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부롯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롯지의 인터넷방 주인인 듯한 젊은 여자분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말을 걸어온다.

 

 

 

 

미리 한국 사람을 보면 물어보려고 준비한 듯한 메모지를 가져와서는

몇몇 기초적인 영어 인사말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영어 발음으로 적어 달라고 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따위의 대충 짐작 갈 만한 사연의 글들.

그러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친구가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어쩌다 한번씩 전화 통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안부를 묻고 싶었단다.

 

그녀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가 희말라야를 찾았을 때 잠시 만났는데 대번에 둘은 서로에게 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았고 그리움은 너무도 길다.

그를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우리의 사랑이 계속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비행기의 착륙 때마다 혹시나 있을 한국인을 찾았고,

한국인을 보자마자 반가움과 애락(哀樂)의 마음으로

그와 연결될 수 있는 연문(戀文)의 언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이토록 애잔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머릿결과 낯빛에서

만남과 이별의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는 듯하다.

이 세상에 사랑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또 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그 실전에서는 늘 어눌하고 서툴며 올바른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것이 또 있을까?

 

내가 만나왔던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또 더불어 성숙해 졌는지를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한 젊은 친구는 헤어짐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군 생활 중에 탈영을 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친구는 오랜 정신적 후유증을 겪다가 정신이상이 온 경우도 보아 왔다.

 

이처럼 때때로 서툰 사랑,

충분히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중독적이고 집착적인 사랑의 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과 소유를 동격으로 여기는 듯하다.

사랑하면 당연히 ‘내 여자’ ‘내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이 영원한 ‘내 것’일 수 있는가.

나 자신도 내가 아닐진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어찌 영속적인 내 소유가 될 수 있겠는가.

 

집착과 소유를 동반한 사랑은

그 끝이 언제나 고통과 슬픔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집착과 소유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고야 마는

무상(無常)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

사랑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놓아버린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 그 자체다.

진정한 사랑에는 ‘나’라는 에고며 아상(我相)이 개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또 다른 사람이 생겨 나를 떠나간다고 했을 때조차

그가 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마땅히 보내줄 수 있는 것이 본래적인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나.

마음이 벌써 떠났는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은

지독한 아집이 만들어 내는 강박증이요, 정신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집착 없는 사랑이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사랑, 붓다가 말씀하신 동체적인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투명하고 흔적 없는, 사랑 그 자체의 사랑을 했을 때

사랑은 그 세속적인 의미를 너머 명상으로 들어서는 올찬 깨달음의 길로 변모한다.

 

어스레한 그녀의 애화(哀話) 한 자락에 축복을 보내며,

이 사랑이 이루어지고 말고를 넘어서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성숙과 깨침을 이루기를.

이 사랑이라는 생생하고 진한 삶의 현장이 가져다 주는 더 깊은 목적의 의미를 깨쳐 보기를.

 

***

 

멈칫 멈칫 내 눈치를 보던 한 청년의 눈빛이 내 눈과 투명하게 마주친다.

앞으로 나와 2주 이상을 함께 걸을 쿰부의 도반, 나의 포터 지텐이다.

첫 인상이라는 잠깐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상대의 상당부분을 알게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이 첫 눈빛의 마주침이 서로의 마음에 진한 심상을 남긴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순한 얼굴에 선한 눈웃음,

수줍은 듯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에서 순간 믿음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환한 웃음과 악수로 간단한 대면을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출발에 앞서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나이는 20살, 이름은 지텐라이, 포터 3년 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포기한 채 포터를 시작했다.

가족은 11명,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5명의 남형제와 3명의 여자 동생이 있고

그 중 지텐은 이 모든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장남이다.

막내 여동생은 이제 겨우 2살,

2살에서 20살인 지텐까지 2~3년 차이로 형제 자매가 주루룩 아홉이나 되는 것이다.

 

 

 

 

지텐은 장남이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자식이고

그 밑으로 8명의 동생들은 모두 학생이거나 아기이다.

부모님들도 농사를 워낙 소규모로 지으시다 보니

11명의 가족 먹을 것을 빼면 돈벌이로는 궁핍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대가족의 생계가 20살 지텐의 어께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한 번의 포터 일정이 끝나면

지텐은 맛있는 과자들을 사가지고 가서

동생들 나누어 주는 재미를 좋아한다.

물론 할아버지와 두 분의 부모님 용돈과 생활비도 드려야 하고,

동생들 학교 생활에 필요한 학용품도 사 주어야 한다.

듣고만 있어도 내 어깨가 이렇게 무거워질 정도인데, 지텐은 이 일이 그리 행복하단다.

그리고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느낄 정도라고 하네.

 

그야말로 환한 얼굴빛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것이 진정 어떤 기준을 가진 것인지,

과연 기준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드디어 출발.

루클라 작은 마을길을 통과하는데

길옆의 빵집이며 트레킹용품점, 여행사, 항공사의 사무실 등에는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온 이들과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하려 분주히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꽃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사람만 그런게 아니다.

잔뜩 짐을 싣고 먼먼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야크들과

홀가분한 몸으로 내려오는 야크들이 교차하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루클라 마을을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저 흔한 우리나라의 여름 산길을 연상케하는

소박한 오솔길 위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여행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의외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다.

그 오래고 모딘 몸을 쿵쿵 거리며 장하게

산을 하산하는 분들 표정에 무언가를 해 냈다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곳곳에 길 끊어지는 곳마다

철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 놓아

여행자들이나 짐꾼이나 야크들이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다리가 너무 비좁아

저쪽 편에서 짐실은 야크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올때면

그들이 다 건너올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건너야 하는

일방통행 시스템이다.

