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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도, 어떤 사건도 따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 그 모든 존재며 생명들도 서로 깊은 연관이 되어 만나며 그 모든 사건들 또한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지고 일어난다. 모두가 그럴만한 인연 따라 정확한 필요에 의해 일어난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필요를 가지고 그 자리에 그렇게 진리로써 여여(如如)하게 있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전체로써의 하나’인 법계의 진리 인연으로 그 자리에 진여로써 있는 것이다. 산하대지현진광(山河大地現眞光)이란 말처럼 산하대지 모든 것이 참 진리 빛의 나툼이요,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쓰일 곳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모든 존재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법계의 진리의 사명을 띠고 그 자리에 존재한다.

모든 일, 모든 사건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그 어떤 일이나 사건도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일어난다. 외따로 떨어져 아무런 연관관계 없이,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두가 전체성이다. 모든 것이 전체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외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분명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나타난다. 온 우주 법계의 큰 진리의 흐름에 정확히 맞춰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를 괴롭히는 일, 아프고 슬픈 일들까지도, 심지어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일어나는 우연 같은 것들조차 정확한 법계 진리의 흐름을 타고 분명하게 흐른다. 분명한 전체적 진리의 본질의 화신으로써 구체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진급에서 떨어졌다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고? 사고를 당해 불구자가 되었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사람 잘못만나 결혼을 잘못했다고? 그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그렇지 않다. 우연히 일어난 일은 없다. 그것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운이 좋아 진급을 했다거나, 운이 좋아 사고에서 조금만 다쳤다거나, 운이 좋아서 이런 사람을 만났다거나, 혹은 운이 나빠서 대학에 떨어졌다거나,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운이 좋거나,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모든 것은 정확한 필요에 의해 등장한다. 분명하게 짜여진 인과의 연극, 법계의 연극 각본에 따라 꼭 그 때, 그 장소에 그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를테면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고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들은 그것은 내가 운이 나빠서 그랬다고 느끼거나, 그 사람이 졸음운전을 해서 그랬다거나, 정부에서 신호등을 애매하게 만들어 놓아서 그랬다거나 하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 사고는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단순히 둘 사이의 관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차와 내 몸이 부딪쳐 사고가 난 것은 그 차와 나와, 그 차 운전자와 나와의 관계에서 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온 우주 법계와 나와의 관계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우주 전체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전체적인 얽히고설킨 인다라망의 관계 속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그것은 운이 없거나, 조심을 안 했거나 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일은 삼라만상의 일체 모든 존재와 나와의 관계에서 난 사고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몸에 큰 병이 왔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은 그냥 내 몸에 병이 온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냥 내 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온 우주 법계 전체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병이 난 것이다. 온 우주의 허락 없이 몸에 병이 오는 일은 없다. 어머니 대지의 허락 없이, 대자연의 허락 없이, 부처님의 하느님의 허락 없이, 진리의 허락 없이, 내 안의 자성불의 허락 없이, 법계의 허락 없이 그냥 어쩌다 보니 우연하게 병이 내게로 온 것이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좀 심한 비유지만,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2층에서 떨어뜨린 화분에 맞아 죽었다고 치자.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이 맞았으며,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정확히 그 화분을 떨어뜨릴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화분을 떨어뜨린 사람과 화분에 맞은 두 사람만의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거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우주적이고 전체적인 인과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온 우주 법계에서 내린, 부처님께서 내린 인과법의 명령, 다르마의 명령이다. 아직 죽음의 업을 받을 때가 아닌 자에게 그런 우연은 일어날 수 없다. 분명히 그 사람은 그 때에 그러한 인연으로 죽게 되어 있었던 업보, 인과에 놓여 있었다.

왜 어떤 사람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고 또 어떤 사람은 평화로운 출근길에 다리가 끊어져 죽으며, 왜 어떤 사람은 총알이 마침 그 작은 목걸이에 비껴 맞아 죽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은 평화로운 오후 지하철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가. 그 모든 사건은,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불구하고 법계의 전체성 속에서, 전체적인 인과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일어난다.

모든 일은 따로 떨어져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을 잘 사유해 보라. 그 어떤 일도 외따로 떨어져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와 내 가족이 부부싸움을 했다는 것을 단 둘 사이의 관계로만 한정짓지 말라.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인과가 얽매여 있다. 이를테면 내가 아내에게 화를 낼 때, 아이들 마음속에서 화로인한 아픈 상처가 남을 것이고, 내 화는 그대로 내 주변의 모든 생명 있고 없는 존재에게 그 영향을 남길 것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에서 그랬듯이 내 주위의 물의 결정이 찌그러들 것이며, ‘식물의 정신세계’란 책에서 그랬듯이 내 주변의 모든 식물들이 아픈 파장을 내보낼 것이고, 내 몸의, 또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의 세포 하나하나가 극심한 공포로 떨고 있고 죽어갈 것이다. 또한 전생 또 그 전생 수많은 전생을 이어오며 아내와 나 사이의, 또한 나와 아이들 사이의 여러 화에 얽힌 인연들이 지금 이 순간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뿐 아니다. 내 안에서 일으킨 화의 기운은 그대로 우주 법계로 어두운 파장이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법성게』에서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했다.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 온 우주 법계를 그대로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어찌 그 일을 나와 내 아내 단 둘의 문제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필요를 가지고 내 인생의 바로 그 자리에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다.

