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29 겸손, 공경, 하심의 수행
  2. 2009.08.04 나를 낮추라. 하심 수행
  3. 2008.01.23 달처럼 수줍어하라



[설악산 봉정암]

나를 낮추고 하심(下心)하는 데서
나는 진정으로 한없이 높아짐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내세우고 높이려고 애쓰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나는 정말 못난 놈이라고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대부분 '나다'라고 하는 아상(我相)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내가 욕을 얻어 먹으니 괴롭고,
내 여자 친구가 나를 떠나갔으니 괴롭고,
내 돈을 잃어버렸으니 괴롭고,
내 명예를 잃어 괴로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나'라고 하는 것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나'라고 하는 것은 무아(無我)입니다.
다만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가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나무 막대기와 판자라는 인(因)이
서로 부딪치는 연(緣)을 만나면 불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다 타버리면 불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속에 불이 있지도 않고
공기 중에 불이 있지도 않으며
서로 부딪치는 속에 불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불은 있는 것입니다.
있지만 연기 되어지기에 '무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연기 되어져 잠시 나타난 듯 보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실제시 여기기 때문에 온
갖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를 낮추는 하심은
'나'를 올바로 볼 수 있는 훌륭한 수행입니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무아'를 실천하는
'연기'를 실천하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한없이 낮추고
남을 한없이 높여주었을 때
진정으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공경하고
예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상대에 대한 공경심은
아상을 깨는 수행의 출발이며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보시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생활화인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나의 부처님 이십니다."
"친구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이끌어 주는
은혜로운 나의 부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들의 다소 거슬리는 말도
녹일 수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하나 하나에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은 참으로 어디에나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본래부터 모두가 부처님 참 생명으로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 '너'를 가르는 마음,
'환경' '인간'을 가르는 마음을 가지기에
모두가 부처님으로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도 나도 부처님임을 올바로 알고
상대방을 공경해 나갈 때
그곳이 바로 불국토가 될 것입니다.

가정이 불국토요
회사가 불국토요
사회와 세계가 불국토...
극락정토가 될 것입니다.
공경하며 삽시다.



Posted by 법상



나를 낮추고 하심(下心)하는 데서
나는 진정으로 한없이 높아짐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내세우고 높이려고 애쓰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나는 정말 못난 놈이라고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대부분 '나다'라고 하는 아상(我相)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내가 욕을 얻어 먹으니 괴롭고,
내 여자 친구가 나를 떠나갔으니 괴롭고,
내 돈을 잃어버렸으니 괴롭고,
내 명예를 잃어 괴로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나'라고 하는 것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나'라고 하는 것은 무아(無我)입니다.
다만 잠시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가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나무 막대기와 판자라는 인(因)이
서로 부딪치는 연(緣)을 만나면 불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다 타버리면 불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속에 불이 있지도 않고
공기 중에 불이 있지도 않으며
서로 부딪치는 속에 불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불은 있는 것입니다.
있지만 연기 되어지기에 '무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연기 되어져 잠시 나타난 듯 보이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실제시 여기기 때문에 온
갖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나'를 낮추는 하심은
'나'를 올바로 볼 수 있는 훌륭한 수행입니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무아'를 실천하는
'연기'를 실천하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한없이 낮추고
남을 한없이 높여주었을 때
진정으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공경하고
예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상대에 대한 공경심은
아상을 깨는 수행의 출발이며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보시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생활화인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나의 부처님 이십니다."
"친구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이끌어 주는
은혜로운 나의 부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들의 다소 거슬리는 말도
녹일 수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하나 하나에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은 참으로 어디에나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본래부터 모두가 부처님 참 생명으로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 '너'를 가르는 마음,
'환경' '인간'을 가르는 마음을 가지기에
모두가 부처님으로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도 나도 부처님임을 올바로 알고
상대방을 공경해 나갈 때
그곳이 바로 불국토가 될 것입니다.
가정이 불국토요
회사가 불국토요
사회와 세계가 불국토...
극락정토가 될 것입니다.
공경하며 삽시다


Posted by 법상




[사진 : 해인사, 아래-성철스님 부도]

달은
수줍음을 타는 듯
자주 구름 속에 숨는다.

수행하는 사람도
달처럼 수줍어 하며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라.

남이 이익을 얻거나
공덕을 지을 때
그것일 시기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일처럼 칭찬하고 기뻐하라.

자기를 높여 뽐내지 말고
남을 깔보고 업신여기지 말라.

[잡아함경(雜阿含經)]



무아(無我)를 체득하고,
연기(緣起)를 체득하면,
더 이상 ‘나’를 내세울 것도 없고,
뽐낼 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나’라는 아상이 큰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뽐내려고 하고, 내세우려 하고,
상대적으로 상대를 업신여기며 얕잡아 보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리석음의 소산이다.

밝게 깨친 사람은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
내가 곧 세상이고,
내가 곧 온 우주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나 없음’의 진리를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우린 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를 비우고, 낮추고, 겸손해 짐으로써,
또 타인의 일을 나의 일처럼 칭찬하고 기뻐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으며,
그 길이 바로 참으로 나를 되찾는 길이고, 나를 깨닫는 길이다.

나를 드러내려 하지 말고,
뽐내려 하지 말고,
한없이 낮추고 또 낮추라. 하심(下心)하라.

나 잘난 마음으로 나를 드러내며 사는 것은
모든 업의 근본이 되고,
나를 비우며 낮추고 사는 것은
모든 깨달음의 근본이다.

나 자신이 못난 줄 알아야 공부는 시작되는 것이지,
스스로 잘난 줄 아는 사람에게 진리는 멀어져 간다.

한 치라도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올라오거든
깜짝 놀라 얼른 지켜보라.
그것이 바로 내가 닦아야 할 번뇌의 시작임을 알고,
놓아야 할 아상임을 깨달으라.

공부가 익어갈수록 벼는 고개를 숙이듯,
마음공부란 익으면 익어갈수록 하심하고 겸손해지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처럼
순진무구해지는 세계가 순수하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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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TAG 겸손,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