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분지에서 민박집 어르신이 일어주신 산마을 식당에 들러
울릉도에서 난 산채들로만 만들었다는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산채들이 풍성하게 한 그릇 가득이다.

주인 아주머님 인심은 또 얼마나 좋은지,
밥이며 산채며 반찬들이 전통 한정식 저리가라 하고 많이 나오는데다
민박집 어르신 얘기를 했더니
이 곳의 자생인 천궁, 호박, 더덕 등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씨앗주라는 곡차도 한 사발 내어 주셨다.

늦은 점심을 먹고는 터벅터벅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고갯길을 오르니 나리분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1시간 남짓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걷다보니
시원스런 바다와 거친 파도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리고 바닷길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산에서 바다 쪽을 향해 약간 기울어 진 듯 보이는
육중한 바위산 하나가 시선을 잡아끈다.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가
송곳처럼 뽀족하게 생겼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송곳산 때문에 이 인근 마을도 송곳산의 한자명인
‘송곤 추(錐), 메 산(山)’자를 써서 추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높이가 430m라고 하니 육중한 바위산이라고 말했던 규모가 짐작이 가려나.

그리고 송곳산에서 바다 쪽으로 눈을 돌리면
일명 코끼리 바위라고 불리는 공암이 바다 위에 떠 있다.
바위 모양이 코끼리가 물 속에 코를 담그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로 난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저 멀리로 죽암이 보인다.



죽암과 삼선암을 들렀다가 서면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북면 쪽에서 너무 시간을 오래 끌다 보면
내일 떠나야 하는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나 싶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여행을 다니며 구경을 하는 것도 아쉬운 듯 한 것이 좋고,
모조리 다 감상을 하겠다는 것 보다는 욕심을 좀 덜 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몇 몇 만행길에서 터득한 바다.

바닷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인적은 드물다.
그래도 작은 어촌 마을인데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여간해서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점점 거세진다.
때때로 파도의 잔영들이 뺨을 스치운다.
한참을 걷다보니 바닷길 위에까지 파도가 흩뿌려져 겉옷이 축축하다.

걷다가 걷다가 길가 간이 의자에 앉았다가 이내 드러누웠다.
가만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보며 온 몸으로 간간이 뛰어드는 파도를 맞아가며
점점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의 찬기를 느끼면서
아무도 없는 외딴 섬 길 위에 버려진 듯 철저한 고독의 소리를 듣는다.

산 위에서 그랬듯이 길 위에도 인적은 없다.
이따금씩 지나치는 차량만이
이 땅이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요즘,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거의 관광객들도 없고, 일들도 많이 줄어드는 시기라고 한다.
요즘 같으면 배가 들어왔어도 나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은 연유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차라리 한 몇 일 이 곳에 갇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바닷가 한 켠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마음도 고정시켜 본다.
외로운 느낌을 가만히 살펴본다.
이럴 때, 외로운 느낌이 존재를 뒤덮으려 할 때,
바로 그 때가 수행자에게는 가장 좋은 구도의 때다.

가만히 그 느낌을 주시하고 있다보면
이내 느낌도 생각도 어느덧 사라지는 것을 본다.
다만 파도가 칠 뿐.



바다도 산처럼 사람의 생각을 잠재우고
감성을 일깨우는 그 어떤 힘을 가졌다.
이런 외딴 섬에서의 외로운 거센 파도는 내 삶에서도 드문 경우다.
더구나 이런 철저히 외딴 곳에서의 거친 풍경은 더욱 드문 일이다.
이런 생경한 경험들이 지진하던 내 속 뜰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바다와 하늘, 구름의 경계선이 사라진다.
온몸은 거센 바닷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또 다시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멈추고 눕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이렇게 조용하게 그 어떤 훼방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길 위의 고요를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길은 시끄럽다.
차량이 줄을 잇고, 엔진의 소음이 그칠 줄 모른다.
차의 길은 차의 소음으로 시끄럽고
사람의 길은 사람들의 재잘거림으로 시끄럽다.
물론 벗과 함께 걷는 길에는 사람들의 소리들까지도 정겹지만
홀로 속 뜨락을 거닐을 때는 때때로 조용한 길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곳 울릉도의 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이 길은 차 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길 위에서 사람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바다도 파도도 그리고 깊은 침묵 또한 길 위를 걷는다.