 

 

 

 

 

 

 

 

 

 

 

길을 걸을 때는

차를 타고 다닐때와는 달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의 생기로운 움직임을 다 살펴볼 수 있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명들이 다양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평소에는 그다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던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것이야말로 걷는 즐거움, 산책의 즐거움이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작은 꽃들, 나무들, 새들과 계곡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예민하게 내 온 몸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그런 주변 자연에 대한 관찰과 감각은 우리 존재를 깨어나게 하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게 한다.

 

검은 새 한 마리가 휘휘 날아와서는 지붕 위 끝자락에 앉았다.

가만히 무엇을 하나 살펴보다가 사진 한 장 담아 보려고

찰칵 하는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데,

위로 날아 오르는게 아니라

계곡 위 아슬하게 지어진 집 아래로 수직 하강을 하면서

계곡 저 아래까지 순식간에 날라가 버린다.

 

 

 

   

 

걷는 내내 길옆으로 펼쳐진 논밭의 초록 물결과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집들

그리고 무심한 나무들에게 시선이 머문다.

    

 

 

 

 

 

  

허름한 시골 농가 한 채,

그 곁에 딸린 밭뙈기 조금,

이 정도면 한 평생 대장부의 살림살이 그럭저럭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루클라에서 출발하는 초입에서부터

야크 한 떼와 계속 함께 걷고 있다.

시간도 여유가 있거니와,

주변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걷다보니 야크가 걷는 속도로 나 또한 걷게 된다.

 

 

 

 

두런두런 지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벌써 점심때다.

지텐이 잘 아는 식당에서 라라누들스프를 시켜 먹는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라면 반개 정도 하는 분량의 작은 양념 안 된 라면에

자체 조미료로 간을 낸 라면이다.

라면을 먹고 나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본다.

 

날씨가 너무 좋다.

하늘은 진하게 푸르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고,

온도도 걷기에 딱 좋은 우리나라 가을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은 더없이 걷는 이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루클라 초입에서부터 걸음을 더해갈수록

쿰부의 풍경은 여행자를 압도한다.

평화로운 들녘과 오밀조밀한 집들, 마을길들,

투명하고 푸른 하늘과 쨍하게 부서지는 햇살,

이 모든 풍경이 안나푸르나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무래도 티벳과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티벳불교의 영향력 아래에서 문화를 이루고 있는 셀파족들의 생활상이

이 산과 들녘과 마을 곳곳에,

그리고 그들의 생활양식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저 에베레스트, 눕체, 쿰부체, 푸모리, 로체 등

설산 영봉의 뒤쪽 능사면은 지금은 중국땅이 된 티벳의 영역이다.

그러니 안나푸르나와는 달리

티벳의 문화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녹아든 것이 당연한 일.

 

산자락 중턱에 자리한 작은 곰파들, 스투파(탑)들,

곳곳에 자리잡은 마니차와 바윗돌에 섭새겨진 마니스톤, 흩날리는 룽다,

이 모든 것이 흡사 라다크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들과 닮아있지만

다른 어딘가 모를 이곳만의 특색이 또한 아로새겨져 있다.

 

 

 

  

 

 

라다크에서는 곰파에 가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곳에서는 마을 곳곳에 그저 불교문화가 그들 삶의 한 부분이 된 양

흩어져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 경전 문구를 새겨 넣은 마니스톤이

마을을 지켜주는 신상처럼이나 당당하게 서 있고,

 

 

 

 

길가 곳곳에 마니차가 서 있어

길을 걸으면서 경전을 읊듯 길을 걸으며 마니차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집과 집의 지붕 사이에 타르초를 걸어 놓아

진리가 마음껏 바람을 타고 온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 놓았고,

타르초와 마니스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룽다가 우뚝 선 기상으로 흩날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느끼며 바쁠 것 없이 여유작작하게 걷는다.

한발 한발 에움길을 돌고돌아 구름이 흐르듯 발길도 흘러간다.

이 한발 한발이 얼마나 생기로운지.

걸음 걸음마다 생명력이 물씬 피어오름을 느낀다.

 

길은 가파르지도 힘겹지도 않은 잔잔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장이다.

이 예스러운 마을길을 아그작거리며 걷는다는 이 평범함이

내가 살아오며 내달려온 그 어떤 성취의 순간보다도

더 깊은 순간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아! 야생의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 풍경 속을 거닌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소박하고 작은 것들 속에서 위대함과 거룩함을 본다.

 

사실 인간계의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의 작고 소박한 일상을

얼마나 깨어있는 순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거룩해지고 위대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그 어떤 위대한 눈에 보이는 성취일지라도

한 순간의 깨어있는 호흡과 현존에 미치지 못한다.

 

***

 

두 세시간 산책하듯 걸어 팍딩에 도착한다.

 

 

 

 

초입에 이르니 두 자녀 머리를 깎아 주는 어머님의 손길,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도 어릴적에는 이발소나 미용실 한 번 안 가보고

늘 집에서 어머님께서 머리를 깎아 주시곤 하셨다.

 

 

 

 

사실 지지난 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푼힐을 갔다가 내려올 때,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었다.

산행 후 약 일주일 동안 쉬면서도 통증이 사그라들지 않아 이번 순례를 걱정해왔는데

그럭저럭 버틸 만해서 무리일거라는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쿰부 산행길에 오른 것이었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오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을 했던 것도 있고,

천천히 오르는데까지 올라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때 내려가면 되겠지 하는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리를 조금 절룩거릴 뿐,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오히려 카투만두에서 쉬고 있을 때보다

다시 길을 걸으니 더 나은 것도 같다.

계속 걷다보면 통증도 잊게 된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