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본질은 무아이기 때문에, 정해진 실체적인 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얼마나 활짝 열어놓고, 확장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비좁은 내가 될 수도 있지만, 무한하고도 드넓은 가능성의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나를 가두지 않고 확장하면서 활짝 열어놓을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일상적일 때는 자연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늘 바쁘고 할 일은 많고 정신이 없다보니까 눈앞의 아름다운 꽃 한 송이의 기적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꽃 한 송이, 푸른 하늘과 떠 가는 구름을 향해 가슴을 열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마음이 활짝 열려 있게 되면 자연의 작고도 미세한 변화들 하나하나가 놀랍고도 경이롭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 눈 내린 겨울 숲, 밤 하늘의 별 하나 조차 가슴을 치는 아련함과 아름다움으로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새벽녘이나 저물녁 산과 숲과 하늘을 바라보면요, 그저 놀랍다고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짝이는 햇살의 아름다움과 노을빛이 가슴을 수놓습니다. 마치 음악이 들려오는 듯 이 우주법계가 장엄한 소리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활짝 열리면 자연이 가슴에 담기게 되고, 그렇게 자연을 가슴으로, 온 존재로 품어안기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느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 또한 어릴적부터 자연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든 높은 언덕 위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는 것을 특히 좋아했지요. 지리산 종주를 갈 때마다 능선 위에 올라 자리를 펴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다못해 식당을 가더라도 맛있는 곳보다 창이 넓은 곳이 그렇게 좋데요.

 

제가 쓴 책들 중에 특히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많은 분들이 다른 책과는 달리 너무나도 생생하고 감동하며 읽었다고 이야기 하는 분들이 많데요. 그 책을 읽고 에베레스트와 쿰부 그 길을 따라 순례를 하고 왔노라는 분도 많이 만났습니다. 한번은 전남 보성의 한 마을에서 7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께서 봉고차 한 대를 끌고 저희 절에 온 적도 있었지요. 자연이 좋아 귀농하신 분들이셨는데, 그 책을 마을 사람들이 돌려보고 너무나도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다가 히말라야는 못 가더라도 저자라도 보고 오자 하고 찾아오셨다고 하데요.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간단하데요. 오직 그 책은 히말라야 그 산 속에서 3주 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잠깐 잠깐 자연을 바라보고 쉴 때 한글자 한글자 생생하게 그 자리에서 다 쓴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히말라야의 대자연과 하나된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이 작은 노트에 마구 적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의 그 어떤 창의적 영감 같은 것들이 마구마구 셈솟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칸트도 매일 오후 3시 반쯤 되면 어김없이 산책을 했다고 하고요, 루소나 에머슨, 키에르케고르 같은 이들도 항상 자연 속에서 산책을 통해 영감과 창의적 힌트를 얻곤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연과 가까이하면 우리의 마음이 대자연과 맞닿게 되고, 공명하게 됨으로써, 대자연이라는 무한성에 접촉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자연이라는 대우주의 연주에 내 마음이 공명하여 함께 오케스트라 같은 대우주의 연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데요.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어 보세요. 나라는 존재 또한 드넓게 확장되게 될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