차량의 행렬이 멈춘 도로는 낯설다.
그 낯섬이 길을 걷는 여행자에게는 반가운 도반이다.

저 섬 반대편까지 가야 일몰을 볼 수 있으리란
민박집 어르신의 말씀이 문뜩 떠올라
지나치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곳의 차량은 언제나 사람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차량 향해 손만 들으면 어떤 차도 어떤 사람을
당연히 태우고 갈 준비가 되어있지 싶다.
차도 섬을 닮아 가슴이 따뜻한가.

거의 반나절을 걷고 걸어 되돌아 보면 한 뼘이더니
이 섬의 차는 순식간에 내 수고를 덜어
훌쩍 섬 반대편 태하의 성하신당에서 나를 떨구어 주었다.

역시 차를 타고 오다보니 놓치는 것이 많다.
눈을 초롱 초롱 뜨고 산과 바다를 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것들을 향해
깊은 시선을 던지긴 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나를 얻으면 역시 하나를 잃게 마련이다.

문명의 이기는 이렇듯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도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놓치는 것이 많아진다.
차창 밖에 보여지는 사물들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 하나의 풍경들이 담고 있는 내 안의 의미도 놓치고
그들이 내게 던져주는 화두 같은 것도 놓치게 된다.

삶의 속도도 매한가지다.
인생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더 빨리 얻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삶의 참된 의미는
봄 꽃이 피어나는 듯 느린 가운데에서 꽃피어난다.

태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도 완전히 태풍에 강타를 당했다.
물론 이 곳 또한 물길 작업이 한창이고,
바닷가 쪽은 방파제 작업으로 분주하다.
거대한 굉음과 장비들의 소음이
이 아름다운 풍경의 정서를 반감시키고 있다.

태양은 이제 저 바다 너머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둑 어둑한 뭉개구름들 사이로 투명한 빛이 바다를 향해 쏟아진다.



빛의 향연. 아직 빛은 투명하다.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빛은 더욱 따뜻한 노을빛으로 바뀔 것이다.



저 건너편 풍경이 이채롭다.
늘상 바라는 바지만 저 언덕 위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매일같이 바닷가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그려보게 된다.



시끄러운 소음과 정신없는 공사 때문에
이 곳에서 일몰을 맞으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태하 마을을 걸어 나오는데
울릉도 곳곳에서 자주 목격하던 오징어 말리는 풍경이 이젠 익숙하다.



아직 일몰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다.
또 한 번 차를 얻어 탔다.


통구미 거북바위 일출을 바라보며(통구미 도착, 16:00)

사자바위 쪽에서 일몰을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도동 가까운 곳이 좋겠다 싶어 단숨에 통구미까지 내달렸다.
거북이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고 하여 통구미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곳은 향나무 자생지로도 유명한데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
포구 앞의 바위는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여 거북바위라 부른다.

통구미와 거북바위의 일몰도 유명하다고 했는데
차에서 내리니 ‘잘못 온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바위 하나 달랑 있고
도로 곁에 그 흔한 슈퍼나 식당 조차 없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관광지의 유명 명소는
호텔과 휴양시설이며 온갖 식당가와 관광물품판매점에, 심지어 유흥업소까지
얼마나 정신 없는 시설들로 꽉 들어 차 있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울릉도를 걸으며 느낀 공통점이 바로
울릉도의 명소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곳에 통구미라는 지명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일몰을 구경 온 관광객도 없고,
관광객들을 위한 그 흔한 일몰 전망대 같은 것도 없다.
그냥 길가에 앉으면 그곳이 전망대도 되고 휴게실도 된다.

이렇게 개발되고 발전되지 않아 호젓한
이런 곳이 참으로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그 텅 빈 가운데 꽉 찬 무언가가 있다.
너저분한 것들이 없어야 정말 보아야 할 그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법이다.

길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바위가 하나 있어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양도 이제 많이 내려왔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수평선 바다가
저 위의 붉은 생명을 단숨에 품어 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은 의미가 남다르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문명의 이기로 넘쳐나는 그런 여행지 풍경 속에서는
나 자신에 집중하기도, 여행지 풍경에 집중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이 곳에선 호젓한 가운데, 아무런 걸림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두 눈의 시선은 오직 저 붉은 태양에 고정되고 있다.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살결도 찬연하지만
그 위에서 휴식을 취하듯 소박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의 모습에서도
더없는 평화로움과 삶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 물결이 곱다.
용광로 같은 태양 아래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갈매기가
빛을 받아 더욱 반짝인다.

