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골고 루 세상을 적셔 주듯,
우주 법계에서 내리는 법의 비도(法雨)
온누 리에 공평무사하게 내립니다.

우주 법계에서 내리는 법우를
우주 법계의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법 신 부처님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고,
충만한 성령이나 영성 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우주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 을 것 같습니다.

말이야 무어라고 해도 상관없 지요.
그것에 인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하느님, 부처님이라 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 법계의 에너지는
아무런 분별도 없고, 시공의 차별도 없습니다.
그저 그냥 충만하게 있을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개념에 불과하지요.
'지금 이 순 간' 과거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있는 것입니다.
공간이 라는 개념 또한
사실은 나와 너, 자연과 우주 이 모두가
'지금 여기'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법계 의 에너지도
'지금 여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지,
과거나 미래 혹은 다른 장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우주 법계의 에너지는,
법 신 부처님의 힘이며, 성령의 강림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 만 온전하게 빛을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 금 이 순간 깨어있을 수 있다면,
즉 온전히 지금 이 순간 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결정이나 고 민이나 분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순간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순간 속에서
자성부처님이 그 삶을 진리로 이 끌어 갈 것이고,
가장 온전한 길로 안내할 것입니 다.

미래의 결정 때문에 고민할 일 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금 여기의 문제이며,
과거의 일들 때문에 걸 림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걸리는 일인 것입니다.
오직 지 금 여기에서 집중함으로써
과거와 미래의 모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면
모 든 법계의 힘이며 에너지가 전부 주어집니다.
그럴 때 정 확히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필요한 것이 진리에 걸맞게 나 투어 지는 것입니다.


원할 것도, 바랄 것도 없고
오직 깨어있 으면 법계에서 다 알아서 해 나갑니다.
오직 지금을 살아가면서
나머 지 것들은 그저 믿고 맡기기만 할 뿐
다른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 다.
[법구경]의 말씀에서 처럼
오직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인 것 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지도 말라.  
오직 현재의 한 생각만을 굳게 지켜보아라.  
그리하여 지금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참되게 굳은 관찰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법구경(法句經)]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 니다.
이 순간 깨어있을 때
우주는 나에게 무량한 힘 을 보태어 줍니다.
이 힘은 유위의 힘이 아닌 무위의 함 이 없는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문제라도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의 근본은
바로 법계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나는
법계의, 이 우 주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외롭다고 혼자라 고 느끼는 순간에 조차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 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면
우주 법계로부터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아니 가져다 쓴다는 말도 모 자랍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온전한 지금 여기에서의 나일 수 있다면
그 순간의 나는 그대로 법계와 하나가 됩니 다.

그랬을 때
좋고 나쁘고도 없고,
긍정 부정도 없는
무분별의 함이 없는 행이 이어지 며,
고스란히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 다.

아무런 분별이 없는 진리의 삶 이기 때문에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도 없고,
과보를 받거나 현실 을 만들어 낼 것도 없이
순간 순간이 그대로 진여의 나툼 일 뿐인 것입니다.

이 순간에는 앞뒤가 딱 떨어 져
과거며 미래를 만들지 않는 것이고,
업을 짓는 일도, 업보를 받는 일도 딱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 '행하는 나'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이,
오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를 놓고 가는 것이며,
놓았다는 생각 조차 다 놓고 가는 것 입니다.

바로 그 때
법신 보신 화신 이며,
성자와 성부와 성령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 다.
그야말로 법대로, 여법(如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신명을 다 하고, 마음을 다해 살아가십시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을 하고 있느 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벽암록(碧巖錄) ]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 다.  
내 삶 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 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 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 로 오늘 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Posted by 법상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누구나 잘 살기 위해 세상을 살아간다.
또 누구나 삶의 목적은 잘 사는데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정답이 있고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매일같이 잠자리에 들기 전, 또 매 해를 보낼 때마다
그 표를 하나하나 내 삶과 대조해 보면서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 정해진 것 만은 아니기에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조금 큰 틀에서 본다면
어떤 종교에서든, 어떤 사상이나 가르침에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될 법한 일반적인
‘잘 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도 하느님도
또 수많은 인류의 성자, 사상가들도 모두가 한결같이
'사랑을 베풀라' '자비를 베풀라' '이웃과 나누라' '보시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 본질은 어느 종교에서도 다르지 않다.
보시와 베풂이라는 그 본질은 진리의 영역이다.
베풀고 보시하는 길은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가야할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요 진리인 것이다.

다만 각 종교별로, 사상가별로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십일조를 내든 자유롭게 보시를 행하든,
절이나 교회에 내든 불우한 이웃에게 내든,
사람에게만 사랑과 자비를 베풀든
풀이며 나무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에게 베풀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서로 다를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답게 저마다의 개성으로써 실천 해 나가야 할
세부적인 부분 보다는
전체적인 진리의 본질로써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쓰고,
어떻게 참된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실천의 정신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종교에서든, 어느 사상에서든,
진리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가르침이라면
대부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만한
그런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언급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사유의 뜰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적어 보는 것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목록을 펴 들고
하나 하나 내 마음과 비추어 보며
사유의 뜰을 넓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혹은 매 순간 순간 시간 날 때도 좋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괴롭거나 힘겨운 경계를 당해 마음이 휘둘릴 때
그 때 이 목록을 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해도 아래에 열거된 마음공부 목록만 잘 점검하더라도
어지간한 괴로움이나 경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쌓일 것이라고 본다.

