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선현기청분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함.

善現起請分 第二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과 함께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 어깨에 가사를 수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공경스럽게 두 손 모아 합장하여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모든 보살들이 불법을 잘 전하도록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고 있느니라.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와 선여인이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그대에게 설하리라. "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쁜 마음으로 듣고자 합니다."


선현기청분은 말 그대로 선현이 가르침을 청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선현이란 수보리를 말한다. 산스크리트 원문은 ‘수부티’(Subhuti)로 나와 있는데 그 이름이 가진 의미를 보면 ‘착한 존재’ 혹은 ‘잘 나타내 보인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의미로 옮기면 ‘선현기청분’이란 제목에서처럼 ‘선현’이 되고, 본문에서처럼 원어의 발음만 따서 ‘수보리’로 옮길 수도 있다. 본문에서 구마라집은 주로 수보리로 옮기고 현장은 선현으로 옮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그 때 그 때 제자들의 간청에 의하여 설법을 하고 계신다. 많은 경전에서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이유도 이처럼 제자들이 부처님께 궁금한 것을 여쭙고 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금강경에서는 장로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하고 그에 답변하시는 모습을 부처님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난 존자가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과 함께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 어깨에 가사를 수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공경스럽게 두 손 모아 합장하여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해공제일이라 불린다. 해공제일이라는 말은 공의 이치를 가장 밝게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시허망’, ‘여몽환포영’ 등 공의 이치를 열어 보이고 있는 금강경의 법문을 청하는 제자가 해공제일인 수보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수보리는 해공제일에서도 알 수 있듯 공의 이치에 밝은 분이며, 아라한과를 증득하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수보리의 행동 하나 하나 또한 앞의 법회인유분에서 밝힌 것처럼 온전히 깨어있는 행동이며, 이미 도착한 이의 궁극의 순간 순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을 가만히 묘사함으로써 부처님의 깨어있는 행을 보여준 것처럼, 여기에서도 아난은 수보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까지 세심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로 수보리 또한 부처님과 똑같이 좌선에 들어있다가 공양 때가 되어 가사와 발우를 수하고 부처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사위성으로 들어가 탁발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공양을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걷으신 뒤 발을 씻고 부처님 곁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부처님 곁에서 이러한 부처님의 깨어있고 온전한 모습을 지켜보던 수보리는 부처님에 대한 한없는 감사와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그 순간 한생각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그리하여 수보리는 아주 천천히 마음을 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한없는 공경스러움으로 합장하여 법을 청하는 예를 올린다.
어쩌면 이 질문은 수보리 개인만의 질문이 아닐 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해공제일인 수보리는 이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제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제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의 모든 도반들의 마음을 읽고 그 의문을 대신해 질문하기도 한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도반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점을 모두를 대신해 부처님께 사뢰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바른 제자는 질문이 떠오른다고 답을 구하는 마음에 미리부터 얻어 들을 답변에 마음이 먼저 가 있지 않다. ‘어떤 답을 주실까’ 하는 조급한 마음이 없다. 온전히 깨어있는 행으로써 천천히 일어나기만 하고, 가사를 입기만 하며, 합장 공경을 하고, 질문 할 뿐이다. 이 모든 순간 수보리는 철저하게 깨어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모든 보살들이 불법을 잘 전하도록 부촉하십니다.

늘상 보아오던 부처님의 일상이지만, 또한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지만 수보리는 그러한 겉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이면 깊이에 한없는 지혜와 자비로움으로 충만해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경이로움과 희유함을 느끼고 있다. 겉 모습으로써의 부처님이 아니라 온 우주 법계에 두루 미치고 있으며 그것 자체가 되어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한없는 지혜로움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이렇게 많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하나같이 잘 보살펴 주시고 자비로써 감싸주시는 모습에 희유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수많은 보살 수행자들을 잘 보살피고 이끄시며, 또한 그들에게 내 수행의 완성으로 끝내지 말고 세상의 일체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을 밝은 가르침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부촉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즉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들어선 모든 수행자들을 밝은 깨달음으로 안내하시며, 또한 그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고, 감싸주시며 거두어 주고 계신다.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호념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수행자들에게 또한 당부하여 부촉하고 계신다. ‘내가 너희들을 밝은 깨달음으로 안내하겠노라. 너희들을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잘 보살피고 감싸주며 호념하겠노라. 그러나 이러한 여래의 호념 아래에서 너희들은 너희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수행하여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너희들처럼 보리심을 발한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않은 많은 어두운 중생들을 위해, 내가 너희를 호념하듯 너희들도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며 잘 감싸주고 호념해야 할 것이다.’ 바로 수보리는 이러한 부처님의 호념과 부촉을 보면서, 부처님의 무량수 무량광 끝없이 펼쳐지는 자비로움에 경이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수보리 또한 이러한 부처님의 보살피심과 호념하심 속에서 이렇게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었으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께 수보리는 어떻게 해서든 은혜에 보답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누구의 도움을 바라는 분도 아니고, 은혜에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을 수보리는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도저히 없는 것인가! 그것은 단 한 가지 부처님께서 수많은 보살들을 잘 보호하시고 깨달음으로 이끄셨던 것처럼, 제자들 또한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않은 수많은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의 그것과 똑같은 자비로움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호념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만이 수보리와 또 다른 수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의 은혜로움에 보답하는 길이다.
부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은 이와 같이 서로 하나가 되어 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간절히 부촉하시며, 제자들 또한 부처님의 부촉에 마땅히 흔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니 그런 마음은 이미 둘이 아닌 마음으로 이심전심 통하여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모든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로움과 보호하심에 한없는 감사를 해야 하고, 또한 그러한 부처님의 호념에 보답하는 길은 스스로 밝게 깨닫는 길과 모든 중생들을 섭수하는 일인 것이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너희들 스스로 밝게 깨달으라는 말씀을 생략하고 제자들에게 모든 중생들에게 법을 잘 전하도록 부촉하시는데 중점을 두신 이유는 지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제자들 상당수는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한 이든, 아니면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의 길로 들어선 수행자든 모든 이들을 부처님은 하나같이 잘 호념하고 계시며, 또한 모두에게 부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의 의미는 모든 보살 수행자들을 상구보리로, 깨달음으로 잘 이끌어 주신다는 의미이며, ‘모든 보살들이 불법을 잘 전하도록 부촉하신다’는 의미는 모든 보살 수행자들에게 하화중생을 잘 실천하시도록 이끌어 준다는 의미인 것이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우리 모든 수행자들에게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부촉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마땅히 너희 수행자들을 호념할 것이니 너희들은 나의 호념 아래에서 열심히 닦고 정진하여 위로는 깨달음을 증득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을 섭수하여 깨달음의 길로 안내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신 것이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피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고 있느니라.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와 선여인이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그대에게 설하리라. "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쁜 마음으로 듣고자 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녀인’이란 마땅히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수행의 길로 들어선 모든 보살들이란 의미다. 여기에서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란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구마라집의 번역에서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현장의 번역에서는 ‘발취보살승’으로 번역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상정등정각으로, 이는 ‘더 없이 높고, 비길 데 없는 바른 깨달음의 마음’이란 의미로, 한 마디로 말하면 발보리심이라 할 수 있다. 즉, ‘보리’가 깨달음을 의미하니, 발보리심은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깨닫겠다는 마음을 일으킨’이다. 현장 번역의 발취보살승이 범어의 원본의 의미와 좀 더 가까운데, 이는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범어 원본과 현장, 구마라집의 번역을 보았을 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한’ 이라는 것은,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이라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좀 더 쉽게 해석해 본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더 없이 높고 비길데 없는 바른 깨달음’이니 ‘최상의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했다는 말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발심한’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남자 선녀인이란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 혹은 ‘불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불법에 귀의한 남자와 여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선남자와 선녀인’이란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살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들로, 여기에서는 첫째, 이미 깨달음을 얻은 보살의 의미와 둘째로, 아직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초발심이라도 보리심을 발한 모든 수행자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두 가지 모든 종류의 수행자들의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은 두 가지 수행자 중 전자의 의미, 즉 이미 깨달음을 얻어 보살이 된 수행자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제자들도 있으며, 수보리처럼 이미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보리는 두 가지 의미에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지만 보리심을 발한 모든 수행자들을 위해 질문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처럼 깨달음을 얻었지만 열반적정의 저 언덕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언덕에 남아 하화중생의 발원을 가진 보살들을 위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수행자는 모두 상구보리(저 언덕) 하화중생이라는 공통된 발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발원의 성취를 위해 현재 이 언덕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 수행자 모두에게 중요한 법문으로 다가온다.