잠잠히 앉아서 일몰을 기다리던 갈매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의 축제에 빠져든 듯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떼지어 날아올라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다.



거북바위가 지는 태양의 곁에서 묵묵히 일몰을 지켜주고 있다보니
함께 곁에서 지켜보는 여행자의 가슴도 따뜻해진다.



시간과 함께
태양은 뜨거운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한 30분 남짓의 시간동안 서서히 아주 조금씩
태양과 바다의 간격이 좁혀지더니
이네 푸른 선과 붉은 원이 감격의 재회를 맞으며 하나 된다.



둘이 만남을 이루고 나면
태양은 빠른 속도로 바다 속을 파고들며 자신을 소멸시킨다.

이내 태양은 보이지 않고 수평선만 외로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태양이 사라져도 여운은 남는다.
아직도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은 태양의 여운으로 은은하다.



또 다시 바다 곁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며 녹록한 태양의 여흥을 느껴본다.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호올로 길 위를 걷는 느낌은 적막 혹은 적멸이다.
첫 느낌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휑하고 허한 느낌이지만
그 느낌을 깊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휑한 적막감은 이내 깊은 고요와 평화를 간직한 적멸의 자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걷다보면 길 위에서 적멸의 벗을 만나게 될 것도 같다.

한참을 걷다 또 한 차례 차를 얻어 타고 도동으로 내달렸다.
저녁 공양을 하고 잠시 도동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피곤이 몰려온다.


다음날 새벽, 행남등대와 해안산책로 일출(도동항 출발, 05:50)

애초 아침 일찍 독도를 다녀오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이 독도편 배가 출항하지 않는 날이라
독도를 다녀오는 계획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대신에 행남등대와 해안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도동항에서 해안산책로가 아닌
산길을 따라 행남등대까지 가는 길을 택했다.

아직 도동은 한밤중이다.
도동항 마을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얕은 산 위로 올라가니
도동의 밤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손전등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어두운 산길을 두 눈 부릅뜨고 직감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 낯선 산길을 걷는 건 또 다른 생경함이다.
어둠은 짙고 세상은 조용하다.
터벅 터벅 길이 난 곳만을 향해 계속해서 걷는다.
이른 새벽 숲 길의 청명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방에서 나올 때만해도 바람이 차다고 느꼈는데
한참 걷다보니 안에서부터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금방 도착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밤길이라 그랬는지 1시간을 조금 넘게 걸은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또 둘로 난 길에서는 그냥 대충 직감을 따라 길을 선택했다.
우측으로 가면 바다에 다다를 것이고
너무 좌측으로 가면 저동에 다다를 것 같고
중간 즈음의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니 길 끝에 집이 한 채 보이고
갈라진 길 앞의 간이 이정표에 ‘행남등대’ ‘저동’이란 푯말이 보였다.

행남등대에 잠시 올랐다가 일출을 보기에는 바다쪽이 낫겠다 싶어
다시 해안산책로 쪽으로 내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해안산책로에 다다르니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어제 새벽 저동의 일출과는 또 다른 느낌의 태양이 떠오른다.
뭐랄까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며 차분한 느낌.
어제의 일출이 강렬했다면 오늘의 일출은 포근하고 따스하다.

때때로 고기잡이 어선이 하나 둘씩 지나간다.



갈대 사이로 솟아오른 태양이 지극히 순박하다.

갈대도 태양을 향해
합장을 하듯 이 아침의 일광보살을 맞이한다.



산책로 사이로 피어난 왕해국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바위틈 사이 그 척박한 곳에 왕해국 작은 꽃무지도
그 곳이 제 집이라고 뿌리를 박고 피어올랐다.



바위틈에서 자란 건 왕해국만이 아니다.
그 곁에서 산부추도 계절감을 잊고 바위틈에서
바닷바람을 피해가며 호젓하게 서 있다.



바위 위에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내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 하늘 위로 뭉개구름 몇 송이 평화롭게 떠 다닌다.
한참동안 발을 떼지 못 하고 바다쪽을 향해 서 있다.



아! 이 뜨거운 하늘, 바다, 태양 그리고 섬...
이 한 편의 장면이 그대로 동화 속 풍경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예상했던 것 보다 해안산책로의 절경은 더없이 특별하다.
어제까지의 풍경들이 평범한 가운데 평화와 순박의 경이가 담겨있었다면
오늘 아침 해안산책로의 그것은 경희(驚喜) 그 자체다.