또 기독교나 혹은 또 다른 종교의 신자나 종교가 없는 분이더라도
이 목록의 가르침들은 대부분이 수용 가능한 것들일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사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끊임없는 복습의 연장이다.
가르침의 본질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을 비우고 이웃과 나누며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가르침들이 항상 내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실천의 힘이 되며 내 존재 안에 숨쉬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복습만이 우리 내면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목록은 한번 읽고 그만 두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두고 '잘 사는 방법'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목록의 구체적인 이해와 방법들, 깊은 이해는
이 목탁소리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하나씩 터득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일체를 다 받아들이라. 수용하라.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 세상에는 정확히 필요한 일만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찾아온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내게로 온다.
그 모든 일들이 부처의 자비요 신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대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다고 너무 붙잡지 않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라.

∎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말하라.
∎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들이 되돌아보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없는가. 괴로운 상황이나 미운 사람이 내게 주는 긍정점을 찾아보라.
∎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고 외치라.



2. 집착을 버려라. 놓아라. 비워라.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괴로움의 씨앗이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소유도 성공도 지식도 가치관도 집착할 것이 못 된다.
모든 수행의 핵심, 모든 행복한 삶의 핵심은 무집착에 있다.

변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집착을 놓는 자리가 부처자리요 영성이 충만해지는 자리다.
아상을, 집착을, 욕망을, 번뇌를, 소유를, 생각을 놓고 비워라.
비우면 채워지고, 놓으면 잡히며, 버렸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다.

텅 비면 충만하다.

∎ ‘지금 죽을 수 있는가?’ 죽을 수 없다면 이유를 10가지 적어보라.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내 집착의 실체다.
∎ 괴로운가?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언가에 대한 집착에 있다. 집착의 실체를 찾아보라.
∎ 내 욕망과 집착의 목록을 만들라. 욕망을 버리기 쉬운 것부터 지워본다.



3.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으라. 관하라.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내보내지 말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지켜보라.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객관의 관찰자가 되어 나를 바라보라.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지켜보라.

내 생각, 느낌, 몸, 호흡, 그리고 대상을 아무 판단 없이
다만 지켜보고 관찰하라.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을 때
비로소 내 안 깊은 곳의 신성을 불성을 일깨우게 된다.
영성이 충만해지고 존재는 깊은 휴식에 든다.

깨어있는 관수행이야말로 깨달음의 요체다.

∎ 아침 저녁으로 10분 좌선에 들어 마음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 하루 일과 중 ‘3분호흡관’으로, 들숨과 날숨에 숫자를 붙이며 호흡을 관찰한다.
∎ 화날 때 화부터 내지 말고 화내기 직전 호흡을 10번 크게 들이 쉬고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난 뒤에 화를 내더라도 낸다.



4. 부처님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나는 없다. 오직 본연의 성품이 있을 뿐.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괴롭고 즐겁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다.

늘 한결같이 살 수 있다.
모든 것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라.
자연의 흐름, 진리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라.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런 분위기와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 3번 이상 권유하고 시도해서 안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 포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 모든 것을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 ‘하느님 일’이라고 생각하고 맡긴다.
∎ 잘 되든 못 되든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하시는 일이니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라.



5.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나누어 주라.

‘내 것’이란 없다.
잠시 나에게로 흘러왔다가 흘러갈 뿐이다.
그것을 흐르도록 두라.
내 안에 가둬 쌓아두지 말라.

소유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가르침이든 이웃과 함께 나누라.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
베풀되 베풀었다는 상 없이 베풀라.

베풀어도 사실은 베푼 것이 아니라
잠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인연따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 가 닿을 뿐이다.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면 받게 되고,
준 바 없이 주면 무한한 복을 받게 된다.

∎ 월급을 받으면 일정액을 떼어 순수하게 베풂을 위한 몫으로 정해두라.
∎ 돌려받을 수 없는 곳,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베풀자.
∎ 매월 좋은 책을 10권씩 사서 버스기사, 회사 동료, 이웃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주자.



6. 적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하라. 생각날 때 바로 저질러라.

될 수 있다면 머리를 적게 굴리는 것이 좋다.
생각은 본연의 진리를 막아선다.
생각과 판단을 줄이면 삶이 선명해지고 명료해진다.

많이 생각하기 보다는 많이 저질러라.
행동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란 말이 있다.

∎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주라. 생각이 많으면 주지 못한다.
∎ 한 생각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 저질러라.
∎ 오랫동안 마음만 있었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저질러보라.



7. 내 생각을 남에게 주입하지 말라. 고집을 버리고 활짝 열려있으라.

어떤 한 가지 생각에도 전적으로 고집하지 말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라.
어떤 가르침도, 어떤 사상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가슴을 열어라.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지라.
내 생각이 옳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지 말라.

