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31 초보 농사 이야기 자연이야기
  2. 2007.12.11 농사문제, 먹는문제를 생각한다


요즘 밝은도량에는
온갖 나무와 야생화들
그리고 산나물과 약초들
하늘거리는 바람소리
바람에 낙엽 서걱이는 소리까지
가만히 앉아 느껴보면
온갖 대자연의 소리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새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게 들리는지 몰라요.
내가 가만히 들어 본 새소리만 해도
한 10가지는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그 울음소리들도 얼마나 신기하고 독특한지...

또 작년 가을까지 도량 주위에서 놀던
꿩 가족들도 겨우내 자취를 감추었는데
여름이 되면서 다시 도량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어디로 다녀 온 건지,
아니면 겨울잠을 자고 온 건지는 몰라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좀 야속한 건
이녀석들이 예뻐서 다가가는데
조금만 인기척이 들리면 냅다 꼬리를 빼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몹시 서운해요.

요즘에는
이제 본격적인 여름꽃들 나물들 산야초들이
한창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메꽃,
망초꽃, 고들빼기꽃, 원추리꽃, 괭이밥꽃, 씀바귀꽃,
수영, 소리쟁이, 별꽃, 돌나물꽃, 뱀딸기열매,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고
이렇게 내가 알 수 있는 것들 외에도
아직까지 그 이름도 쓰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관심을 가지고 산야초들
산나물이며 약초 꽃들을 바라보고 공부하다 보면
정말 한도 끝도 없기도 하고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한참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고 있는데
법당에서 지은 농사는
거의 수확이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산 중턱인데다
낙엽 떨어져 썩은 부엽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그냥 조금 개간해 씨만 뿌렸더니
이 녀석들이 처음에 조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기운이 달리는지 영 올라오지를 못하데요.

정말이지 혹독하게 실패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 아래 마을 내려가면
누가 지은 농사고 할 거 없이
모두 다 잘 크고 싱싱한 채소들이 푸르른데
법당만 영 기척조차 없으니
신도님들께서 비료 조금만 뿌리자는 말이
왜 그리 혹하게 만들던지요.

내가 농사지어 팔아먹을 거였다면
아마도 당연히 비료를 주고 말았을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인근 나무아래에서 부엽토를 긁어다가
한 몇 일 깔아주고,

인근 마을에 인심좋은 모종파는 할머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했더니
좋은 거름을 한 포대 주셔서
그놈을 조금 섞어 뿌려주고는
씨앗을 다시 뿌려 보았습니다.

좀 늦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힘을 쓰고 올라오는 듯도 해요.

또 감자 심은 것들도
나무들 사이에 햇빛 조금씩 비치는 곳에 심었다보니
이녀석들이 햇빛 서로 받으려고 위로만 자꾸 크다가 넘어져요.
아무리 북주기를 해 줘도 고개를 떨구데요.

게다가 거름도 얼마 없다보니
줄기가 굵지는 못하고 위로만 크니
감자 농사도 영 시원치 못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조금씩 큰 것들도 있거든요.
저 아래 땅콩도 몇 개 안 되지만 잘 살고 있고,
상추도 거름 하나 없어서 하나도 안 크나보다 했더니
아래 모종한 상추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서 요즘 먹고 있습니다.

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이모님댁 모종을 몇 개 얻어 온
배추도 처음에는 영 안 클것 같더니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있습니다.

콩 심은 곳은
법당 있는 쪽에서 조금 먼 곳이라
아예 물도 주지 않고 심기만 했었어요.
물론 처음 심을 때는 그 날 저녁 비 오는 날을 택했지요.

그래도 올해에는 꼬박꼬박
비가 제 때 내려 주어서
아직까지는 콩도 제법 올라오고 있습니다.
물론 콩이 아직 달리지는 않았으니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요.

또 법당에서 한 100미터 떨어진 곳에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외, 호박
심어 둔 곳에도 거름이 덜 하다 보니
그리 크고 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더디게 크고는 있어요.

물론 모종 두세개가 이유없이 죽기는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죽은 곳 주변에 개미가 많은 곳도 있고,
칡뿌리가 방해하는 곳도 있어서
그런 것이 이유일 수 있겠다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내 농사는
모든 면에서 너무 게으르고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이 성격이 좋아 말씀은 안 하셔도
속으로는 안타까운 마음 한창일겁니다.

아직 많이 모르지만
그래도 전 좀 더 연구해 볼까 합니다.
자연 그대로의 힘으로
농사도 자연이 지어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연과 하나되는 농사법.

내가 뿌린 채소씨가 잘 안 크잖아요.
그런데 그 곁에서 잡초들은 정말 잘 자라고 있거든요.
잡초들은 거름 없어도 잘 자라고
비료 뿌려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름이 없어서가 아니고,
비료를 뿌리지 않아서가 아닌것 같습니다.
씨앗에 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 생각해 봅니다.