이런 풍경은 도무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이런 풍경을 대할 때마다
대자연의 무위의 예술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찌 이런 절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기암괴석의 하늘신이 빗어놓은 듯한 천상의 산책로 위로
새벽 태양빛이 하늘에서 금싸라기를 흩어 뿌리는 듯 난연히 비춰주는
이 해안의 풍경은 도무지 언어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어떤 언어로 이 대자연의 하늘 연주를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깍아 지른 듯한 기암괴석 아래로
금새라도 떨어질 듯한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끼면서 걷는다.



아! 지금 이 순간
내 영혼도 저 갈매기처럼
청량한 하늘 위를 날고 싶다.



내 안에서는 또 다시 침묵의 선율이 흐른다.
모든 티끌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청연청아한 텅 빈 공간이 내 안의 뜰에 맑은 비질을 한다.
이 선연한 하늘의 연주와 선율을 알아들었기라도 했다는 듯
하늘 위로 갈매기 떼의 발랄한 날개짓이 춤을 춘다.

천천히 경행하듯 옮긴 발걸음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덧 도동항에 다다랐다.
도동항 마을도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해도 이제 제법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날씨가 좋아 배는 당연히 뜬다고 했다.
육지로,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 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잠시 눈을 붙였다.
꿈결 속에서 울릉도를 다시 그려본다.



설레임 가득한 일탈의 만행을 만들어 준 울릉도,
언제 다시 오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안녕.







Posted by 법상

에베레스트의 관문, 루클라

- 에베레스트 고쿄(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 촐라패스 + 고쿄 교코리) 라운딩 1일차 (1) -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오던 날이 밝았다.

그냥 쉬엄쉬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간절히 이번 생에 꼭 하나 끝내고 가야 하는 그 어떤 숙제라도 되는 양

결연히도 기다려 왔다.

그러나 막상 그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의연히도 무덤덤하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삼 일 쯤 전에 루클라행 비행기에 올랐어야 한다.

내 일정이 조금씩 당겨진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각지 못했던 네팔인들의 명절이 계속되면서

바로 엊그제까지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는 바람에

산행에 필요한 퍼밋(Permit, 입장허가서)이며 팀스(TIMS, 트레커 정보운영 시스템) 발급이 늦어졌고,

그 차에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인 벗으로부터 명절 초대도 받고,

산골 마을의 인연 있는 학교에도 다녀올 겸 해서 마음 편하게 먹고 비행기표를 삼일 늦추었다.

 

덕분에 오늘 출발하게 되었는데 엊저녁 듣게 된 충격적 소식!

내가 타고 가려했던 그 날짜에 출발한 비행기가

루클라 공항의 날씨 사정과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그만 추락을 했다는게 아닌가!

조종사 한 사람은 겨우 탈출을 했지만

독일인 17명과 오스트리아인 2명, 그리고 네팔 현지인 포터와 가이드 4명이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순간 머릿속에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사이에 ‘한국인 1명’이라는

오싹한 상상력이 스치며 소름이 끼쳐왔다.

국제 뉴스에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더니 나중에 카투만두에서 이메일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산에 있는 2주 동안 내 일정을 알고 있던 몇몇 지인으로부터 걱정 어린 메일이 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정확한 인연과 우주적인 질서에 따른 삶이라는 큰 계획의 일환이었겠지만,

내 계획을 바꾸지 않고 일단 루클라까지라도 가고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라면

내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내 삶이 마감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모르긴 해도 더 큰 인과의 법칙 속에서, 신의 계획 속에서

그들은 정확히 가야할 때가 되어 그 비행기에 오른 것일 수도 있고,

나는 아직 그 때가 아니기에 내 입장에서는 그저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났는지 모른다.

 

우주법계에서 부여하는 삶의 질서는

개개인이 자기 고집과 아상(我相)과 온갖 판단 분별로 상황을 자기식대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정확히 필요한 일들을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자비로운 목적을 가지고 펼쳐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기 고집과 집착으로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대항하고 투쟁하려 한다면

그것은 제 스스로 지옥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아서 살았고 그렇기에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운이 좋고,

그들은 운이 나쁘거나 악행을 많이 했거나 잘못한 일이 많아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요, 계획인 것이다.