∎ 전혀 새로운 분야의 책도 한번쯤 사서 읽어 보고, 나와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의 말도 한번쯤 수용하는 자세로 들어보라.
∎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을 찾으라.
∎ 다른 종교의 성전을 읽어보라.



8. 부족하게 불편하게 산다. 아끼고 절약한다.

자식을 실패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사는 것 보다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게 절약하며 사는 가운데에서
사유의 뜰이 넓어진다.

몸이 불편하면 정신이 깨어나지만,
몸이 게으르고 편한데 익숙해지면 정신의 지평이 축소되고 만다.

또한 아끼고 절약하는 가운데 충만한 복이 깃든다.

∎ 집에 있는 쓰지 않는 것들을 모아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준다.
∎ 무언가를 살 때는 이것이 욕망에 의한 것인가 필요에 의한 것인가를 살피라. 사고 싶은 것을 바로 사지 말고 좀 나둬 본다.
∎ 아끼고 절약한 만큼을 돈으로 환산하여 저축하고 보시한다.



9. 매일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수행과 명상을 실천한다.

기도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행위는 없다.
물질은 육신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기도는 정신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이번 생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기도는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라.
아침의 기도는 낮 동안의 재앙을 없애주고
밤의 기도는 밤 동안의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말이 있다.

기도와 수행의 시간을 가지는 자에게 충만한 평화가 깃든다.

∎ 매일 아침 기도는 거르지 않는다.
∎ 기도의 본질은 감사다. 매 순간 순간 아무리 작은 일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 주 1회 이상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전에서 기도를 한다.



10.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침묵하라.

말이 많아지면 그만큼 허물도 늘어난다.
입이 가벼우면 생각도 가벼워지고 행동 또한 가벼워져
자기 중심을 잡기 어렵다.
입이 화의 근원이고 번뇌의 근원이 된다.

침묵하는 자는 쉬 들뜨지 않으며 가볍지 않고 쉽게 행동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견해를 상대방에게 말함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라.
침묵 속에 기도와 명상이 있고, 신과 부처와의 대면이 있다.

∎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 주라.
∎ 때때로 말하지 않는 ‘묵언’의 시간을 가지라. 묵언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 대화중에 말을 관찰하고, 내가 하루 종일 했던 말의 목록을 적어보라.



11. 자연의 먹거리로 소식하라. 자연치유력을 높인다.

인공적인 것, 가공된 것, 인간의 욕심이 개입된 먹거리는
곧 우리 몸을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몸이 맑아져야 마음도 함께 맑아진다.

될 수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가 좋다.
자연의 생명이 담긴 음식은 곧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어
온갖 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음식을 먹을 때는 소식을 원칙으로 한다.
많이 먹을수록 식복이 다해 수명도 줄어든다.
많이 먹으면 정신이 둔해진다.

∎ 가족이 함께 주말농장이라도 찾아 가 자연의 먹거리를 직접 생산해 먹어본다.
∎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 탄산음료 등을 먹지 않는 날을 정하라.
∎ 하루 한 끼 이상은 잡곡밥과 야채, 콩, 감자 등만으로 소식한다.



12.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즐기라.

외롭게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안의 참나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되며,
그 때 비로소 신과 부처와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홀로 있다는 것은 곧 전체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정신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린다.

∎ 때때로 홀로 여행을 떠나라.
∎ 하루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일 없이 다만 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라.
∎ 일주일에 몇 일은 집에서 TV를 꺼 두고 지내라.



13. 매일 숲길을 걸으라. 산책의 시간을 가지라.

숲길이나 산길을 홀로 걷는 산책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자기와의 대면이며
걷는 일 자체가 경행의 수행이 된다.

걸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마음을 관찰하며 걸으라.
서서 두 발로 대지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몸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가져온다.

아침 저녁 조용한 산책의 시간에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도 된다.

때때로 산을 찾으라.

∎ 아침이나 저녁 중 한 때를 정해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나서라.
∎ 주말이면 홀로 혹은 가족과 함께 산을 찾으라. 때때로 지리산을 홀로 종주해 보라.
∎ 숲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마음을 모아 집중하고 그 느낌을 알아차린다.



14. 자연의 변화를 살핀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진리와 합일을 이루며 사는 생명이다.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우리 마음도 자연을 닮아가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는 일이 된다.

∎ 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나무나 야생화를 하나 정해 유심히 관찰하라.
∎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껴보고, 자연 관찰 일기를 적으라.
∎ 식물도감을 가까이 하고 식물의 이름을 알아본다.



15. 자기다운 삶을 살라. 누구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라.

