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으로 읽는 불교입문서

불교경전과 마음공부

신간 안내




불교 경전 산책

 

이 책은 ‘경전으로 읽는 불교 개론서’이자,

불교의 깨달음과 수행이

내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돕는 ‘수행 지침서’다!

 

‘그 많은 경전들 중에 꼭 필요한 경전을 뽑고,

그 방대한 양 중에서도 꼭 필요한 가르침들을 뽑아,

거기에 간략히 해설을 붙여 준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불교 경전의 가르침은

이 인류 역사 속에 유일무이하다고 할 정도의 완벽한 깨달음 텍스트다.

경전은 구닥다리 같은 옛 고전 나부랭이가 아니다.

인류가 보유한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언어요,

우리를 직접 깨닫도록 이끄는 실질적인 가르침이다.

 

경전은 우리의 고통을 잠시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근원적으로 완전하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대자유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왔던 바로 그것이 여기에 있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찾고 있을 뿐.



서문



불교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은 경전의 원문을 직접 보기 보다는 경전을 토대로 세워 놓은 교리나 사상, 교학(敎學) 등을 통해서만 불교를 접하기 쉽다. 마치 교과서는 안 보고 참고서만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경전 자체가 좀 어렵고, 옛날 문장으로 되어 있다 보니 더욱 가까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또한 경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너무나도 방대하고 많다보니 어떤 한 경전만 공부하려고 해도 그 양과 난해함에 놀라 겁을 먹게 된다.

그렇다고 경전의 원전(原典)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많은 경전들 중에 꼭 필요한 경전을 뽑고, 그 방대한 양 중에서도 꼭 필요한 가르침들을 뽑아, 거기에 간략히 해설을 붙여 준다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한 취지로 절에서 신도 교육용으로 만들기 시작하다가 차츰 보완이 되고 하여 결국 이러한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수 있게 되었다.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방대한 대소승의 불교 경전과 논서, 선사 어록들 가운데 여기에 뽑아 놓은 내용들은 주로 몇 가지 이유로 뽑히게 된 것들이다.

가장 먼저 당연히 그 경전의 핵심적인 사상과 교리가 담긴 가르침들을 우선적으로 뽑았다. 그리고 신도님들 교재용으로 만들었다보니 신도님들께 체계적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교 공부에 있어 이런 점들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기본적인 입장들 또한 함께 실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가르침을 통해 실제 마음공부와 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그러다보니 초기 경전에서는 불교의 기본 교리와 기본적인 입장 등을, 대승 경전에서는 주요 사상과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경구들을, 논서와 선어록에서는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필요한 내용들을 선별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불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전으로 읽는 불교 입문서’이자, 불교의 깨달음과 수행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내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는가에 대한 ‘수행 지침서’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한국불교 뿐 아니라 부처님 당시와 선의 초기 황금기를 제외하고는, 불교 역사 속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왜 부처님 당시처럼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가?’ 하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방향을 잡아 보았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직접 와서 이렇게 드러나 있는 법을 스스로 맛보라고 한 것에 있다. 부처님 당시를 보면, 스님들 뿐 아니라 재가자까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깨달아 대 해탈의 자유인이 되었다. 또한 선의 황금기 때에도 스님들 뿐 아니라 재가 신도님들까지 수없이 많은 견성(見性) 도인들이 출현했다.