수보리는 부처님의 호념과 부촉을 찬탄하면서 이렇게 묻고 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선남자 선녀인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수행해 나가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 질문이 바로 선현기청의 내용이며, 이에 답변을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금강경의 본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수행자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수행하며, 다스려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이야 말로 보리심을 발한 모든 보살 수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물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구마라집의 번역에서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지’ 다시 말해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만 나오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의 물음은 생략되고 있는데 범어 원전에서도 등장하고 현장의 번역에서도 ‘수행’으로 번역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말과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의미가 비슷하기 때문에 생략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분을 해석할 때 보통 항복받는다는 의미가 선뜻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 항복받는다는 의미는 ‘마음이나 생각을 잘 다스려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쉽게 말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 수행을 흔히 ‘마음공부’라고 이야기를 한다. 결국 이 세상 그 무엇이라도 화엄경의 말씀처럼 마음에서 나왔으며 이 마음이 세상을 짓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 마음을 잘 다스려 본래 마음자리를 되찾는 것이 마음공부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날뛰는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또한 잘 머무르기 위해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이 마음을 항복받고 다스려 나가야 하는지가 불교 수행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깨달았지만 이 언덕에서 하화중생의 발원을 실천하고자 하는 보살들에게 있어 어떻게 하면 저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려 이 언덕에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지, 이 언덕에서 깨달은 마음과 교화 하겠다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는지, 어떻게 하면 이 언덕에서도 다시는 퇴전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수행해 갈 수 있는지, 저 언덕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고 다스려 발원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른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를 칭찬하시면서, 수보리의 말을 그대로 긍정하고 수보리의 질문에 답변을 하시고자 하면서 선현기청분은 끝을 맺게 된다.



Posted by 법상







제 1, 법회인유분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

法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1250인의 큰 비구 스님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시간이 되자, 가사와 발우를 수하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차례대로 탁발을 하신 다음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셨다. 공양을 마치시고는 가사와 발우를 제자리에 놓으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가부좌를 결하시고 몸을 곧게 세운 뒤 입가에 마음을 집중하시고서.)

법회를 열게 된 연유를 알리는 바로 이 부분, 제 1분이 금강경의 서분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금강경을 주해하신 많은 선승들께서는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부처님 최상의 설법이며 32분까지의 모든 가르침이 사실 이 제 1분에서 다 설해 마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실만큼 제 1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설한 것이 없고, 우리가 공부해야 할 만한 그 어떤 가르침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저 평범한 부처님의 일과를 잠깐 이야기 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이러한 부처님의 일과를 단순하게 겉모습만 본다면 깨달음의 한 줄 작은 빛도 보기 어려울 것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이러한 하루 일과를 온전히 살고 계시는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면 수많은 선사 스님들의 그러한 고결한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마음의 눈을 맑게 씻고 2500여 년 전 부처님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보도록 하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여시아문’ 경전을 몇 번이라도 독경하고,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경전의 앞 부분에 늘상 등장하는 이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경전이 부처님께서 스스로 쓰신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들은 제자가 부처님께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경전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이신 아난존자에 의해 암송되고 옮겨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시고 20여 년 간을 홀로 전법의 길을 걸으셨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고 나니 가르침을 배우려는 제자들도 나날이 많아지고, 또한 부처님의 연령 또한 많아지고 있었기에 제자들이 시자를 둘 것을 간곡히 권유하셨고, 부처님께서는 이윽고 허락을 하셨다. 제자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아난 존자는 총명하며 기억력도 뛰어나고 성품도 온화하였으며 외모도 출중하고 또한 부처님의 사촌동생인지라 부처님을 곁에서 시봉하기에는 적임자로 판단되었다.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하시고, 35세에 성도하셨으며, 55세 즈음에 비구 아난을 시자로 두었으니 아난은 부처님께서 80세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약 25년간을 곁에서 시봉하였다. 가장 오랜 기간 부처님 시봉을 하다보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아난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열반을 하시자마자 상수제자인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와 우파리존자를 위시하여 500아라한을 모아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게 되었다. 물론 그 때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 존자의 역할이 중요하였을 것임은 분명하다.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 존자가 가르침 즉, 법을 담당하고, 출가하기 전에 이발사였던 우파리존자가 처음 출가하는 수행자들의 머리를 깍아 준 인연으로 율에 대하여 가장 많이 들었기에 율을 담당하여 결집을 이루게 된 것이다.
경전을 결집하는 방법은 아난이 먼저 일어나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 대중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 때 아난은 언제라도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라고 시작함으로써 내 생각대로 부처님 가르침을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고, 부처님께 들었던 사실만을 온전히 대중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였다. 이 사실은 불교 경전들이 비교적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혼란됨 없이 잘 이어져 내려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말을 들었을 때, 백이면 백 다 제각기 자기 색안경으로 걸러 알아듣기 마련이다. 자기 판단과 고정관념이 개입되기 쉽고 그렇게 되면 특히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는 데 있어서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난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판단이 개입됨이 없이, 아무런 가감도 없이 그대로 부처님께 들은 것들만 있는 그대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이 무엇을 말할 때 대부분 ‘내 말’인 것처럼 이야기하기 쉽다. 물론 내 말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말은 사회에서, 학교에서, 책에서, 스승님들에게서 얻어 들은 말들이다. 그런 것들을 우린 오직 내 잣대, 색안경에 비추어 걸러내어 ‘내 식대로’ 조합하는 역할 정도를 할 뿐이다. 그리고는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얻어 들은 것을 ‘내 생각’이라고 고집하며, ‘내 말’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자신 스스로도 그것이 온전한 내 생각인 줄로 착각하고, 옳은 생각인 줄로 착각을 하고 산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혹은 부처님 말씀을 누군가에게 들려 줄 때, 아난 존자의 이런 겸손함과 진실함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또한 말을 순수하고 참되게 전달할 수 있으며, ‘내가 옳다’라는 아집와 아상이 비워진 텅 빈 진실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이야 그저 입가에 떠오르는 말들을 아무런 걸러짐 없이 그것도 자기 생각인 양 마구 끄집어내다 보니 여러모로 번거롭고 복잡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내용을 내 말인 양 마구 토해 내다 보니, 자신 내면에서 침묵과 명상을 통해 향기롭게 피어오르는 진실을 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팔만대장경이라는 수많은 경전을 이렇게 생생한 부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데는 아난의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감 없고 진실된 아난의 음성은 이 다음 구절에서부터 더욱 빛을 발한다.