물론 그 계획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죽은 자에 비해 우월한 것도, 승리자가 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올지언정 분명히 공평하게 찾아오고야 만다.

그렇기에 죽음은 실패나 좌절이나 아픔, 이별,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어쨌든 일정에 차질은 생겼지만, 그래서 계획 변경으로 인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 대신에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

당장에 눈앞에 드러난 현실은 일정 차질이며 계획 변경이지만,

그 뒤에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지켜보면

이처럼 삶의 그 뒤에 숨은 목적, 혹은 더 깊은 차원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러니 삶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만은 아니다.

계획된 일정에 부득이한 변경이 생겼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다.

심지어 그 변경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삶 속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부득이한 계획 변경과

어쩔 수 없는 사건, 사고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라.

그것은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 계획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더 큰 법계(法界)의 계획표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욕심’, ‘내 집착’, ‘내 소유’라는 아상이 강한 사람일수록

내가 만들어 놓았던 인생 계획에 작은 변동이라도 생기면

도저히 참지를 못하고 화를 내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한다.

내 계획대로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모든 것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상에 갇혀있지 않은 자는 삶에 계획을 세우기는 할지언정

애초부터 ‘반드시, 절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는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에도 심리적인 괴로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 어떤 변화도 마땅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다.

삶의 그 어떤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고통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는 더 큰 질서를 안다.

인생의 더 깊은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신의 질서를, 법계라는 진리의 이치에 완전히 자기를 내맡긴다.

자기 고집과 아상을 버리고 더 큰 삶의 진리에 나를 고스란히 내던진다.

삶의 거대한 강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힘을 빼고 함께 따라 흐른다.

 

이러한 대수용과 무집착과 대긍정이야말로

리의 삶이 비좁은 인간의 틀에 갇히지 않고

진리의 차원, 신의 차원, 붓다의 차원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만든다.

더구나 그 ‘더 큰 질서’는 언제나 더 높고 깊은 차원에서 보면 항상 나를 돕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때때로 나에게 너무도 불합리하게 느껴지며 불리하고 고통스럽게 보여지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우리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우리를 돕기 위한 대본인 것이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녹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지혜를 전해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더 큰 질서’ ‘더 깊은 진리’에 나를 완전히 내던지고 맡기는 삶은

모든 고통과 근심을 덜어주고 우리를 진리로, 신에게로, 깨달음으로 이끈다.

 

3일 연기된 일정의 의미를 지켜보며,

설산으로의 여행 대신 다른 삶으로의 여행을 먼저 떠난 그들의 영전에

깊은 조의와 함께 ‘티벳 사자의 서’를 한 편 독송해 바쳐 본다.

 

 

국내선 공항은 언제 사고가 있었냐는 듯 루클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하기야 10월~11월이 네팔 트레킹의 가장 큰 성수기에다

작년 한 해 국내 정치의 안정으로 인해 유례없는 최대의 관광객들이 네팔을 찾았다고 한다.

 

8시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씨타항공, 루클라”를 외치는 말이 없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네팔리 타임’이라며 어제는 3시간도 넘게 지연되었었다고 귀뜸해 준다.

하기야 3년 전에 왔을 때에도 카투만두-포카라행 오전 8시 비행기를 오후가 되어서야 탓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누려본다.

 

한 30분 쯤 더 지났을까.

왠일로 이렇게 빨리 비행기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

표를 끊고 나가 버스에 올라 비행장 한 켠에 서 있는 작은 비행기를 향한다.

 

 

 

 

네팔의 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가까이 함께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 대표 공항답지 않게 작고 소담하다.

버스에서 내려 비행기 앞에 줄을 서니 사람과 함께 체크인 할 때 맡긴 짐들도 함께 싣고 있다. 

 

 

  

20여 명 남짓 탈 수 있는 아주 작은 비행기,

앉으면 조종사의 조종석까지 환히 보이는 미니 비행기다.

 

  

일행이 다 타자마자 비행기 몸체 전체를 뒤흔들며

미니 프로펠러를 움직이더니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잠시 뒤 구르릉 소리를 내며 그 작은 기체가 쏜살같이 달리더니

드디어 창밖으로 카투만두의 전경을 발아래로 펼쳐낸다.

 

[공항 활주로에서 출발, 하늘로 날아올라, 카투만두 시내를 펼쳐보여 준다] 

 

 

의외로 안정감 있게 그리 높지 않은 하늘을, 아니 아슬아슬하게 산 위를 날고 있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조종사 보조석 뒷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작은 쟁반에 두 종류의 사탕을 내어 온다.