사실은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고 골수다. 깨달음이야말로 불교의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어릴 적부터 해 온 불교 공부와 수행은 어딘가 모르게 깨달음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수행을 해도 깨닫는다는 것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현재 우리 불교 안에는 온갖 차원과 단계의 무수한 방편의 가르침들이 혼재되어 있다. 2,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무수한 방편들이 서로 자기가 진짜 불교이고, 자신의 방편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그 수많은 방편들 중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선별해 내는 데만 너무 많은 세월을 낭비하고 있다. 가치지기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그 수많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방편을 버리고 곧장 ‘달’ 그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그렇게 하기란 정말 어렵다. 너무 많은 방편들이 저마다 ‘내가 진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을 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또 하나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곧장 ‘달’ 그 자체로 우리의 시선을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깨달음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은 이 인류 역사 속에 유일무이하다고 할 정도의 완벽한 깨달음 텍스트다. 고통을 없애주고 중생을 깨닫게 하는 방법과, 심지어 깨달음 이후의 보임(保任)에 이르기까지를 이토록 체계적이고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나 영성은 인류 역사 속에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요즘 서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시는 분들조차 깨달음 이후에는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 이후의 공부를 도움 받는다. 텍스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불교 안에서처럼 이토록 깨달음의 꽃을 활짝 피운 보살과 선사들, 선지식들이 대 화엄의 숲을 이루는 이런 영적 전통은 단연코 없다!

그런 유일무이한 놀라운 깨달음 텍스트인 경전과 역대 전등(傳燈)의 스승들을 보유해 놓고서도 현재의 불교는 어떨까? 시대가 흐르면서 깨달음은 역사 속의 먼 이야기로만 들리고, 가르침은 머리로 이해하는 교학 이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불교는 세상 속에서 복을 구하고, 행복을 구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을 배우며, 힐링하거나, 심지어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불법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뽑아다 쓰는 자기계발서 같은 범주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불법의 참 맛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직접 와서 이렇게 늘 드러나 있는 이 완전한 진리를, 법을 직접 맛보고 깨달으라는 것이 바로 불교다. 깨달음이야말로 중생의 고통을 완전하게 벗어나도록 하는 근원적인 삶의 답이기 때문이다. 불법은 고통을 잠시 위로해주거나, 현재 처한 어려움을 보다 지혜롭게 바꾸어 주는 그런 좁은 길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완전하게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열반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경전과 어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이 여전히 요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완벽한 텍스트인 경전과 논서, 어록을 우리가 오해한 것은 아닐까? 경전이 문제가 아니라 경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해가 어긋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오해의 문제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진짜 불교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서 오해되고 왜곡된 불교를 진짜라고 믿으며 불교를 안다고 해 온 것은 아닐까?

불교를 안다고 하는 사람은 불교를 모른다. 참된 불법은 알고 모르고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그 모든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왜곡된 불교 이해에서 벗어나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이 경전의 여행을 함께 떠나 보자.

이 오리지널 깨달음 텍스트를 마음을 비우고, 생각과 희론(戱論)을 내려놓고 함께 읽어 보자. 이 안에 우리의 참된 근원이 그토록 기다리고 찾아왔던 바로 그것이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경전이고 어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왔던 바로 그것이 여기에 다 있다. 이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펴고, 경전을 읽고 있는 바로 거기에 있다.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이 드러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찾고 있을 뿐.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참된 근원은 무엇일까? 삶의 진리는 무엇일까? 이제,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찾아왔던 그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이 깨달음의 여행을 함께 떠나 보자.


서울 용산 원광사에서

법상




목차


서문

Ⅰ. 초기 경전
경전의 결집 _ 경전의 언어 _ 팔리삼장, 니까야 _ 아함경 _ 오늘날의 초기 경전

01. 중아함경
연기법 _ 독화살의 비유와 사성제 _ 업의 가르침

02. 장아함경
십이연기

03. 잡아함경
중도 _ 중도는 곧 연기 _ 여래는 법을 의지한다 _ 여래가 보는 죽음 _ 오온무아와 열반 _ 십이처 _ 두 번째 화살 _ 선지식과 좋은 도반

04. 증일아함경
출세간과 십팔계 _ 살펴볼 경구들

05. 디가 니까야
여섯 방향의 비유

06. 맛지마 니까야
뗏목의 비유 _ 차제설법

07. 상윳따 니까야
오온의 무상 고 무아 _ 열반, 모든 것은 무너진다 _ 4가지 믿음, 삼보와 계율 _ 사념처, 4가지 마음챙김 _ 마음챙김의 방법 _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08. 앙굿따라 니까야
자주 새겨야 할 5가지 명제 _ 깔라마경