우연이란 없다. 그 사람과 나와의 단순한 문제란 있을 수 없다. 내가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에도 그것은 단순히 나무 한 그루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 법계의 생명을 잘라내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잘려나갈 때 이 우주의 생명의 기운 또한 그만큼 스러져간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든 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 전체의 일이다. 우주 법계의 전체적인 진리의 흐름 속에서 정확히 필요한 일들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다가온다. 우연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내가 탄 차가 산길에서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마침 낭떠러지 중턱에 한 그루 있던 나무 한 그루에 걸려 목숨을 구했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나무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일을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하수구에 빠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재수 없게 하수구에 빠진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하수구에 빠지는 순간에도 우리 두 눈은 멀쩡했으며, 다른 때처럼 그것을 보고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평범한 다른 사람은 다 돌아갔는데 왜 나면 그곳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 순간 우리 눈은 한눈을 파느라 다른 무엇을 보았을 수도 있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때, 뚜껑 열린 하수구 앞을 지날 때 그 때 한눈을 팔았으며 다른 생각이 떠올랐느냔 말이다. 바로 그 순간 내 눈을 멀게 한 법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왜 그러한 일들이 우리를 괴롭히는가. 그것은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관점’ ‘전체적인 법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건은, 그것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운 일일지라도 그것이 그 순간 최선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괴로운 일일 지라도, 우리를 돕기 위한 법계의 배려다. 즉, 지금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다음에 더 큰 일로써 우리를 괴롭혔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법계의 일이고 진리의 일이며 정확한 인연법이라는 진리의 나툼이라 하는 것이다.

우주는, 법계(法界)는 결코 우리를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늘 법계는 어머님의 품처럼 우리를 돕고 있다. 한없는 사랑으로, 끝없는 자비로써 우리를 품고 있다. 다만 나쁜 일, 괴로운 일, 아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만들 뿐인 것이다.

어떤 괴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사실 그건 ‘괴로운 일’이 아니라 다만 그건 그냥 ‘한 사건’일 뿐이다. 법계의 필요에 의한 진리의 사건일 뿐이다. 그건 좋고 싫은 어떤 사건이라거나, 괴롭거나 즐거운 어떤 사건이 아니라 다만 한 사건일 뿐이다. ‘한 사건’에 대해 분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 온갖 생각과 분별, 판단, 해석을 가함으로써 그 사건을 좋은 사건, 혹은 나쁜 사건으로 나누어 놓고 스스로 그 분별에 빠져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고 있다.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생각’이다. 내 생각이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지, 그 사건 자체에 어떤 ‘괴로운 성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돈 1만원을 도둑맞았다면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것은 그냥 만원을 도둑맞았다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천만 원 백만 원을 훔쳐가지 않고 단 만원만 훔쳐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행스런 좋은 일일 것이지만, 하필이면 내 돈을 훔쳐 가느냐고 한다면 그건 재수 없는 나쁜 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괴롭다거나 즐겁다는 것은 내 판단이고 생각일 뿐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정된 괴로움인 것은 아니다. 태어남의 반대가 죽음이지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삶은 영원하다. 육신이 사라졌다고 그것이 영원한 소멸은 아니며 육신이 살아났다고 그것이 영원한 탄생도 아니다. 나고 죽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마치 빈 가지에 봄이 되면 잎이 피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졌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을 물들이다가 겨우내 떨어져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왜 괴로움이거나 즐거움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왜 비극적인 죽음이고 신비로운 태어남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법계의 모습일 뿐이다. 거기에 좋고 나쁘다거나 괴롭고 행복하다는 분별을 붙일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한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아주 자연스러우며 꼭 필요한 법계의 일이고, 따로 떨어져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전체성의 틀 속에서, 진리의 틀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들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대 긍정, 대 수용의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좋고 나쁘다고 나누지 않는 무분별의 열린 가슴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 좋거나 나쁜 어떤 것이 아니며,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이미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내 삶 속의 그 어떤 존재도, 사람도, 상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진리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내 삶 속의 그 어떤 사건도, 일도, 괴로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괴로운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그 사건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진리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내가 거부해야 할 것이 아니다. 좋고 싫은 것이 아닐진대 붙잡거나 거부해야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러한 우연 같은 사건이 어떻게 법계의 전체적인 진리 안에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온 우주 법계의 전체적인 진리 안에서, 온 우주의 모든 존재들 간의 인과 관계 안에서 그 사건은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제 그 사람은 우주 법계의 진리와 하나 될 수 있는 소중한 진리의 첫 단추를 꿰게 될 것이다. 삼라만상 우주 법계와 둘로 나뉘지 않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과도 그 어떤 사건들과도 둘로 나뉘지 않는 대 조화와 대 평화의 걸림 없는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삶 속에서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그 때 나와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 어떤 사건들이 분명히 내게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그것도 나를 돕기 위한 대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내 앞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도, 그 사건도 모두가 법계의 진리를 품고 있는 내 안에서 스스로 선택한 일인 것이다. 나라는 진리성, 나라는 전체성의 법신이 그 존재를 만나게 했으며, 그 사건을 만나게 했다. 즉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남이 대신해서 선택해 준 것이 아니다. 부처님이, 혹은 하느님이 무작위로, 혹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내 안의 진리의 허락도 없이 그런 선택을 대신한 것이 아니다. 결국 그 모든 일은 다 내 깊은 영혼의 선택이다. 그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어떤 존재를 만나든지, 그 어떤 사건을 접하든지, 그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 모든 것은 내 깊은 내면에서 대 긍정을 위해, 진리와의 합일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옳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완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모든 사건을, 모든 일들을, 모든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완전히 수용하라. 대 긍정, 무한 긍정의 관점에서 한 점 의혹도 없이 받아들이라.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 내 삶에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경이로운 삶의 신비에 눈뜨게 된다. 그것이 모든 수행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의 길이며, 모든 신의 길이요, 도(道)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