한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1250인의 큰 비구 스님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시간이 되자, 가사와 발우를 수하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차례대로 탁발을 하신 다음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셨다. 공양을 마치시고는 가사와 발우를 제자리에 놓으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가만히 이 광경을 그려보라. 1250인이라는 대식구가 저마다 보리수나무 아래 차분히 명상에 들어 있다. 아마도 아침 햇살 내리기 전 새벽녘에 밝게 깨어 저마다 좌선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공양 때가 되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처님을 위시하여 모든 비구스님들께서 가사를 수하고 발우를 들고는 차례로 줄지어 마을로 향한다. 배가 고파서 조금 빨리 걷고 싶더라도 ‘배고픈’ 마음을 관하며 차분히 대열에 서서 한 발 한 발 차분히 무겁고도 신중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을 것이다. 1250인이라는 수많은 스님들이 걷고 있지만 그 걸음 걸음에는 한없는 고요와 침묵만이 향기롭게 대열을 감싸고 있다.
사위성 큰 마을에 다다르자 스님들은 차례 차례 골목 골목으로 나뉘어 부처님께서 설법해 주신 것처럼 분별심을 놓고 부잣집, 가난한 집을 따질 것 없이 처음 정한 집에서부터 차례로 일곱 집을 걸어 탁발을 한다. 어쩌면 부처님께서 사시 때 일종식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음식을 준비해서는 부처님과 그의 청정한 제자들이 오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아직 승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은 저마다의 탁발한 음식이 다름을 보고 분별심을 일으킬지 모른다. 음식의 맛과 양 또 그 종류에 따라 때로는 탐심이 올라오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곧 다른 많은 스님들이 그렇게 하시듯 그 마음을 관찰하고는 분별심을 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고요히 탁발을 하시고는 다시금 본래 자리로 돌아오셔서 저마다의 자리에 앉아 공양을 할 것이다. 공양을 하기 전에 잠시 저마다 침묵으로써 명상을 할 것이다. 이 음식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수많은 인연, 온 우주 법계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은은히 피어오르게 할 것이다. 행여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들은 도반이 곁에 있다면 내 발우에 담긴 몸에 좋은 음식이나 고기 등을 나누어 줌으로써 약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때때로 맛에 탐착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를 잘 관하며 고요히 공양을 할 것이다. 공양이 끝나면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금 고요히 선정에 들 것이다.

이러한 아난의 묘사에 어디 시끄럽고 복잡스런 느낌이 있는가. 이 많은 스님들이 일상을 살아가지마는 어느 한 구석 시끌벅적한 광경이 아닌 한없이 고요하고 여법한 광경일 뿐이다.
부처님의 시자 아난은 항상 그림자처럼 부처님 옆에 서 있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나가실 때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부처님을 따르고, 공양을 하실 때 말 없이 옆에 앉아 함께 공양하며 항상 부처님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한 부처님에 대한 지켜봄이 있었기에 부처님의 일상 그 자체가 얼마나 큰 깨달음의 순간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보았을 때 시시콜콜해 보이는 이런 사소한 일상까지 아난존자는 경전에서 소중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수많은 선사 스님들께서 이 광경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으며 부처님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하셨던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하루를 돌아보면 어떠한가. 잠이 안 깨니 자명종도 소리 큰 것을 사다가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출근하기 직전 빠듯할 만한 시간에 맞춰놓고 잠에 든다. 시끄런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지 못해 푹 눌러 놓고는 또 자다보니 이만 저만 늦은 게 아니다. 그러니 아침이 얼마나 바쁘겠나. 정신없이 시계 보면서 씻고 화장하고 대충 밥 먹고, 아니 아마도 아침밥도 굶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 후다닥 뛰쳐나가 회사로 학교로 출근을 한다. 하루의 시작이 정신없으니 어찌 하루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저녁 때 동료들과 어울려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쓰러지듯 잠이 들곤 한다.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정신없이 마음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이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금강경 제 일분에 나오는 부처님의 평화롭고 고요한 삶과 우리의 허둥지둥 정신 없는 삶을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하루 일과는 모든 순간 순간이 그대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밥 먹고, 걷고, 씻고, 앉는 이 모든 일들이 어느 하나 소중한 수행 아닌 것이 없으니 따로이 수행이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 어느 한 가지 사소하고 덜 중요한 일이 없이 모든 일과가 그대로 소중한 깨어있음의 행이다. 우리들은 중요한 일이 있고 사소한 일이 있으며,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사소한 일들은 일일이 신경을 쓰지 못하곤 한다.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지간한 사소한 일이나 과정에서의 소소한 일들은 그냥 흘려 보내기 쉽다. 회사에 가야 된다는 목적 때문에 집에서 밥 먹고, 버스를 타고, 회사로 걸어가는 그런 일상은 사소하고 귀찮은 일 쯤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행에 있어 사소하고 중요한 분별은 없다. 낱낱의 모든 일상은 그대로 하나의 소중한 깨달음의 행이 된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밥 먹는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밥 빨리 먹고 나서 좌선에 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이다. 밥 먹는 순간 온전히 밥만 먹는 것이다. 밥 먹으며 다른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렇게 번잡하지 않고, 오직 밥만 드실 뿐인 것이다.
밥을 먹는 순간, 발을 씻는 순간, 걷는 순간, 탁발을 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기에 있다. 매 순간 도착해 있다.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 도착지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뿐, 또 다른 도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일 뿐이다. 그러니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이다. 걷는 순간 오직 걸을 뿐, 탁발을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발을 씻는 순간 오직 씻을 뿐, 빨리 씻고 좌선에 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다. 모든 순간 순간 더 이상 도달할 곳이라고는 없다. 그 순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라.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이러한 점을 일깨우고 계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과라도 매 순간 순간의 삶이 지금 부처님의 삶에서처럼 온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던 ‘평상심이 도’라는 말 또한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선사 스님들께서 부처님의 일상을 언급하신 금강경 제 일분을 두고 깨달음 최고의 순간이며 최상의 설법이라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일상이라도 그 일상이 깨달음의 순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중생들의 평범한 일과가 될 것인가 하는 데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똑같은 일상이라도 온전히 그 순간 집중을 하여 깨어있게 되면 그것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늘상의 일과가 깨어있지 못한 우리들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 금강경의 제 일분이 얼마나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나. 그저 우리들의 삶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음의 눈을 맑게 씻고 2500여 년 전 부처님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 마음을 살짝 엿보게 되면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모든 일과가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겉모습은 서로 같더라도 그 내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도 배 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고 역대의 고승들도 지금의 우리들도 모두 배 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듯 평범하고 똑같아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내면에 중심을 세우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보내느냐 그저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느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롭게 깨어있는 낱낱의 일들이 곧 좌선을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일상을 살아감이 그대로 좌선하고 앉아 마음을 집중하는 것과 둘이 아니라고 말이다. 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고 말이다.