씨앗을 그동안 너무 약하게 키웠던 거지요.
사람의 힘으로 돌보고 비료도 주고, 잡초도 뿌려주고 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클 수 있는 야생의, 자생의 힘을
사람들이 없애버리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요즘 나오는 무슨 종묘상에서 파는 씨앗들이
거의 그렇게 너무 약합니다.

자연의 것들은
따로 물 주지 않아도
하늘에서 내리는 물만 가지고도 잘 자라고,
거름이나 비료 주지 않아도
흙에 있는 것 만으로도 잘 자라고,
제초제나 농약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커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만 안 그렇다면
그 이유는 사람들이 뿌리는 씨앗이 너무 약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야생스럽지 않은
온실에서 조심스레 큰 여리디 여린 씨앗을
제 마음이나 신념만 가지고
야생의 잡초들과 경쟁을 시키다 보니
당연히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요즘 또 하나의 관찰이
어느정도 경쟁에서 지고 또 어느정도 이기는가
그것도 주 관심사 중에 하납니다.

아래 모종 심은 상추나 배추도
처음에는 시들시들하여 다 죽은 듯도 하고
영 거름이 없어 죽어가는 듯 하더니
그래도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식 다시 되살아납니다.

상추는 힘없이 그래도
다른 야생초들과 어렵게 겨루고 있어서 대견합니다.

상추 심은 곳에 피어났던
민들레 두 송이를 그대로 놓아두었었습니다.
민들레 잎이 크게 자라면 상추잎만큼 자랍니다.
그리고 그 영양가도 못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상추보다
그 곁에서 더 힘있게 자라나는 민들레 잎을
뜯어다가 상추처럼 쌈 싸 먹고 있어요.
그런데 이 두 녀석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상추는 힘겹게 커가고 있고
그 속도도 한참을 더디게 크는 반면에,
민들레는 그야말로 쑥쑥 커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조건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요.

요즘 같아서는
정말이지 농사지으려고 씨 뿌릴 것 없겠다 싶어요.
이렇게 민들레처럼 그냥 야생의 것들을
따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아니 너무 많은 게 아니라
따 먹지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돕니다.

앞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요즘 밥상에 오르는 것들만 해도
고마리, 며느리배꼽, 닭의장풀
괭이밥, 수영, 토끼풀, 소리쟁이,엉겅퀴, 며느리배꼽 등이 있어요.
여린 것은 먹을 수 있고
조금 크거나 꽃이 피면 못 먹는다는 것도
알고보면 못 먹는다는 게 아니고
좀 억새서 먹기 힘들다는 말이거든요.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좀 게으르게 하고,
내 노력 좀 덜 들이면서
자연의 노력을 흠뻑 받을 수 있도록
대자연의 온전한 흐름에
턱 내맡기면서 자랄 수 있도록
참된 부처님의 농사가 꼭 있을 것입니다.

그런 농사를
발견했으면 하고
모든 이들이
그런 대자연의 부처님 농법으로
농사 지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완전 초보 농사꾼이
너무 말만 앞서는거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Posted by 법상



바람이 좋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숲을 지나 뺨까지 스치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으면 나는 행복을 느낀 다.

매일 매일
공양 때 마다 밥상위로 올라오는
아직은 어린 상추, 케일, 근대, 쑥갓들 하 며,
지난 주 보살님께서 담아주신 물김치들로
요즘은 밥 때가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내 손으로 직접 지은 채소,
비료, 농약,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온연한 채소들을 보 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게 아닐까 싶 다.

하기야 자식들이야 키우는 재미는 있다지만
하도 말썽을 피고
다 커서는 부모 속을 얼마나 썩이 나.
이 녀석들은 별 속도 안 썩이면서
하루에 세 번 거스르지 않고 효도를 하니 얼마나 고마운 지...

비료를 안 뿌리니까
이렇게 더디고 실하지 않다면서,
농약을 안 뿌리니까
이렇게 잎이 벌레를 먹었다면서
제초제를 안 뿌리니까
채소에게 갈 양분이 잡초들에게 다 간다면서
이러면 안된다고 고집하시던 마을 분들도
이젠 법당 채소에 탐을 내는 분위 기.

그런데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농부들의 마음 백번 이해가 간다.

비료 조금만 뿌리면
열 개 달릴 꺼 스무게 삼십게는 달릴 것이 고,
비실비실 작은 상추잎도 더 커지겠고,
농약 조금만 뿌리면
벌레 안 먹은 보기 좋고 윤기있는 채소를 재배할 테 니...

그 유혹을 그래도 이겨내려면
밝은 지혜, 온전한 앎이 있어야 할 것 같 다.

비료 주어서, 농약 뿌려서 열매가 더 열리면
그만큼 열매의 생명력은 떨어지게 마련이 다.
인간의 손길로 잔뜩 영양제 뿌려주고
외부로부터의, 벌레로부터의 재해를 막아주니
열매는 몸집만 크고 열매가 많아질 지언정
그 내적으로 실하지 못하고 생명력이 떨어지지 않겠 는가.

