역
그리고 미얀마를 순례하고,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인도, 라다크 지역, 판공초 호수 

 

  티벳의 포탈라궁을 본떠 만든 라다크지역의 불교 사원, 쉐이곰파 

 

  판공초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마을 

 

   라다크 레가 내려다 보이는 남갈체모 곰파

 

 

  라다크 딕쉐곰파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초원 

 

  쿰부지역 순례에서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로부체 가는 길 

 

  에베레스트 라운딩 중 고쿄 롯지에서... 

 

  미얀마 버강의 한 파고다에서 바라본 일몰 

 

  미얀마 버강의 파고다 순례 

 

 

오랜 순례 끝에
다시 절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그대로 입니다.

그 엄청난 풍경들과
장엄한 아름다움들을 보고 왔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동안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생생하고 쨍한 아름다움들이
희말라야나, 라다크, 바간이나 부처님 성지
못지 않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생경하리만치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풍경 못지 않게
작고 사소한
절 주위의 풍경들이
하나 하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지난 3개월 간의 일들이
그저 지난 밤
한 순간 꿈인 것 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존재가 이 도량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아,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잃은 사람마냥
모든 것이 하얗게 느껴지면서
억지로 떠올리기 전에는
뭐 별 일 없었던 것 처럼
이렇게 다시 건강히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모든 것들이
생각했던 대로 잘 되었던 것 같네요.
물 흐르듯이
큰 어려움 없이
순리처럼 3개월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음 속에서
걱정해 주고, 힘이 되어 주고,
함께 길을 걸어 주셨던
목탁소리 법우님들과
또 많은 인연 닿는 분들의 염원 덕분이
아닌가 하고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마음으로 염원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기에
이렇게 건강히 돌아와
법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고 났더니
새로운 일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다음 달 초에
전라도 광주로 절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전라도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너무 먼 탓에
늘 마음 속에서만 품고 지냈던 곳이라
한번쯤 꼭 가 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진짜로 가게 되었네요.

다음 주에도 무슨 행사가 있고,
그 다음 주에 바로 거처를 옮겨야 하다보니
이래 저래 인연 지은 분들과 정리도 하고,
또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인연도 짓고,
그러다 보면 또 조금 바쁘겠네요.

인도에서, 희말라야와 미얀마에서
담아 온 이야기들은
시간이 되는데로
하나 하나 내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다녀 온 때가
여행자들에게는 비수기 때다 보니
홀로 조용히 다닐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니면서 끄적여 놓은 글들이 있어
한동안 지겹도록
별것 없는 여행기와 사진들을
감상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온 터라
찍어 온 사진 정리도 못 했네요.
인도 라다크와 네팔의 설산
그리고 미얀마의 사진 몇 장을 올려드립니다.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양곤의 쉐더공 파고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