남처럼 살려고 애쓰지 말고 독창적인 자기 자신의 길을 걸으라.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진리의 표현이다.
진리가 '나'로써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나로써 피어나는 진리를 꽃피워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누구처럼 사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나답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고 쉽다.
자기다운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진리의 목적을 이뤄내는 것이다.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인가. 그 일에 에너지를 쏟으라.
∎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의 긍정점을 100가지 이상 찾아보라.
∎ 무엇이든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



참된 앎은 곧 존재를 변화시킨다.
수첩에 적거나 프린트를 하여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 놓고 틈틈이 읽기라도 해 보라.
분명 삶에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은은히 삶 속에 스며들 것이다.
하나 하나의 목록이 어찌 생각해 보면 별 내용 아닌 듯 느껴질 지 모르지만
이 안에 우주의 신비로운 지혜의 소식이 담겨 있다.

모르긴 해도 수많은 종교나 사상, 철학, 성인들의 가르침이
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 가르침들 안에 깨달음의 씨앗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실천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무슨 거창한 수행을 한다거나,
삶을 변화시키겠다거나 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도 없다.

쉽고 단순하게 실천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다만 틈틈이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이 목록이 가지는 좀 더 본질적인 의미를 삶 속에서 찾다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작은 깨우침이 찾아 올 지 모른다.

이해되지 않거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떻게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괜찮다.
점차 이해는 깊어질 것이다.

우리 안에 본연의 깨달음이 항상 자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자기 자신의 본래 능력을,
우리 안의 불성이며 신성을 너무 쉽게 무시하지 말라.
반드시 안에서 깨우침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임을 믿어도 좋다.

다만 반복해서 읽고 사유해 보라.
그것도 어렵다면 그저 읽기만 해도 좋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내면 깊은 곳에
몇몇 언어들이 생명력을 일으키며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수행이란, 마음공부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수행과 명상에 대한 너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억지스런 노력과 애씀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수행을 오히려 나와 멀어지게 만든다.

고행주의를 버리라고 했던 부처의 말은
이미 2,500여 년 전에 있어왔지만
그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행은
고도의 고행과 노력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행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어떤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쉬운, 너무 쉽고 단순해서 오히려 어렵게 느끼는 것이
수행이요 명상이다.

그러니 그동안 가져왔던 수행에 대한,
명상에 대한 벽을 깨라.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쉽고 단순하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긴장을 풀기 바란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내 안의 깊은 휴식의 공간이 비로소 본연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법상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도솔, 중에서... (예스24, 50%할인 특가중, 4,750원)






Posted by 법상





[문경 김용사]

그만 기다리세요.
우리가 평생토록 해 왔던
기다림이 지겹지도 않으신가요?
이제 그만 기다림에 대한 환상을 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기다리던 일이 완성되면 또 다른 것을 기다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또 다른 기다림의 대상을 만들어
우리의 기다림은 끝이 없이 계속됩니다.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길 기다리고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길 기다리며,
대학생은 좋은 취직 자리를 기다리고,
학생은 좋은 성적 좋은 학교를 기다리며,
직장인은 좀 더 인정 받기를 기다리고 진급하기를 기다리며,
수행자는 깨닫기를 기다립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내 앞에 나타날 사랑을 기다리고,
빨리 졸업하기를 기다리며,
빨리 큰 돈을 벌기를, 큰 집, 좋은 차 사기를 기다리고,
더 나은 직장을, 지위를, 권력을 기다립니다.

출근하고 나면 빨리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평일에는 빨리 휴일이 오길 기다리고,
다음 휴가철을 기다리고,
수업시간에 쉬는 시간을 기다리고,
몇일 후에 있을 소풍이나 만남을 기다립니다.

뭔가 재미난 일을 기다리고,
가을엔 첫눈 오는 날을 기다리고,
겨울엔 만물의 태동을 기다리며,
봄엔 여름 휴가 때를
여름엔 가을 단풍구경 갈 때를 기다립니다.
물론 단풍이 떨어질 때 또다시 첫 눈을 기다리겠지요.

성공하기를, 부자 되기를, 행복하기를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그렇게 끊임없이 평생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우리는 결국 한번도 기다리지도 않았던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달려가면서
한 순간도 기다림을 포기했던 적이 없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온 것이라고는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던
버림이고 죽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삶 속에서 기다림의 결과로 얻어 낸
그 어떤 가치있는 것이라도
결국에 죽음 앞에서는 모두 다 무의미한 것일 뿐입니다.
모두 다 버리고 가야할 것들 뿐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순간 유일하게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살아오면서 우리가 별로 바라지 않았던
‘현재의 깨어있는 힘(지혜)’과 ‘사랑과 베품(자비)’입니다.

평생을 다음 순간만 바라고 살았지만,
더 낳은 순간만을 바라고 살았지만
죽고 나서 우리가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이
‘기다림의 결과’가 아닌 ‘기다림 없는 순간에 깨어있는 힘’이라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기다림을 허탈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 아닌
‘기다림의 놓음’입니다.
기다리지 않았을 때 지금 이 자리에서 현존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놓아버렸을 때 비로소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지금 이 순간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금이 아닌 다음 순간을 원한다는 말이고,
현재가 아닌 미래를 원한다는 말이며,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원한다는 말이고,
‘지금의 나 처럼’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되길 원한다는 말이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갖지 못한 것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기대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그 갈등이 바로 괴로움의 실체로 다가옵니다.
기다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이 순간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지금 이 순간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고되고 괴로울 뿐입니다.