사람도 고난과 힘겨움을 당해 보고
그 속에서 내면의 힘도 생기는 것이 고,
아프고 고달파 봄으로써
더 튼튼한 건강을 챙기게 되는 것이 며,
외부로부터의 경쟁상대가 있어야
내적으로 더 똘똘뭉치고 실해지지 않는 가.

그러니 그런 생명력 없는 음식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입에는 달고 보기에는 좋을지언정
우리 몸을 그만큼 약화시키고
생명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 같 다.

요즘이야
채식도 온통 사람들 손으로 생명력을 떨어뜨린
나약하고 겉만 뻔지르르한 채식이고,
육식도 사람들 먹기 위해 억지로 먹이고 길러서
살만 잔뜩 찌워 잡아 죽인 육식이니
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만한 것이 없 다.

그것이 다 사람들 욕심에서 나온 어리석은 결과 다.
사람들은 사실 최소한의 보조역할만 하면
채소도 다 우리 먹을 만큼 자라 줄 것이 고,
동물들이야 우리 사람들의 보조도 필요없이
잘 자라게 되어 있을 것이다.

대자연 우주는 그렇게 본래부터
다 갖추고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 다.
사람들 욕심만 갖다 붙이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부족할 것 없이 충분히 사람도 먹여 살리고
온 우주 법계가 서로 서로를 먹여 살리도록 되어 있 다.
그것이 법계의 온전한 본래 모습.

대자연 우주 법계 보다
사람이 더 잘난줄 아는 것이 병통이 다.
사람이 더 잘났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대자연의 이치는 덮어두고 사람의 생각대로 행한 다.
그러나 절실히 필요한 자각 하나.
사람의 지식이 더 올바른 것이 아니라
대자연 우주 법계의 지혜가 더 근원적이라는 사 실.

그런데 농업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대량 생산, 대량 축적, 대량 소비라는 허울만 좋 은,
사실은 엄청난 어리석음과 욕심을 동반한
농업혁명이 아닌 농업폐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지 못한 다.

더 많이, 더 큰 것을 더 빨리 얻으려는 욕심으로
대자연 우주를 마구 훼손하여 그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라는 비료의 3요소를 뽑아내어
비료를 만들어 놓았고,

채소, 농작물과 공존하면서
그들의 생명력을 강화시켜주고 상생하고 있는 소중한 해 충들을
아주 몰살시켜 채소만 멀쩡하게 잘 자랄 수 있게
농약들을 개발시켰으며,

땅심을 좋게 하고, 황폐화되고 산성화된 흙을 비옥하게 바꾸어 주는
소중한 야생의 풀들을 잡초라고 몰아붙여
청산가리 1만배가 넘는 독극물인 제초재를 개발시켜 놓고 말았다.

이것이 다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법계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의 욕심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심과 치심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좋고 나쁨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어야 하 고,
나쁜 것이 있음으로 인해 좋게 될 수 있다는 공존의 원 리
연기의 원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이 그 바탕이 된 것이 다.

산업혁명, 농업혁명이 사실은
그 근본이 어리석음인 줄 누가 알고나 있겠는 가.

해충이 있어야 익충도 있는 법이고,
잡초가 있어야 채소도 있는 법이다.
좋고 나쁨을 나누어 놓고
그 가운데 좋은 것만을 선택하려고 하면
그것은 벌써 분별심, 어리석음의 결과인 것입니 다.

좋고 나쁨이 나뉘지 않은
법계 전체의 여법한 모습을 보지 않는데서 오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이 어마어마하게 인류가 병든 결과는
결국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 다.

인간이 욕심으로 축적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이 더 크게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 고,
결국 대량생산은 전체 농업을 파괴하고 말았 다.

그렇게 세상이 혼탁해 지니
자연스럽게 육신도 혼탁해 지는 것이고,
따라서 마음도 함께 혼탁해져 가는 것이 다.

이렇게 세상이 다 오염되어 가는
오탁악세의 세상...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은 있다.
우리 마음 안에...

마음 하나 바르게 쓸 수 있다면
생명력 떨어진 채소도
중생의 육신을 뜯어먹는 육식도
우리 마음으로 다 정화시킬 수 있 고,
그런 음식들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 다.

기쁜 마음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우주 법계의 은혜로움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고, 맛있게 먹는 것.

기왕에 먹을 거라면
몸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는 것.

그것이 보다 근원적인 마음씀이 될 수 있 다.

될 수 있다면
육식 보다는 채식을 해야 하겠고,
술도 될 수 있다면 자재를 하고,
담배도 될 수 있다면 끊어야 하고,
오신채도 될 수 있다면 적게 먹으면 좋 고,
인스턴트 식품, 탄산음료 등도 줄여 나가는 것이 좋은 일이 지만,

꼭 먹어야 한다면
꼭 먹어야 할 때가 생긴다면
이 우주 법계에 감사하는 마음으 로,
그 음식도 나와 둘이 아닌 마음으로
고기들 천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하겠 다.

Posted by 법상