가부좌를 결하시고 몸을 곧게 세운 뒤 입가에 마음을 집중하시고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구절인데, 아쉽게도 우리가 많이 독송하고 있는 구마라집의 번역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일대일로 직역하는 것을 중시하는 현장스님의 번역이라던가, 진제, 보리유지 등의 다른 한역 금강경본에서는 모두 번역이 되고 있으며, 빠알리어 경전에서도 이 부분은 잘 드러나 있음을 볼 때, 분명 이 부분은 금강경의 원본에서는 나타나 있는 경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금강경 제 일분에서 말하고 있는 부처님의 일상 하나하나가 그대로 가부좌를 결하고 앉아 마음을 집중하는 좌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 부분에서는 말하고 있다. 앉아서 하는 좌선은 중요하고 법 먹고, 탁발하고, 발을 씻는 등의 일은 중요치 않은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낱낱의 행위가 그대로 마음집중의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양이 끝나시고 부처님께서는 여느 때처럼 가부좌를 결하시고 몸을 곧게 세운 뒤 입술 바로 위쪽으로 호흡이 들고 나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시며 앉아 계신다. 호흡이란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스님은 이 부분을 ‘주대면념’이라고 하여, ‘전면에 마음을 집중하시고서’라고 해석을 했다. 빠알리어에서는 ‘전면’이라고 해석한 부분을 원본에서 ‘무카(mukha)’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얼굴, 혹은 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하고, 산스크리트본에서도 무카는 입이나 얼굴을 나타낸다고 한다. 전후 사정을 보았을 때 아함경 등에서 나오는 사념처 수행에 빗대어 ‘얼굴에 마음을 집중한다’거나 ‘전면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해석 보다는 ‘입술 위 부분의 호흡이 들고 나는 곳에 마음을 집중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호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순간 온전히 마음을 집중하여 깨어있다고 하는 점에 말씀의 중심을 새겨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금강경의 제일분에서는 부처님의 평범한 하루 일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가르침을 열고 있다. 우리들의 삶과 부처님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똑같이 먹고 자고 걷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깨어있는 정신으로 오직 그것을 할 뿐이며, 오직 매 순간 순간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매 순간 다른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또한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보며 우리의 삶도 부처님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외양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내면의 빛을 현실에 피어오르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 또한 그대로 깨달음을 삶 속에서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꾸 어디로 갈까 망설이지 말고, 자꾸만 욕망을 일으켜 도달할 곳을 찾지 말고, 번뇌와 집착으로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삶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계신 것이다.

매 순간 순간 깨어있으라. 그것이 부처님의 행이고, 금강경의 실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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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방대한 경전 가운데 어떻게 이토록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실천적인 가르침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들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틈틈이 모았던 노력의 결실이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짧지만 강한 여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단 한 줄의 법문!

어느 장,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좋다. 때때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삶에서 힘겹고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그저 마음 가는 주제를 찾아 읽어보아도 좋다. 누구나 힘들고 괴로운 일 때문에 상실에 빠지거나 오랜 슬럼프로 괴로워할 때 문득 뽑아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 수간 광명을 만난 듯 나에게 꼭 필요한 글을 읽게 되지 않는가. 부처님의 말씀은 짧더라도 그 안에 일평생을 사유하고도 깨닫지 못할 무한한 깊이의 진리를 품고 있다.

누구나 때때로 책 한 권이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다. 혹은 책의 어느 한 구절에서도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한 큰 스승을 만나기도 한다. 또 한참을 괴로운 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고 지쳤을 때 문득 펼친 경전의 어느 한 구절이 노곤하던 심신을 일시에 제거하면서 벅찬 감동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떤 일로 이 고민 저 고민을 하며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할 때 어떻게 부처님께서 알고 나에게 법문을 들려주시려는 듯 문득 펼친 경전의 경구에서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자아내는 때도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야말로 얼마나 광대무변한 진리의 보고인가. 그야말로 인류에서 또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모든 철학, 종교, 사상,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성인들도 찾아내지 못한 수많은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우리가 그 방대한 경전 가운데 어떻게 이토록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실천적인 가르침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들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틈틈이 모았던 노력의 결실이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뽑아놓은 가르침들은 주로 시적인 운율과 쉽고 간결한 이해, 그리고 실천적인 게송들을 담도록 노력했다. 짧으면서도 우리 삶에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게송, 그리고 현실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에 직접적인 해답을 주는 게송, 초심자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고 쉽지만 불교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송 등을 뽑고자 노력을 했다.
물론 경전은 초기경전 아함경에서부터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들까지 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모아 보았으며, 아마도 불교를 조금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익숙히 들어 보았을 법한 게송도 더러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한 아름다운 가르침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가르침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조금씩 사족을 붙였다. 해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삶 속에서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부분들을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내어 삶과 신행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관점에서 적어 보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뽑은 주제들은 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눈앞의 현실인 가정, 직장, 사랑, 소유, 재산, 자식, 선악, 언어 등에 대한 주제들에서부터 나아가 부자, 가난, 나눔, 죽음, 고독, 효도, 술, 외도, 점과 관상, 음식, 환경, 종교화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또한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모르는 번뇌인 증오, 원망, 질투, 비난, 탐욕, 집착 등에 대한 이야기, 일상생활을 바꿈과 동시에 수행과 기도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명상, 선, 기도, 정진, 깨어있음, 관조, 자비 등의 수행 덕목들도 함께 다루어 봄으로써 모름지기 불교 게송을 통한 전체적인 불교 공부와 생활수행이 가능하도록 꾸며 보았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헌공 올리며 발원해 본다.