이런 우리의 기다림은 습관적입니다.
항상 무엇인가를 기다리지 않으면 견디질 못합니다.
그 기다림을 좋은 말로 ‘희망’이라고도 하고 꿈이라도도 하겠지요.
또 ‘목적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그런 기다림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이런 기다림을 ‘희망’이니, ‘꿈’이니, ‘목적의식’이니 하고
좋은 말처럼 꾸며 놓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기다림은 우릴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여전히 기다림은 온전한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삶의 근원적인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런 습관적인 기다림에
이젠 지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요?
그동안 우리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 삶 전체를
이런 쓸모없는 기다림에 헛되이 소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다림이란 낭비이고 불필요한 것입니다.
공연히 내적인 에너지를 소모할 뿐입니다.
기다릴 시간에
저지르는 편이 더 현명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편이 더 궁극적입니다.

현실적인 돈, 명예, 권력, 학벌, 지위, 성공 등은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행복은
결코 기다림을 통해 얻을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돈, 명예, 권력, 학벌, 성공이라는 것이
다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한 방편이 아니던가요?
그런 껍데기를 위한 기다림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바로 궁극적인 행복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행복은 결코 기다린다고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결코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돈, 명예, 권력, 지위, 학벌, 성공 속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다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음을 통해 드러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완전한 자족을 통해 드러날 뿐입니다.

항상 행복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늘 그렇게 있을 뿐이지요.
기다리는 마음은 이 자리에 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자리를 봐야 하는데
다른 자리를 찾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기다림의 결과로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기다림을 완전히 놓아버렸을 때
그 때 언제나 있어왔던 행복을 볼 수 있을 뿐.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내가 누구이든 간에,
내가 무슨 일에 종사하든 간에,
나의 직위, 직장, 학벌, 재산, 세속적인 성공에 상관없이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인정하며 사랑하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냥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면 되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나 얻을 수 있는
‘다른 그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에,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소유물에,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다른 것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린 이 순간에 깨어있는 법을 터득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분명 머지 않아
맑은 행복과 평화로움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기다림을 놓아버리세요.
다음 순간을 기다리지 마시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기다림을 이룬 순간이 되도록 하세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에 서 있으면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다림을 놓아버리고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으시길...



Posted by 법상





[월출산 도갑사 대웅보전]

이따금씩 찾아오는 법우님들 중에는
당장에 괴로운 일들 때문에 수행이며 깨달음은 별 관심이 없고
오직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깨달음에 대한 염원이
지나치기까지 하신 분들 또한 더러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참 바람직하다 할 만하겠지만
이따금씩 ‘깨달음’병에 걸려
빨리 깨닫고자 하는 조급증이
좀 심하신 분들도 있는 것을 더러 본다.

수행자에게 있어 깨닫고자 하는 것이야
당연한 서원(誓願)이라 하겠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안 될 일.
중도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빨리 깨닫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면
도리어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한 깨달음의 향기를 놓치고 만다.

깨달음을 미래의 일로 설정해 두고
기다려서는 안된다.
‘빨리 깨쳐야겠다’거나
‘언젠가 깨닫겠지’ ‘왜 이렇게 안 깨달아지지’ 하는 마음은
다 분별이고 망상일 뿐.

깨달음은 과거나 미래의 일이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문제이다.

엄격히 말해
깨달은 자는 없고
깨어있는 행위만 있을 뿐이란 말이 있다.

깨닫게 되면
내가 깨달았다거나 하는 아상이 몽땅 사라지고
오직 깨달음의 행위만이 순간 순간 있을 뿐이란 말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시간의 개념 자체가 그냥 텅 비어 있으며,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는 관념 또한 비어 있다.
오직 순간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만이 있을 뿐.

그렇다면 우리들이 깨달음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한가지.

언젠가 깨닫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는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다시말해 깨닫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를
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의 문제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 깨달음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깨달은 자는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만 있을 뿐.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는 누가 하는가.
깨달은 각자(覺者)만이 할 수 있는가?
다 이룬 부처의 행위만 깨어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깨어있는 행위’는 그 행위의 주체 문제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의 문제이다.

부처님은
매 순간 순간이 깨어있는 행위의 연장이지만,
우리들의 행위는
깨어있는 행위와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행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면 수행자는 무엇인가.
매 순간 순간이 깨어있는 행위가 될 수 있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행위를 깨어있는 행위로 바꾸어 가는 사람이다.

언젠가 부처가 되기 위해, 깨닫기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위가 깨어있는 행위가 되기 위해
애쓰고 정진해야 하는 것이 모든 수행자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미래에 있을 깨달음이 목적이 된다면
지금 이 순간은 깨달음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깨달음이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전도된 생각이다.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과거로부터 시간이 흘러 지금에까지 이르렀으며
또 그 시간이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착각이고 환상이다.

시간이 공하다면
깨달음을 어느 순간에 찾을 것인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의 깨어있는 행위는
그대로 진리 그 자체인 것이며, 불성의 싹틈이다.

