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딩 산중마을의 밤거리 - 에베레스트 라운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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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딩 산중마을의 밤거리 - 에베레스트 라운딩(3)

목탁 소리 2009. 7. 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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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딩은 계곡 곁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작다고 해도 쿰부지역 지도에 나오는 수많은 마을에 비한다면

제법 큰 마을에 속한다.

 

왜 그런고 하니 이곳 에베레스트 지역의 지도에 나오는 마을 이름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정작 그 마을이라는 것이

겨우 게스트하우스 한두개나 서너개 있으면 마을 이름이 붙는 형편이다보니

마을이라고 해야 그저 집 몇 채 모여있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비한다면 팍딩은 언뜻 보기에도 예닐곱 개의 게스트하우스에

식당과 간이매점 그리고 현지인들이 사는 집들도 제법 되고,

심지어 당구장에 인터넷 방까지 갖춘 제법 규모 있는 마을인 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이 루클라에서 EBC 트레킹의 전진기지인 남체바자르까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다 보니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 곳에서 하루를 묵은 뒤 남체를 향한다.

 

이른 시간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 앞 의자에 앉아

따뜻한 물을 한 잔 얻어 한국에서부터 가져 온 보이차를 우려 마신다.

아, 이 산중에서 마시는 따뜻한 보이차 한 잔의 맛이란.

 

꼬깃꼬깃 조금씩 포장된 몇몇 종류의 보이차를 열어 마실 때마다

이것을 보내주신 보살님 생각에 새삼 감사함과 행복감이 차처럼 우러난다.

이 차들은 내 바로 손아래 사제(師弟)인 법기스님의 모친께서

좋은 보이차라며 높은 산에 가면 고산병에 좋다고

조금씩 조금씩 몇 종류를 작은 팩에 담아 보내주신 것이다.

 

보살님은 현재는 한국에서 보이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릴적부터 아들이 스님이 되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아들이 출가를 했고,

스님이 출가하고는 몇 해 뒤에 갑자기 일평생 하시던 포목점을 그만 두고

적지 않으신 춘추에 새롭게 보이차 전문점을 여시게 된 것이다.

 

스님이 보기에 모친께서 보이차 전문점을 열 만큼

차에 대해 잘 아시는 게 아닌데 어찌 된 연유인지 보았더니

아들 출가하고 나서 아들스님 평생 좋은 차라도 공양해야겠다 싶어

몇 년을 보이차 공부를 하고, 무슨 연구소에 배우러도 다니며

그 춘추에 향학열을 올리신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출가를 해도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부모님인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스님이 되었든, 아니면 죽을 죄를 짓고 감옥에 가 있든

언제나 한결같은 보살의 사랑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정반왕의 거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과 나라를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고 하고 출가를 감행한 뒤,

성도를 하시고 나서 다시 가족과 나라로 돌아와

부모님과 가족, 친지, 나라의 많은 이들을 출가로 이끌고,

아라한이 되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부처님을 낳자마자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

천상에 직접 올라가 법을 설하고 하강하기도 하셨다.

 

경전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그대로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부모님이 자식에게 하는 조건 없는 사랑,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로 확대되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동체대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가 기울고 계곡의 온도가 떨어지는 차에

따뜻한 보이차 한 잔이 온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면서

보살님의 사랑이 따스하게 내 안에도 퍼지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는 아까부터 마을 처녀 총각들이

포터들과 함께 어우러져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중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학생들 두 세명이 시작을 하더니

이윽고 포터와 가이드들이 하나둘씩 끼었고,

구경하던 서양 여행자들까지 게임에 뛰어들면서

롯지 앞마당은 한바탕 활기로 가득하다.

저절로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면서 작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 아이들은 이 마을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지금은 여기에서 부모님 일을 도와 농사도 짓고 성수기에는 롯지 일도 돕고 있지만

이들의 공통된 꿈은 카투만두로 대학을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물론 공부도 잘 해야 되지만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하다보니

이들 부모들 또한 한국에서와 다르지 않게 뼛골이 빠지도록 돈을 모아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출세 시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 생을 바친다.

 

지텐은 일찍부터 대학을 포기했다.

부모님이 대학을 보내 줄 재정적 뒷바침이 없었기 때문인데,

그로인해 원망스러울 법도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전혀 비관하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부를 좋아하는 동생들까지 대학을 못 가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지텐은 지금도 번 돈을 열심히 모아 부모님께 드리면서

이 돈으로 동생들 대학을 꼭 보내달라고 한다고 한다.

지난 3년 간 포터로 번 돈이 그래도 제법이라

이제 17살이 된 바로 밑의 동생 대학 보낼 밑천은 이미 만든 셈이라고 말하는 말투에

자신감과 뿌듯함이 어린다.

참 대견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포터를 그만두고 대학 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지금 이 삶에 매우 만족하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꿈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지금은 동생들 공부 시키는 것이고

더 돈을 모으면 이곳에 롯지(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짓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대부분 포터들의 바람이고 꿈이기도 하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얼마 정도를 벌면 롯지 하나를 지을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린 답변이 대략 1,500,000루피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대략 2,000만원 쯤 하는 액수인듯 싶다.