저자 법상(法相)

자연과 더불어 충북 제천의 산골 작은 마을에서 어린 날을 보낸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 불심도문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다. 생생한 삶이 곧 수행처라는 생각으로 삶과 하나 되는 수행을 실천해 오다 인연 따라 인터넷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영성을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조계종 포교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보신문’ 등에 명상칼럼을 연재했으며, ‘05년에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다. ‘06년 겨울 강원도 양구의 산골 작은 암자 도솔사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놓아버림과 내적 휴식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
불교출판문화협회에서 선정하는 ‘2005년 올해의 불서 10’에 『반야심경과 마음공부』가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생활수행이야기』 『마음을 놓아라 그리고 천천히 걸어라』 『관심』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금강경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목탁소리 : http://www.moktaksori.org


사진 법기(法起)

스님, 광주 관음사 주지,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찰이 주는 평안을 사진에 담고 그 안에 담긴 작은 깨침의 이야기들을 목탁소리 홈페이지 ‘법기스님의 포토에세이’를 통해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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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방대한 경전 가운데 어떻게 이토록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실천적인 가르침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들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틈틈이 모았던 노력의 결실이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짧지만 강한 여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단 한 줄의 법문!

어느 장,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좋다. 때때로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삶에서 힘겹고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그저 마음 가는 주제를 찾아 읽어보아도 좋다. 누구나 힘들고 괴로운 일 때문에 상실에 빠지거나 오랜 슬럼프로 괴로워할 때 문득 뽑아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에서 수간 광명을 만난 듯 나에게 꼭 필요한 글을 읽게 되지 않는가. 부처님의 말씀은 짧더라도 그 안에 일평생을 사유하고도 깨닫지 못할 무한한 깊이의 진리를 품고 있다.

누구나 때때로 책 한 권이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다. 혹은 책의 어느 한 구절에서도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한 큰 스승을 만나기도 한다. 또 한참을 괴로운 일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고 지쳤을 때 문득 펼친 경전의 어느 한 구절이 노곤하던 심신을 일시에 제거하면서 벅찬 감동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어떤 일로 이 고민 저 고민을 하며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할 때 어떻게 부처님께서 알고 나에게 법문을 들려주시려는 듯 문득 펼친 경전의 경구에서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자아내는 때도 있다.

부처님 가르침이야말로 얼마나 광대무변한 진리의 보고인가. 그야말로 인류에서 또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모든 철학, 종교, 사상,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성인들도 찾아내지 못한 수많은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우리가 그 방대한 경전 가운데 어떻게 이토록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실천적인 가르침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들을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틈틈이 모았던 노력의 결실이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뽑아놓은 가르침들은 주로 시적인 운율과 쉽고 간결한 이해, 그리고 실천적인 게송들을 담도록 노력했다. 짧으면서도 우리 삶에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게송, 그리고 현실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에 직접적인 해답을 주는 게송, 초심자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고 쉽지만 불교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송 등을 뽑고자 노력을 했다.
물론 경전은 초기경전 아함경에서부터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들까지 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모아 보았으며, 아마도 불교를 조금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익숙히 들어 보았을 법한 게송도 더러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한 아름다운 가르침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가르침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조금씩 사족을 붙였다. 해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삶 속에서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부분들을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내어 삶과 신행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관점에서 적어 보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뽑은 주제들은 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눈앞의 현실인 가정, 직장, 사랑, 소유, 재산, 자식, 선악, 언어 등에 대한 주제들에서부터 나아가 부자, 가난, 나눔, 죽음, 고독, 효도, 술, 외도, 점과 관상, 음식, 환경, 종교화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또한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지 모르는 번뇌인 증오, 원망, 질투, 비난, 탐욕, 집착 등에 대한 이야기, 일상생활을 바꿈과 동시에 수행과 기도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명상, 선, 기도, 정진, 깨어있음, 관조, 자비 등의 수행 덕목들도 함께 다루어 봄으로써 모름지기 불교 게송을 통한 전체적인 불교 공부와 생활수행이 가능하도록 꾸며 보았다.

모쪼록 이 책이 불교를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평소 무겁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경전에 대한 부담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며, 개개인의 삶에 작은 지혜와 행복을 안겨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헌공 올리며 발원해 본다.


저자 법상(法相)

자연과 더불어 충북 제천의 산골 작은 마을에서 어린 날을 보낸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 불심도문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다. 생생한 삶이 곧 수행처라는 생각으로 삶과 하나 되는 수행을 실천해 오다 인연 따라 인터넷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영성을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조계종 포교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보신문’ 등에 명상칼럼을 연재했으며, ‘05년에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다. ‘06년 겨울 강원도 양구의 산골 작은 암자 도솔사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놓아버림과 내적 휴식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
불교출판문화협회에서 선정하는 ‘2005년 올해의 불서 10’에 『반야심경과 마음공부』가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생활수행이야기』 『마음을 놓아라 그리고 천천히 걸어라』 『관심』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금강경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목탁소리 : http://www.moktaksori.org


사진 법기(法起)

스님, 광주 관음사 주지,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찰이 주는 평안을 사진에 담고 그 안에 담긴 작은 깨침의 이야기들을 목탁소리 홈페이지 ‘법기스님의 포토에세이’를 통해 나누고 있다.

Posted by 법상
한 가지 소식이 있어 전합니다.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에 대한 의견들이 많았었습니다.
주로 사진들이 너무 많아서 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가격이 비싸다보니 사거나 선물하기도 망설여진다는 의견들이
많았었습니다.

아마도 출판사에도 그런 의견들이 개진되었었나 봅니다.
출판사에 사진을 다 빼도 좋고 흑백으로 하고,
표지도 하드보드지로 안 하고 최대한 값을 줄여줄 수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출판사에서 그런 단점을 보완하여
사진을 줄이고 흑백으로 하고 표지와 속지 종이질도 조금 낮춰
본래 나왔던 것은 계속 내면서
새로 '보급판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만들어
가격을 낮추어 보겠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이 너무 비싸서 저도 좀 독자분들께
죄송한 감이 있었는데,
그래도 출판사에서 기존의 책이 안 팔리더라도
보급판을 만들어 보다 많은 분들께 보급해 드리겠다고 해 주셔서
이렇게 보급판 금강경과 마음공부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15,500원으로 최종 결정된 '금강경과 마음공부(보급판)'이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아래의 인터넷 서점을 클릭하시면
10% 할인된 금액인 13,950원으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탁소리에서 10권 이상 구입하시는 분들께는
저자에게 줄 수 있는 가격, 약 70% 가격인(보급판이라 60%는 어렵다네요)
10,500원까지 출판사에서 보내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10권 이상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권수와 주소, 전화번호와 받으실 분 성함을 적어서
아래의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출판사로 연락을 하여 택배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재는 책을 받으신 뒤에 책 안에 들어있는 출판사 계좌로 하시면 됩니다.