지금 이 순간의 행위를 깨어있는 행위로 바꾸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온전한 알아차림으로 100%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행위를 할 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는 것이 된다.

어떤 법우님들은 묻는다.
‘이렇게 수행하면 깨닫나요?’
‘언제쯤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나 또한 깨달음 병이 너무 크게 나서
한동안 꼼짝달싹 못하던 적이 숯한 나날이다.

도대체 빨리 깨달아야 할 것 같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빨리 부처가 되야지 이렇게 언제까지 중생으로 살 것인가 싶었던 날들...

그러나 그건 내 착각.
깨어있는 행위를 하는 순간 우린 이미 깨달은 것이고,
우린 그 순간 부처인 것이며,
진리와 하나되고, 온 우주 법계와 하나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또다른 순간 이를테면 깨달음의 순간이라거나,
부처되는 순간 그런 것을 바라는 마음을 놓아야 한다.

깨어있는 행위를 하는 순간
방하착이 되고,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 되고,
지금 이 순간 부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깨닫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깨닫지 못한 것에 조급해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지금 이 순간 얼마만큼
‘깨어있는 행위’를 하고 있는가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깨어있는 행위’를 하지 못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부처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부처의 행위를 하면
그 행위가 그대로 부처인 것.

부처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부처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Posted by 법상




[보물 제833호 기림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입니다. 이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신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으며 삼존부처님은 현재 보물 제95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수인은 지권인으로 부처와 중생 무명과 지혜가 둘이 아닌 세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온 우주법계 일체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님 참생명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부처님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바로 '이 순간' 나의 삶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의 참생명
부처님 생명이 성성히 깨어 있는 깨침의 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다시금 이곳 현실까지 불러들여
집착하고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괴로움으로
지금 현실을 괴롭힐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앞에 떨어진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재, 바로 지금만이 있을 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히는 때는 언제입니까...
우리가 실제로 부딪히는 것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오직 바로 지금이라는 현실일 뿐입니다.
평생을 살더라도 과거를 살 수도, 미래를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괴로움의 마음은
이미 지난 과거에 얽매이는 마음과
오지도 않은 미래에 얽매이는 마음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완벽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선지식들이 말하길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르면 싸고, 졸리면 자고 하는 것이 바로 道이다.
평상심이 곧 도이다."라고 했습니다.
현재심을 올바로 가질 것을 경책하는 말입니다.
바로 현재를 올바로 사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배고플 때 오직 먹기만하고,
졸리면 온전히 자기만할 수 있다면 참된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행위에 충실히 온전히 온 힘을 기울여 살아가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
온전히 밥 먹는 것에 집중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배고플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고
밥먹으며 딴 생각하고 딴 짓하고
밥 먹는 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합니다.
겉 모습은 똑같이 밥을 먹고 있더라도
이렇게 수행자와 비수행자의 내면 세계에서는 커다란 차이점이 나는 것입니다.

틱냩한 스님은 말씀하시길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에 대해 말씀하시며
설거지를 할 때에 오직 설거지만 할 수 있다면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릇을 깨끗이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하기 싫고 짜증나는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청소하기 싫고, 설거지 하기 싫고, 일하기 싫고, 공부하기 싫고,
수행하기 싫고, 절하기 싫고, 남편 뒷바라지 하기 싫고...
이러한 일을 행할 때는 반드시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빨리 빨리 청소나 설거지를 하고 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마음이 짜증나고 싫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만 앞서게 됩니다.

이렇게 청소,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다만 깨끗하다는 결과만 우리에게 남게 됩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했으니 얼마나 깨끗할까요.
그러나 청소를 위해 청소를 한 수행자는
그 행위 속에 수행의 힘까지 남게 됩니다.

청소를 하며 마음을 집중하고 청소하는 그 마음에 온 힘을 기울였기에
청소 그 자체가 수행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청소하는 그 순간 이 사람은
온전히 깨어 있는 것이 되고 방하착 한 것이 됩니다.
빨리 하고 나서 쉬어야지 하는 게으른 마음이 놓여졌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 수행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부할 때 공부를 위해 공부를 해야지
대학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공부하는 순간의 마음은 조급하고 공부에 충실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오직 대학합격이라는 오지도 않은 미래에 생각이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그렇게 빼앗기면 그만큼 공부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일을 할 때
빨리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마음에 퇴근할 시간에만 마음이 머문다면
일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봉급에만 마음이 머문다면
우리는 돈은 벌 수 있을지언정 진정 깨어있지 못하게 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 그 자체를 위해 절하는 그 순간, 염불하는 그 순간이
그때 그때 목표가 되어 그때 그때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빨리 수행해서 성불해야지 라든가
빨리 수행해서 복많이 짓고 편한 삶을 살고 집안이 편안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수행하고 절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빠른 시일안에 수행의 결과를 바라게 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부처님을 원망하며
심지어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을 때 개종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잘되면 내탓
못되면 부처님 탓을 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남편 뒤 바라지, 자식들 뒷바라지를 할 때에도
오직 그때 그때 내가 가족들에게 행하는
그 뒷바라지 자체에 충실할 일입니다.