09. 쿳다까 니까야
담마파다(법구경) _ 숫타니파타(경집)

Ⅱ. 대승 경전
부파불교 _ 불탑신앙 _ 대승비불설 _ 초기 대승경전 _ 중기 대승경전 _ 후기 대승경전

10. 반야심경

11. 금강경

12. 반야경
공, 본래 없다 _ 선지식 _ 이름과 모양(명상) _ 반야바라밀

13. 유마경
심청정 국토청정 _ 보살의 병 중생의 병 _ 불이법문 _ 직심이 보살정토 _ 본래 죄가 없다 _ 악도가 곧 최상의 길
_ 선불교 관련 경구들

14. 화엄경
일체유심조 _ 일진법계 _ 일즉일체다즉일 _ 바다와 파도 _ 정진과 믿음 _ 보리심 _ 법성, 깨달음 _ 보현행원 _ 살펴볼 경구들

15. 법화경
일불승 _ 개시오입 _ 법화경 사구게 _ 법사 _ 만선 성불사상 _ 구원실성의 본래부처 _ 상불경보살 _ 불타는 집의 비유 _ 장자궁자의 비유 _ 초목의 비유 _ 화성의 비유 _ 계주의 비유 _ 왕계의 비유 _ 의사의 비유

16. 아미타경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불 _ 아미타불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

17. 무량수경
불국토가 여기에 있다 _ 발원하면 성취된다 _ 무상삼매와 무원삼매 _ 손바닥 위의 세계 _ 법문을 듣고 부처 되어 중생을 구제하라 _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18. 열반경
상락아정 _ 사무량심 _ 일천제 _ 불신상주 _ 악업을 끊을 수 있다 _ 공덕천과 흑암녀 _ 열반경 사구게 _ 살펴볼 경구들

19. 원각경
허공꽃 _ 원각 _ 방편 _ 구경각 _ 수행자의 4가지 병 _ 원각경 사구게

20. 능엄경
보는 성품 _ 손가락을 구부리고 피는 것 _ 바다와 물결의 비유 _ 진여의 성품 _ 듣는 성품 _ 머리를 찾는 연야달다

21. 능가경
장식과 여래장 _ 삼계유심, 유식무경 _ 점수와 돈오 _ 삼자성상 _ 오법 _ 4가지 선, 인무아와 법무아 _ 선불교와 관련된 경구

22. 승만경
승만부인의 십대원 _ 3가지 서원과 하나의 큰 서원 _ 여래장

23. 해심밀경
삼성 _ 삼무자성 _ 승의제 _ 아타나식

24. 여래장경
여래장 _ 여래장을 밝히려면 불법을 만나 수행하라 _ 여래장의 9가지 비유

25. 부증불감경
증가와 감소 _ 중생이 곧 여래장

26. 대일경
삼구법문 _ 일체법이 곧 실상 _ 본성은 공함


Ⅲ. 대승논서
초기경전의 해설서, 논장의 성립 _ 부파불교의 논장 _ 대승불교의 논장 _ 대승기신론 _ 대지도론 _ 중론 _ 유식삼십송

27. 대승기신론
일심이문 _ 시각과 본각 _ 염법훈습과 정법훈습

28. 대지도론
법도 취하지 말라 _ 반야바라밀은 다툼이 없다 _ 무아인데‘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고하는 이유 _ 듣는 자가 없으나 인연 따라 듣는다 _ 사리불도 부처님에 비하면 어린이 수준 _ 법의 실상 _ 수희찬탄의 공덕

29. 중론
팔불중도 _ 연기=공=가명=중도 _ 공, 사성제, 수행 _ 무생

30. 유식삼십송
3가지 마음 _ 삼성 _ 삼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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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