책 주문 이메일 :
buda1109@hanmail.net



금강경과 마음공부 보급판(인터파크)
금강경과 마음공부 보급판(yes24)
금강경과 마음공부 보급판(교보문고)
금강경과 마음공부 보급판(리브로)
Posted by 법상
금강경과 마음공부 동영상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숲이 더없이 생기롭습니다.
흙이 질펀하게 감로의 물을 빨아들여
봄의 생명을 잉태하는데 더욱 바빠지겠습니다.

이곳 강원도는 아직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추워
다음 주 쯤에나 씨앗을 뿌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멀게는 5년 쯤 전부터
또 가깝게는 작년 말부터 뿌려두었던
금강경의 씨앗이
이제서야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금강경과 마음공부'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하여
현재 서점에 베포를 마쳤다고 합니다.

내용이 많다 보니
교정 보고 또 수정 정정도 하고
하나 하나 꼼꼼히 훑어 보면서 다시금 복습도 한다고
5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책 분량이 좀 많아졌습니다.
약 600 페이지 분량이니
이 금강경 공부가 만만치는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쉽게 풀어 쓰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풀어 쓰다 보니
이렇게 길어진 듯 합니다.

이번 원고와 편집은 특히 작년에
함께 네팔 순례를 다녀왔던 도반 스님들께서
함께 도움과 조언도 주셨고,
아울러 네팔에서 찍어왔던 수많은 사진들을
선뜻 베풀어 주셔서
자칫 딱딱해 지기 쉬운 금강경 원고 곳곳에
시원스런 사진들을 많이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도반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출판사에 보내면서
애초에 흑백으로 찍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출판사에서 사진이 너무 좋다고
올컬러로 사진을 살리는 방향으로 편집을 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렸듯이
금강경 독송집 내지는 '금강경 독송 지침서'의 성격으로
'금강경 독송'이라는 작은 책도 함께 출간하였고,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에 함께 붙여서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을 사시는 분들께는
한 권씩 함께 드릴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 배려 해 주셨습니다.

금강경 독송 책에는
금강경 우리말 번역과 한문본을 함께 넣어
금강경 독송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고,
아울러 뒷쪽에는 '금강경 수행을 위한 길잡이 혹은 지침'들을
조금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이번 금강경 책에는
경전을 유포한다는 마음으로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써 주셨습니다.
이렇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금강경 독송을 위한 독송집인 '금강경 독송' 책자와
금강경 해설서인 '금강경과 마음공부' 책을
법보시 하시거나,
영가천도나 사십구재 법보시 용으로 구입하실 경우에는
60% 할인 된 금액으로 출판사에서 보내드린다고 하십니다.

책값이 25,000원이니까,
법보시 할인가는 15,000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에 대해서는
10권 이상 구입하시는 분들께도 15,000원의 금액으로
할인하여 보내드리도록 이야기를 하였으니,
10권이상 법보시 용으로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이메일 (buda1109@hanmail.net)로 주소와 전화번호 권수를
보내주시면 출판사에 연락하여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두권씩 책을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아래의 책 제목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강경과 마음공부(교보문고)
금강경과 마음공부(인터파크)
금강경과 마음공부(리브로)
금강경과 마음공부(yes24)
금강경과 마음공부(반디북)
금강경과 마음공부(영풍문고)
금강경과 마음공부(알라딘)

다음은
출판사에서 보내 온
'금강경과 마음공부'관련 내용들입니다.



인류 정신사의 최고 정점인 금강경과 명쾌한 풀이
『금강경과 마음공부』 (금강경 독송 포함, 양장본)


불교출판문화협회 ‘올해의 불서10’에 선정된 『반야심경과 마음공부』에 이어
5년여에 걸쳐 쓰인 또 하나의 생활 속 경전 실천서
네티즌들이 극찬한 바로 그 책!!

불교출판문화협회 선정 ‘올해의 불서10’에 선정된 『반야심경과 마음공부』를 저술한 법상스님은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출간 5년 만에 반야심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경을 풀이하여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출간했다. 인터넷에서 생활수행도량 ‘목탁소 리(www.moktaksori.org)’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지혜를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면 서 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진 법상 스님은 생활 속에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명상수행과 자연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찾는 깨침의 글들을 조계 종 포교 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보신문’ 등에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진리의 보고, 금강경

『금강경(金剛經)』은 많은 불교의 경전 가운데에서도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경전이다. 『금강 경』은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경』 중 577부에 들어있는 「능단금강분」을 말하며, 그 구체적 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 혹은 『능단금강반 야바라밀경』이다. 이 『금강경』은 600권이나 되는 『반야경』 가운데에서도 경의 중심이 되는 사상인 반야사상, 공사상에 대한 핵심적 가르침을 짧 고 간략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인 『반야경』을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두루 읽혀지는 경전이다.

금강경은 모든 이들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가슴이 뻥 뚫리도록 명쾌하게 풀어주고,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철하게 지적해 주며, 나아가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 는 보기 드문 진리의 보고다.

그런데 그동안 금강경은 그것이 지니는 진리의 가치에 비해 세상에서 너무 외면 받아온 감이 있다. 그 이유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너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금강경』은 해설서를 보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최 대한 이해하기 쉽게, 또한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금강경』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쓰였다.

현재 사람들이 쉽게 접하며 독송하고 공부하는 『금강경』은 요진의 구마라집이 번역한 번역본이다. 이 번역본이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장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 마라집의 번역본이 산스크리트 원전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미흡하거나 내용이 빠져 있는 부분도 더러 있는 것을 감안하여, 경전의 내용에서 꼭 필요 한 부분이라면 산스크리트 원문 및 현장스님의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그래서 더 풍부하고 폭넓으며, 원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장점이 있다.

* 삶속으로 이끌려오는 진리의 말씀

저자는 『금강경과 마음공부』에서 될 수 있는 한 『금강경』을 우리들의 세상으로 끌어내려 우리들의 근기에서 우리들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동안 역사 이래로 많은 해설가들이 금강경을 해석해 왔지만 그 깊이 있는 해석 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금강경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보여 주는 데는 여전히 어렵다는 한계를 넘지 못한 듯 보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강경이라는 경전은 단연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몇 안 되 는 가르침 중 하나다. 금강경은 모든 이들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가슴이 뻥 뚫리도록 명쾌하게 풀어주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구체 적으로 명철하게 지적해 주며, 나아가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 보기 드문 진리의 보 고다. 금강경은 우리를 중심 잡힌 온전한 삶으로 이끈다.