작고 허름한 비행기지만 일반 항공사에서 하는 서비스를 다 하기는 하네.

 

 

 

야트막한 산 위를 사뿐 사뿐 나는 동안

산 위에 펼쳐진 네팔인들의 전형적인 산골 논밭 풍경과 올막졸막한 집들에 시선이 머문다.

 

 

푸르른 초록빛과 익어가는 노란 황금빛의 논이

꼬물 꼬물 모여 있는 마을, 집, 길, 산과 어우러져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하다.

 

 

잠시 뒤 비행기가 산 위를 가볍게 날아오르고

전형적인 네팔 산악 마을의 풍경인 계단식 다랑이 논이

한국이 가을 들녘처럼 누우렇게 익어가고 있다.

 

 

 

한 20여 분 쯤 떠 있은 것 같은데 비행기는 벌써 착륙을 준비중이다.

착륙직전 창밖으로 거대한 산군이 펼쳐지면서 기체가 주춤하고 흔들리더니

비행기가 눈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을 하는게 아닌가.

순간 엊그제의 사고가 떠올랐다.

루클라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산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 해 정면의 산으로 부딪혔다는 신문기사가 오버랩되며 온몸이 순간 경직 되 옴을 느낀다.

 

‘이놈의 생각’, 생각이 공연한 공포감을 또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 일 없이 물론 잘 도착을 했지만,

생각이란 놈은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엊그제 있었던 사고를 끄집어냄으로써

계속해서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가 조금만 주춤 거려도 '혹시나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고,

조금만 조종사가 딴짓을 해도 '저 사람이 저러다 어쩔려고' 하며

혼자서 생각으로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상황에

자동적으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온갖 망상 분별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마구잡이로 끄집어내는 생각들은

별로 의미 없고 쓸모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화가 날 때 보면 화가 날만한 상황이 생기면 자동 반사적으로 욱 하고 올라오듯이

생각도 마찬가지로 온갖 상황이나 조건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기억 속 흔적들을 끄집어내 연관된 것들을 막 의식의 표면으로 쏘아 올린다.

꿈처럼이나 아무런 질서도 없이 언뜻 비슷한 기억들은 죄다 끄집어내고 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생각의 속성이다.

이처럼 생각은 과거의 기억을 먹고 산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과거의 생각들이 솟구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충만한 자리를 놓치고 만다는 사실이다.

 

생각은 늘 그런 방법으로 우리 내면의 본연의 평화와 고요를 밀어내곤 한다.

한 번 그 늪에 빠져 버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생각의 의미 없는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현존(現存)에서 오는 충만한 삶의 에너지는 그 기운을 잃고 만다.

 

생각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너무 생각이나 판단에 의존하려 하지 말라.

과거의 기억들로 오늘을 판단하거나 과거의 색안경으로 지금 이 순간을 평가하지 말라.

무심(無心)의 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보라.

생각이 놓여지는 순간 우리 마음은 짧은 평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생각이 힘을 잃고 대신 그 자리에 무심과 관조(觀照)가 빛을 비출 때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바로 그 때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나,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번뜩이는 창의,

그리고 기억과 사고 너머의 깊은 존재의 심연 속에서 지혜의 가르침들이

직관적이고도 창조적인 영감의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생각과 기억이라는 과거의 잔재,

또 계획과 바람과 욕망이라는 미래의 잔재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존의 순간에 깃드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한 생각으로 너무 근심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생각과 기억이 만들어 내는 쓸데없는 것들일 뿐이다.

 

그래서 어니 젤린스키는 그의 책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것,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 이라고 말했다.

결국 걱정은 제로라는 말.

본래부터 근심이나 걱정이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빠져 공연히 근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렇게 올라오는 생각들을 바라보며 몸의 경직이 풀리고 있는데

곧바로 비행기는 이륙을 마쳤다.

착륙 절차도 아주 간단하고 그 시간도 매우 짧다.

쿠궁 하고 비행기가 땅으로 구른지 불과 2~3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비행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바삐 내린다.

 

비행기를 나서는 순간, 루클라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진한 물감을 풀어낸 듯 강한 콘트라스트의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집들이

포근히 둘러싸인 산 아래 소박하게 누워 있다.