뒷바라지 한다는 상이 있게 되면
남편이 승진을 못할 때, 자식이 대학에 떨어질 때,
자신에게 잘 못해줄 때 괴로움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뒷바라지 하는데 하는 상(相)이 있으면
자식이나 남편이 내게 서운하게 대할 때면 괴로워집니다.
오직 남편, 아내, 자식, 부모님을 부처님으로 여기고
부처님 시봉하듯이 현실, 현실을 충실히 시봉하면
그것이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이렇게 수행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체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 처럼 모시며 시봉하면서
해 나가는 것이지 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에서 하는 것은 수행이고
집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집에서 남편을 대할 때, 자식, 부모님을 대할 때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시봉한다는 마음으로 현실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크나큰 수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집에서 행하는 사소한 일상 하나 하나,
예를 들면 설거지하는 것, 청소하는 것,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책 읽는 것,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 부모님 모시는 것, 친구들 만나는 것,
회사에서 일하는 것, 친구들과 모여 술마시러 가고 노래방가서 놀고 즐기는
그 속에서도 내가 행하는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그때 그때의 현실에 충실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일상의 일이 바로 수행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활 수행인 것입니다.

절에서 애써서 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수행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행하는 삶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며,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고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제 현실에 충실하는 그 실천의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현실에 충실한 다는 것은 완벽하게 현실을 깨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실에 집중하여 마음을 다른 곳으로 빼앗기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또한 현실을 올바로 집중한다는 것은
항상 현실의 마음과 행동 하나 하나를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집착을 놓고 살아가는 방하착(放下着) 수행을 의미합니다.

올바로 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착(着)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괴로운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에 얽매이면
우리는 이미 그 실체가 없는 괴로움에 노예가 되어
내 마음을 빼앗겨 버리며 한없는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마음이 일어날 때
일어났다는 것을 올바로 관찰하고 방하착하면
그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지눌스님은 수심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망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알아차림이 더딜까 두려워하라.
망상이 일어나면 곧 알아채라.
알아채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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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과거나 미래로
흘려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온갖 망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있음을 자주 명상하곤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슬퍼하거나 후회를 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헛된 상상을 함으로써
그 생각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거나 미래로 흐르는
온갖 망상들을 다시 되돌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첫 걸음이란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듯 합니다.

물론 현재의 마음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관찰하고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의 가르침 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고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흐를 뿐입니다.
흐르는 시간에 마음을 고정시키려니
그것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틱냩한 스님의 [삶에서 깨어나기]란 책에 보면
'설거지를 위해서 설거지를 하는 것'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즉
설거지가 다른 것
예를 들면 밥을 먹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혹은 다른 나의 볼일을 위하여
빨리 끝내야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등의
생각들을 지양하여
설거지가 곳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거지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설거지하는 그 순간 마음을 집중하며 관하여
그 순간에 다른 생각에
끄달리지 않는 깨어있음을 연습하는 수행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서
귀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행위가 바로
부처님의 나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 같아도
그 일은 우리의 수행에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소한 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모든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에
충실한다는 의미이며
시간시간을 목적으로 충실히 살아간다는
즉, 현실을 온전히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현실에 온전히 깨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현실에 충실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행위라도
그 행위에 우리의 전력을 기울여
집중하고 관찰하며 깨어있으려 노력할 때
그 모든 행위는 신구의 삼업으로 짓는 업장이 아니라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며
이것이 바로 생활수행이 되어 버립니다.

옛 조사스님들께서는
배고플 때 밥먹고, 졸릴 때 자고,
배 아플 때 뒷간 가는
그런 일상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바로 어떤 순간에도
철저히 깨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고플 때 밥만 먹지를 못합니다.
밥을 먹으며 항상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언제나 과거로 미래로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마음은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더라도
과거나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현재'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현재를 살아가기보다
과거를 살고 미래를 살기 쉽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마음을 빼았겨
자신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잘못은
부처님 전에 지극한 '참회'와 함께
모두 비워버리세요.
죄란 본래 없습니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음이 죄인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부처님 전에 지극한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집착을 놓아 버리세요.
앞날에 대한 근심 걱정은
'참 나' 비로자나 법신의
생명력을 굳게 믿고
원을 세우는 그 속에 모두 던져 버리세요.

그리고 마음은 자유가 되셔야 합니다.

현실에 머물러 있으란 말이 아닙니다.
머물 현재도 없습니다.
현재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입니다.

오직...
모두를 던져버리세요.
부처님 참생명을 의지하며...
모두 놓아버리세요.

모든 분별심을 놓고는
가만히 '관(觀)' 하시길 바랍니다.
'지켜봄'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현재심을 다스리는 수행입니다.
현실에 온전히 깨어있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무집착입니다.
집착하지 않음입니다.
무집착의 근본 수행이 바로
방하착(放下着)-놓음-이며
'지켜봄(觀)'인 것입니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삶은
바/ 로/ 지/ 금/
지금입니다.

지금
모든 것을
놓아버리소서...
그리고
마음은 가만히
'지켜봄'에 머무르면 됩니다.


