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연극의 역할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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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연극의 역할놀이

목탁 소리 2010. 11. 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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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는 선생님일수도 있고, 사장일수도 있으며, 스님일수도, 학생일수도, 혹은 부모이거나 자식일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회사에서는 사장일수도 있고, 말단 사원일수도 있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일수도, 자식일수도 있고, 또 주말에 있는 모임에 가면 회장일수도, 총무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의 아상, 우리의 위상은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우리가 바로 그 곳에서 해야 할 몫의 역할을 해 내면서 살아간다. 어디 그 뿐인가. 가게에 가면 손님이 되었다가, 차를 타면 승객이 되고, 복지시설에서는 자원봉사자로 탈바꿈한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그 상황에 걸맞는 역할의 연극을 한다.

그런데 그 역할들의 특성은 어떨까? 어느 한 가지 역할을 가지고 ‘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역할을 바꿀 뿐이다. 바로 이 역할 놀이, 연극의 배역을 끊임없이 상황 따라 바꾸어가는 바로 이 영화 같은 인생의 상황극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배역이 주어질 때 바로 그 순간의 역할 속에 완전히 몰입하여 하나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이 역할놀이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 역할이 주어질 때 그것에 온전히 깨어있는 의식으로 최선의 연극을 다하되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바로 그 역할에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할지언정 그 역할이 나 자신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잠시 인연 따라 주어진 배역과 나 자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 배역을 최선의 집중으로 행할지언정 그 역할 자체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나도, 나의 가족도, 나의 외모도, 나의 경제력도,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일체 모든 것들도 결국 내가 아니다. 그것을 나로 생각하여 집착에 빠지면 안 된다. 그것들은 언젠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훌륭한 배우는 한 영화가 끝나고 새로운 영화를 시작할 때 이전 영화 속의 배역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배역에 100% 몰입한다. 과거의 배역이 아무리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배역이었을 뿐임을 안다. 설사 왕의 역할을 맡았을지라도, 그 배역이 아무리 달콤하고 화려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배역일 뿐, 진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거의 그 배역에 빠져 있는 한 새로운 배역을 소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삶에서 주어진 배역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배역을 ‘나 자신’으로 오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상의 거친 속박이다. 우리는 매 순간 순간 주어진 몫의 역할과 배역을 거기에 걸맞게 해 내야 하겠지만, 어떤 한 가지 역할도 얽매여 집착할 이유는 없다.

집에 퇴근해서까지 여전히 회사의 일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느라고, 자녀와 아내와의 소중한 순간을 허비한다면 이 얼마나 삶을 헛되이 소모하는 일인가. 회사에서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퇴근 후에는 완전히 회사일을 마음에서도 퇴근을 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새로운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최선으로써 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집중하더라도 주말에는 완전히 주말을 쉬는 데에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 삶의 배역을 온전한 집중과 알아차림으로 행하되 거기에 집착하거나 얽매임 없이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이끄는 지고의 수행이요 붓다가 말한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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