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내, 어쩌죠?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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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 즉문즉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내, 어쩌죠?

목탁 소리 2011. 12. 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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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글의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아내는 너무 많은 것을 제게 요구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여 불만을 늘어놓고 잔소리를 해댑니다. 아내의 뜻을 거부하면 불화가 생기고,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물과 기름처럼 겉돕니다. 이 모든 것이 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해보지만 이렇게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

이 모든 것이 내 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려 해 본다고 하셨는데, 과연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이 과연 아무리 괴로운 삶이라도 그냥 받아들이면서 포기하고 좌절하고 풀죽어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렇게 소극적인 말이 아닙니다. 받아들인다는 말은 나와 상대를, 또 나와 상대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전체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완전한 수용하고, 상대방의 못마땅한 행동에 대해서 진실로 용서해 주고, 그 또한 내 문제이며, 내 책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네가 변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한 온전한 수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고, 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일 뿐이지요.

내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면 그 내 문제를, 내 업을 도대체 어떻게 풀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상황을 수행으로 풀어갈 수 있겠는지요?

수행이라고 하셨는데요, 진정한 받아들임은 그 모든 사건과 상황을 분별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관(觀) 수행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고 불만을 늘어놓을 때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혹 억지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원망과 화를 억눌러 놓고 있는 것이기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잠재워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쓸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관하고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려고 애쓰면 힘들지만 다만 분별없이 지켜보기만 한다면 저절로 깊은 곳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불만을 늘어놓을 때 내 안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이라는 삶의 수행은 곧장 실천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아내의 잘못과 불만을 있는 그대로 관함으로써 그 상황에 대해, 또 아내에 대해 판단을 그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의 잔소리나 불만투성이의 말들도 다만 어떤 공간 너머의 객관적인 관찰대상일 뿐 싫은 것, 나쁜 것이라는 분별이 사라집니다. 이처럼 관수행은 그 상황에 휘둘리거나 얽매이지 않고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해 줌으로써, 그 상황을 보는 지혜롭고도 자비로운 통찰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이제 새로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통찰의 관수행 속에서 근원적인 열쇠가 저절로 거사님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관수행은 언제나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 삶의 답변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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