 

 

비행장 한 켠 언덕에는 두 명의 군인이

마을을 배경으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20여 명의 함께 내린 동행자들이 모두들

여행자거나 가이드, 포터다 보니 앞으로 이들과 꾸준히 만날 것 같은 느낌.

 

 

일반적으로 개인 여행자들은 루클라에 도착해 포터나 가이드를 구하곤 하는데,

단체 여행자들은 여행사에서 구해 준 가이드와 포터를

카투만두에서부터 그들의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면서 함께 오기도 한다.

물론 비행기표는 여행자들의 반값 정도로 저렴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투만두-루클라 노선의 왕복 비행기 가격이 24만원 정도이니

10만원은 넘는 지출을 감행하면서라도 2주 이상을 함께 먹고 자며 지내고 의지해야 할 가이드와 포터를

믿을만한 여행사를 통해 데려오곤 하는 것이다.

 

공항 주변에는 포터와 가이드를 알선해 주겠다는 현지 여행사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루클라 공항 밖에서는 포터와 가이드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주로 포터는 미화 하루 10달러, 가이드는 15달러 전후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나는 다행히도 카투만두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재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오랜 벗 라케스의 도움으로 중간 소개업자나 수수료를 떼어가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하루 600루피에 좋은 포터를 소개 받은 터라

그를 만나러 루클라 시내의 쿰부롯지로 향한다.[목탁소리(www.moktaksori.org) 법상]

 

[루클라 공항 풍경]  

 

 [루클라 공항 활주로와 루클라 마을]


Posted by 법상

인도, 라다크 지역과
네팔,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쿰부 지역
그리고 미얀마를 순례하고,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인도, 라다크 지역, 판공초 호수 

 

  티벳의 포탈라궁을 본떠 만든 라다크지역의 불교 사원, 쉐이곰파 

 

  판공초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마을 

 

   라다크 레가 내려다 보이는 남갈체모 곰파

 

 

  라다크 딕쉐곰파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초원 

 

  쿰부지역 순례에서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로부체 가는 길 

 

  에베레스트 라운딩 중 고쿄 롯지에서... 

 

  미얀마 버강의 한 파고다에서 바라본 일몰 

 

  미얀마 버강의 파고다 순례 

 

 

오랜 순례 끝에
다시 절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그대로 입니다.

그 엄청난 풍경들과
장엄한 아름다움들을 보고 왔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동안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생생하고 쨍한 아름다움들이
희말라야나, 라다크, 바간이나 부처님 성지
못지 않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으로
생경하리만치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풍경 못지 않게
작고 사소한
절 주위의 풍경들이
하나 하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지난 3개월 간의 일들이
그저 지난 밤
한 순간 꿈인 것 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존재가 이 도량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아,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잃은 사람마냥
모든 것이 하얗게 느껴지면서
억지로 떠올리기 전에는
뭐 별 일 없었던 것 처럼
이렇게 다시 건강히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모든 것들이
생각했던 대로 잘 되었던 것 같네요.
물 흐르듯이
큰 어려움 없이
순리처럼 3개월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음 속에서
걱정해 주고, 힘이 되어 주고,
함께 길을 걸어 주셨던
목탁소리 법우님들과
또 많은 인연 닿는 분들의 염원 덕분이
아닌가 하고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마음으로 염원을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기에
이렇게 건강히 돌아와
법우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고 났더니
새로운 일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다음 달 초에
전라도 광주로 절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전라도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고,
너무 먼 탓에
늘 마음 속에서만 품고 지냈던 곳이라
한번쯤 꼭 가 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진짜로 가게 되었네요.

다음 주에도 무슨 행사가 있고,
그 다음 주에 바로 거처를 옮겨야 하다보니
이래 저래 인연 지은 분들과 정리도 하고,
또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인연도 짓고,
그러다 보면 또 조금 바쁘겠네요.

인도에서, 희말라야와 미얀마에서
담아 온 이야기들은
시간이 되는데로
하나 하나 내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다녀 온 때가
여행자들에게는 비수기 때다 보니
홀로 조용히 다닐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니면서 끄적여 놓은 글들이 있어
한동안 지겹도록
별것 없는 여행기와 사진들을
감상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온 터라
찍어 온 사진 정리도 못 했네요.
인도 라다크와 네팔의 설산
그리고 미얀마의 사진 몇 장을 올려드립니다.

 


  미얀마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양곤의 쉐더공 파고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