Posted by 법상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들녘엔 새봄을 맞이하는 꽃들이며 봄나물이 한창이다.

이렇게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내 속 뜰의 공부는 얼마만큼 그 흐름에 부응하며 보내왔는지… 하루 이틀, 한 시간, 일분, 일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너무 쉽게 소모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날이 갈수록 단순한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뻐근한 가슴앓이로 다가온다.

이 소중한 기회 이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음 순간이란 그다지 소중하지 못하다. 이 순간, 내게 주어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이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백일 천일 공부할 것도 없고, 전생 공부 인연 논할 것도 없으며, 다음 생에도 이 공부인연 이어지기를 구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렇게 찾던 '바로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할 것.

우리는 끊임없이 바라고 또 바란다. 돈을 벌기 바라고, 지위가 오르길 바라고, 성공하기 바라며 계속해서 무엇인가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바라는 순간 그 마음은 '지금 여기'에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진 순간이 되어야 한다. 자꾸 어디로 가려고 애를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우린 이미 도착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밥 빨리 먹고 나서 일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밥 먹는 그것이 그대로 목적인 것이다. 밥 먹는 순간 온전히 밥만 먹는 것이다. 밥 먹으며 다른 생각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그렇게 번잡하지 않고, 오직 밥만 먹어야 한다.

밥을 먹는 순간, 일을 하는 순간, 걷는 순간, 대화하는 순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거기에 있어야 한다. 매 순간 도착해 있어야 한다.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 갈 필요는 없다.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임을 알면 된다. 그랬을 때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다.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있음이 된다.

모든 순간 순간 더 이상 도달할 곳이라고는 없이 그 순간이 가장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을 돌아보자.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는 이 마음을…

시간이란 것이 다 우리가 만들어 낸 조잡한 관념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 속에 내가 온전히 살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순간을 살면 시간은 없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데 시간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이 새로운 순간. 이 소중한 시간 시간을 결코 소홀히 흘려보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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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상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과거나 미래로
흘려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온갖 망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있음을 자주 명상하곤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슬퍼하거나 후회를 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헛된 상상을 함으로써
그 생각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거나 미래로 흐르는
온갖 망상들을 다시 되돌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첫 걸음이란 것을 잘 알지 못하는 듯 합니다.

물론 현재의 마음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관찰하고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의 가르침 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고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흐를 뿐입니다.
흐르는 시간에 마음을 고정시키려니
그것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틱냩한 스님의 [삶에서 깨어나기]란 책에 보면
'설거지를 위해서 설거지를 하는 것'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즉
설거지가 다른 것
예를 들면 밥을 먹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혹은 다른 나의 볼일을 위하여
빨리 끝내야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등의
생각들을 지양하여
설거지가 곳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거지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에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설거지하는 그 순간 마음을 집중하며 관하여
그 순간에 다른 생각에
끄달리지 않는 깨어있음을 연습하는 수행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서
귀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행위가 바로
부처님의 나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 같아도
그 일은 우리의 수행에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소한 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모든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에
충실한다는 의미이며
시간시간을 목적으로 충실히 살아간다는
즉, 현실을 온전히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현실에 온전히 깨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현실에 충실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행위라도
그 행위에 우리의 전력을 기울여
집중하고 관찰하며 깨어있으려 노력할 때
그 모든 행위는 신구의 삼업으로 짓는 업장이 아니라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며
이것이 바로 생활수행이 되어 버립니다.

옛 조사스님들께서는
배고플 때 밥먹고, 졸릴 때 자고,
배 아플 때 뒷간 가는
그런 일상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바로 어떤 순간에도
철저히 깨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고플 때 밥만 먹지를 못합니다.
밥을 먹으며 항상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언제나 과거로 미래로 마음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마음은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더라도
과거나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현재'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현재를 살아가기보다
과거를 살고 미래를 살기 쉽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마음을 빼았겨
자신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잘못은
부처님 전에 지극한 '참회'와 함께
모두 비워버리세요.
죄란 본래 없습니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음이 죄인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부처님 전에 지극한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집착을 놓아 버리세요.
앞날에 대한 근심 걱정은
'참 나' 비로자나 법신의
생명력을 굳게 믿고
원을 세우는 그 속에 모두 던져 버리세요.

그리고 마음은 자유가 되셔야 합니다.

현실에 머물러 있으란 말이 아닙니다.
머물 현재도 없습니다.
현재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과거입니다.

오직...
모두를 던져버리세요.
부처님 참생명을 의지하며...
모두 놓아버리세요.

모든 분별심을 놓고는
가만히 '관(觀)' 하시길 바랍니다.
'지켜봄'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현재심을 다스리는 수행입니다.
현실에 온전히 깨어있는 것입니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무집착입니다.
집착하지 않음입니다.
무집착의 근본 수행이 바로
방하착(放下着)-놓음-이며
'지켜봄(觀)'인 것입니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삶은
바/ 로/ 지/ 금/
지금입니다.

지금
모든 것을
놓아버리소서...
그리고
마음은 가만히
'지켜봄'에 머무르면 됩니다.

Posted by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