<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향해 쏟아진 네티즌들의 뜨거운 찬사!! >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여러 금강경 강의 책들을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설명해주 신 분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법상스님의 글은 금강경과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스님의 글은 진리를 닮은 물과 같아서 맑고 투명하고 유연합니 다. 도대체 얼마나 수행을 하면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이런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 길상

스님 강의를 보면 세상만사 온갖 시름이 일시에 확 걷히는 느낌입니다. 스님의 강의를 들으니 환희심 이 솟아나며 ‘순간순간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금강경 공부는 하면 할수록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 jikeunhye

희유합니다. 이러한 해설을 듣는 것만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어느 책을 보아도 스님의 해설보다 자세한 설명 은 없었습니다. - 죄 많은 중생

스님의 글은 항상 한꺼번에 읽게 되지 않는군요. 조금 읽다, 감동으로 인하여, 그것을 가지고 내 안으 로 가지고 들어가,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반추합니다. 가슴 저변에서부터 나오는 감격! 금강경 풀이를 이렇게 쉽게, 깊게 해주시는 스님, 감사합니 다. - 본원심

금강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무한한 진리에 온 몸이 전율을 일으킵니다. 법상스님이 올려주시는 금강 경 강설로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불자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야할지, 살아가는데 중심이 섰습니다. 지금까지 어렵다 고만 생각했던 금강경이 너무나 쉽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법상스님의 금강경 강설 공부를 하면서 그 큰 가르침에 때론 환희심에, 때론 가 슴 가득 밀려오는 충만함에, 때론 나의 무명을 참회하면서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친구에게 달려가 금강경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도 했습니다. - 관음행

여시아독(如是我讀)한 것 중 가장 자세히 오늘의 언어로 된 금강경을 만났습니다. 정말 무주상 법보시입니다. 감사합니 다. - 아고타행

이 순간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행운이고 머물 수 있는 즐 거움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혜명화

불교가 이 땅에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 봉배산 숲속

<책속 문장 밑줄 긋기>

* 우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바로 그 ‘무엇’의 실체가 허망하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 내가 목숨 걸고 쟁취하려 했던 바로 그 ‘무엇’이 사실은 그렇게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 바로 그 ‘무엇’에 대한 괴 로움은 끝이 나는 것이다.

* 진리는 그 무엇도 붙잡고 있기 않다. 항상 빈손이며, 텅 비어 있고, 자유롭다. 그런데 다만 우 리 인간들이 스스로 붙잡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내었고 거기에 집착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괴로움은 시작되었다.

* 그 모든 분별을 놓아버려라. 이 세상엔 처음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고, 지금 이 순간에 도 아무 일도 없다. 깨달음을 얻을 ‘나’도 없으며, 내가 해야 할 그 어떤 ‘수행’도 없다. 오직 쉬기만 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게 없 다.

* 참된 수행자란 누구를 닮고자 하는 이가 아니다. 부처를 닮고자 하거나, 큰스님을 닮고자 하거 나 하는 그런 이가 아니다. 참된 수행자는 ‘자기답게’ ‘나 자신’으로써 살아가는 자다.

* 『금강경』을 아무리 잘 공부했고, 수지독송했으며, 다른 이를 위해 수많은 위인연설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 안에 그렇게 했다고 하는 생각과 상이 있다면 전혀 『금강경』을 공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금강경』을 더럽힌 것이다. … 매 순간순간 나의 『금강경』 공부가 『금강경』의 가르침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파괴한 것인가를 잘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 다.

<지은이>

법상(法相)

자연과 더불어 시골에서 어린 날을 보낸 스님은 동국대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심도 문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생생한 삶이 곧 수행처라는 생각으로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www.moktaksori.org)’를 개설하여 많은 이들에 게 수행과 명상, 자연과 환경, 종교와 지혜를 주제로 한 진지한 깨침의 이야기들을 전하면서부터 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생활 속 에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명상수행과 자연 속에서의 조화로움을 찾는 깨침의 글들을 조계종 포교 사이트인 ‘달마넷’, ‘한국일보’, ‘법 보신문’ 등에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05년에는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으며, 불교출판문화협회에서 선정하는 ‘올 해의 불서 10’에 『반야심경과 마음공부』가 선정되기도 했다. ‘06년 겨울 강원도 양구의 산골 작은 암자 도솔사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놓아버림과 내 적 휴식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생활수행이야기』『마음을 놓아라 그리고 천천 히 걸어라』『관심』『반야심경과 마음공부』등이 있다.

목탁소리 : http://www.moktaksori.org

<목차>

서문
금강경, 어떤 경전인가
경전의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제1분 법회인유분 - 법회가 열리게 된 연유
제2분 선현기청분 -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함
제3분 대승정종분 - 대승의 바른 종지
제4분 묘행무주분 - 머무름 없는 묘행
제5분 여리실견분 - 진리의 참 모습을 보라
제6분 정신희유분 - 바른 믿음은 드물다
제7분 무득무설분 -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제8분 의법출생분 - 이 법에 의해 모든 가르침이 나온다
제9분 일상무상분 - 깨달음이란 상도 없다
제10분 장엄정토분 - 정토를 장엄하다
제11분 무위복승분 - 무위의 복은 수승하다
제12분 존중정교분 - 바른 법을 존중하라  
제13분 여법수지분 - 여법하게 받아 지니라
제14분 이상적멸분 - 상을 떠나면 적멸이다  
제15분 지경공덕분 - 경을 지니는 공덕
제16분 능정업장분 - 업장을 깨끗이 맑힘  
제17분 구경무아분 - 구경에 내가 사라지다
제18분 일체동관분 - 일체를 하나로 관하라
제19분 법계통화분 - 법계를 모두 교화하다
제20분 이색이상분 - 형상과 모습을 여의다
제21분 비설소설분 - 설함 없이 설하다
제22분 무법가득분 - 얻을 법이 없다
제23분 정심행선분 - 마음 집중의 수행으로 보리를 얻으라
제24분 복지무비분 - 복과 지혜를 비교할 수 없다
제25분 화무소화분 - 교화하는 바 없이 교화하다
제26분 법신비상분- 법신은 상이 아니다
제27분 무단무멸분 - 단멸함이 없다
제28분 불수불탐분 - 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는다
제29분 위의적정분 - 위의가 적정하다
제30분 일합이상분 - 합쳐진 세계나 부수어진 미진이라는 상을 버리라
제31분 지견불생분 - 지견을 내세우지 말라
제32분 응화비진분 - 응화신은 참이 아니다
Posted by 법상
 [금강경과 마음공부] 서문

 금강경 강좌를 끝맺으며, 또 금강경의 바다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내 안에 깊이 파도쳐 들어오는 한 가지 진한 울림이 있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경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내 삶에 금강경이 들어왔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니 이 세상에 이런 경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큰 축복이며 보배인가 하는 감사의 울림이 그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금강경이라는 경전은 단연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몇 안 되는 가르침이다. 이 경전으로써 인류의 정신은 얼마만큼 진화를 이루어 냈는가.