 

물론 지금은 갑자기 네팔에 정권이 바뀌면서

최근 1~2년 사이에 물가가 폭등하는 바람에 조금 더 필요할지 모르지만

대략 그 정도면 최신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롯지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자신의 롯지를 지으면 공짜로 와서 묵고 먹으라며 환히 웃는다.

 

갑자기 한 생각 일어난다.

그 정도 액수에 멋진 롯지라면 이 곳에 와서 롯지와 절을 하나 짓고

평생 설산에 깃들어 여행자들 밥이나 해 주면서 도나 닦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일평생 2,000만원을 모아 롯지 하나를 짓는다면

한국에서 따져보면 그리 큰 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포터들의 평생 소망이자 꿈이다.

평생 등짐으로 20~30kg을, 때때로 짐꾼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40~50kg을

그것도 4,000~5,000 고도 이상을 오르내리며 짊어 나르면서 번 돈을

아끼고 아껴 모아야지만 그것도 성공한 소수의 포터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닌가.

 

 

저녁을 먹고 롯지 주위를 산책한다.

어둠이 내린 팍딩 거리에 고일(高逸)한 외로움이 바람처럼 불어온다.

낯선 거리, 낯선 어둠 속에서 쓸쓸한 골목을 타박타박 걷는다.

 

 

 

 

오랜 그리고 깊은 고독감이

아주 진하게 우려낸 차의 쓴맛 처럼 감각을 뒤덮는다.

 

 





 

 

아, 이런 순간 나 자신이 낯설다.

갑자기 기억상실을 일으킨 것처럼

지난 기억의 흔적들이 소리 없이 무뎌지고,

나를 정의내리고 있던 수많은 에고의 껍질들 조차

내가 아닌 듯 낯설게 느껴진다.

 

아,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한다?

생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든 것이 표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난 삶을 정처없이 정신없이 떠돌며 살아오다

이제사 정신이 돌아 온 기억상실증의 낯섬 같기도 한 이 느낌.

아주 낯선 그러나 아주 새로운 느낌,

느낌의 흐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투명하게 전해온다.

 

골목길 집집마다 저녁밥을 지어 먹느라

빠알간 화롯불 주위에 가족들이 모여 앉은 평화로운 풍경이

열린 문틈새로 고향처럼 번져나온다.

 

 

 

 

 

모든 집들은 문이 조금씩 열려 있다.

장작불 연기 때문인지 열어 둔 문틈으로

집집의 풍경들이 고향의 내음을 폴폴 풍기며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장작불을 떼다말고

문틈을 기웃거리는 여행자를 보고는 시답잖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옆 집에는 긴 치마를 맑게 차려 입은 여인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고,

 

 

 

 

하루를 고된 일로 보낸 듯한 일꾼들도 모여 앉아 나른한 저녁식사를 즐긴다.

 

 

 

 

젊은이들은 당구장에 모여 당구 ?대를 제법 능숙하게 퉁겨내고,

 

 

 

 

당구장 한 켠에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낡은 TV를 보려고 동네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들었다.

 

자리를 미처 차지하지 못한 대여섯 된 남자 아이가

서너살이나 되었음직한 어린 동생과 함께

벌써 20여 분 째 당구장 문 밖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추위에 떨며

어린이 만화 프로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아련한 골목 거리의 흐릿한 밤풍경 또한

외로운 여행자의 고향생각을 자극한다.

 

한참을 추운 길가에 서서 TV를 보던 두 형제가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때때로 한 두 명씩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거리는 짙은 어둠과 어둠을 비집고

따스한 공간을 겨우 겨우 비추는 흐린 가로등만이 허허로이 서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여행자가 골목길을 오래도록 기웃거리며 걷는다.

 

현지인들의 거리를 한동안 서성이다가

롯지가 모여 있는 숙소 쪽으로 걸어오니

9시가 넘은 이 시간까지도 잠들지 않은 여행자들이

식당 불빛 아래 모여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산중의 밤은 별다른 할 거리가 없다.

그냥 자는 것, 아니면 그냥 앉아 있다가 자는 것

그것 밖에 별다른 선택이 없다.

 

그저 작고 추운 방 침대 위에 앉아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며 그윽한 어둠과 고요를 가만 가만히 듣다가

슬그머니 잠이 쏟아지면 그저 드러누워 자는 것이

저녁 롯지 일과의 전부다.

 

이런 할 일 없음이 좋다.

아무것도 할 것 없고, 애써 할 필요도 없는

텅 빈 우주 공간과도 같은 이 시간이

얼마나 그윽하고 평화로운지 모른다.

 

어쩌면 산을 찾는 즐거움이

이런 여유와 고요함을,

할 일 없음의 무위(無爲)를 충분히 누리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쁘고 할 일 넘치며 일에 ?기고, 성공에 목마르며,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세상에 뒤쳐질 것 같은

그 일상에서 벗어나 일 없음을 누려보는 것,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일 지 모른다.

 

어떤가.

일 없는 산중의 소요를 함께 즐겨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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