 처음 금강경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금강경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어렵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말들이 계속되어 반복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금강경을 언뜻 본 사람들은 바로 접고 마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강경은 인간이 사량 분별로 헤아릴 수 있는 그 틀을 완전히 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야말로 금강과도 같은 지혜의 칼로써 인간들의 어리석은 차별심을 모조리 불살라 없애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은 분별심을 깨기 위해 똑같은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또 다시 사람들은 그 언어를 자기 식대로 이해할 것이고, 자기 사량으로 금강경을 판단하고 말 것이다. 언어는 진리를 그대로 전달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에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진리를 표현하려면 언어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사들은 ‘할’ ‘방’을 외치기도 했고, 때로는 침묵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너무 어렵다. 일반인들이 다가서기에는 너무 벽이 높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언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언어로써는 진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어를 쓰면서도 언어를 초월하여 진리를 담아낼 수 있는 언어 아닌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다. 진리를 언어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이 그나마도 최선의 방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언어를 초월하는 진리의 언어, 그것이 바로 이 경전 금강경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언어 밖의 언어 그것이 이 경전이 쓰여진 연유다.

 그렇기에 금강경은 평범한 사람이 펼쳐 보았을 때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금강경을 언뜻 살펴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할 것이고, 알다가도 모를 소리라고 손사레를 치기도 할 것이며, 읽어내려 가다가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식에 경전을 덮고 말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진리의 속성이다. 진리를 진리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자비로운 노력이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표현방식으로 언어를 초월하여 경전에 한 올 한 올 곱게 아로새겨진 것이다.

 그렇기에 금강경을 읽을 때는, 금강경을 공부할 때는 일반적인 책을 읽는다거나, 세상의 지식을 얻어 들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다가서서는 안 된다. 세상의 잣대로, 기존의 편견과 선입견의 틀 속에서 금강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욱 멀어질 뿐이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배워 온, 익혀 온, 경험해 온, 책에서 읽고, 사람들에게서 들어 온 일체 모든 지식과 판단과 편견과 아집들을 몽땅 비워버리지 않고서는 도무지 금강경의 초입에도 이를 수 없다. 내 안에 그 어떤 고집과 욕심과 집착과 편견과 아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금강경을 펼쳐 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모조리 불태워 없애버려야 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잣대를 가지고 금강경을 펼쳐 들지 말라. 완전히 과거의 나를 비우라. 비우고 비워 맑고 청정해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정신으로 금강경의 초대를 받으라. 그랬을 때 비로소 금강경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진한 법신의 향기로써 나를 맞이할 것이다.

 ‘나’를 놓아버리고, ‘내 생각’을 놓아버리고 오직 금강경에 모든 것을 맡기라. 금강경의 자비로운 이끎에 모든 것을 맡기라. 금강경의 가르침이 내 존재 안에서 춤을 추도록 하라. 꽃이 되어 피어나도록 하라. 가려 듣지 말고 통째로 완전히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금강경은 나를 진리의 길로 이끌 것이다. 아니 나를 사라지도록 도와 오직 금강경이 삶이되어 피어나도록 할 것이다. 금강경은 이제 내 깊은 곳에까지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존재를 변화시켜 갈 것이다.

 이 금강경을 펼쳐 든 모든 이들에게, 진리로써 꽃피어난 자기다운 삶의 방식과 삶의 몫을 안내 할 것이다. 이제 나는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진리를 실현해 갈 것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나답게, 가장 진리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경전 안에서 발견해 나갈 것이다. 아! 금강경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이 경전을 회향하는 순간 우리 안에 지고한 안온과 평화와 경외와 감사의 눈물이 호수를 이룰 것이다.

 이처럼 금강경은 우리를 온전한 삶으로 이끈다.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그 어떤 다툼과 욕망과 아픔과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킬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류 공통의 문제들에 대한 분명하고도 지혜로운 답변을 내려 줄 것이다. 아! 왜 인류는 아직까지도 금강경의 지혜를 지니지 못한 채 상처를 키워만 가고 있는가. 왜 아직 인류는 금강경을 주목하지 않는가.

 지금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그 지혜로운 길목에 들어 서 있다. 부디 중간에 금강경을 덮지 마시라. 한 번 읽고, 한 번 생각하고, 한 번 헤아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것은 금강경에 대한 나 자신의 해석일 뿐이지 금강경 그 자체가 아니다. 금강경은 아직도 더 진하게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강경을 한 번 읽고 덮는 것이 아니라, 금강경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우리 삶에서 더욱 진하게 우러나와 내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금강경이 되고 금강경이 내가 되기 전까지는 덮지도 말고, 어떤 가르침이라고 단정짓지도 말라.

 물론 이 책 또한 금강경에 대한 온전한 해석 일 수는 없다. 다만 금강경에 어리석은 저자의 생각을 덮씌워 더럽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설서가 출간되는 이유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로 쓰여진 이 경전의 생명력이 조금이나마 우리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없을까 하는 작은 발원에 의해서다. 이 책은 될 수 있는 한 금강경을 우리들의 세상으로 끌어내려 우리들의 근기에서 우리들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사실 금강경은 해설서를 보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어릴적 처음 금강경을 대할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해설서를 보면서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기억은 두고 두고 이 책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또한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금강경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쓰여 졌다. 그러다보니 이해는 조금 더 쉬워졌을 지 몰라도 금강경 본연의 지혜는 다 드러내지 못한 채 잠재웠을 수도 있다. 그 더 깊은 지혜를 우러내는 일은 나머지 독자의 몫으로 돌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5년 전부터 이 책은 구상되고 쓰여지기 시작해 이제야 비로소 그 회향을 보게 된 것이다. 진리의 가르침은 풀어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호되게 깨달은 것도 바로 이 경전 금강경이다. 어떤 분에서는 사방이 은산철벽과도 같은 벽으로 둘러쳐져 있는 듯 도무지 뛰쳐나올 수 없어 그 게송을 마주하며 1년 여를 보낸 적도 있고, 또 어떤 분에서는 한없이 흐르는 감동과 경외의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그 깊이를 도저히 글로 표현해 낼 재간이 없어 한동안 글을 써내려가지 못한 적도 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화두처럼 의문을 품고 몇 달을 앉은 끝에 한순간 번쩍이듯 그 의미가 다가왔을 때는 법신께 삼배를 하고 앉아 환희심을 억누르며 조악한 글솜씨로 서툴게 글을 맺은 적도 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금강경을 맺게 된 것은 모두가 법신 부처님의 몫이요 법신불의 회향으로 돌리고자 한다. 내가 했노라고 붙잡을 것이 없는 금강경의 세계에서는 유무를 초월한 법신의 공덕 아닌 공덕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금강경이 아니요 다만 이름이 금강경일 뿐이다. 금강경의 해설 또한 금강경의 해설이 아니기에 금강경의 해설일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을 공부하지만 금강경을 공부하지 말라. 금강경을 실천하지만 금강경을 실천하지 말라. 그것이 바른 금강경의 공부요 실천이다.


2007. 1. 1

강원도 양구 도솔사 산방에서

법상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